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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엽 (사랑은 낙엽을 타고/ Fallen Leaves)' ★★★★

아키 카우리스마키가 불우한 연인들에게 보내는 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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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en Leaves-Kuolleet lehdet by Aki Kaurismäki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고, 따스하게 그려온 핀란드 아키 카우리스마키(Aki Kaurismaki) 감독작 '고엽(Fallen Leaves)'의 프랑스어 제목은 'Les Feuilles Mortes'로 '죽은 잎들(The Dead Leaves, 고엽, 枯葉)'이다. 이브 몽탕(Yves Montand)이 부른 샹송으로도 유명한 이 곡은 영어로는 '가을 잎들(Autumn Leaves)'로 번역되었다. 미국인들은 '죽음'이 들어가는 제목을 회피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사랑은 낙엽을 타고'라는 제목으로 12월 20일 개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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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en Leaves-Kuolleet lehdet by Aki Kaurismäki/ Un Homme et Une Femme (1966) by Claude Lelouch

 

영화 '고엽'은 핀란드 버전의 '남과 여(Un Homme et Une Femme, 1966)'라고나 할까. 프랑스 클로드 를루슈(Claude Lelouch) 감독의 '남과 여'에선 부인을 잃은 카레이서(장 루이 트랭튀냥 분)와 남편을 잃은 영화 대본감독(아누크 에메)이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이들이 부르주아라면, 카우리스마키의 '고엽'에서 안사와 훌라파는 프롤레타리아다. '고엽'은 올 칸영화제 심사위원상(Prix du Jury)을 수상했으며, 내년 아카데미상 국제장편극영화 부문에 핀란드 출품작으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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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en Leaves-Kuolleet lehdet by Aki Kaurismäki

 

아미 카우리스마키 감독은 대학에서 언론학을 전공한 후 벽돌공, 우편배달부, 디쉬워셔로도 일했다. 그는 '낙원의 그림자(Shadows in Paradise, 1986)', '아리엘(Ariel, 1988)', 성냥공장 소녀(The Match Factory Girl, 1990)' 등 노동자 계급을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를 연출해왔다. '고엽'은 멜란콜리한 노동자들의 러브 스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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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en Leaves-Kuolleet lehdet by Aki Kaurismäki

 

수퍼마켓에서 진열대 진열과 분리수거를 담당하는 직원 안사(알마 포위스티 분)는 독신녀다. 유효기간 지난 냉동식품을 전자렌지에 데워 먹는 식사가 익숙한 안사는 외롭다. 게다가 라디오를 틀면 우크라이나 전쟁 소식에 더 우울해진다. 공사장 인부 홀라파(주씨 바타넨 분)는 알콜중독이다. 이들이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곳은 친구들과 어울려 가는 가라오케 클럽이다. 그 클럽에선 마이크를 들고 무대에 올라 로큰롤에서 펑크, 슈베르트 가곡, 멕시코 맘보, 핀란드식 뽕짝까지 노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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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en Leaves-Kuolleet lehdet by Aki Kaurismäki

 

클럽에서 눈이 맞은 안사와 홀라파는 영화를 보러간다. 이들은 짐 자무쉬 감독, 아담 드라이버와 빌 머레이가 나오는 좀비 코미디 영화 '죽은 자들은 죽지 않는다(The Dead Don't Die, 2019)'를 본다. 이 영화는 2019 칸영화제 개막작이었고, 짐 자무쉬와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서로 열혈팬이다.

 

카우리스마키는 극장 벽에 자신이 숭배하는 영화 포스터를 붙여놓은듯 하다. 장 뤽 고다르 감독의 '미치광이 피에로'(여러번 비디오로 시도했지만, 끝내 끝까지 볼 수 없었던 고다르),  로베르 브레송의 '돈'(신의 걸작!), 루키노 비스콘티의 '로코와 그 형제들', 존 휴스턴의 '팻 시티(Fat City)'*(크리스 크리스토퍼슨(Kris Kristofferson)의 "Help Me Make It Through The Night"가 흐르는 컬트 영화! 미국에서 TV로 보고 반한 영화다.), 그리고 자무쉬의 '천국보다 낯선'(내 인생을 바꾼 이 한편의 영화)도 붙어있다. 안사는 홀라파에게 전화번호를 주지만, 훌라파가 담배를 꺼내다가 메모를 바람에 날려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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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en Leaves-Kuolleet lehdet by Aki Kaurismäki

 

얼마 후 홀라파는 술을 끊고, 안사를 만나 개과천선하기로 작정한다. 그러나, 양복 재킷을 빌려입고 안사를 만나러 가다가 그만 교통사고를 당하고 입원해 의식불명 상태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안사가 병문안을 가서 홀라파의 의식을 회복시키기 위해 타블로이드 신문을 읽어준다, 그러다가 핀란드가 월드컵 결승전에서 브라질과 싸우게 됐다는 가짜 뉴스를 들려주니 홀라파의 눈이 깜빡거린다. 이런 개그가 카우리스마키의 매력이다.

 

안사는 떠돌이 개를 입양한다. 개는 이름이 없어서 Dog이라 부른다. 어느덧 회복된 홀라파는 간호원이 준 전남편의 옷을 입고 안사를 만나러 간다. 남과 여, 그리고 개는 공원 길을 걸어간다. 홀라파는 개의 이름을 묻는다. 안사는 "채플린"이라고 대답한다. 영화도 채플린처럼 롱 숏으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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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en Leaves-Kuolleet lehdet by Aki Kaurismäki

 

장면마다 유머와 따스함이 공존하는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우리 시대에 위안을 주는 소중한 시네아스트다. 카우리스마키가 이브 몽탕과 찰리 채플린, 그리고 가난한 연인들에게 보내는 할러데이 카드같은 영화. 뉴욕영화제 상영 후 11월 17일 링컨센터에서 개봉된다. 81분.

   

Fallen Leaves-Kuolleet lehdet 

INTRO BY ALMA PÖYSTI ON OCT. 1

SUNDAY, OCTOBER 1, 3:45 PM/ MONDAY, OCTOBER 9 12:45 PM 

Opens at Film at Lincoln Center on Nov. 17.

https://www.filmlinc.org/nyff2023/films/fallen-lea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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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3.10.17 20:29
    낙엽이 쌓이는 계절이 왔습니다. 때 맞추어 영화 '고엽'을 해설해 주셨습니다. 남과 녀는 실과 바늘처럼 같이 따라 다니면서 무엇을 만들어내는 존재가 아닌가 합니다. 가난과 고독에 찌든 남자와 여자가 누구나 가서 무대를 즐기는, 가라오케 클럽에서 만나 사랑을 하게되는 과정이 나를 몰입시켰습니다. 비극으로 끝나나 조마조마했는데 happy ending이라 좋았습니다.
    이브 몽땅이 부르는 고엽이 세느강변의 낙엽을 연상시키면서 마음에 휴식을 줍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