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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3) 허병렬: 우리는 왜 모임을 좋아할까?
은총의 교실 (94) 사회적 인간
우리는 왜 모임을 좋아할까?
‘많은 것은 무엇?’ 누군가의 수수께끼다. 사람, 별, 꽃, 벌레 모래... 이어지다가 ‘모임’이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모임은 어떤 목적으로 때와 곳을 정하여 모이는 일이다. 생각해 보니 사실 모임의 수효도 엄청나다. 친교를 위한 것부터 시작해서 직장 관계, 기능 향상, 취미, 동창, 학술 세미나...등 다채롭다. 모임의 크기도 두 사람부터 시작해서 국제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사람들은 왜 모임을 갖는가. 삶 자체가 모임이고, ‘나’ 하나의 삶이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모임은 즐거움이고 각종 생산력을 가지고 있으며, 바로 그 생산력이 세계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다. 특히 이 모임의 종류와 수효가 많은 곳이 미국사회인 것 같다. 각 개인이 속하고 있는 모임 일정을 달력에 기입하면서 생활할 정도니까.이런 생활 습관은 어릴 때부터 싹이 튼다. 한마디도 말을 못하는 어린이끼리 모여 앉아도 제법 즐겁게 논다. 그들이 유치원 초등학교를 거치고 중학생이 되면 친구의 영향권에 들어서 그들을 만나기도 힘들게 된다.
어린이들은 성장 과정에서 자기 자신이 친구에게 영향을 주고, 친구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다. 이런 성향은 학습과정에도 나타난다. 학교생활이 개별학습과 그룹학습이 병행되고 고학년이 될수록 그룹학습이 활발하게 된다. 그룹의 크기는 학습 주제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화한다. 이것이 바로 어우렁더우렁 여럿이 어울려 지내는 방법을 배우는 길이다.
모임은 어떻게 자랄까. 인생이 놀이라면 같이 놀 친구가 필요하다. 친구하고 같이 놀면서 즐기고, 배우면서 자란다. 그래서 어린이의 놀이는 어른의 일과 똑같다. ‘우리 뭘하고 놀까?’ 공놀이, 줄넘기, 짝짓기, 숨바꼭질...은 성인들의 이번 주말 골프를 칠까, 산에 오를까...로 이어진다. 어린이들의 ‘우리 무엇을 만들까?’는 무슨 연구를 할까, 어떤 사업을 할까로 이어진다.
사회생활의 각 분야는 어린 시절에 그 싹이 트고 있다. ‘대철이는 친구 사귀기가 힘든 것 같아요’라는 말보다, 학과 성적이 나쁜 것을 일반적으로 더 걱정하게 된다. 그러나 교육적으로 볼 때 이것을 판가름하기가 쉽지 않다. 모임을 이루는 것은 가깝거나 멀거나 친구들이다. 그래서 모임이 크다면 거기에 모이는 친구들의 영향이 그만큼 크게 되며, 그들이 바로 삶의 동반자들이다.
모임은 무엇을 생산하는가. 첫째, 모인 사람들이 친밀감을 가진다. 서로 가까이서 얼굴을 보면서 의견을 나누니까 쉽게 친구가 된다. 둘째, 자기 의견을 발표하는 기술이 자란다. 셋째, 한 가지 일에 대한 의견이 다양함을 알게 된다. 넷째, 보다 나은 의견을 찾는 기술을 배운다. 다섯째, 모임의 가치를 깨닫는다. 여섯째, 새로운 모임을 꾸미게 된다. 이렇게 보면 각종 모임이 많은 사회가 성장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그 사회는 풍부한 생산량을 뿜어낸다.
새로운 모임은 어떻게 출발하는가. 이 세상에 새 것이 있을까. 없다는 생각이 맞다. 그러나 새롭다는 것은 약간의 다른 생각이 보태졌다는 뜻으로 본다. 옛것 어떤 부분을 없애거나, 첨가하거나, 비틀거나, 비켜나가거나... 등의 새로운 생각이 보태지면 확연한 새로움을 창조한다. 이 같은 활동은 생각이 생각을 낳는다고 본다. <2011>
허병렬 (Grace B. Huh, 許昞烈)/뉴욕한국학교 이사장
1926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여자사범학교 본과 졸업 후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60년 조지 피바디 티처스칼리지(테네시주)에서 학사, 1969년 뱅크스트릿 에듀케이션칼리지에서 석사학위를 받음.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 이화여대 부속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1967년부터 뉴욕한인교회 한글학교 교사, 컬럼비아대 한국어과 강사, 퀸즈칼리지(CUNY) 한국어과 강사, 1973년부터 2009년까지 뉴욕한국학교 교장직을 맡았다. '한인교육연구' (재미한인학교협의회 발행) 편집인, 어린이 뮤지컬 '흥부와 놀부'(1981) '심청 뉴욕에 오다'(1998) '나무꾼과 선녀'(2005) 제작, 극본, 연출로 공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