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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s Kristofferson (1936-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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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트리송 "Help Me Make It Through the Night"의 작곡가이자 가수, 영화 '스타 탄생(Star is Born, 1976)'으로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던 배우 크리스 크리스토퍼슨(Kris Kristofferson)이 9월 28일 하와이 마우이 자택에서 88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로즈 장학생이였으며, 여권에는 직업이 '작가(writer)'라고 적혀있다.  

 

크리스토퍼슨은 텍사스주 브라운스빌에서 태어났다. 육군장교였던 아버지의 복무로 인해 청소년 시절 자주 이사를 다녔고, 캘리포니아주 샌머테오에 정착했다. 작가를 꿈꾸었던 크리스는 포모나칼리지에 진학해 수필로 수상하고, 잡지에 실렸다. 대학 시절 럭비, 풋볼, 육상, 권투 선수로 활동하며 'Sports Ilustrated'에 실릴 정도로 유명해졌다. 1958냔 머튼 칼리지 재학시절 로즈 장학생으로 옥스포드대에서 유학하며 소설가의 꿈을 키웠다. 

 

군 제대후 내쉬빌로 이주해 노래를 작곡하며, 콜롬비아 스튜디오에서 청소부로, 상업용 헬리콥터 조종사로도 일했다. 이 시절 대표곡 "Help Me Make It Through the Night"와 조니 캐쉬에게 준 "Sunday Mornin' Comin' Down"으로 컨트리음악협회 시상식에서 '올해의 작곡가상'을 수상했다. 이후 조니 캐쉬가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 소개해서 공연했다. 1971년엔 연인이었던 조니 재플린에게 "Me and Bobby McGee"를 주어 빌보드 1위에 올렸다. 크리스토퍼슨의 곡은 자유와 헌신, 소외와 욕망, 어둠과 빛이라는 주제를 탐구했다.

 

컨트리 발라드곡 "Help Me Make It Through the Night"은 1970년 크리스토퍼슨이 레코딩을 출시한 후 엘비스 프레슬리에서 태미 와이넷, 조니 캐쉬, 조안 바에즈까지 수많은 가수들이 불렀다. 존 휴스턴 감독의 '팻 시티(Fat City, 1972)'의 주제가로도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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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슨은 연기자로도 이름을 알렸다. 1971년 데니스 호퍼 감독의 '마지막 영화(The Last Movie)'로 데뷔한 후 샘 페킨파 감독의 서부극 '팻 가렛과 빌리 더 키드(Pat Garrett and Billy the Kid, 1973-*밥 딜런 단역),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앨리스는 더 이상 이곳에 살지 않는다(Alice Doesn't Live Here Anymore, 1974)에 출연했으며,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공연한 '스타 탄생(A Star Is Born, 1976)'으로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마이클 치미노 감독의 저주받은 졸작 '천국의 문(Heaven's Gate, 1980)'으로 흥행에 참패했다. 1987년엔 ABC-TV 7부작 시리즈 '아메리카(Amerika)'에 출연했다. 소련이 미국을 침공한다는 가상의 드라마로 1988년 한국에서 비디오로 출시되었을 때 필자가 대우비디오에서 이 시리즈의 마케팅을 담당했었다. 지루한 시리즈였지만, 일간 스포츠에 광고도 내고 비디오 흥행도 좋은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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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은 1970년대 초에 만난 가수 리타 쿨리지와 1973년 결혼했으며, 듀오 앨범 'Full Moon'을 출시해 그래미상 후보까지 올랐다. 이 부부는 1979년 TV 인형극 쇼 'The Muppet Show'에 출연, 크리스토퍼슨은 돼지 여사(Miss Piggy)와 함께 "Help Me Make It Through the Night"를 불렀고, 쿨리지는 숲의 동물들과 함께 "We're All Alone"을 불렀고, 부부는 Muppet 괴물들과 함께 "Song I'd Like to Sing"을 불렀다. 이들은 1980년 이혼했다.

 

그는 지속적으로 레코딩을 했지만, 허스키 보이스와 피치가 맞지 않는 보컬은 상업 라디오에서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크리스토퍼슨은 시인이자 영어 교사에 가깝고, 노래는 너무 길고 완벽한 문학성을 갖추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영화는 무려 50여편에 출연했지만 옛 영광을 회복하지는 못했다. 1985년 작곡가 명예의 전당에 등재됐으며, 2006년 그는 매튜 매코네이, 시빌 셰퍼드, 조베스 윌리엄스와 함께 텍사스 영화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2014년엔 그래미상 평생 공로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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