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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뉴욕 촌뜨기의 일기
2022.11.02 15:21

(647) 이영주: 메트 트리오(MET Trio)의 여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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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촌뜨기의 일기 (63) 

 

메트 트리오(MET Trio)의 여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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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만 위의 산 흰 부분이 라이언 헤드 같다고 해서 이 산 이름이 라이언 헤드. 캐빈도 그래서 라이언 헤드 캐빈이라 불림. / 상점 안, 카페를 위한 조리대. 위에 걸린 그림이 호쾌하고 멋지다.  

 

빅 팀버(Big Timber)에 간 것은 자동차 타이어에 에어 부족 싸인이 떠서 보즈맨으로 돌아가기 전에 에어를 보충해야 해서였습니다. 그때 저는 막내 결혼식에 참석하러 뉴저지로부터 온 에스더와 마리아씨와 함께 캐빈에서 2박3일을 보내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캐빈이 있는 맥라우드(McLeod, 여기 사람들이 맥라우드라고 읽습니다)에서 제일 가까운 타운이 26마일 떨어진 빅팀버입니다. 맥라우드는 대부분이 대형목장들이어서 인구가 2백 명도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식품이나 일을 보기 위해선 빅팀버로 가야 합니다. 빅 팀버는 몬태나주 스위트 그래스 카운티에 있는 도시이자 카운티 소재지입니다. 인구는 2020년 인구 조사에서 1,650명이었습니다. 

 

빅팀버의 차량정비업체에 가보니 타이어에 못이 박혔다고 합니다. 타이어를 자동차에서 빼내서 못을 뽑고, 다시 끼워주는 작업이 20분 가량 걸렸습니다. 그 작업이 단돈 25불이텄습니다. 뉴저지에선 기본이 60불입니다. 아, 시골은 시골이구나! 우리 셋은 괜히 신나서 빅팀버 거리도 좀 걸어 보고, 커피라도 마시고 가기로 작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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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빈 바로 길 건너편이 국립공원. 그 안내판. Natural Bridge가 유명.

 

작은 타운이라 다운타운이 크지 않아 한 바퀴 걷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동네 노인네들이 조촐한 다이너에 진을 치고 있는 모습은 여늬 시골이나 같았습니다. 잡화상도 지나고, 베이커리도 지나다가 카페 겸 부틱 가게(thistle creek mercantile)를 발견했습니다. 입구의 작은 정원을 예쁘게 꾸며 놓아 발길을 멈춘 것인데, 자세히 보니 카페여서 여길 들어가? 말아? 셋이서 갈등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키 크고 세련된 여인이 성큼성큼 들어가길래 “이 집 커피 맛있어요?”, 물었더니, 그녀는 촌각의 여유도 없이 높고 정확한 소리로 “엑셀런트!”, 하며 바쁘게 카페로 들어갔습니다. 저렇게 멋쟁이가 맛있다고 하면 어느 정도는 괜찮을 거야, 우린 이심전심으로 동의하며 가게 안으로 들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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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팀버에서 만난 뉴요커가 코빗 기간 동안 오픈한 상점 ‘thistle creek 간판. 바로 옆이 그랜드 호텔.

 

가게는 부틱과 생활용품을 겸한 아담한 가게였습니다. 그런데 옷이며 주얼리, 도자기 등, 모든 물건들이하나같이 독특한 매력이 있고 멋있어 보여서 구매욕구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무엇보다 심플하면서도 사람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디스플레이가 웬만한 뉴욕의 부틱보다 더 고급스러웠습니다. 마리아씨는 거금을 투자해 멋진 접시와 캐시미어 스웨터, 티셔츠를 샀습니다. 에스더는 멋진 여름모자를 골랐습니다. 

 

문 앞에서 만난 여인은 바로 이 상점의 주인이었습니다. 진열된 상품들을 고른 안목이 예사롭지 않다고하니 “물건을 구입할 때 내가 사고 싶은 것들만 골라서 가져옵니다.”, 자신있게 대답합니다. 상점 안의 모든 물건들은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보는 이를 유혹하고, 소유욕에 불을 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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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점 앞 오른쪽 테이블에 앉아서 커피를 마셨다.

 

우리는 밖의 정원에서 커피를 마셨습니다. 함께 먹은 피치 파이가 달지 않으면서도 부드러워 입에서 녹았습니다. 홈메이드처럼 우리의 입까지 즐겁게 해주는 피치파이가 직접 베이크한 것이냐고 물으니 자신이. 직접 베이크하는 게 아니고, 그 지역에서 손맛으로 유명한 이에게 얼마를 투자해서 공급받고 있다고 설명해주었습니다. 필요한 것을 투자해서 공급받는다는 주인여자의 말을 들으니 더욱 이 여인이 범상치 않구나, 라는 생각이들었습니다. 에스더 역시 주인여자를 처음 봤을 때부터 낯이 익다면서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에스더의 짐작대로 그녀는 의사, 작가, 전직 방송기자인 낸시 린 스나이더만(Nancy Lynn Snyderman, 1952- )이었습니다. 그녀는 의사로서 15년 동안 ABC News에서,  2006년부터 2015년까지는 NBC News의 기자로 자주 출연해서 뉴요커들에게는 낯익은 유명인입니다. 우리가 그녀의 존재를 알고 놀라자 그녀는 3년 전에 작은 목장을 사서 94세인 어머니와 이곳으로 이사왔다고 합니다. 목장에서는 말을 기르고 있다는 보충설명도 해주었습니다. 저는 엄마가 94세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94세의 어머니라는 말에 가슴 한 켠이 뭉클해졌습니다. https://drnancysnyderman.com 

 

의사와 방송인으로 유명해지긴 했지만 그녀의 일생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꽃길만은 아니었습니다. 대학생 때 총기위협을 받으며 성폭행 당한 경험도 있고, 이혼의 아픔도 있고, 직장에서의 갈등까지, 삶은 그렇게 녹록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어려운 시련들을 극복해 내면서 자신의 커리어를 성장시키고, 이곳 빅 팀버에 정착한 그녀의 이야기는 그녀의 말대로 롱 스토리라서 나중에 다시 듣기로 했습니다. 의학 연구에 관한 5권의 책을 출판한 낸시는 의료 방송 보도로 수많은 상을 받았고, 지금도 의료활동은 쉬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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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는 낸시의 존재를 확인하자마자 대단히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녀가 쓴 책을 찾아 읽고, 그녀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서 마치 전사같이 자기 생과 투쟁해온 대단한 여인이 빅 팀버라는 작은 타운에 정착하게 된 배경을 궁금해 했습니다. 그것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암튼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자기 삶을 쌓아가는 여성을 만나니 나도 내 나름대로 남은 생을 후회하지 않게 창조하는데 더 노력해야겠다는 각성이 저절로 되었습니다. 낸시가 새로 주인이 바뀐 상점 바로 옆의 그랜드호텔의 2층에 가면 앉아서 차도 마시고 환담도 할 수 있는 좋은 장소가 있다고 해서 우리는 그랜드호텔에 갔습니다. 호텔이 매우 깔끔하고 품위가 있어서 마리아씨는 다음에 오면 이 호텔에 머물 것이라며 좋아했습니다. 누구에게든 소개해줄 수 있는 괜찮은 곳이었습니다.

 

낸시 이야기를 하느라고 정작 해야 할 이야기가 밀렸습니다. 창문을 넘은 사건입니다. 이 불상사는 우리가 캐빈에 가자마자 발생했습니다. 캐빈이 있는 곳은 워낙 인적이 없고 차랑 통행도 많지 않은 곳이라 설령 외출하더라도 보통은 문을 잠그지 않고 다닙니다. 그날도 우리는 물론. 열쇠도 안 갖고, 문을 열어놓고 빅팀버에 갔었습니다. 빅 팀버에서 집에 돌아가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아뿔싸! 이게 웬일입니까? 문이 열리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열쇠가 없는데, 어쩌지? 큰일났다!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누굽니까? 우리는 멧트리오* 입니다. 그리고 멧트리오엔 여전사 마리아씨가 있습니다. 뉴욕서 부친의 건물을 관리하고 있는 마리아씨는 건축에도 일가견이 있습니다. 마리아씨는 집을 한 바퀴 돌아보며 창틀을 점검했습니다. 창문을 넘어가면 들어갈 수 있다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창문 모두 밖에서 열 수가 없이 방범이 잘 된 창문이라 낙망하려던 찰나, 요행히 화장실 창문이 위로 열렸습니다. 창문은 너무 작았지만, 마리아씨는 자기가 몸이 작아서 넘어갈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마리아씨는 의외로 날렵하게 창문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여전사 마리아씨 덕에 우리는 무사히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창문을 넘는 여전사 마리아씨 만세! 입니다.  

 

*멧 트리오(MET Trio): 마리아씨의 M, 에스더의 E, 제 가톨릭 본명 테레사의 T, 이렇게 우리 세 명 이름의 첫 스펠링을 따서 멧 트리오라 명명했습니다. 하하.

 

 

이영주/수필가 강원도 철원 생. 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후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도서출판 학창사 대표를 지냈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1990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후 수필집 '엄마의 요술주머니'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 '내 인생의 삼중주'를 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재 '에세이스트 미국동부지회' 회장이며 뉴욕 중앙일보에 '뉴욕의 맛과 멋' 칼럼을 연재 중이다. '허드슨 문화클럽' 대표로, 뉴저지에서 '수필교실'과 '북클럽'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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