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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8) 이수임: 사리에 맞는 삶이란
창가의 선인장 (139) Reasonable
사리에 맞는 삶이란
Soo Im Lee, Encounter, 2011, gouache on paper, 8 x 7.75 inches
“굿 모닝!”
식당에서 옆에 앉아 아침을 먹던 노부부가 우리 부부에게 인사를 했다. 우리도 환한 표정으로 반겼다.
“나는 매일 아내에게 죄의식(guilt feeling)을 가지고 살아요. 그래야 와이프 마음이 편해서 별다른 다툼없이 지낼 수 있거든요.”
뜬금없이 꺼내는 이야기에 어리둥절했지만, 금세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들었다.
“죄의식을 갖고 부인에게 잘한다니 현명하시네요.”
“우리 아버지가 나에게 살면서 사람들에게 사리에 맞게(reasonable) 상대하라고 키웠어요.”
그의 이야기는 이어진다. 나도 질세라
“어머 내가 미국으로 떠날 때, 우리 아버지도 사람들에게 잘해주지는 못할 망정 사리에 맞게 대하라고 말했는데. 그래서 제 머릿 속에 제일 먼저 새겨진 영어가 reasonable이에요.”
나는 유튜브에서 오디오북을 들으며 작업한다. 하도 많은 글을 듣다보니 작가도 내용도 생각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가끔은 이해하기 쉽고 마음을 울려 기억에 남는 글이 종종 있다. 그중 요즈음 들은 김진아 작가의 ‘강남 파출부’가 머릿속을 맴돈다.
남편 없이 외아들을 키워 결혼시킨 맛집 주방에서 일하는 윤금이씨 이야기다. 아들이 사고로 죽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인 윤금이씨와 상의도 하지 않고 보상금을 타서 10살 손자를 데리고 사라졌다. 윤금이씨는 손자가 다녔던 초등학교 친구 엄마로부터 손자가 서울 강남 세화 초등학교로 전학 갔다는 것을 알아낸다. 그녀는 손자를 만나기 위해서 세화 초등학교 근처의 가사 도우미가 된다.
그녀의 손자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남자아이를 키우는 사업하는 부부 집이다. 남편의 바람으로 부부 사이가 좋지 않다. 윤금이씨는 엄마 아빠의 싸움으로 눈물 콧물 범벅이면서도 슬픔을 억누르려고 애쓰는 아이를 위로하다 가까워진다.
운동회날 아이의 바쁜 엄마를 대신해 윤금이씨가 학교를 찾아간다. 행정실 직원에게 자기 손자가 몇 반에 재학 중인가를 알아보려고 했지만, 손자의 이름은 학교 기록부에 없었다. 손자가 그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것을 알고 난 윤금이씨는 이 집에 더 머무를 이유가 없어졌다. 하지만 혼자인 아이를 닫힌 방문 뒤에 두고 떠날 수 없었다. 아픈 사람 둘이 서로 보듬고 치유해 가는 슬프면서도 따뜻한 이야기다.
이런 따뜻한 글을 읽으면 마음이 훈훈해진다. 그동안 살면서 누구를 위로하거나 도울 줄 모르는 나 자신에게 길티 필링이 생긴다. 한편으론 아버지가 강조한 리즈너블 한 인간으로 적어도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는 주지는 않았나? 자신을 되돌아본다.
이수임/화가
좋은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