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rt



Petition for the Repatriation of the Bust of Nefertiti

네페르티티 여왕 흉상 이집트로 돌아올 때 

 

nefertiti.jpg

 

올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은 아프리카 베넹으로 반환되는 문화유산 26점의 여정을 담은 마티 디옵 감독의 다큐멘터리 '다호미(Dahomey)'였다. '다호미'는 뉴욕영화제(NYFF)에도 초청 상영됐다. 이제 곳곳에서 식민국의 문화재 약탈로 빼앗긴 고대 유물을 반환하라는 운동이 가속화하고 있다.

 

9월 8일 이집트 전 관광및 유물장관이었던 고고학자이자 자히 하와스(Zahi Hawass)가 베를린 노이에스 뮤지엄(Neues Museum)에 소장된 고대 이집트 여왕 네페르티티(Nefertiti) 흉상(재고번호, No. AM 21300)의 반환을 촉구하는 온라인 청원을 제기했다. 이 청원에는 10월 8일 현재 1만175명이 서명했다. 

 

이 청원서에서 하와스는 네페르티티 흉상(BC 1351-BC 1334)이 1912년 독일의 이집트학자 루트비히 보르하르트(Ludwig Borchardt)가 발굴한 지 1년 만에 불법적으로 이집트에서 반출되었다고 주장한다. 석회암으로 칠해진 네페르티티 흉상은 고대 이집트 미술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한점이다. 네페르티티 여왕은 신왕국 18왕조에 살며 통치했으며, 고대 이집트 사회에 태양신 아텐을 숭배하도록 고무시킨 아크나텐왕의 아내였다.

 

 

Dahomey_film_poster.jpg

*NYFF62: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다호미(Dahomey)' ★★★★☆

https://www.nyculturebeat.com/index.php?document_srl=4134184&mid=Film2

 

하와스는 "의미있는 대화를 요구하는 많은 사람들의 무시, 이 독특한 유물이 어떻게 독일에 왔는지에 대한 인정 요청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이 청원은 그 대화를 다시 불태우고 흉상을 카이로로 돌려보내도록 고무하며 독일 당국으로부터 품위있는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썼다. 

 

한편, 노이에스 뮤지엄 웹사이트에는 "네페르티티 흉상"을 제거한 것은 이집트 고대 유물 위원회가 정한 이집트 법률을 준수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뮤지엄은 보르하르트가 텔엘아마르나 유적지 발굴 캠페인이 끝난 1913년에 공식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뮤지엄은 협상 중에 "이집트 측"이 "아케나텐과 그의 가족의 석비"를 주장했고 "독일 측"이 네페르티티 상을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웹사이트에 따르면, 이 흉상은 1920년에 미술 수집가 제임스 사이먼이 구입해 뮤지엄에 기부했다. 

 

하와스는 2022년 10월에 대영 박물관(브리티시뮤지엄)과 루브르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로제타 스톤과 덴데라 조디악을 반환해 달라는 청원을 제기해 약 23만명의 서명을 받았다.

 

 

 '베를린의 모나리자' 네페르티티(Nefertiti)

 

nefertiti3.jpg

아케나텐과 네페르티티, 일명 '윌버 플라크(The Wilber Plaque)', 브루클린뮤지엄

 

고대 이집트 최고의 미녀로는 네페르티티(Nefertiti, c.1370 – c.1330 BC)가 꼽힌다. 아니, 네페르티티는 세계 최고의 미녀로 꼽힌다. 네페르티티는 기원전 14세기 제 18왕조 아케나텐 왕(Pharaoh Akhenaten)의 큰 왕비(Great Royal Wife)이며, 소년왕 투탕카멘(Tutankhamun)의 계모이자 장모다. 

 

우아한 곡선의 짙은 눈썹, 날씬한 코, 도톰한 입술, 날렵한 턱과 긴 목선, 그리고 미스테리한 눈매와 야릇한 표정은 오늘날 화장품의 아이콘이 될 정도로 완벽한 아름다움의 극치다. '나일의 여왕(Queen of the Nile)'라는 별명이 붙은 네페르티티, 그 이름도 "아름다운 이가 오셨도다"라는 뜻이다. 흉상 덕으로 네페르티티는 클레오파트라 다음으로 가장 유명한 고대 이집트의 여왕으로 남았다.

 

 

nefertiti-stamps.jpg  

이집트와 독일에서 발행한 네페르티티 우표

 

베를린 이집트뮤지엄(Ägyptisches Museum und Papyrussammlung)의 소장품인 네페르티티 흉상은 '베를린의 모나리자'로 불리운다. 2009년부터 베를린 노이에스 뮤지엄(Neues Museum)에 전시해온 네페르티티 흉상은 연간 100만명의 관람객을 끌고 있는 뮤지엄의 스타다. 

 

네페르티의 고국 이집트와 그녀의 흉상을 소장한 독일에선 네페르티티 우표를 여러차례 발행했으며, 네페르티티는 소설, 영화, 음악까지 영감을 주었다. 지난해 가수 비욘세(Beyoncé)는 네페르티티 이미지를 모방한 뮤직비디오와 T셔츠를 제작했고, 리한나(Rihanna)는 네페르티티 분장으로 보그(Vogue)지 커버에 등장했다. 독일 작가 이자 겐즈켄(Iza Genzken)과 미국 작가 프레드 윌슨(Fred Wilson)도 네페르티티를 모티프로 한 작품을 제작했다. 

 

 

003.jpg

네페르티티에 영감을 받은 작가 이자 겐즈켄(Isa Genzken), 무제, 2012/ 비욘세(Beyoncé)/ 리한나(Rihanna)

 

독일은 어떻게 이집트 미녀 네페르티티를 모시게 되었을까?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이 고대 이집트 유물 발굴에 혈안이 되어 있던 1912년 루드비히 보르하르트(Ludwig Borchardt)가 이끄는 독일 고고학 발굴단이 텔엘 아마르나(Tell El Amarna) 유적지 터트모세(Thutmose)의 작업실에서 나왔다. 왕궁 조각가였던 터트모세는 1345년경 25세의 네테르티티를 모델로 흉상을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1912년 당시 발굴된 유물은 이집트와 독일이 반반씩 나누기로 동의했었다. 그런데, 보르하르트는 네페르티티 흉상 사진을 침침한 조명 아래서 보여주며 별것 아닌 것처럼 눈속임 후 독일로 빼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1923년 네페르티티가 처음 베를린에서 공개된 후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키게 된다. 독일은 네페르티티 흉상을 감추었다. 제 2차 세계대전 때는 메르커스 카이젤바흐(Merkers-Kieselbach)의 소금광산에 보관했다. 2009년부터는 베를린 노이스뮤지엄에서 전시해왔다. 

 

이집트고등유물위원회는 독일정부에 지속적으로 약탈된 네페르티티를 반환하라고 요구해왔다. 주간  타임(Time)지는 네페르티티 흉상을 '톱 10 약탈 문화재'에 꼽았다. 현재 워싱턴 D.C.의 내셔널지오그래픽뮤지엄의 '이집트의 여왕들(Queens of Egypt)'에 전시 중인 네페르티티 흉상은 복제품이다.

 

 

nefertiti-met.jpg

네페르티티 부조, ca. 1353–1336 BC. 메트로폴리탄뮤지엄 이집트 갤러리 #122, The Met Museum

 

네페르티티는 누구인가? 

출생 배경은 확실치 않으나, 아케나텐의 친척이라는 설과 '아름다운 이가 오셨도다'라는 이름 때문에 외국인(시리아 공주)일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네페르티티는 15세 즈음 아케나텐(본명 아멘호텝 4세)와 결혼해 6명의 딸을 낳았다. 왕위를 계승할 아들이 없었기에 네페르티티의 딸 안케세나멘(Ankhesenamun)이 이복 동생이자 9살에 왕위에 오른 투탕카멘(Tutankhmun)과 결혼한다. 따라서 네페르티티는 투탕카멘의 계모이자 장모가 된다. 

 

 

louvre-akhenaton-nefertiti.jpg

아케나텐과 네페르티티 석상, 루브르뮤지엄 소장. The Louvre

 

물론 아케나텐에겐 많은 왕비(첩)들이 있었지만, 네페르티티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다. 그녀에게 정치, 종교적인 권한을 줄 정도로 신뢰감이 돈독했다. 아케나텐왕은 이전의 관습을 거부하며 새로운 이집트로 만들었다. 아케나텐은 통치 6년 때 수도를 테베(Thebes)에서 엘 아마르나(El Amarna)로 이전했다. 그리고, 종교개혁을 시작한다. 전세대까지 이집트는 아문/아멘(Amun/ Amen, 바람과 공기의 신)을 비롯, 다양한 신들을 숭배하는 다신교를 믿었다. 

 

아케나텐이 왕위에 올랐을 때 아문교 제사장들은 왕들보다 더 부유하고, 파워풀한 권력을 갖게 되었다. 아케나텐은 태양 원반을 상징하는 아텐(Aten)을 유일한 신으로 섬기는 획기적인 전환을 한다. 이는 파워풀해진 제사장들을 통제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개혁이기도 했다. 아테니즘(Atenism)을 국교로 하면서 신전벽에 새겨진 아문신의 흔적을 말살하는 정책을 폈다.  

 

 

akhenatenhat.jpg  Akhenaten-Tomb-Cairo-photo-Jean-Pierre-Dalbera-CC.jpg

아케나텐 거상(왼쪽)/ 아케나텐, 네페르티티와 공주들의 모습을 담은 석비, 카이로 이집트뮤지엄

 

원래 아케나텐(Akhenaten)의 이름도 아멘호텝 4세(Amenhotep IV, '아문은 만족한다'는 의미)였지만, '아텐에 효과적인'이라는 의미의 아케나텐으로 솔선수범 개명하게 된다. 왕비 네페르티티도 파라오를 따라 '아름다움은 아텐의 미인들이요, 아름다운 자가 오셨도다'는 뜻의 이름 네페르네페루아텐-네페르티티(Neferneferuaten-Nefertiti)을 쓰기 시작했다.  

 

네페르티티는 아케나텐과 나란히 태양 원반을 상징하는 아텐에 제사를 지낼 때 신과 시민들의 다리 역할까지 했다. 또한, 전쟁 때는 파라오의 왕관을 쓰고, 적을 공격하는 모습, 전차를 직접 이끄는 모습도 묘사되어 왕과 거의 대등한 위치에 올랐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케나텐은 '왕들 명예의 전당'으로 불리우는 테베의 카르낙 신전(Karnak)에 네르페티에게 헌사하는 사원까지 지어주었다. 네페르티티는 절세의 미녀였지만, 남편 아케나텐과 함께 종교개혁을 진두지휘한 인물임을 기억해야할 것이다. 

 

 

nefertiti-berlin.jpg

아케나텐왕, 네페르티티 왕비와 세 공주, 베를린 이집트뮤지엄/노이스뮤지엄 소장

 

아케나텐 재위의 이집트는 경제적, 문화적으로 융성한 시기였다. 아케나텐, 네르페테테 왕가도 행복했다. 사원의 벽화와 부조에는 왕과 왕비가 키스하는 모습, 전차를 함께 탄 모습, 공주들과의 행복한 일상 생활을 묘사하고 있다. 후대 르네상스 미술의 성가족(Holy Family)'를 연상시킨다.  

 

왜 아케나텐과 네르페티티의 머리을 길쭉하게 표현했을까? 아케나텐은 다신교에서 유일신으로 종교개혁을 과감하게 펼쳤고, 미술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 시기 미술 풍조는 당시 수도 이름을 딴 '아르마나 미술(Armana Art)'이라 불리운다. 아르마나 미술은 인물을 긴 두개골과 긴 목, 날렵한 이마와 코, 돌출된 턱, 큰 귀와 입으로 묘사했다. 엘 그레코(El Greco)와 모딜리아니(Modigliani)를 상상해 보시라. 아케나텐 재위 시절엔 과장된 표현주의, 상징미술이 풍미한 셈이다.  

 

메트로폴리탄뮤지엄과 함께 방대한 고대 이집트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 브루클린뮤지엄은 1973년 특별전 '아케나텐과 네페르티티: 태양왕 시대의 미술(Akhenaten & Nefertiti: Art from the Age)'을 열고, 170여점을 소개했다. 현재 브루클린뮤지엄 3층 이집트 갤러리엔 네페르티티 부조 몇점을 감상할 수 있다. 메트뮤지엄보다 튼실한 네페르티티 컬렉션이다.  

 

 

00071.89_SL1-brooklynmuseum.jpg

브루클린뮤지엄 소장 네페르티티 부조. Brooklyn Museum 

 

아케나텐은 17년간(BC 1353-BC 1336) 통치했다. 아케나텐 재위 12년 즈음해서 네페르티티는 파라오에 대등한 섭정자의 지위에 등극하게 된다. 그리고, 1336-34년 경 아크나텐의 사망 후 네페르네페루아텐(Neferneferuaten)이 2년간 남장하며 이집트를 통치했다는 추정도 있다. 또한, 이름을 스멘카레(Smenkhkare)로 개명한 후 파라오의 지위에 올랐다는 주장도 나왔다. 

 

아무튼, 네페르티티는 아케나텐 사망 6년 후 흔적없이 사라지게 된다. 이즈음은 아텐교가 쇠락하고, 아문교가 복귀하는 때이다. 아케나텐 재위 시절 억압됐던 아문교 신관들이 권력을 휘둘렀을까? 이 때문에 네페르티티가 망명했을 가능성도 보인다.    

 

nefertiti-grey.jpg

Fred Wilson(1954- ), Grey Area (Brown version), 1993. Paint, plaster and wood, Brooklyn Museum

 

네페르티티의 무덤은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1898년 룩소(Luxor) 왕들의 계곡(Valley of the Kings)의 아멘토프 2세(KV35)에서 발굴된 두명의 여성 미이라 중 젊은 미이라(Younger Lady Mummy)가 네페르티티일 것이라는 기대에 고고학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그러나, DNA 조사 결과  이 미이라는 네페르티티가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네페르티티의 딸과 결혼한 이복아들인 소년왕 투탕카멘도 본명은 '아텐교'를 숭배하는 이름 투탕카텐(Tuntankhaten, 아텐의 살아있는 이미지)이었지만, 왕위에 오른 후엔 이름을 투탕카멘(Tutankhamun, 아문의 살아있는 이미지)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아버지 아케나텐의 종교개혁을 전복시키며 아문교를 복구하게 된다. 

 
 
queensofegypt.jpg

Queens of Egypt, National Geographic Museum, Washington, D.C. 2019

 

*고대 이집트의 여왕들 (1) 워싱턴 DC 내셔널지오그래픽 뮤지엄(3/1-9/2, 2019)

https://www.nyculturebeat.com/index.php?mid=Travel2&document_srl=3806566

 

*고대 이집트의 여왕들 (2) 위대한 여성 파라오 하트셉수트 (Hatshepsut)

https://www.nyculturebeat.com/index.php?mid=Travel2&document_srl=3814410

 

*고대 이집트의 여왕들 (3) '베를린의 모나리자' 네페르티티(Nefertiti)

https://www.nyculturebeat.com/index.php?mid=Travel2&document_srl=3822024

 

*고대 이집트의 여왕들 (4) 람세스 대왕의 영원한 사랑 네페르타리(Nefertari)

https://www.nyculturebeat.com/index.php?mid=Travel2&document_srl=3826156

 

*고대 이집트의 여왕들 (5) 최후의 파라오 클레오파트라 7세

https://www.nyculturebeat.com/index.php?mid=Travel2&document_srl=3833233

 

 

Petition for the Repatriation of the Bust of Nefertiti

 

Why this petition matters

Started by Dr Zahi Hawass

 

nefertiti0.jpg

Image: Wikipedia

 

I am writing on behalf of Egyptians – and everyone who is strongly advocating for Egypt’s heritage to be restored to its home – to submit a request for the repatriation of the painted limestone bust of Nefertiti, accessioned in the Neues Museum as Inventory No. AM 21300. 

 

This bust, remarkable and unrivaled in history for its historical and aesthetic merit, is now in Germany, but it is time for it to come home to Egypt. 

 

An unjustified extraction

 

For years, Egypt has been deprived of many of its most significant ancient Egyptian artifacts – one of which is the Dynasty 18 bust, which has never failed to gather innumerable visitors to Berlin’s famed Neues museum. Despite many ignored calls for meaningful dialogue as well as requests for acknowledgment of how this unique artifact ended up in Germany, this petition today is meant to re-ignite that conversation, inspire the return of the bust to Cairo, and elicit a dignified response from German authorities. 

 

For the last twenty years, Egypt’s repatriation efforts have been commendable. From as far as the USA to as close as Europe, Egyptian authorities, with the help of international policing and diplomatic bodies, have retrieved and repatriated thousands of artifacts taken out of the country illegally. This request, therefore, is a logical outcome of our nation's longstanding policy of demanding the return of any historical and archaeological artefacts that have been unlawfully removed from the nation, particularly those that are thought to be unique. 

 

Regarding the particular instance of the bust, contemporaneous and subsequent records documenting the excavation and distribution of finds of the collection of artefacts comprising the bust of Nefertiti verify that the bust was removed from Egypt against the letter and the spirit of the Egyptian laws in effect at the time. Since the first full publication of the Nefertiti bust, which did not appear until over a decade after its discovery in 1912 by Ludwig Borchardt, Egypt has made a number of attempts to repatriate this priceless sculpture.

 

Bring the Queen’s bust home

 

While Nefertiti has been a wondrous ‘’ambassador of Egypt to Germany” for the last decade, her symbolic and cultural diplomacy is not bound to her physical presence at the Neues Museum. Even with her restitution to Egypt, travelers from far and wide, including German citizens and scholars, will remain more than welcome to study and visit her. Considering her bust is one of value that tells the story of our common humanity, similar to the iconic mask of King Tutankhamun, that story can be told from its origin country, where more than a billion tourists visit Egypt and witness historical evolution at its finest.

 

Moreover, in terms of legal frameworks, article 13(b) of the UNESCO Convention on the Means of Prohibiting and Preventing the Illicit Import, Export and Transfer of Ownership of Cultural Property (1970) calls on all states party to the convention – ratified by  Germany in 2007 and accepted by Egypt in 1973 –  to “ensure that their competent services cooperate in facilitating the earliest possible restitution of illicitly exported cultural property to its rightful owner”. This convention was further amplified by the “Plea for the return of an irreplaceable cultural heritage to those who created it” by Mr. Amadou-Mahtar M'Bow, former Director-General of UNESCO, in 1978. It calls upon “those responsible for preserving and restoring works of art to facilitate, by their advice and actions, the return of such works to the countries where they were created.” Rightfully, the plea also underscores a “return of at least the art treasures which best represent their culture.” 

 

Egypt has been deprived of the bust for 102 years. It was never granted back to Egypt, even on loan, even as it changed homes in Germany, and despite the context of two world wars. Nonetheless, Egypt deeply appreciates the care and efforts undertaken by the government of Germany to preserve and display the 3,400-year-old painted limestone bust of the Queen. Inspired by the long-standing and amicable relations between our two governments, the Egyptian government is confident that the German authorities will assist in facilitating its return. 

 

We sincerely hope that we will soon receive a positive response, which will be greatly appreciated by the government and the people of Egypt. We accordingly ask the German culture minister, the Prussian Cultural Heritage Foundation, and the Neues Museum administration to heed this petition and respond to the request. 

 

The government, the people of Egypt, and worldwide citizens are eager for this unique treasure to be returned to the possession of its rightful owners, the Egyptian people. Consequently, we are calling on the international community to demand the repatriation of this bust with us. The world knows that this remarkable artifact belongs in one of Egypt’s museums, where it will be splendidly taken care of. 

 

With countless countries demanding their cultural heritage to be repatriated, Egypt is no exception and no less deserving. The signatories of this petition support the abovementioned request for repatriation.

https://www.change.org/p/petition-for-the-repatriation-of-the-bust-of-nefertiti

 

 

PS 문화재 불법 반출 이모저모 

 

#문화재의 불법 반출은 고대 로마시대부터 전쟁 전리품으로 시작되어 제국주의 시대엔 강대국들이 식민지를 개척하며 약탈로 행해졌다.  

 

#프랑스와 영국은 아프리카를 나누어 식민지화했다. 프랑스는 178년 동안 알제리아, 모로코, 튀니지아, 다호메이, 아이보리 코스트, 수단(말리), 기니아, 세네갈, 부르키나 파소, 차드, 카메룬 콩코, 가봉, 마다가스카르 등 아프리카의 35개국까지 통치했다. 한편, 영국은 케냐, 우간다, 소말리아, 짐바브웨, 잠비아, 보츠와나, 감비아, 시에라 레오네, 가나 등 최대 32개국을 속국으로 만들었다. 현재 아프리카엔 54개국이 존재한다. 

 

#UNESCO는 1954년 전시 문화재 보호에 대한 헤이그 협약을 시작으로 1964년 문화재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 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권고를 시작으로 문화재 반환의 틀을 마련했다. 1978년엔 1970년 이전 반출 사례를 다루기위한 기구 유네스코 불법 문화재 반환 촉진 정부간 위원회가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UNESCO 협약은 강제성이 없는 국제법이다. 

 

#그리스 정부는 1801년 반출되어 런던 브리티시뮤지엄(대영박물관)에 소장된 파르테논 대리석 조각의 반환을 요구해왔으며, 이집트는 1912년 독일 고고학자가 발굴해 베를린 신박물관에 소장된 네페르티티 왕비 흉상을 돌려줄 것을 요구해왔다. 

 

#이탈리아는 1937년 약탈해 로마 콜로세움 인근에 설치했던 이디오피아 악숨제국의 오벨리스크를 2005년에 반환했으며, 뉴욕의 메트로폴리탄뮤지엄은 1972년부터 소장했던 테라코타 도기 유프로니오스 크레이터를 2008년 이탈리아에 돌려주었다.

 

#2006년 에펠탑 인근 장 누벨 설계 빌딩에 개관한 케브랑리-자크쉬락 박물관은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 아메리카의 유물 100만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일부 소장품은 루브르뮤지엄의 Pavillon des Sessions에도 전시 중이다. 2016년 방문객은 115만명에 달한다. 

 

#한국의 국립문화재연구소가 2014년 집계한 바에 따르면, 해외 유출 문화재는 약 15만6천점이며, 환수된 문화재는 10개국에서 9천745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