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상 수상, 25년만의 랑데부 '내가 운전을 배운 방법 (How I Learned to Drive)' ★★★
오프 브로드웨이 초연 25년 후 베테랑 배우들의 재회
내가 운전을 배운 방법 (How I Learned to Drive) ★★★
How I Learned to Drive Photo: Jeremy Daniel
올 3월 브로드웨이 사무엘 J. 프리드만 시어터(Samuel J. Friedman Theatre)에 리바이벌된 연극 '내가 운전을 배운 방법(How I Learned to Drive)'는 올 드라마데스크상(Drama Desk Awards) 최우수 리바이벌 연극상과 토니상(Tony Awards) 최우수 리바이벌 연극, 여우주연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작품이다. 이 연극은 1997년 5월 유니온스퀘어 인근의 오프브로드웨이 비니야드 시어터(Vineyard Theater)에서 초연됐고, 이듬해 희곡작가 폴라 보겔(Paula Vogel)은 퓰리처상 드라마 부문상을 수상했다.
1969년 메릴랜드 시골을 배경으로 사춘기 소녀 리틀 빗(Li'l Bit, 17세)과 이모부/삼촌 펙(Uncle Peck)의 관계를 그린 '내가 운전을 배운 방법'의 오리지널 캐스트는 메리 루이스 파커(Mary Louis Parker, 영화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와 데이빗 모스(David Morse)였다. 필자는 뉴욕에 온지 2년이 다 되어갈 무렵 이 연극을 보러갔는데, 그 때의 주연은 1980년대 할리우드 틴에이저 스타 몰리 링월드(Molly Ringwald, 영화 '프리티 인 핑크')와 브루스 데이비슨(Bruce Davison)이 출연했다. 영어가 미숙했던 그때 왜 그 연극을 봤는지 기억에 남지는 않지만, 소아성애와 근친상간적 관계를 다룬 상당히 불편한 연극이었다.
How I Learned to Drive, 1997
왜 이런 주제의 작품이 연극으로 제작되고, 퓰리처상까지 수상했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아성애 소설 '롤리타(Lolita, 1955)'가 왜 위대한 소설인지와 같은 의문이었다. 마침 이 연극이 한창 공연되고 있을 때인 1998년 1월 백악관에서 모니카 르윈스키 스캔달이 터졌다.(당시 르윈스키는 24세, 빌 클린턴은 51세) 그리고, 빌 클린턴 대통령은 탄핵재판까지 가게 됐다.
How I Learned to Drive, 2022
'내가 운전을 배운 방법' 뉴욕 초연 25년 후 오리지널 캐스트와 연출가가 브로드웨이에 입성했다. 2017년 할리우드 프로듀서 하비 와인스틴의 성추행을 폭로하면서 불붙었던 #MeToo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2022년 '내가 운전을 배운 방법'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연출가 마크 브로코(Mark Braokaw)와 메리 루이스 파커, 데이빗 모스, 그리고, 원작에서 조한나 데이(Johanna Day)가 25년만에 리바이벌 공연에서 재회한 것이다.
How I Learned to Drive Photo: Jeremy Daniel
리바이벌 '내가 운전을 배운 방법'은 첫 공연된 1997년으로 돌이켜볼 때 무척 도발적이며, 충격적인 작품이었을 것이다. 자동차 안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운전교습'이 어떻게 미성년자를 길들이고, 정서적으로, 성적으로 착취할 수 있는지 드라마틱하다. 리틀 빗과 엉클 펙은 감정적으로 연약한 인물들이다. 리틀 빗은 (아마도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 없이 자라 아버지같은 사람이 필요했다.
집에선 보수적인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로부터, 학교에선 급우들로부터 '큰 유방'으로 늘 놀림을 당한다. 제 2차세계대전 참전 후유증으로 알콜중독자가 된 엉클 펙은 리틀 빗이 아기 때부터 보아왔고, 그녀에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게 된다. 자동차 안은 두 소외된 인물들의 마음이 만나는 소통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How I Learned to Drive Photo: Jeremy Daniel
결국 엉클 펙은 리틀 빗이 성인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청혼을 했다가 리틀 빗으로부터 버림받는다. 그후 펙은 직장과 아내를 잃고, 운전면허까지 박탈당하고, 죽음에 이른다. 살아남은 리틀 빗은 여전히 엉클 펙의 성추행 기억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그녀가 운전하는 자동차 안의 백미러에 늘 등장하는 엉클 펙은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다.
리바이벌 공연은 왕년의 두 배우가 재회한 것 자체로 큰 화제가 됐다.엉클 펙 역의 데이빗 모스가 68세라는 것은 수긍이 갈 뿐만 아니라, 그의 부드러우면서도 음흉한 연기가 압권이다. 그런데, 57세가 된 메리 루이스 파커(*우리 동네 브루클린하이츠에 산다.)가 17세 리틀 빗으로 분하는 것은 무리였다. 아무리 분장과 소녀스러운 발성의 대사를 구사할지라도 자연스럽지 않았다. 그저 노스탤지어에 취한 관객과 비평가들의 관대함이 아닐까? 그리스 코러스로 등장한 알리사 메이 골드(Alyssa May Gold)와 크리스 마이어스(Chris Myers)가 할머니, 할아버지로 분장했을 때는 학예회 수준의 무대로 보였다.
How I Learned to Drive Photo: Jeremy Daniel
'내가 운전을 배운 방법'의 미니멀한 세트 컨셉트다. 무대 디자이너 레이첼 호크(Rachel Hauck)는 집안은 테이블 하나, 자동차는 평범한 의자 2개로 자동차 안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이 연극이 운전교습이 성인식의 메타포라는 것을 중시한다면, 이처럼 소홀하게 무대 디자인을 할 수는 없었을 것 같다. 음악은 너무 나직해서 60년대의 분위기를 전달하지 못한듯 하다.(앞줄의 사탕껍질을 계속 까먹던 관객 때문에 더 방해가 됐을 것 같다) 하지만, 마크 맥컬로우(Mark McCullough)의 컬러풀한 조명은 리틀빗의 감정선을 따라 가는데 효과적인 것처럼 보였다.
How I Learned to Drive
브로드웨이 리바이벌 연극이지만, 여전히 두 중량급 배우를 제외하고, 연출은 오프 브로드웨이에 머무른듯 하다. 아마도 이 스케일조차 25년만의 랑데부로 1997년을 재현하는 의도적인 연출이었을지도. 이날 공연에서 필자의 앞줄에는 잉꼬 부부로 알려진 배우 케빈 베이컨(Kevin Bacon, 풋 루즈)과 카이라 세드윅(Kyra Sedgwick)이 앉아 있었다.
How I Learned to Drive
Samuel J. Friedman Theatre (261 West 47th St.)
https://www.manhattantheatreclub.com/shows/2021-22-season/how-i-learned-to-dr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