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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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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DINSKY: A LIFE IN LETTERS 1889-1944

 

Publisher: Hirmer Verlag GmbH

Publication Date: January 19, 2024

 

DESCRIPTION

What the venerated artist's letters reveal about his life and art.

Wassily Kandinsky was not only the inventor of abstract painting but its gifted advocate. His letters reveal an artist who thought, communicated, and organized incessantly. He was also straightforward and warm-hearted, so it is especially surprising that a significant portion of his correspondence has remained unpublished until now.

 

Through astute--and at times witty and polemical--letters that Kandinsky wrote to his colleagues and friends, readers gain an insight into the artist's way of thinking and his everyday life. His correspondence also reflects the dramatic times in which he worked; Kandinsky lived through two revolutions, two world wars, the Nazi regime, four emigrations, and transformative events within the art world. Wassily Kandinsky: A Life in Letters provides rich context into the corpus, circumstances, and personality of a monumental artist.

https://www.amazon.com/Kandinsky-Letters-1889-1944-Kate-Kangaslahti/dp/3777440361

https://www.rizzolibookstore.com/product/kandinsky-life-letters-1889-1944

 
 

Artist & Muse <13> Wassily Kandinsky & Gabriele Münter

바실리 칸딘스키 & 가브리엘 뮌터: 사랑과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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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briele Münter, Self-Portrait 1908/ Gabriele Münter, Portrait of Vasily Kandinsky,1906

 

러시아 출신 바실리 칸딘스키는 법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후 서른살 때 모네의 그림에 반해 독일로 유학했다. 독일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가브리엘 뮌터는 11세 연상인 유부남 칸딘스키를 미술학교에서 만나 연인이 됐고, 함께 청기사그룹을 결성한다. 이들은 약혼했지만,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칸딘스키는 러시아로 돌아갔다. 

 

칸딘스키는 1915년 겨울 스톡홀름에서 가브리엘과 재회, 결혼을 다짐했다. 하지만, 이듬해 뮌터 몰래 러시아 여인과  재혼했다. 뮌터의 수많은 편지에는 답장하지 않았다. 1921년 칸딘스키는 변호사를 통해 뮌터가 갖고 있는 자신의 그림과 소지품을 모두 돌려달라고 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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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sily Kandinsky, Blue Mountain, 1908. Solomon R. Guggenheim Museum Collection

 

 

추상회화의 선구자로 불리우는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Wassilyevich Kandinsky, 1866-1944)는 모스크바의 차(tea) 사업가 가정에서 태어났다. 모스크바대학에서 법학, 경제학을 공부하던 칸딘스키는 어느날 색채의 마력과 심리학에 흠뻑 빠진 후 미술로 전향하게 된다. 1896년 서른살의 칸딘스키는 모스크바에서 열린 클로드 모네의 전시회에서 '건초더미'를 본 후 독일로 이주, 뮌헨아카데미에 지원했다. 

 

칸딘스키는 바그너 오페라 '로엔그린'에도 매료됐다. 독일은 그의 로망이었다. 칸딘스키는 6년 후 뮌헨에서 독일 표현주의 화가 가브리엘 뮌터(Gabriele Münter)를 알프스에서 섬머 회화 클래스에 초청하면서 사제지간에서 연인관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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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ssily Kandinsky & Gabriele Münter, 1906/ Kandinsky & Münter in Stockholm, 1916

 

"나는 내 세대의 여학생이 일기를 쓰는 것처럼 스케치북을 드로잉으로 채웠다...내 그림은 내 삶의 순간들이다."

-가브리엘 뮌터-

 

베를린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가브리엘 뮌터(Gabriele Münter, 1877-1962)는 4살 때부터 그림을 그렸고, 부모는 가정교사를 고용하며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스무살에 뒤셀도르프 스튜디오에서 미술을 수학했다. 9살 때 아버지, 22살 땐 어머니가 별세하자 뮌터는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다. 그리고, 여동생과 친척이 있는 미국에 2년 이상 체류하며 텍사스, 아칸소, 미조리주 등지로 스케치 여행을 다녔다. 

 

뮌터는 독일로 돌아가 뮌헨여성화가협회에서 수학한 후 칸딘스키의 아방가르드 미술협회 팔랑스학교를 비롯, 여러 미술학교에서 회화, 조각, 판화, 목판화를 두루 배웠다. 뮌터는 독일표현주의를 비롯 마티스의 야수파, 고갱과 반 고흐의 강열한 색채와 대담한 윤곽에서 영향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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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briele Münter, Boating (with W. Kandinsky), 1910/ Gabriele Münter, Kandinsky at Tea, 1910

 

1902년 뮌터는 팔랑스학교의 누드 드로잉 수업에서 칸딘스키를 만났다. 칸딘스키는 이어 뮌터를 알프스 인근 섬머 워크숍에 데려갔다. 25세의 뮌터는 칸딘스키로부터 그림의 속도감과 즉흥성, 그리고 수영도 배우며 가까워졌다. 처음 만났을 때 칸딘스키는 36세의 외국인, 게다가 6살 연상의 사촌과 결혼한 유부남이었다. 사랑에 빠진 이들은 이듬해 약혼에 이르렀고, 네덜란드, 이탈리아, 프랑스, 북아프리카를 함께 여행했고, 화가 앙리 루쏘와 마티스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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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sily Kandinsky, Munich-Schwabing with the Church of St. Ursula, 1908/ Vasily Kandinsky, Lady (Portrait of Gabriele Münter), 1910

 

1906년 여름 칸딘스키와 뮌터는 파리에 집을 구해 함께 살았고, 1908년엔 독일 바바리아의 무르나우에 정착했다. 이즈음 칸딘스키는 추상미술을 시도하고 있었다. 칸딘스키는 1909년 뮌헨에서 프란츠 마르크, 폴 클레, 아우구스트 마케, 가브리엘 뮌터, 그리고 러시아 출신 화가 알렉세이 폰 야블렌스키, 마리안느 폰 베레프킨과 함께 청기사그룹(Der Blaue Reiter)을 창립했다. 

 

이들은 미술의 정신성을 강조하며, 프랑스의 비구상 미술뿐만 아니라 유럽의 중세미술, 원시주의에 관심을 두었다. 청기사그룹은 입체파, 야수파에서 미술을 추상화로 진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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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briele Münter, Kandinsky and Erma Bossi, 1910. Princeton University Art Museum Collection/ Gabriele Münter, Yavlensky and Verevkin, 1908. 청기사 그룹의 멤버들.

 

1911년 칸딘스키는 부인과 정식으로 이혼했다. 1914년 제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칸딘스키와 뮌터는 스위스로 이주했다. 화가 프란츠 마르크와 아우구스트 마케가 전사했고, 칸딘스키는 시민권 문제로 러시아로 귀국하게 된다. 칸딘스키와 뮌터의 관계가 소강상태에 들어갔고, 청기사그룹도 자연 해산됐다.

 

칸딘스키와 뮌터는 1915년 겨울 스톡홀름에서 재회했다. 이듬해 봄까지 함께 지낸 후 칸딘스키는 다시 뮌터 곁을 떠나면서 서류상 결혼을 약속했다. 하지만, 1917년 50세의 칸딘스키는 모스크바에서 32살 연하의 소녀(니나 안드리프스키)와 결혼한다. 뮌터에겐 비밀이었다. 뮌터는 계속 답장 없는 편지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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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sily Kandinsky, Landscape with Factory Chimney, 1910

 

"색채는 건반, 눈은 망치, 영혼은 줄이 많은 피아노다.

아티스트는 건반을 하나둘 두드리며 영혼을 진동시키는 손이다."

-칸딘스키,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On the Spiritual in Art, 1911)'

 

헤어진지 4년 후 1921년 칸딘스키는 변호사를 통해 뮌터에게 결혼 소식을 알렸다. 그리고, 자신의 소지품과 그림을 돌려보내라고 요구했다. 뮌터는 자신의 집에 있던 칸딘스키의 회화와 드로잉 대부분을 돌려주었고, 나머지는 '도덕적인 피해 보상'으로 창고에 보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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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briele Münter, Krank(Malade), 1917

 

뮌터는 칸딘스키와 결별 후 10년간 붓을 들지 않았다. 1927년까지 은둔해 살던 뮌터는 독일로 귀국, 그림을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나치정부의 '퇴폐 미술' 탄압으로 인해 칸딘스키를 비롯 청기사그룹 멤버들의 그림을 감추었다. 1957년 뮌터는 자신의 80회 생일 때 소장해온 미술품(유화 80점, 드로잉 330점)을 뮌헨의 렌바카우스(Lenbachhaus) 미술관에 기증했다. 

 

칸딘스키는 1921년 독일의 바이마르의 미술학교 바우하우스(Bauhaus)에 초빙된 후 프랑스로 이주, 1944년 파리 근교에서 사망했다. 뮌터는 1962년 무르나우에서 눈을 감았다.  

   

칸딘스키 작품은 맨해튼 구겐하임뮤지엄, 뮌터의 작품은 뉴저지 프린스턴뮤지엄에 다수 소장되어 있다. 

 

 

*아티스트와 뮤즈 <1> 만 레이와 몽파르나스의 키키

*아티스트와 뮤즈 <8> 오귀스트 르누아르와 여인들

*아티스트와 뮤즈 <9> 구스타프 클림트와 뮤즈들

*아티스트와 뮤즈 <10> 폴 세잔과 부인 오르탕스 피케

*아티스트와 뮤즈 <11> 마크 샤갈의 등대, 뮤즈, 부인 벨라 로젠필드

*아티스트와 뮤즈 <12> 에곤 쉴레와 '비엔나의 모나리자' 발리(Wal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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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0.10.14 02:22
    컬빗님, 삼일간의 길다면 긴 연휴를 잘 지내셨어요? 가랑비가 어제 오늘 연일 내립니다. 비를 보면서 몇 가지 추억을 생각하면서 보냈습니다. 20년도 더 된 것 같습니다. 서울서 친한 친구가 뉴욕을 방문차 왔었습니다. 미술에 조예가 깊은 친구라 뮤지움을 데리고 갔습니다.(그 당시 입장료가$8.95이었나 합니다) 마침 그때 모마에서 칸딘스키 전시회가 있어서 둘이서 손잡고 전시회를 뜻깊게 관람했습니다. 오늘 컬빗에서 칸딘스키를 자세하게 설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칸딘스키에 대해 많이 배웠다는 사실이 내 어깨를 으슥하게 합니다.
    -Elaine-
  • sukie 2024.03.21 12:21
    편지로 본 칸딘스키를 읽고 멋진 여인을 발견했습니다. 그의 약혼녀였던 가브리엘 뮌터입니다. 칸딘스키와 사제지간이었던 뮌터는 선생님인 그를 사랑과 존경을 끝까지 간직하면서 산 순수한 마음의 여인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칸딘스키가 딴여자와 몰래 결혼을하고, 뮌터와 결혼을 약속하고 헤어진지 4년만에 이 사실을 알리고 그림을 돌려달라고 변호사를 통해 알렸을때도 거의 다 돌려보냈고 잡다한 소리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10년간이나 그림을 그리지않고 지냈습니다. 다시 붓을 들었을 때의 그녀의 모습이 얼마나 그윽해 보였을까 상상을 해봤습니다. 역시 멋있는 여인으로 떠오릅니다. 85세에 사망하기까지 그림과 사랑을 안고 산 멋진 여인입니다. (1957년에 80살이었으니까 1962년에 사망했으면 85세에 사망했음이 확실함)
    가브리엘 뮌터의 그림은 색상이 뚜렸하네요. 마티스가 연상됩니다. 프린스톤대학 박물관에 그녀의 그림이 전시돼있다니 보러가아지요. 프린스톤 대학이 저의 집에서 북쪽으로 약 6마일 떨어져 있어요.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