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729)
- 강익중/詩 아닌 詩(83)
- 김미경/서촌 오후 4시(13)
- 김원숙/이야기하는 붓(5)
- 김호봉/Memory(10)
- 김희자/바람의 메시지(30)
- 남광우/일할 수 있는 행복(3)
- 마종일/대나무 숲(6)
- 박준/사람과 사막(9)
- 스테파니 S. 리/흔들리며 피는 꽃(49)
- 연사숙/동촌의 꿈(6)
- 이수임/창가의 선인장(149)
- 이영주/뉴욕 촌뜨기의 일기(65)
- June Korea/잊혀져 갈 것들을 기억하는 방법(12)
- 한혜진/에피소드&오브제(23)
- 필 황/택시 블루스(12)
- 허병렬/은총의 교실(102)
- 홍영혜/빨간 등대(70)
- 박숙희/수다만리(66)
- 사랑방(16)
(673) 홍영혜: 보스턴에서 찾은 에메랄드 목걸이
빨간 등대 (58) Emerald Necklace in Boston
보스턴에서 찾은 에메랄드 목걸이
Sue Cho, “Boston’s Swan Boats with Sun Worshippers in the Park”, May, 2023, Digital Painting
4월 말, 오랜만에 기차를 타고 보스턴에 왔다. Back Bay (백베이) 역에 내려 숙소까지 택시를 타기도 애매해서 트렁크를 끌고 가다가 우연히 맛있는 샌드위치 집, Parish Café and Bar를 만났다. Eggplant Milanesa (얇게 썬 가지 샌드위치)와 Parish Chicken (닭 샌드위치)를 시켰는데 맛도 있고 양이 많아 두끼가 해결되었다. 숙소가 Public Garden (퍼블릭 가든)에서 가까워 매일 산책을 할 수 있어 기대된다.
뉴욕에 센트럴 파크 (843 에이커)가 있다면 보스턴은 도시 중심에 Boston Common (보스턴 커먼, 50에이커)과 Public Garden (퍼블릭 가든, 24 에이커)이 있다. Boston Common은 1634년 조성된 미국 최초의 공원이다. 이곳에서 미국의 독립혁명 (American Revolution)이 시작되고, 영국군이 진을 치고, 노예 폐지 등 거대한 역사를 면면히 목격해 온 공공 집회의 장소라 공원이란 이름대신 커먼이라 불리는 것 같다. 넓은 장소가 많아 사람들이 모이기 좋고, 빨간 벽돌길을 따라 미국혁명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Freedom Trail도 이곳에서 시작된다. 직선 길이어서 이동할 때 이곳을 통해 걸어가면 좋다. 반면 Boston Common 서쪽에 바로 인접한 Public Garden은 200년 후, 1837년에 조성된 미국 최초 공공 식물원이다. Public Garden에는 “Lagoon”이라 불리는 커다란 호수가 있고 각종 나무와 꽃이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펼쳐져, 여유로이 산책하면서 머물기 좋다.
퍼블릭 가든 Public Garden
첫날부터 비가 오고 기온이 40, 50도로 떨어져 싸늘했다. 있는 대로 옷을 껴입고 Public Garden으로 향했다. 조금 성가시긴 하지만, 비 오는 날 걷는 걸 좋아한다. 나무도 촉촉하니 편안해 보인다. 입구에 향기로운, 내게 익숙한 꽃향기가 난다. 둘러보니 Korean Spice Viburnum (분꽃나무)였다. 올 봄 뉴욕 리버사이드 파크 116가 음수대 입구로 내려가다가 바로 오른쪽, 꽃향기를 맡고 있던 여인이 혼자 맡기 아까운듯 가지를 잡아서 맡아 보라고 했었다.
분꽃나무는 라일락같이 작은 꽃잎이 동그랗게 뭉쳐 만들어진 꽃이다. 색깔도 연한 핑크 아니면 붉은빛이 돈다. 향기도, 빛깔도, 모양도 우아한 꽃이다. 4월 벚꽃 필 때 센트럴 파크의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저수지 주변은 요시노 벚꽃길로 온통 화려하지만, 향기로운 냄새가 솔솔 나는 것은 저수지 기슭을 따라 쭉 피어있는 분꽃나무로부터이다. 이렇게 기품 있는 꽃이 한국에서 왔다니 뿌듯하다.
여긴 친절하게 나무 이름표를 붙여서 Elm (느릅나무)의 종류가 이렇게나 다양한지 알게 되었다. 늠름한 Belgian Elm (벨기에 느릅나무)에는 꽃이 매달려 있었다. 느릅나무의 꽃은 눈에 잘 띠지 않지만, 다람쥐가 먹고 땅에 떨어뜨린 가지를 보고 워싱톤 스퀘어 파크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엷은 초록물이 배어, 여러 겹이 살랑살랑하는게 코사지 같다. 색다르게 눈에 띠는 나무는 Japanese Pagoda Tree인데 나무껍질이 예사롭지 않다. 사진기로 클로즈 업해 보니 다람쥐도 빠끔 내밀며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 나무가 바로 지난 여름 조계사에서 보았던 엄청 큰 회화나무구나!
백조 보트 Swan Boat
보스턴에 와서 가장 해 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여기만의 유니크한 백조 보트를 타고 연못을 한바퀴 도는 것이다. 보스턴에 여러 번 왔지만,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한 주전에 보스턴 마라톤이 열렸는데 그때부터 배를 띄운다고 한다. 비가 계속되어 배가 뜨지 않다가 떠나는 날 해가 반짝 나 이곳을 다시 찾았다.
15분 정도 호수를 한 바퀴 도는데 가운데 자그마한 섬이 있다. 거북이도 보이고 청둥오리(Mallard duck)도 물 위에 떠다닌다. 물가에 나무 너머로 오래된 교회도 보인다. 바람에 한들거리는 수양버들 아래 피크닉을 나온 가족들, 또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청년, 하늘색으로 칠한 조그만 서스펜스 다리을 지나오면 아쉬운 보트 투어가 끝난다. 승객들은 평화롭게 한 바퀴를 도는 동안 파란 캡을 쓴 청년이 배 끝에 있는 백조 뒤에 숨겨져있는 의자에 앉아 자전거 페달처럼 밟아 배를 움직인다. 마치 백조가 우아하게 물 위에 떠가는 동안 물밑에서 무수한 발길질을 하듯. 대학생들이 다리 근육도 키울 겸 운동도 되고, 아르바이트 한다고 들었다. Sue Cho가 사진을 보더니 Georges Seurat (조르주 쇠라)의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A Sunday Afternoon on the Island of La Grande Jatte)”가 연상된다며 이 그림을 패러디했다.
아기 오리들한테 길을 비켜주세요 Make Way for Ducklings
1941년 로버트 맥클로스키(Robert McCloskey)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동화책, ‘Make Way for Ducklings” (아기 오리들 한테 길을 비켜주세요), 배경이 바로 퍼블릭 가든이다. 여기 호수 한 가운데 작은 섬에서 아기 오리들을 키우는 청둥오리 가족 이야기이다. 같은 저자의 “Blueberries for Sal”과 함께 아이들이 좋아해서 많이 읽어 주던 책이다. 내가 좋아했던 책인가? 가물가물하다.
전에 서버브에 살 때 가끔 길을 건너가는 오리 가족을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목을 빼고 보는 운전자들을 보며 이 그림책을 떠올리곤 했다. Mrs. Mallard가 자랑스럽게 부리를 쳐들면서 Jack, Kack, Lack, Mack, Nack, Ouack, Pack, Quack, 8 마리의 아기오리들과 뒤뚱뒤뚱 걸어가는 장면을. 그 스토리의 배경이 바로 여기라니! 정원을 산책하다 보면 이 귀여운 오리 조각상들을 만나게 된다. 아래의 사이트에서 동화책을 읽어준다.
https://youtu.be/EfgBjB-Qj70 : 영어 듣기
https://youtu.be/90LrhL2pAZQ : 한국어 듣기
회전목마 Carousel
Sue Cho, “Take ride”, May, 2023, Digital Painting
아직 물을 채우지 않은 Frog Pond 옆에 예쁜 회전목마가 있다. 한 아이는 티켓 4장을 사서 말을 돌아가면서 골라 탄다. 꾼이다. 말을 고를 때는 그냥 멍하니 있는 말보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걸 타야 재미있다. 회전목마를 보면 지나치지 않고 타 본다. 전날 손을 보았다고 하는데 덜컹거리고, 차양 때문에 바깥이 시원하게 보이지 않아서 별로이다. 나이 지긋한 두 여인이 미소를 띠며 구경하다 티켓을 산다. 은근히 미안하다. 엉덩이가 불편할텐데...
전 날 Freedom Trail을 걷다가 Quincy Market에서 랍스터 롤을 먹고 나와 걷다보니 Greenway Carousel을 보았다. 날이 음산해서 사람이 없었다. 목마를 타니 춥지만 상쾌한 바람이 얼굴을 가르면서 미소가 기쁨으로 번진다. 만화경처럼 돌아가는 경치에 기쁨이 어느덧 쓸쓸한 노스탤자로 바뀐다. 이런 달콤 쌉싸름한 (bitter sweet) 기분이 좋다. 그 여인들도 이걸 탔으면 좋을텐데…
거대한 느릅나무 Great Elm
보스턴 커먼즈 한복판에 거대한 느릅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을 모으고, 사랑받던 나무가 1876년 폭풍에 쓰러졌다. 그 자리에 Plaque (플래크)를 만들어 그 나무를 기억하는 공간이 있다. 뭉클하다.
에메랄드 네클리스 Emerald Necklace
Emerald Necklace Conservancy
https://www.emeraldnecklace.org/park-overview/emerald-necklace-map
이번 여행에 우연히 들린 곳들이 에메랄드 네클리스의 일부인 걸 나중에 알게 되었다. 보스턴미술관(Museum of Fine Arts)에서 호쿠사이 특별전을 보고 나오면서 근처의 녹지대로 걷다보니 Back Bay Fens를 만나게 되었다.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뮤지엄(Isabella Stewart Gardner Museum)에 갈까하다 하버드 대학 아놀드 수목원(Arnold Arboretum of Harvard University)에 들렸는데 여기도 에메랄드 네클리스의 일부라고 한다.
에메랄드 네클리스는 이미 조성된 퍼브릭 가든과 보스톤 커먼즈를 시작점으로 하여 동물원이 있는 프랭클린 파크(Franklin Park)까지 파크웨이와 물길을 연결하여 도시를 감싸는 녹지대 체인을 말한다. 이 놀라운 매스터 플랜이 바로 센트럴 파크를 조경한 Frederic Law Olmstead (프레드릭 로 옴스테드) 에게서 나왔다고 한다. 옴스테드가 보스턴 목에 아름다운 초록 에메랄드 목걸이를 선사한 셈이다.
보스턴에 또 오고 싶은 이유가 생겼다. Emerald Necklace 길, 7마일을 쭉 걸어 보는 것이다. 하버드 대학 아놀드 수목원에 26그루의 꽃 모과나무 (Flowering quince) 열매가 향기롭게 익어가는 10월 즈음에. 보스턴을 떠나는 날, 퍼블릭 가든을 한번 더 둘러보았다. 입구가 여럿인데 우연히 첫날 처음 들어갔던 입구로 다시 나오게 되었다.
분꽃나무 맞은 편에 스쳐 지나갔던 동상에 눈길이 갔다. 퍼블릭 가든에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기마상을 비롯해 조각상이 많은데 나에게는 생소한 인물, 웬들 필립스 (Wendell Philips, 1811-1884)가 누구일까? 노예제도 폐지에 앞장서고, 그 당시 많은 흑인들에게 “인종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 피부색에 색맹인 유일한 백인”이라고 여겨진 분이다. 아메리칸 원주민, 여성 권리 옹호를 위해 힘쓴 변호사, 연설가이다. 분꽃나무(Korean Spice Viburnum)와 웬들 필립스, 향기로운 인연이다.
홍영혜/가족 상담가
수 조(Sue Cho)/화가
미시간주립대학에서 서양화와 판화를 전공하고, 브루클린칼리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뉴욕주 해리슨공립도서관, 코네티컷주 다리엔의 아트리아 갤러리 등지에서 개인전, 뉴욕한국문화원 그룹전(1986, 2009), 리버사이드갤러리(NJ), Kacal 그룹전에 참가했다. 2020년 6월엔 첼시 K&P Gallery에서 열린 온라인 그룹전 'Blooming'에 작품을 전시했다.
-
보스턴을 몇번 갔어도 이런 섬세한 눈을 가지지 못해 겉만 보고 왔네요. 꽃한송이 새끼오리 한마리 천천히 지나치며 내가 다시 산책해는 느낌으로 읽어보았어요
-
영혜 작가님은 다양한 경력을 가직셨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읽고 있노라니 색이 보이고, 질감이 느껴지며, 향기가 나는 영혜님 글에 감동합니다 ^^
-
5년전 보스톤에서의 아침산책했던 퍼블릭 가든 ~~
다시금 추억돋네요.
영혜님이 동창이라 더욱 자랑스럽네요. -
캐나다 산불로 인해 세상이 뿌옇게 돼고 공기가 매콤해서 숨쉬는 게 답답했는데, 홍영혜씨의 글과 수 조 화가의 그림이 숨통을 트이게 합니다. 보스톤은 미주 이화여대 총동창회를 비롯해서 서너번 갔습니다. 그런데 홍영혜씨의 보스톤 답습은 놀랍습니다. 구석구석 보석같은, 몰랐던 곳을 캐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수박 겉할기로 본 보스톤이 이렇게 역사적이고 빛나는 곳이었네요. 하바드, MIT가 전부인줄 알았는데 홍영혜씨의 보스톤은 잘다듬어진 대리석조각의 예술작품을 보는 느낌입니다. 다시 보스톤을 찾을 기회가 있으면 여기에 올린 곳들을 돌아볼 참입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