한류를 이해하는 33가지 코드 #28 '비디오 아트의 대부' 백남준과 후예 8인방
33 Keys to Decoding the Korean Wave, Hallyu #28 Nam June Paik
한류를 이해하는 33가지 코드
#28 '비디오 아트의 대부' 백남준과 후예들
Nam June Paik 1983, Photo by Young-kyun Lim
"레오나르도처럼 정확하게, 피카소처럼 자유롭게, 르누아르처럼 다채롭게, 몬드리안처럼 심오하게, 폴락처럼 폭력적으로, 재스퍼 존스처럼 서정적으로TV 화면 캔버스를 만들기를 원했다. "
-백남준, 1969-
인간이 언제부터 그림을 그렸는지, 언제부터 조각을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태고적의 일이다. 하지만, 비디오 아트(video art)의 탄생일에 대해서는 누구도 의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비디오 아트는 1963년 3월 백남준(Nam June Paik, 1932-2006)에 의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 백남준은 1956년부터 독일 뮌헨대와 쾰른대에서 건축, 음악사, 철학 등을 공부하면서 미국의 전위 음악가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 독일 아티스트 조셉 보이스(Joseph Beuys, 1921-1986) 등을 만나 반예술 운동 플럭서스(Fluxus)에 참가했다.
백남준은 1963년 3월 독일의 서부 도시 부퍼탈의 파르나스 갤러리(Galerie Parnass)에서 중고 TV세트 13대 모니터에 강렬한 광학적 무늬가 튀어나오는 작업으로 첫 개인전 '음악의 전시-전자 텔레비전(Exposition of Music-Electronic Television)'을 열었다. 이것이 '아시아에서 온 문화 테러리스트'가 발명한 최초의 비디오 아트였다.
이듬해 백남준은 뉴욕으로 이주했다. 당시 뉴욕 미술계는 추상적 표현주의와 팝아트가 풍미했다. 큐레이터들은 외국인 아티스트들에 관심이 없었다. 백남준은 자조적으로 '황색의 위험분자(yellow peril)'라고 부르기도 했다. 백남준은 "난 가난한 나라에서 온 가난한 남자였다. 그래서 사람들을 매 순간 즐겁게 해주어야 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1984년 1월 1일 뉴욕-파리-베를린-서울을 연결하는 세계 최초의 위성중계 비디오아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Good Morning, Mr. Orwell)'을 지휘했다. 그해 6월 고국을 떠난지 35년만에 귀국했을 때 한 기자가 물었다. "왜 한국 무대를 놔두고, 외국 무대에서만 활동하시나요?" 그의 대답은 "문화도 경제처럼 수입보다는 수출이 필요해요. 나는 한국의 문화를 수출하기 위해서 세상을 떠도는 문화 상인입니다"이었다고 한다.
Nam June Paik, Electronic Superhighway: Continental U.S., Alaska, Hawaii, 1995,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1965년 10월 4일 백남준은 세계 최초의 휴대용 비디오 카메라인 소니 포타팩(Sony Potapak)을 구입했다. 소니 포타팩이 집으로 배달되자마자 택시를 타고, 뉴욕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6세(Pope Paul VI)의 카 퍼레이드를 가까이서 촬영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 그리니치 빌리지의 '카페 아 고고'(Café a Go-Go)에서 친구들과 모여 20분짜리 테이프를 보여주었다. 그날은 뉴욕에서 비디오 아트가 탄생한 날이었다.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Father of Video Art)' '비디오 아트의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 of video art)'로 불리우던 백남준은 2006년 1월 29일 마이애미 비치에서 눈을 감았다. 올해는 그가 세상과 고별한 지 15년째 되는 날이다. 뉴욕타임스의 미술 비평가 로버타 스미스(Roberta Smith)는 당시 부고 기사(Nam June Paik, 73, Dies; Pioneer of Video Art Whose Work Broke Cultural Barriers)에서 백남준을 '팝아티스트 최고의 팝 아티스트(The most Pop of the Pop artists)'라고 불렀다.
"백남준의 경력은 반세기, 3개의 대륙과 음악, 연극 및 파운드 오브제(Found Object) 등 여러 예술 매체에 걸쳐 다양했다. 그는 자신의 로봇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주요 표현수단은 시각적인 야성, 기술적 지식 및 고도의 엔터테인먼트 가치를 매력적으로 결합한 텔레비전이었다. 그의 작품은 키치하면서도 시각적으로 눈부시며, 심오하고, 때때로는 모두 포함했으며, 종종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하며, 혈기왕성했다."
-로버타 스미스, NYT-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이 떠난 그 자리에 그의 후계자들이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조안 조나스, 브루스 나우만, 빌 비올라, 토니 아워슬러, 크리스찬 마클레이, 더크 에이트킨, 피피로피 리스트, 그리고 차학경(테레사 학경 차)의 비디오 아트에선 백남준의 흔적들이 강하게 남아 있다.
백남준의 후예 8인방
#조앤 조나스 Joan Jonas
Joan Jonas, Reanimation © Joan Jonas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 DACS, London
'퍼포먼스 아트의 선구자' 조앤 조나스(Joan Jonas, 1936- )는 맨해튼 소호(SoHo) 머서 스트릿(Mercer Street) 같은 빌딩의 이웃사촌이었다. 1970년 조앤 조나스는 조각가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와 함께 일본에 갔다가 전통 가면극 노(Noh, 能)에 매료됐고, 백남준이 작업해던 휴대용 비디오 카메라 '소니 포타팩'을 구입해 돌아왔다.
조나스는 이 카메라로 1971년 리처드 세라와 흑백 단편 'Veil'(6분)과 'Paul Revere'(9분)을 제작했으며, 1972년엔 'Organic Honey's Visual telepathy'에서 비디오를 사용한 첫 퍼포먼스를 했다. 이후 조나스는 풍경 속 인물, 사물과 몸짓의 제의적 사용, 자연환경의 취약성 등을 주제로 비디오, 조각, 드로잉, 사운드, 텍스트, 세트, 연극, 춤, 퍼포먼스를 혼합해 왔다.
조앤 조나스는 1936년 뉴욕에서 태어나 매사추세츠주 마운트 홀리요크대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보스턴뮤지엄에서 조각과 회화를 공부한 후 컬럼비아대에서 조각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60년대 존 케이지, 안무가 트리샤 브라운, 이본 라이너, 작곡가 필립 글래스, 스티브 라이히 등과 어울리며 영향을 받았다. 2015년 제 56회 베니스 비엔날레 미국관의 작가로 선정되어 멀티미디어 설치작 '그들은 말 한마디 없이 우리에게 온다(They Come to Us Without a Word)'를 전시했다. 2018년 테이트 모던에서 대규모 회고전 'Joan jonas'를 열었다.
#브루스 나우만 Bruce Nauman
Bruce Nauman, Contrapposto Studies, i through vii, 2015/16, Seven-channel video, MoMA PS1
*Bruce Nauman: Disappearing Acts, MoMA PS1 <YouTube>
2018년 퀸즈의 MoMA PS1에서 열린 브루스 나우만(Bruce Nauman, 1941- )의 회고전 'Bruce Nauman: Disappearing Acts'(2018. 10. 21-2019. 2. 18)에선 네온아트를 비롯, 드로잉, 판화, 사진, 조각 외에도 백남준으로부터 강하게 영향을 받은 비디오, 영화, 퍼포먼스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 165점이 소개됐다.
1941년 인디애나주 포트웨인에서 태어난 브루스 나우만은 위스콘신-매디슨대에서 수학과 물리학, 캘리포니아대(UC 데이비스)에서 미술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때 웨인 티보(Wayne Thiebaud)의 조수로 일했다. 1960년대부터 전위예술가 존 케이지와 작곡가 필립 글래스, 스티븐 라이히의 미니멀리즘 음악에 영향을 받았다. 물론 비디오 작품은 백남준에게 빚을 졌다.
1999년 베니스비엔날레 미국관 작가로 전시했으며, 2009년 다시 베니스 비엔날레에 미국 작가로 나가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2004년 타임지가 '세계에서 영향력있는 인물 100인'에 나우만을 선정했다. 2020년 테이트 모던에서 회고전 'Bruce Nauman'을 열었다. 1986년 화가 수잔 로텐버그(Susan Rothenberg)와 결혼, 뉴멕시코 산타페 인근 갈리스토에 목장을 두고 작업해오다가 암 진단을 받고 치료해왔다.
*브루스 나우만 'Disappearing Acts', MoMA PS1, 2018
#빌 비올라 Bill Viola
Bill Viola, Going Forth By Day, 2002, Five-part video and sound installation, color video projection with four channels of sound, 36 min.
*Bill Viola, The Crossing, 1996, two channels of color video projection, 10. 57 min.
빌 비올라(Bill Viola, 1951- )는 출생, 죽음, 무의식과 의식의 세계, 물, 불, 흙, 공기 등 자연의 4대 요소, 선불교, 기독교 신비주의, 이슬라믹 수피즘 등를 탐구해온 작가다. 그의 대형 스크린은 황홀한 명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빌 비올라는 1951년 뉴욕 퀸즈에서 태어나 플러싱의 PS 20에 다녔다. 시라큐스대에서 시각공연예술학교에서 실험연구를 전공했다. 1973년 대학 졸업 후 시라큐스의 에버슨미술관(Everson Museum of Art)에서 비디오 테크니션을 거쳐 백남준의 조수를 지내면서 가까이서 비디오 아트를 다루었다. 비올라는 작곡가 데이빗 튜더(David Tudor)를 사사하면서 그의 뉴뮤직 그룹 'Rainforest'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2018년엔 비디오 게임 'The Night Journey(밤의 여행)'를 출시하며 컴퓨터 게임업계까지 진출했다. 현재 부산시립미술관(Busan Museum of Art)에서 개인전 '빌 비올라, 조우'(2020. 10. 21-2021. 4. 4)가 열리고 있다.
#토니 아워슬러 Tony Oursler
Tony Oursler, Klang, Installation view, Ekeberg Sculpture Park, Ekebergparken, Norway, 2013
토니 아워슬러(Tony Oursler, 1951- )는 인형, 마네킹, 패널 등 오브제를 모니터로 비디오 아트를 확장한 작가다. 이에 따라 사실과 허구, 현실과 환상의 팽팽한 긴장감과 함께 유머가 흐른다. 거대한 인형은 복잡한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는 도구로 TV 등 미디어가 인간의 영혼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과 소외를 탐구하며, 또한 생태계 오염 등 환경 문제에도 다루어 왔다.
1957년 맨해튼에서 태어난 토니 아워슬러는 뉴욕주 나이약에서 성장했다. 캘리포니아아트인스티튜트(CalArts)에서 마이크 켈리(Mike Kelley), 수 윌리엄스(Sue Williams)와 함께 공부했으며, 백남준과 전위음악가 로리 앤더슨(Laurie Anderson)이 강의를 했다. 백남준이 자신의 영감이었다는 토니 아워슬러는 1985년 파리 퐁퓌두센터에서 개인전을 열었을 때 백남준이 찾아왔다고 밝혔다.
1981년 뉴욕으로 이주한 후 비디오와 미디어 아티스트들을 위한 비영리기구 EAI(Electronic Arts Intermix)에 소속되어 작업하기 시작했다. 추상화가 재클린 험프리(Jacqueline Humphries)과 결혼했다. 토니 아워슬러의 비디오 조각 '감시초소, A Guard Post)'는 경남 통영의 남망공원에 설치되어 있다.
#크리스찬 마클레이 Christian Marclay
Christian Marclay, Production still from Shake Rattle and Roll (Fluxmix), Walker Art Center, Minneapolis, 2004
*Christian Marclay - The clock, 2010-2011 <YouTube>
https://youtu.be/C0ZLrW2dmAw
비디오 아티스트이자 작곡가이며 사운드 디자이너인 크리스찬 마클레이(Christian Marclay, 1955- )는 2012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시계(The Clock)' 전시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2011년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시계'는 할리우드, 유럽, 한국 등 세계의 영화 속의 시계 장면을 편집해 실제의 24시간과 일치하게 보여준다.
기차역의 시계부터, 병원의 응급실, 부잣집 거실의 시계, 은행강도들의 시계까지 시공을 초월한 24시간 시계 몽타쥬다. 시간은 스트레스의 원흉이 된다. 시간에 쫓겨 사는 우리들이 시간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때 더 행복하다. 마클레이는 어둠 속에서 24시간 물리적 시간 속에 뛰어들어 시간에 대해 명상하게 만든다.
백남준처럼 실험음악가이기도 한 크리스찬 마클레이는 2004년 마네아폴리스 워커아트센터(Walker Art Center)에서 연 전시 'Shake Rattle and Roll: Christian Marclay'에서 백남준, 요코 오노(Yoko Ono), 벤 보티에르(Ben Vautier) 등 이 센터와 조셉 보이스의 플럭서스 컬렉션 500여점을 모아 16개의 비디오 모니터에 펼쳐 교향곡으로 선보였다.
1955년 캘리포니아주 산 라파엘에서 태어난 크리스찬 마클레이의 아버지는 스위스계, 엄마는 미국인으로 제네바에서 성장했다. 제네바 고등미술학교와 보스턴의 매사추세츠 칼리지를 거쳐 뉴욕의 쿠퍼유니온을 졸업했다. 1970년대 쿠퍼 유니온 재학시절 조셉 보이스(Joseph Beuys)와 플럭서스 운동에 흥미를 보였으며, 존 케이지(John Cage), 백남준, 오노 요코(Yoko Ono), 비토 아콘치(Vito Acconci)의 영향을 받았다. 마클레이의 부인은 한국계 리디아 이(Lydia Yee)로 브롱스미술관 큐레이터를 지냈으며, 현재 런던 화이트채플 갤러리의 큐레이터다.
#더그 에이트킨 Doug Aitken
Doug Aitken, SONG 1, 2012/2015. 7-channel composited video installation. Schirn Kunsthalle, Frankfurt, 2015
*Doug Aitken: sleepwalkers, Documentation of the exhibition <YouTube>
https://youtu.be/UVRds0rTILM
2007년 겨울 잠들지 않는 도시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과 인근 빌딩의 외벽엔 대형 스크린 8개가 설치됐다. 매일 저녁 영화배우 도날드 서덜랜드와 틸다 스윈턴, 챈 마샬(Cat Power), 슈 호르게, 라이언 도노후 등이 출연해 잠자고, 씻고, 거닐고, 연주하는 일상의 모습들이 클로즈업으로 상영됐다. 타임스퀘어의 빌보드 상표들이 인간으로 대치되며 빌딩 외벽이 멀티플렉스 영화관으로 전환된 '몽유병자(Sleepwalkers, 2007. 1. 16-2. 12)'였다.
2012년 한국의 백남준아트센터가 선정하는 국제예술상을 수상한 더그 에이트킨(Doug Aitken, 1968- )은 2013년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 전시엔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전기 지구(Electric Earth)'를 소개했다. 이 작품은 아침에 일어나 집을 나선 흑인 남자가 세차장, 주차장, 공항 인근 빈터 등을 지나며 마치 전기에 의해 지배받는듯 보내는 하루를 담았다.
에이트킨에 따르면, 그 인물은 마치 지구상에 홀로 남은 세기말적 인간처럼 보인다. 작가는 인물의 움직임을 통해 시간의 흐름, 공간의 분절을 보여줌으로써 관객이 직접 미로 같은 공간을 이동하며 독특한 시공간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1968년 캘리포니아 레돈도 비치에서 태어난 더그 에이트킨은 파사데나 디자인아트센터대에서 수학한 후 1994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피필로티 리스트 Pipilotti Rist
Pipilotti Rist, Pixel Forest 2016, New Museum, New York
2016년 가을 맨해튼 로어이스트사이드의 뉴 뮤지엄(New Museum)에서 스위스 출신 페미니스트 아티스트 피필로티 리스트(Pipilotti Rist, 1962- )의 회고전 '픽셀의 숲(Popilotti Rist: Pixel Forest, 2016. 10. 26-2017. 1. 15)'이 열렸다. 갤러리는 거대하고, 컬러풀한 놀이 공원같았다. 관람객들은 침대에 누워, 방석에 기대어 리스트가 영상으로 그려낸 스펙터클한 판타지 유토피아 속으로 들어갔다.
피필로티 리스트는 이전 백인 남성 비디오 작가들의 엄숙주의, 염세주의, 블랙유머를 넘어서 유쾌하고, 감각적이며, 관능적이고, 유아스럽지만, 유머러스하고, 무엇보다도 뮤지엄을 뮤직 비디오 같은 환희에 찬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피피로피 리스트는 비엔나응용미술대학교에서 상업미술, 일러스트레이션과 사진을 공부한 후 바젤디자인스쿨에서 비디오아트를 전공했다. 졸업 후엔 스위스의 여성 록밴드 레 라이네스 프로카인스(Les Reines Prochaines)'의 멤버로 활동했다. 199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 프레미오상을 받았다. 2012년 리움, 삼성미술관(Leeum, Samsung Museum of Art)에서 '피필로티 리스트: 하늘로 오르다(Spear To Heaven)'전을 열었다.
*Pipilotti Rist, Pixel Forest 2016, New Museum, New York
http://www.nyculturebeat.com/?document_srl=3512208&mid=Art2
#차학경(Theresa Hak Kyung Cha, 1951-1982)
1982년 11월 맨해튼 소호의 주차장에서 한 아시안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그녀는 퍽빌딩에 갔다가 경비원에 의해 성폭행을 당한 후 목졸라 살해됐다. 31세의 한인 아티스트 차학경(Theresa Hak Kyung Cha)씨였다. 차씨는 사진작가 남편 리처드 반스(Richard Barnes)의 사무실이 있는 건물에 갔다가 변을 당했던 것이다. 차학경씨는 소설가, 제작자, 감독, 그리고 비디오아티스트였다.
차학경씨는 1951년 한국전쟁 중 부산에서 태어나 11살 때 하와이를 거쳐 샌프란시스코에서 성장했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미술, 문예창작, 도예, 퍼포먼스를 두루 섭렵한 후 비교문학으로 학사, 이어 퍼시픽필름보관소에서 일하면서 2개의 학위(MA, MFA)를 받았다. 1976년 파리영화센터에서 수학한 후 귀국해 샌프란시스코현대미술관에서 퍼포먼스를 했으며, 1980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메트로폴리탄뮤지엄 디자인 부서에서 일하면서 엘리자베스 세튼대학교에서 비디오아트를 가르쳤다.
그는 사망 2개월 전 아방가르드 소설 '딕테(Dictée)'를 출간했다. '딕테'는 유관순, 잔다르크, 가족들의 이민여정, 일제 강점기, 독재자 등 여성의 삶과 한국역사의 트라우마를 교차시키면서 국가, 언어, 기억, 시간의 상실을 그려낸 회고록이자, 역사책이자, 실험적 명상록이다. 훗날 '딕테'는 포스트모더니즘, 탈식민주의, 페미니즘 등에 선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며, 아방가르드 글쓰기, 페미니스트, 아시안아메리칸 문학수업에서 널리 연구되고 있다.
Theresa Hak Kyung Cha, Whitney Biennial 2022
뉴욕타임스는 2021년 1월 7일 사망 당시 평가절하된 이들의 삶을 소개하는 '간과된 인물들(Overlooked)' 시리즈에서 차학경씨의 부고 기사 'Overlooked No More: Theresa Hak Kyung Cha, Artist and Author Who Explored Identity'를 남편 반스씨가 찍은 차씨 사진과 함께 실었다. 이 시리즈엔 이전에 유관순 열사와 위안부 피해자인 김학순 할머니의 부고도 게재됐다.
차학경씨는 2022 휘트니 비엔날레(Whitney Biennial, 4/6-9/5)에 초대됐다. '그대로 조용히(Quiet as It's Kept)'를 주제로 한 비엔날레에서 그녀의 비디오 아트를 비롯한 앞서갔던 차학경씨의 작품들이 고요히 2022년 관람객과 소통하고 있다.
*2022 휘트니 비엔날레에 초대된 고 차학경(1951-1982)씨는 누구?
http://www.nyculturebeat.com/?mid=Art2&document_srl=4056547
박숙희/블로거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한양대 대학원 연극영화과 수료. 사진, 비디오, 영화 잡지 기자, 대우비디오 카피라이터, KBS-2FM '영화음악실', MBC-TV '출발! 비디오 여행' 작가로 일한 후 1996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Korean Press Agency와 뉴욕중앙일보 문화 & 레저 담당 기자를 거쳐 2012년 3월부터 뉴욕컬처비트(NYCultureBeat)를 운영하고 있다.
백남준 기사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고조선서부터 오늘날까지 우리 나라의 역사를 통해 가장 위대한 인물, 세계적인 인물을 둘을 내세우라고 하면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과 비디오 아트의 아버지인 백남준 아티스트를 꼽겠다고 망설임없이 생각했습니다. 백남준씨는 비디오 아트라는 쟝르를 불과 반세기전에 만들어서 세상을 놀라게한 예술가고 아무도 몰랐던 비디오 아트 분야를 인류와 세상에 알린 개척자이고 예술가입니다. 스티브 잡스와 분야는 다르지만 이 시대에 하나 나올까말까한 천재임을 확신했습니다. 그가 한국인이라는 게 우리에게는 영원히 빛나는 자랑입니다. 저는 60년대 후반에 백남준씨가 첼리스트인 무어에게 연주를 하면서 웃옷을 벗게하는 사진을 타임지에서 보고 놀랬었습니다. 비디오 아트가 탄생하는 과정임을 아주 뒤늦게 알았습니다. 그의 7인의 후계자중에 조앤 조나스, 피피로티 리스트라는 여성들이 있어서 눈길이 끌립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