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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0) 이수임: 훤칠한 그 남자
창가의 선인장 (130) HIM
훤칠한 그 남자
“다인 아빠, 다인 아빠.”
서너 번을 불렀지만, 대답이 없다. 눈을 간신히 뜨고 침대 앞 서랍장 위를 보니 양말과 속옷이 없다. 남편은 이미 목욕하고 속옷을 갈아입고 스튜디오로 출근했다. 시계를 보니 6시 30분이다. 남편이 오트밀을 끓여 먹고 출근 준비를 하면 나는 일어나 전날 저녁에 다음날 도시락을 위해 남겨 둔 음식으로 도시락을 싸준다. 오늘은 잠에 빠져 남편의 기척을 듣지 못했다.
“좀 쉬지. 무리하지 마. 그러다 쓰러진다.”
라고 수시로 나에게 말하는 남편의 이름은 ‘이 일’이다. 이름에 걸맞게 남편은 눈뜨자마자 이일 저일 누울 때까지 일한다. 인간의 삶이 이름 따라가나? 아들 이름은 ‘다인’이다. 차 다에 어질 인이다. 여유롭게 차 마시며 착하게 살라고 남편이 지었다. 아이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어릴 적부터 일만 하는 제 아빠를 보고 자라서인지 쉬지 않고 움직거린다. 직장을 옮길 때도 쉬는 것이 더 힘들다고 바로 새로운 직장을 잡았다.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일하신 시할머니 그리고 시 부모님도
“죽으면 썩어질 몸인데 움직거릴 수 있을 때까지는 쉬지 않고 움직거려야지. 멀쩡한 사지는 그냥 놀리는 게 아니야.”
하셨다. 사람은 이름 따라 산다기보다는 오히려 보고 듣고 자란 대로 산다는 것이 더 일리가 있는 것 같다.
친정 아버지를 닮은 나는 일할 때는 일하고 놀 때는 열심히 끝까지 논다. 일 좋아하는 남편을 밖으로 끌어내기란 쉽지 않다. 남편은 마지못해 따라나선 바닷가에서도 수영복으로 갈아입지 않고 그늘에서 책을 읽거나 신문을 뒤적거린다. 그나마 남편은 크루즈 여행은 좋아한다. 마누라를 배 안에 풀어놓고 베란다에서 바다를 보며 드로잉을 하려는 속셈에서다. 늘 일만 하려는 남편을 만나 크루즈 안에서도 나는 혼자 놀거리를 찾아 싱글인 양 헤매는 팔자가 됐다.
항상 혼자 다녀서일까? 어느 날 집 가까운 길에서 훤칠한 남자가
“하이, 반갑다. 그동안 잘 지냈어?”
하도 반가워하며 잘 아는 사이처럼 말을 건냈다. 그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전혀 모르는 남자다.
“나 너 몰라. 너 사람 잘 못 본 것 같다.”
말하고 재빨리 돌아서 가려는데
“나 너 파리 바게뜨에서 봤어.”
“나 그 빵집에서 일하는 사람 아니야.”
“알아. 나 너 여러 번 봤어. 잠깐, 건너편 파리 바게뜨에 들어가 커피 마시며 이야기 좀 하자.”
“미안, 나 싱글 아니야. 남편 있어.”
퇴근해 돌아온 남편에게 말했다.
“사람들이 나 항상 혼자 다니니까 싱글인 줄 알아. 당신이 스튜디오에만 처박혀 있으니까 그렇지.”
“왜 그 훤칠한 남자와 커피 마시며 수다 좀 떨지 그랬어.”
“미쳤냐. 그동안 힘들게 모은 조금 있는 재산 제비에게 뜯길 일 있어. 멀쩡한 놈이 늙은 나에게 왜 그러겠어? 그냥 당신을 돈 버는 기계로 생각하고 싱글처럼 사는 것이 낫지. 근데 좀 이상하네. 명품도 걸치지 않은 늙은 나에게. 제비 아닌가?”
이수임/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