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p/Rock
2015.11.17 01:04
새 앨범 '20' (그래도 돼) 2024 전국 투어, 조용필 인터뷰(2008)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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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가수 조용필(Cho Yong Pil, 74)씨가 10월 22일 제 20번째 앨범 '20'을 공개한 후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20'은 2013년 '헬로' 이후 11년만에 출반한 정규 음반이다. 조용필씨의 유튜브 채널@choyongpilofficial에 오른 수록곡 '그래도 돼'는 11월 14일 현재 113만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조용필씨는 11월 23일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 KSPO 돔에서 부산, 대구로 이어지는 '조용필&위대한탄생' 투어 콘서트를 시작한다. http://www.choyongpil.com
조용필 인터뷰 2008
An Interview with Cho Yong Pil
수퍼스타 조용필씨는 2008년 8월 뉴욕 라디오시티뮤직홀 콘서트를 앞두고 기자와 이메일로 인터뷰를 했다.
조용필씨는 이후 어씨스턴트를 통해서 기자에게 "인터뷰 고맙다"는 말을 두 차례 전해주어서 감동시켰다.
다음은 뉴욕중앙일보 2008년 8월 1일자 기사를 보완한 것이다.
Korea Daily of New York (뉴욕중앙일보)
'국민가수' 조용필(58.사진)의 뉴욕 콘서트가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조용필은 오는 16일 오후 8시 맨해튼 라디오시티뮤직홀에서 콘서트 'The History: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연다.
가수 데뷔 40주년을 맞아 여는 이번 공연은 조용필 음악인생의 결정판이다. 한국인들이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가수 '한국 가요계의 최고봉' 조용필이 불후의 밴드 '위대한 탄생'과 함께 뉴욕 동포를 만난다. 공연을 앞둔 조용필과 이메일로 인터뷰를 했다.
http://www.choyongpil.com
조용필 뮤지컬은 앞으로 숙제
-공연 제목 'The History-킬리만자로의 표범'의 의미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모든 사람의 꿈을 이루기 위한 삶의 역경을 그린 노래다. 오프닝의 3D 애니메이션은 표범을 통해 삶의 역경을 그렸고 관객이 3D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마치 본인의 이야기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만들었다."
-지난 5월 열린 40주년 첫 콘서트에서 4만2000석이 매진됐는데 어떤 기분인가.
"2003년 35주년 콘서트와 2005년 'PIL & PEACE' 콘서트 때 엄청난 비 속에서도 5만 관중이 공연장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열광해 주셨다. 올해 40주년은 날씨도 너무 좋았고 더욱 더 성숙한 최고의 무대를 선보였다고 생각한다. 많은 분이 행복해했고 나도 행복했다."
-뉴욕의 팬들과 만나는 특별한 소감은.
"너무나 오랜만에 찾아 뵙는다. 아마 12년 정도 된 것 같다. 무엇보다도 최선을 다할 것이며 공연을 통해 꿈과 행복을 드리고 싶다."
-평양 콘서트는 어땠나.
"2005년 'PEACE 제주에서 평양까지'라는 제목으로 공연한 것이다. 물론 평양 공연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고 공연 전 평양에서의 관객 반응은 기대하지 않았다. 막상 공연을 열고 보니 마치 벽에다 대고 노래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 순간을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고 서서히 관객의 표정이 밝아오기 시작해 결국 마지막에는 남북이 하나가 된 무대였다. 이것이 55년 동안의 문화의 엇갈림이라 생각되었다."
http://www.choyongpil.com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즐긴다던데.
"20여년 전부터 뮤지컬을 보았다. 처음에는 실로 충격적이었다. 그 후로 약 25편 정도 본 것 같다. 훌륭한 작품들이 많지만 개인적으로 '거미 여인의 키스(Kiss of the Spider Woman)'를 좋아했다."
-자신의 노래로 뮤지컬을 만든다면.
"오래 전부터 생각하고 또 실험도 해보았다. 언젠가는 내가 하고 싶은 숙제인 것 같다."
기타리스트에서 가수로
김두호 인터뷰 <스포츠서울>
안성기 VS. 조용필
-과거로 돌아가자. 고향 화성에서 자라던 어린시절 즐기던 놀이는.
"어렸을 때는 먹는 것과 갯벌만이 생각난다.(*편집자 주: 조용필의 부친 조경구씨는 염전업을 했다)
여섯살 때부터 하모니카를 불었기 때문에 그것이 내 음악 역사의 씨앗이었다고 본다."
-'국민배우' 안성기씨와 경동중학교 동창인데 기억에 남는 일은.
"내 기억으로는 안성기씨와 2학년 때 한 반이었다. 나는 아역 배우로 활동했던 그 친구가 정말 부러웠다. 나중에 어른이 돼서도 인기있는 배우로 성공할 것으로 믿었다. 어린 나이임에도 영화에 깊이 빠져 있었다고 느껴졌다."
-언제 노래를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나.
"어렸을 때는 물론 취미로 한다고 생각했다. 대마초 사건(1977년) 이후 오기라고 할까 끝까지 해보자는 생각으로 '위대한 탄생'으로 이름을 바꾸고 작곡과 연습을 엄청나게 많이 했다. 아마도 그것이 업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청소년기 존경하던 밴드는.
"벤처스, 비틀스, 롤링스톤 등 너무 많다."
-미군부대 밴드로 당시 어떤 곡들을 불렀나.
"처음에는 퍼스트 기타 연주자였고 노래하는 멤버가 군대에 가는 바람에 내가 노래를 시작했다. 미군부대 쥬크 박스에서 나오는 노래를 50%는 거의 했다고 본다."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공전절후의 히트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트로트는 2/4박자이고 어떤 곡이든 리듬이나 사운드가 비슷했다. 나는 리듬을 바꾸고 사운드도 바꿨다. 또 중요한 것은 멜로디가 대중에게 잘 맞는다는 것이고 그 때는 시대적 문화의 변화기였다고 본다."
-검열에 걸린 적이 있나.
"80년대 초반까지 가사 검열을 꼭 받아야 했다. 특히 앨범 속에 한 곡은 건전가요 아니면 군가가 꼭 들어가야 했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큰 불만이었다. 검열에 걸린 곡이 너무 많았고 특히 '생명'이란 노래는 세번 만에 통과했다. 여러 이유에서 중앙정보부도 방문했다."
-차 안에서 듣는 음악은.
"주로 미군 음악방송 AFKN과 KBS 클래식 채널을 주로 듣는다. AFKN에선 미국의 새로운 음악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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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비밀은 '최선'
-40년간 요지부동한 정상의 가수로 성공의 비밀은.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그리고 무대를 좋아한다. 그리고 최선을 다한다."
-음악인생 중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1990년대 초반 TV 출연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공연 활동만 하기로 했다. 주위에서는 위험한 선택이라고 극구 반대했지만 나는 이것이 제3의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그 후 3~4년 동안 서울 관객은 좋았지만 지방 관객이 50% 밖에 오지 않기 때문에 정말 힘든 시기였다. 조용필의 히트곡이 그렇게도 많은데 왜 관객이 모이질 않을까 생각했다. 아마도 아직 우리나라의 공연 문화가 활성화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판단해 그때부터 '무대를 좋게 만들자'라는 생각을 했다. 그 후 관객은 몰려들기 시작했고 지방 어디에 가도 전석 매진이라는 기록을 지금까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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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조용필에게 무엇인가.
"나의 삶과 인생 그 자체다."
-대중가요는 한국인에게 무엇일까.
"한국인은 음악을 참으로 사랑한다. 음악을 통해서 위로를 받고 싶어하고 지친 마음을 달래곤 한다. 그리고 꿈을 꾸고 싶어한다."
-조용필 노래가 대중에게 무엇이 되었으면 좋겠나.
"여러분의 작은 위로와 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도 계속 그런 노래를 부를 것이다."
박숙희 뉴욕중앙일보 기자
Sukie Park/The Korea 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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