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케이블 TV TCM 김기영 감독 '하녀(The Housemaid)' 방영
김기영 감독의 걸작 '하녀(Housemaid, 1960)'가 7월 27일과 28일 미 케이블 채널 TCM(Turner Classic Movies)에서 방영됐다.
'하녀'는 TCM의 에디 뮬러(Eddie Muller)가 진행하는 '누아르 앨리(Noir Alley, 필름 누아르 골목)' 시리즈에 선정됐다. 6월 15일부터 7월 27일까지 매주 토요일 밤과 일요일 아침(재방송)에 방영되는 '누아르 앨리'엔 'Call Northside 777'(1948), 'The Locket'(1946), 'No Questions Asked'(1951), 'Armored Car Robbery'(1950), 'The Woman on Pier 13'(1950), ' Red Light' (1949)에 이어 마지막 영화로 방영됐다. 에디 뮬러는 필름누아르재단(Film Noir Foundation)의 창립자이자 회장이다.
TCM의 'Noir Alley' 진행자 에디 뮬러씨/ 김기영 감독
워너브라더스가 소유한 TCM은 할리우드 고전영화를 위주로 편성해오고 있다. TMC가 한국영화를 방영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https://www.tcm.com/articles/Programming%20Article/021846/noir-alley
링컨센터 '한국 영화 황금기 1960년대' (9/1-17) 추천작
<4> 하녀 下女, The Housemaid (1960)
코리안 팜므 파탈의 욕망과 부르주아의 몰락
아역 안성기, 봉준호 부친 봉상균의 오프닝 타이틀 디자인
The Housemaid, 1960
1960년 6월 16일 뉴욕의 2개 영화관에서 '스릴러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 1899-1980)의 '사이코(Psycho)'가 세계 최초로 개봉됐다. 같은 해 11월 3일 서울 명보극장에선 '한국의 알프레드 히치콕'으로 불리우는 김기영(Kim Ki-young, 1919-1998) 감독의 스릴러 '하녀(下女, The Housemaid)'가 개봉됐다. 김기영 감독을 추앙하는 봉준호와 박찬욱 감독은 21세기 한국영화의 쌍두마차가 됐다. 1960년대 한국영화 황금기의 대표작가 김기영 감독은 K-무비의 뿌리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기영 감독의 오리지널 시나리오 '하녀'는 방직공장의 음악선생 동식(김진규 분)의 2층 양옥집에 가정부 명숙(이은심 분)이 들어가 동식과 불륜에 빠지면서 이 가정을 수렁에 빠트리는 이야기다. '하녀'의 이은심은 '사이코'의 노만 베이츠 안소니 퍼킨스 못지 않은 사이코 캐릭터, 애드리안 라인 감독작 '위험한 정사(Fatal Attraction, 1987)'의 글렌 클로즈를 방불케하는 팜므 파탈(Famme Fatal)이다.
동식의 피아노가 있는 2층은 가부장적이며 욕망이 꿈틀거리는 공간이다. 동식은 이곳에서 추락을 할 운명이다. The Housemaid, 1960
동식은 재봉일로 돈을 버는 아내(주증녀 분), 다리 불구인 딸, 개구장이 아들 창춘(안성기 분)과 2층 양옥집에서 살고 있다. 어느날 동식을 흠모한 여공의 연애편지를 받은 동식은 공장 간부에게 알리고, 여공은 정직당해 귀향한다. 동식에 관심있는 또 한명의 여공 조경희(엄앵란 분)은 동식의 집에서 피아노 교습을 받게된다. 아내가 임신으로 가사가 부담스럽자 동식은 경희의 소개로 하녀를 고용한다. 경희의 고백을 거부한 동식은 어느날 하녀의 유혹에 그만, 굴복하고 만다. 어느덧 하녀는 임신하고, 아내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하녀의 낙태를 유도하는데...
하녀 명숙이 처음 등장하는 방직공장의 복도 장면. The Housemaid, 1960
'하녀'는 한국사회의 빈부 격차를 그린 봉준호 감독의 스릴러/블랙코미디 '기생충(Parasite, 2019)'에 영향을 준 작품이다. 김기영 감독은 1950년대 말 근대화 과정에서 한국의 사회문제와 남녀의 욕망을 중산층 가정집과 방직공장을 배경으로 그려냈다. 1950년대는 한국 근대사에서 혹독한 시련의 시대였다. 한국전쟁으로 국토는 분단됐고, 경제가 초토화했으며, 비민주적인 독재정치, 전쟁의 폐허 속에서 민중의 삶은 비참했다. 그즈음 산업화의 물결로 많은 시골 출신 여성들이 서울의 공장이나 가정집의 하녀로 일했다.
동식은 부르주아다. 셋집에서 살다가 2층 양옥집으로 이사한 동식네 가족은 행복해 보인다. 피아노가 있지만, TV는 아직 없는 동식의 부인은 한복 차림으로 온종일 재봉일을 하고, 동식은 여공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며 부수입을 챙기고 있다. 딸에게 장애가 있는 것이 유일한 근심거리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새집을 마련하느라 동식네의 재정은 흔들리고 있다. 가정적인 남편 동식은 윤리적으로 결백한 인간이었다. 자신에게 연애편지를 보낸 공원을 제보할 정도로 도덕적으로 순결한 남편이었다. 그를 흔들 수 있는 여자는 누구일까?
방직공장 청소부에서 음악선생집의 하녀로 취직한 이은심, 방직공장의 여공 엄앵란. The Housemaid, 1960
방직공장의 젊은 여공들은 미남 음악선생에게 호감을 갖는다. 방직공장 직원들 간에도 계급이 있다. 하녀 명숙은 방직공장의 복도를 막대걸레로 미는 뒷모습으로 처음 등장한다. 명숙은 이 공장에서 걸레질을 하는 청소부다. 영화 '하녀'에서 김진규의 부인 주증녀가 상녀(上女)라면, 엄앵란은 중녀(中女), 이은심은 말 그대로 하녀(下女)다. 상녀의 희망은 행복한 가정이며, 중녀와 하녀의 욕망은 동식의 마음을 차지하는 것이다. 하녀에게 그것은 신분상승의 기회이므로 더 치열하다.
한복 차림 아내의 재봉틀과 남편의 피아노, 영화 오프닝에서 두 자녀가 실놀이하는 게임과 방직공작의 여공들의 근로는 전통과 근대, 놀이와 업무를 대조시킨다. 동식을 연모하던 여공의 자살, 하녀의 끊임없는 협박에 굴하는 동식과 그의 아내는 욕망과 정의보다 체면이 중시되는 전근대적 환경에서 고립되는 인물들을 그려진다.
하녀에게 남편을 양보하고, 밥상까지 차려다 바치는 안주인 주증녀. The Housemaid, 1960
돈도 지성도 없는 하녀가 수직상승할 수 있는 무기는 자신의 육체 뿐이다. 하녀는 안주인(주증녀)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동식을 유혹한다. 그리고, 안주인은 가정을 구하기 위해 하녀의 명령을 따라 남편의 육체를 하녀에게 양보할 뿐만 아니라 하녀에게 밥상을 차려 바친다. 안주인과 하녀의 권력이 역전되는 것이다. 안주인이 하녀의 하녀가 되어 버린다. 하녀는 결국 동식과 함께 파멸을 택한다. 동식은 계단에서 추락해서 아내의 재봉틀 아래, 딸의 침대 아래서 최후를 맞는다. 허약했던 가부장의 말로다.
'하녀'는 무기력한 가장이 단 한번의 욕정에 굴복해 추락하는 스토리다. 동식의 주변에 있는 아내(주증녀)-여공(엄앵란)-하녀(이은심)는 의지가 강한 여인들이다. 아내는 재봉틀을 밟으며 돈을 벌고, 남편의 외도를 용서하며, 하녀와 타협하며 가정을 지키는데 최선을 다한다. 여공은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추며 동료를 조종해 동식에게 마음을 전달하고, 하녀를 소개시키고, 사랑을 고백했다가 거부당하고 하녀의 칼부림을 당한다. 하녀는 동식을 유혹해 아내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의지가 투철하고, 과대망상증에 자기파괴적인 인물이다. 김기영 영화 속의 여인들은 남자의 권력에 종속되는 인물들이 아니라, 자기연민과 자기주장이 확실한 페미니스트들이다.
음악선생 김진규는 아내의 재봉틀 아래로 추락하며 최후를 맞는다. The Housemaid, 1960
김기영 감독은 2층 동식의 피아노룸과 하녀의 공간을 병치시키고, 주방과 거실, 침실 간의 문으로 '넘지 말아야할 선'을 제시한다. 빗소리, 재봉틀 소리, 하녀의 쿵쾅대는 피아노 연주, 아기 울음소리, 동식의 피아노 연주와 여공들의 합창, 그리고 한상기의 음악은 동식의 가정을 하녀가 지휘하는 풍전등화의 호러 오케스트라로 초대한다.
'하녀'는 단연 1960년대뿐만 아니라 한국 영화사의 걸작이다. 2008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세운 월드시네마파운데이션(World Cinema Foundation)의 지원으로 복원되어 유튜브나 크라이테리온 채널(Criterion Channel)에서 고화질로 감상할 수 있다.
동식의 개구장이 아들 창순 역의 안성기. The Housemaid, 1960
국민배우가 될 안성기가 김진규의 아들 창순으로 연기하는 것을 보는 즐거움도 있다. 안성기는 8살 때 김지미의 데뷔작 '황혼열차'(1957)에 출연했으며, 김기영 감독의 '10대의 반항'(1959)에서 재능을 보여주게 된다. '하녀'의 제작부장 안화영(예명 안석진, 1925-2019)씨가 그의 부친으로 김기영 감독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서울대 언어학과 졸업 후 동성고교 체육교사를 지낸 그는 아이스하키 선수이기도 했다. 김기영, 박암 등 서울대 연극반 출신 동문들과의 인연으로 1950년대 김기영 감독의 '봉선화'에 시나리오, 주연 및 제작부장으로 데뷔했으며, '황혼열차'에 단역 배우로 출연하면서 아들 안성기를 데뷔시켰다. 1979년부터 현진영화사 기획부장을 거쳐 사장으로 '병사와 아가씨들'(1977-김기 감독), '산중전기(1979, 박윤교, 호금전 감독), '돌아온 용쟁호투(1980, 박우상 감독) 등을 제작했다.
봉준호 감독 부친인 그래픽디자이너 봉상균 교수가 디자인한 '하녀' 타이틀. The Housemaid, 1960
뿐만 아니라 '하녀'의 오프닝 타이틀의 자막은 봉준호 감독의 부친인 그래픽디자이너 봉상균(1932-2017)씨가 디자인했다. 봉상균씨는 서울대 응용미술학과 졸업 후 문화공보부 국립영화제작소의 미술실장을 지냈으며, 효성여대(대구가톨릭대), 영남대,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를 지냈다.
하녀 The Housemaid / Hanyo
김기영 감독 Kim Ki-young, 1960, South Korea, 108m
Korean with English subtitles. 이은심, 김진규, 엄앵란, 주증녀, 안성기 출연.
One of the unquestionable masterpieces of Korean cinema, The Housemaid tells the story of Dong-sik, a married music teacher living in a working-class area. One of his students arranges for another young woman to work as the housemaid for Dong-sik and his family; meanwhile, the student expresses her own physical desires for Dong-sik, who rebuffs her. But the whole episode is witnessed by the housemaid, who launches her own, ultimately more successful effort to seduce Dong-sik. The housemaid becomes pregnant, and thus a bizarre ménage à trois is formed between Dong-sik, his wife, and their increasingly assertive housemaid. The Housemaid is an emotional roller coaster; characters’ stated desires so often contradict their actions that roles and positions are constantly in flux. Restored in 2008 by the Korean Film Archive (KOFA) and the World Cinema Foundation at HFR-Digital Film laboratory. Additional funding provided by Armani, Cartier, Qatar Airways, and Qatar Museum Authority.
Saturday, September 2 at 9:00pm/ Saturday, September 9 at 6:00pm/ Thursday, September 14 at 4:00pm
Walter Reade Theater: 165 West 65th St.
Tickets: $17(일반), $14(학생, 노인, 장애인), $12(필름소사이어티 회원) *$5 할인코드 KOREANYC
https://www.filmlinc.org/series/korean-cinemas-golden-decade-the-1960s/#films
*한류를 이해하는 33가지 코드: BTS, 기생충, 오징어 게임을 넘어서
#5 한(恨)과 한국영화 르네상스 Country of Trauma, Culture of Drama
Koreans have a unique sentiment of 'han'. The ethnic trauma of Koreans, such as separated families due to the division of the two Koreas after the war and the Ferry Sewol disaster, were more dramatic reality than the movies. Koreans who share their national sad feelings want more dramatic narratives and unforgettable characters. We are hungry for that. It is also the reason why Korean directors such as Park Chan-wook, Bong Joon-ho and Hwang Dong-hyeok have developed brutal aesthetics.
http://www.nyculturebeat.com/index.php?mid=Zoom&document_srl=4072876
*한국영상자료원 유튜브 채널 1930-90년대 한국 고전영화 100여편 무료
https://www.nyculturebeat.com/index.php?mid=Film2&document_srl=4102921
-Ea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