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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4) 박숙희: 겨울날의 동화, 버팔로 폭설이 맺어준 인연
수다만리 (64) Buffalo, 'The City of Good Neighbors'
폭설의 악몽이 해피엔딩으로
알렉산더 캄파냐씨 부부와 한인 관광객들이 컵 신라면과 샴페인으로 건배. Photo: Alexander Campagna
한국인 9명으로 구성된 관광객과 운전자가 한겨울 나이애가라 폭포를 구경하러 가던 중 뉴욕주 버팔로에서 폭설로 좌초됐다. 그들은 눈 속에 파묻힌 밴 속에 꼼짝없이 갇혔다. 두 남자가 삽을 빌리기 위해 그 동네 집의 문을 두드렸다. 집 주인 알렉산더 캄파냐(Alexander Campagna, 40)씨와 부인 안드레아(Andrea)씨는 이 낯선 관광객들을 재워주었다. 관광객들은 한식 요리를 해 나누어 먹었으며, 미식축구를 보며 2박 3일 동안 미국인 부부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겨울날의 동화같은 실화, 할리우드식 해피 엔딩이었다. 뉴욕타임스의 크리스틴 정(Christine Chung) 기자는 크리스마스날 아침 훈훈한 버팔로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윌리엄스빌 교외에 사는 치과의사 알렉산더 캄파냐씨와 간호사 부인 안드레아씨는 악명높은 버팔로의 눈보라가 잠잠해지기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그들은 냉장고를 음식으로 가득 채워놓고, 전기가 들어오는 한 집안에서 조용하게 할러데이 연휴를 보낼 예정이었다. 그러던 23일 금요일 오후 2시 경 이미 눈폭풍이 휘몰아치면서 눈이 빠른 속도로 쌓여가면서 도로가 막혀버렸다. 그즈음 두 남자가 찾아왔다. 그들은 눈을 걷어내기 위해 삽을 빌려달라고 요청했다.
폭풍의 위험을 잘 아는 캄파냐씨 부부는 삽을 빌려주는 대신 한인 관광객들과 운전수 10인을 집안으로 초대했다. 이 부부는 우연히 여인숙 주인을 자처하게 된 것이다. (*윌리엄스빌에서 나이애가라 폭포까지는 40분 거리. 버팔로는 2001년 역사상 최고치인 56.1인치(142.5 cm)의 적설량을 보유한 곳이다.)
눈도랑에 빠진 승합차. Photo: Alexander Campagna
대부분 서울 지역에서 온 한인 관광객들은 23일 아침 워싱턴 D.C.를 출발해 나이애가라로 향했다. 평택에서 온 최요셉(27)씨는 부인 클레어씨와 신혼여행 중이었다. 최씨는 고등학교 때 미시간주와 캔사스주에서 영어를 공부했지만, 부인은 미국 여행이 처음이었다. 이들의 여정은 뉴욕-워싱턴 DC-나이애가라 폭포와 몬트리올이었다. 나이애가라 폭포로 출발 하루 전날 최씨는 친구들로부터 곧 닥칠 폭풍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받은 후 걱정하기 시작했다. 밴을 타고 움직이는 길은 미끄럽고, 바람이 거셌다. 승객들은 좌불안석이었다. 그러다가, 밴이 캄파냐씨 집 근처 도랑에 빠진 것이다.
최씨 부부를 비롯 인디애나대 여대생과 부모, 서울에서 온 대학생 두명 등 남자 3명, 여자 7명으로 구성된 방문객들은 3베드룸 캄파냐씨 주택의 손님방, 소파, 침낭, 에어 매트리스에 나누어서 잤다. 이들 중 3명은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다. 다 함께 크리스마스 이브 TV에서 버팔로 빌즈(Buffalo Bills)가 시카고 베어스(Chicago Bears)를 12:3으로 압승을 거두는 모습을 함께 지켜봤다.
*Buffalo 66 | Feelings getting out of prison <youTube>
https://youtu.be/nR7g5DvRp4A
삼천포로 빠지면, 빈센트 갈로 감독/주연의 영화 '버팔로 66(Buffao 66, 1998)'에서 빈센트 갈로의 엄마 안젤리카 휴스턴은 아들(갈로)을 출산하는 날 버팔로 빌의 경기를 못본 것이 평생 사무친 한으로 아들을 임신한 것을 후회한다. 영화의 첫 장면은 눈이 수북이 쌓인 날 빈센트 갈로가 감옥에서 나온다.
아무래도 한인들은 미식축구보다는 월드컵 팬인 아닌가? 아마도 체류의 하이라이트는 한식을 만들어 먹는 일이었을 것이다. 캄파냐씨 부부는 한식을 좋아해 김치와 전기밥솥을 비롯 미림, 간장, 고추장, 참기름에 고추가루등 식재료까지 구비하고 있었다. 이에 한인들은 제육볶음, 닭도리탕을 만들어 먹었다. 특히 인디애나 대학생의 엄마는 요리사 급이었다.
최요셉씨는 말한다. "운명같았어요." 캄파냐씨 문앞에 도착해 완비된 키친에 주저없는 환대까지 행운이었다. 그는 이 집주인들이 생애 만난 가장 친절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캄파냐씨는 예상치못했던 손님들은 기쁨 자체였다고 말했다. 이 경험은 "독특한 축복"이라 부른 캄파냐씨 부부는 한국을 여행할 계획도 세웠다. "우린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빨리빨리의 귀재, 위기를 기회로 만들줄 아는 코리안의 지혜. Photo: Alexander Campagna
한인 관광객들은 지난 21일 뉴욕시에 도착, 한인이 운영하는 여행사 Yellow Balloon의 패키지 투어에 참가해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인트레피드해양항공우주박물관, 자유의 여신상 페리, MoMA, 월드트레이드센터 오큘러스(Oculus) 등지를 당일치기로 끝냈다. 워싱턴 D.C.에선 백악관, 링컨 메모리얼과 스미소니언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최씨는 "우린 피곤했지만, 무척 신이 났다"면서 예상치 않았던 폭설 사태도 체험에 기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부부가 "진정한 미국인들으로부터의 따뜻한 환영"을 체험하게 해주었다 고 덧붙였다.
25일 성탄절, 눈은 그쳤고 눈길은 치워졌지만, 밴은 꼼짝하지 않았다. 마침내 운전수들이 관광객들을 뉴욕시까지 데려다주기 위해 왔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이번 주중에 한국으로 돌아간다. 단, 최씨 부부는 타임스퀘어에서 뉴이어스이브 행사를 보기 위해 며칠 더 체류할 예정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들이 하루 더 머물렀다면, 아마도 크리스마스 저녁식사로 불고기를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라며 스토리를 마쳤다.
친절한 부부와 버팔로 이야기는 한류(K-Wave)의 영향일지도 모른다. 한식광 캄파냐 부부가 '기생충' '오징어 게임'과 BTS의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이기에 더욱 환대한 것이 아닐까? 물론 한인들이 아니었더도 도와줄 사람들이다. 그러나, 아파트에서 김치 냄새, 마늘 내, 된장찌개 냄새를 피우지 않으려고 갖은 애를 쓰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이젠 미국인들이 냉장고에 김치, 찬장에 한국 식재료를 구비하고 있는 것이다. 2022년 Korea는 음식은 물론, K-Pop, 영화, 드라마, 화장품, 게임 등까지 세계 정상급인 문화강국이다. 올 여름 화제가 됐던 손님 초대해놓고 가족끼리만 식사하는 '스웨덴 게이트'를 기억한다면, 버팔로 스토리는 우리 시대의 동화같다. 비록 관광객들에게 나이애가라 폭포 구경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나이애가라 인더 레이크(Niagara in the Lake, 캐나다) 가이드
http://www.nyculturebeat.com/?document_srl=3052113
한편, CNN에 따르면 캄파냐씨 동네 윌리엄스빌의 6인 가족은 정전으로 23일 밤 호텔로 향하다가 눈 속에 발이 묶었다. 버팔로 공항의 소방수들이 출동해 드미스티스와 다니엘 부부와 9개월, 2살, 4살, 8살, 네 자녀를 구출했다.
버팔로 뉴스(Buffalo News)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자택 출산 이야기를 전했다. 성탄절에 출산할 예정이었던 에리카 토마스씨는 23일 밤 진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병원은 5마일 떨어졌지만, 폭설로 움직일 수 없었다. 남편 데이본은 911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첫 응답자는 불가능하다고 답변했다. 24일 아침 진통이 더 심해지면서 데이본의 친구는 페이스북 Buffalo blizzard group에 사정을 올렸다. 이들은 간호사와 화상 채팅(video chat)으로 지시를 따랐고, 집에서 오후 3시 30분경 딸을 순산했다. 데이본씨는 "버팔로가 '좋은 이웃의 도시'로 불리울만한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캐시 호컬(Kathy Hochul) 뉴욕주지사는 이번 폭풍을 "대자연과의 전쟁"으로 선포했다. 버팔로 지역엔 눈이 42인치(107센티미터)가 내렸다. 12월 26일 현재 버팔로 인근에선 정전사태와 고립 피해자들이 발생했으며, 이 지역에서만 최소한 28명이 목숨을 잃었다. 눈폭풍은 미 전국에서 약 50여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They Traveled From South Korea. They Got Stranded Near Buffalo. -NYT-
https://www.nytimes.com/2022/12/25/nyregion/snow-storm-korean-tourists.html
박숙희/ 블로거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한양대 대학원 연극영화과 수료. 사진, 비디오, 영화 잡지 기자, 대우비디오 카피라이터, KBS-2FM '영화음악실', MBC-TV '출발! 비디오 여행' 작가로 일한 후 1996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Korean Press Agency와 뉴욕중앙일보 문화 & 레저 담당 기자를 거쳐 2012년 3월부터 뉴욕컬처비트(NYCultureBeat)를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