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 모네와 세 여인 담은 전기 'Monet: The Restless Vision' 출간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는 수련과 연못과 다리 등으로 잘 알려졌고, 정원사이기도 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미술 비평가인 재키 볼슐레거가 쓴 전기 '모네: 휴식없는 비전( Monet: The Restless Vision)'은 수천장의 편지와 미공개 자료를 바탕으로 모네가 홀로 그린 화가가 아니라 부인 두명과 양딸의 도움으로 작품세계를 구축했다고 조명한다.
Monet
The Restless Vision
By Jackie Wullschläger
About Monet
A groundbreaking look at the life and art of one of the most influential, modern painters of the late nineteenth century and founder of the Impressionist movement
“Wullschläger emerges with a strikingly different picture of the artist. Passionate, prickly, edgy and unstable, her Monet, the unrecognizable Monet, is a powerful new character in art.” —The Sunday Times (London)
Drawing on thousands of never-before-translated letters and unpublished sources, this biography reveals dramatic new information about the life and work of one of the late nineteenth century’s most important painters. Despite being mocked at the beginning of his career, and living hand to mouth, Monet risked all to pursue his vision, and his early work along the banks of the Seine in the 1860s and ’70s would come to be revered as Impressionism. In the following decades, he emerged as its celebrated leader in one of the most exciting cultural moments in Paris, before withdrawing to his house and garden to paint the late Water Lilies, which were ignored during his lifetime and would later have a major influence on all twentieth-century painters both figurative and abstract.
This is the first time we see the turbulent life of this volatile and voracious man, who was as obsessed by his love affairs as he was by nature. He changed his art decisively three times when the woman at the center of his life changed; Wullschläger brings these unknown, passionate, and passionately committed women to the foreground. Monet’s closest friend was Prime Minister Georges Clemenceau; strong intellectual currents connected him to writers from Zola to Proust, as well as to his friends Manet, Renoir, and Pissarro. Brilliant and absorbing, this biography will forever change our understanding of Monet’s life and work.
About the Author
JACKIE WULLSCHLÄGER is Chief Art Critic of the Financial Times. She is the author of the prizewinning Hans Christian Andersen: The Life of a Storyteller and Chagall: Life and Exile, which won the Spear’s Biography of the Year Award, and was short-listed for the Costa Biography Award, the James Tait Black Memorial Prize and the Los Angeles Times Book Prize. She lives in London.
https://www.penguinrandomhouse.com/books/250416/monet-by-jackie-wullschlager
Artist & Muse <7> Claude Monet & Camille
클로드 모네의 뮤즈-부인 카미유 동시외
Claude Monet, Camille(The Woman in the Green Dress), 1866/ Camille in Japanese costume, 1876/ Pierre-Auguste Renoir, Portrait of Claude Monet, 1875
'빛의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는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 1832-1883)와 친구였다. 화가를 지망했던 모네는 정원사(gardener)가 될 뻔했을 만큼 자연을 사랑했다. 모네는 수련(Water Lily)과 건초더미(Haystacks) 등 풍경화로 유명하지만, 그에게도 뮤즈(muse)가 있었다. 두번째 부인 알리스가 질투심에 사진과 소지품을 모두 태워버렸던, 요절한 첫 부인 카미유 동시외(Camille Doncieux)다.
#오스카-클로드 모네 Oscar-Claude Monet
Pierre-Auguste Renoir, Portrait of Claude Monet, 1875
클로드 모네의 본명은 오스카- 클로드 모네(Oscar-Claude Monet, 1840-1926)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부모는 그를 '오스카'라 불렀고, 자신도 'O. Monet'라 서명했다. 그가 다섯살 때 가족이 노르망디로 이주했다. 모네는 소년 시절부터 교사와 친구들을 풍자만화로 그리는 게 취미였다. 하지만, 선박용품 잡화상과 식품점을 운영하던 아버지는 아들이 가업을 이어가기를 기대했다. 모네는 가수였던 어머니의 지원 덕에 화가의 꿈을 키우게 된다.
모네는 16살에 노르망디 해변에서 만난 화가 외진 부댕(Eugène Boudin)의 가르침으로 유화와 야외 풍경화 '플랭에르(plein-air, open air)' 테크닉을 배웠다. 모네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빛을 감각적인 색채와 빠른 붓 터치로 포착하는 인상주의 기법으로 소화했다. 1857년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모네는 학교를 중퇴하고, 숙모의 집에 들어가 살기 시작했다. .
Young Claude Monet(left)/ Camiile Doncieux, 1871
어느날 모네는 화구를 들고 루브르 뮤지엄에 갔다가 거장의 회화를 베끼는 화가들을 만났다. 자신은 그들과 다르고 싶었다. 모네는 뮤지엄의 명화를 베끼는 대신 창가에서 자신이 직접 본 풍경을 그리기로 마음 먹었다. 이즈음 8살 연상인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를 만나 친구가 됐다.
1861년 20세의 모네는 알제리아으로 징집됐다. 7년간 군에 복무해야 했다. 모네는 아버지에게 돈을 써서 빼달라고 간청했지만, 아버지는 그림을 포기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당연히 모네는 거부했다. 알제리에서 1년여 복무한 모네는 장티푸스에 걸려 탈영까지 했다. 이에 숙모가 미술학교 코스를 마치는 조건으로 군대에서 빼주게 된다.
1862년 모네는 미술학교의 수업에 환멸을 느끼고, 샤를르 글레이르(Charles Gleyre)의 문하생으로 들어간다. 글레이르의 스튜디오에서 르노아르(Pierre-Auguste Renoir)와 시슬리(Alfred Sisley)를 만났다. 모네는 1865년 파리 살롱을 목표로 선배 화가 마네의 작품'풀밭 위의 점심식사(Le Déjeuner sur L'herbe)'을 패러디한 그림을 시작했다. 2년 전 스캔달을 일으킨 작품이었다. 이 그림의 모델은 그의 첫 부인이자 뮤즈가 될 카미유 동시외였다.
#'비운의 뮤즈' 카미유 동시외 Camiile Doncieux
Claude Monet, Springtime, 1872
리용에서 태어난 카미유 동시외(Camiile Doncieux,1847-1879)는 10살 때 가족과 함께 파리로 이주했다. 10대에 모델 활동을 시작한 카미유는 1865년 18세에 모네를 만났다. 당시 모네는 마네의 그림을 패러디한 대작 '풀밭 위의 식사'를 준비 중이었다. 카미유는 이 그림의 모델이 됐지만, 모네는 마감일까지 그림을 완성하지 못했다. 대신, '녹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La Femme à La Robe Verte, 사진 톱)'을 출품했다. 이 패러디 그림은 후에 분할 절개됐다.
Claude Monet, Women in a Garden, 1866-67. 카미유가 첫 아들 장을 출산한 후 세 여인으로 분했다.
카미유와 7살 연상의 모네는 사랑에 빠졌고, 함께 살기 시작했다. 모네는 당시 가난한 무명 화가였다. 모네의 아버지는 둘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모네가 그림 그리는 것이 못마땅했다. 때문에 모네는 카미유가 임신했을 때조차 파리를 떠나 숙모의 시골집에 머무르며 자신의 관계를 숨겼다.
Claude Monet, Camille Monet and a Child in the Artist’s Garden in Argenteuil, 1875
Édouard Manet, The Monet Family in Their Garden at Argenteuil, 1874.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모네와 가족은 당대 화가 친구 에두아르드 마네, 오귀스트 르노아르의 모델이 됐다.
Pierre-Auguste Renoir, Madame Monet et son fils, 1874
1867년 카미유는 아들 장(Jean)을 출산했다. 파리로 돌아간 모네는 난방이 없는 원룸 아파트에서 카미유, 장과 함께 생활하며 아버지에겐 여전히 비밀로 했다. 1870년 6월 모네과 카미유는 결혼식을 올렸고, 화가 구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vet)가 증인으로 참가했다. 모네의 아버지는 결혼식에 나타나지 않았다.
Claude Monet, Impression, Sunrise, 1872
모네는 1874년 노르망디의 고향집 르 아브르(Le Havre) 항구에서 즉흥적인 인상을 그린 '인상, 해돋이(Impression, soleil levant, 1872)을 제 1회 인상파 전시회에 선보였다. 이에 평론가 루이 르로이(Louis Leroy)는 샤리바리(Le Charrivari)지에서 "인상, 일출' 인상-난 알고 있었다. 난 나 자신에게 단지 인상적이었는지를 말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인상이 있어야만 했다...그리고, 얼마나 자유롭고, 얼마나 쉬운 붓질인가! 배아 상태의 벽지가 이 바다 풍경보다 더 완성미가 있을 것이다!"라고 악평을 퍼부었다. 이로써 모네와 인상주의(Impressionism)'가 탄생하게 된다.
Claude Monet, Camille on the Beach at Trouville, 1870
1876년 백화점 재벌이자 아트 콜렉터로 에르네스트 오슈데(Ernest Hoschedé, 1837-1891)는 모네에게 자신의 화려한 샤토 맨션에 장식할 대형 그림을 위임했다. 이즈음 모네는 에르네스트의 부인 알리스 오슈데(Alice Hoschedé, 1844-1911)와 바람을 피운 것으로 추정된다. 알리스의 막내 아들 장-피에르가 모네의 아들이라는 설도 있다.
Claude Monet, Camille Holding a Posy of Violets, 1877(left)/ Camille Monet on her Deathbed, 1879
이듬해 오슈데는 파산에 이르고, 채권자들을 피해 벨기에로 도피했다. 그러자 모네는 오슈데 가족을 자기 집으로 불렀다. 무일푼이 된 에르네스트 오슈데, 부인 알리스 오슈데(Alice Hoschedé, 1844-1911), 그들의 6명의 자녀들은 파리 인근 베퇴이의 모네의 집으로 들어갔다. 이로써 모네와 카미유 부부, 이들의 두 아들 장과 미셸, 그리고 오슈데 부부와 자녀 6명까지 12명이 한 지붕 아래 동거하게 됐다. 이듬해 에르네스트는 모네, 드가, 피싸로, 시슬리 등 인상파 컬렉션을 모두 잃었다.
카미유는 남편 모네의 친절 때문에 졸지에 대가족을 이끌어가야 했다. 게다가 모네는 알리스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카미유는 1878년 둘째 아들 미셸을 낳은 후 자궁암이 악화됐다. 카미유는 1879년 32살에 세상을 떠났다.
#'질투의 화신' 알리스 오슈데 Alice Hoschedé
Carolus-Duran, Alice Hoschedé, 1878(left)/ Claude Monet, The Woman with a Parasol, 1886
한편, 에르네스트는 파리 신문사에서 일자리를 구했지만, 부인 알리스와 가족은 생활비가 덜 더는 모네의 집에서 계속 살고 있었다. 카미유가 죽은 후 모네는 푸아씨(Poissy)로 이주했다가 지베르니(Giverny)에 정착했다. 알리스 오슈데 가족도 따라갔다.
에르네스트는 1891년 무일푼으로 죽었고, 지베르니에서 열린 장례식과 매장비까지 모네가 지불했다. 카미유와 에르네스트의 사망으로 모네와 알리스는 돌싱이 됐다. 이들은 이듬해 정식 결혼에 이른다.
John Singer Sargent, Claude Monet Painting by the Edge of a Wood, 1885
사전트는 1876년 모네를 처음 만났다. 1885년부터 사전트는 모네의 보금자리가 있는 지베르니에서 그림을 그렸다. 흰옷을 입은 여인이 알리스다.
모네는 카미유를 모델로 그림을 30여점 이상 그렸다. 그녀가 최후의 숨을 쉬는 모습을 담은 그림에선 상실의 슬픔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두번째 부인 알리스는 질투의 화신이었다. 카미유가 사망한 후 알리스는 모네에게 카미유의 사진, 편지, 소지품을 모두 태워버리라고 요구했다.
알리스는 카미유처럼 모네의 뮤즈가 되지는 못했다. 모네는 사람보다 수련, 건초더미, 건물 등 풍경화에 전념하게 된다. 알리스는 1911년 사망했다.
'파라솔을 든 여인'(사진 톱)은 카미유도, 알리스도 아니다. 알리스와 에르네스트 사이의 딸, 즉 모네의 양녀가 될 수잔느 오슈데(1868-1899)가 모델이다. 수잔느 오슈데는 미국 인상주의 화가 데오도어 얼 버틀러(Theodore Earl Butler)와 결혼했다.
Édouard Manet, Ernest Hoschedé with his daughter Marthe, 1876
그리고, 모네와 카미유 사이의 아들 장은 알리스의 딸이자 모네의 양녀인 블랑쉬 오슈데(Blanche Hoschedé)와 결혼했다. 장은 1914년 41살에 사망했다. 1926년 클로드 모네가 눈 감았을 때 둘째 아들 미셸에게 전 유산이 상속됐다. 이에 형수 블랑쉬 오슈데 모네가 1947년 사망할 때까지 지베르니 저택과 정원을 관리했다. 그후엔 모네의 정원사가 맡았다. 자동차 경주광이었던 미셸은 1966년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모네가 생의 절반을 보내며 그림을 그렸던 지베르니(Giverny), '모네의 정원'엔 여행자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http://giverny.org
*모네가 꿈꾸었던 정원@뉴욕식물원(NYGB) 특별전, 2012
*아티스트와 뮤즈 <4> 모딜리아니와 잔느, 안나, 베아트리스
마네가 모네보다 나이가 위인 것을 컬빗의 설명에서 알았습니다. 제 나름대로 이것을 잊지않는 방법을 만들었습니다. 한글 모음 아야어여~우이에서 '아'가 먼저니까 마네가 먼저고 '오'가 나중이니까 모네가 나중에 나온다고 해서 마네가 먼저라 모네보다 나이가 많다라고 해봤습니다.
두 화가의 그림은 각기 독특한 개성이 있어서 공통점이랄까 그런 것은 못 찾았습니다. 모네의 기모노를 입은 여인이 인상깊습니다. 두 화가의 전시회나 그림을 꼭 볼려고 합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