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ndez-Vous with French Cinema 2025 (3/6-16) 

 

프렌치 스타일 가족의 탄생 '가을이 오면 (When Fall is Coming)' ★★★☆

 

When Fall is Coming/ Quand vient l'automne, Rendez-Vous with French Cinema 2025

 

오랜만에 옛날 노래 "불란서 영화처럼"에 어울리는 프랑스 영화다. 할리우드 영화처럼 권선징악, 해피엔딩의 예상가능한 시나리오와 기분 좋은 결말이 아니라, 안개 낀 풍경처럼 애매모호하고, 예상치 못한 반전에 결말을 관객에게 맡기는 오픈 엔딩으로 영화관을 떠나면서 곰곰히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프랑스 영화다. 

 

링컨센터 필름소사이어티의 2025 '프랑스 영화와의 랑데부(Rendez-Vous with French Cinema)'에서 상영될 프랑소아 오종(François Ozon) 감독의 '가을이 오면 (When Fall is Coming/ Quand vient l'automne)'는 황혼기에 접어든 두 여성의 이야기다. 할리우드에 중년 여성 수잔 사란돈과 지나 데이비스의 버디무비 '델마와 루이스(Thelma & Louise, 1991)'가 있다면, 불란서엔 노년 버전의 '가을이 오면'이 있다고나 할까. '델마와 루이스'엔 두 여인의 일탈과 경찰의 추격전이 등장하는 로드무비지만, '가을이 오면'은 고요한 시골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When Fall is Coming/ Quand vient l'automne, Rendez-Vous with French Cinema 2025

 

노년의 미셸과 마리 클로드는 시골 부르고뉴에서 야생 버섯을 따서 요리하며 살고 있다. 미셸의 낙이라면, 파리에 사는 손자 루카와 시골에서 여름 방학을 보내는 것이다. 딸 발레리는 루카와 미셸을 방문하지만, 이혼을 앞두고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다. 게다가 발레리는 부끄러운 과거(?)가 있는 엄마를 경멸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엄마가 요리한 야생버섯을 먹고 식중독에 걸린 발레리는 응급실로 실려갔다가 계획을 바꾸어 루카와 파리로 돌아간다.

 

 

When Fall is Coming/ Quand vient l'automne, Rendez-Vous with French Cinema 2025

 

마리 클로드에겐 범죄를 저지르고 수감 중인 망나니 아들 뱅상이 있다. 마침내 석방된 뱅상은 술집을 차리겠다며 엄마를 괴롭힌다. 뱅상은 엄마 친구 미셸과 서로 의지하는 관계다. 어느날 뱅상은 발레리를 찾아가고, 발레리는 담배를 피우러 발코니로 나갔다가 그만 사망한다. 시골로 돌아간 뱅상은 미셸의 도움으로 술집을 내고, 할머니 집에서 살게된 루카는 뱅상에게 친밀하게 느끼게 된다.   

 

 

When Fall is Coming/ Quand vient l'automne, Rendez-Vous with French Cinema 2025

 

프랑소아 오종은 '발레리의 죽음'을 의도적으로 생략함으로써 극적인 긴장감을 유도하며 관객의 상상력에 맡긴다. 어느날 임신한 여경이 새로운 단서를 발견하고 미셸의 집으로 찾아온다. 발레리 아파트의 CCTV에 찍힌 루카와 미스테리 청년, 그는 뱅상이었을까? 발레리의 죽음은 사고였을까, 자살이었을까, 살인이었을까?    

 

옛날옛적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의 뮤즈였던 모델들은 '재봉사' '무희' 등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이 매춘부였다고 한다. 툴루즈 로트렉의 많은 모델들도 매춘부였다. 미셸과 마리 클로드는 젊은 시절 매춘을 하며 먹고 살았고, 여성끼리의 끈끈한 우정을 평생 지속했다. 마리 클로드의 장례식에 나타난 옛 매춘업계 친구들은 그녀들의 잊혀진 과거를 상기시켜준다. 

 

 

When Fall is Coming/ Quand vient l'automne, Rendez-Vous with French Cinema 2025

 

'가을이 오면'의 가족은 완벽하거나 평범하지 않은 '결손 가정'이다. 영화 속 제 1 세대 미셸과 마리 클로드는 각각 외동딸(발레리)와 외아들(뱅상)이 있지만, (아마도) 아버지를 모른 채 성장했다. 제 2 세대인 두 자식 모두 각자의 친모들과 소원한 관계다. 발레리 자신은 이혼을 앞두고 우울증에 빠져있으며, 뱅상은 전과자가 됐다. 제 3 세대 루카는 엄마가 죽은 후 할머니에게 맡겨지고, 학교에서는 왕따를 당한다. 여기에 뱅상이 미셸의 아들이자 루카의 아빠로 역할을 맡게된다. 즉, 전통 가족의 해체와 새 가족의 탄생이다. 

 

발레리 사건을 담당한 임신한 여경도 아기 아빠가 누군지 모른다. 그녀는 물증과 심증을 갖고 미셸을 찾아왔지만, 뱅상을 체포하지는 않는다. 할리우드 범죄 영화였다면, 감독은 살인/자살/ 사고 중 결말을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프랑소아 오종의 부드러운 스릴러는 흑백논리 대신, 관객에게 심판을 맡긴다. 대신 상상의 나래를 펴라고 질문을 던져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가족이란 무엇일까요? 당신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할까요? 와인 명산지 부르고뉴(버건디)의 야생버섯은 때때로 독을 품고 있는 것처럼, 인간의 내면에도 독성이 잠복해있지 않나? 

 

 

When Fall is Coming/ Quand vient l'automne, Rendez-Vous with French Cinema 2025

 

'가을이 오면'엔 세 여자의 죽음과 두 남자의 생존을 보여준다. 발레리, 마리-클로드, 그리고 미셸은 가고, 뱅상과 루카가 남아 있다. 핏줄로 맺어지지 않은 아버지와 아들같은 관계는 어떻게 이어질까? 부르고뉴 숲의 고적한 풍경처럼, 완숙한 버건디 와인처럼,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향기'처럼 여운을 남기는 영화다. 

 

가을의 향기

 

남쪽에선/ 과수원의 임금(林檎)이 익는 냄새,/ 서쪽에선 노을이 타는 내음....

산 위엔 마른 풀의 향기,/ 들가엔 장미들이 시드는 향기

당신에겐 떠나는 향기,/ 내게는 눈물과 같은 술의 향기

모든 육체는 가고 말아도,/ 풍성한 향기의 이름으로 남는

상(傷)하고 아름다운 것들이여,/ 높고 깊은 하늘과 같은 것들이여....

-김현승 전집, 민음사, 2005.

 

촬영장에서 프랑소아 오종 감독과 두 배우들. When Fall is Coming/ Quand vient l'automne

 

미셸 역의 엘렌 뱅상(Hélène Vincent, 81)은 1988년 '인생은 길고도 고요한 강물(Life Is a Long Quiet River/ La vie est un long fleuve tranquille)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마리-클로드 역의 조지안 발라스코(Josiane Balasko, 74)는 1989년 제랄 드빠르디유가 미모의 부인 캐롤 부케를 두고 못생긴 비서와 사랑에 빠지는 영화 '내겐 너무 예쁜 당신(Too Beautiful for You/ Trop Belle pour Toi)'의 그 비서였다. 오종 감독의 '수영장(Swimming Pool, 2003)'에서 비키니 차림으로 권태로운 사춘기 소녀를 연기했던 루비빈 사니에(Ludivine Sagnier)가 오종과 20여년만에 재회해 유령으로 변신한다.

 

뱅상 역의 피에르 로탱(Pierre Lottin)은 빵집 아들에서 배우가 되었는데, 프랑소아 오종 감독이 가장 애착을 가진 캐릭터였다고 한다. 어머니를 사랑하고, 좋은 일을 하고 싶지만, 종종 의도가 빗나가는 유형, 많은 사람들이 겪는 문제다. 감독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삶과 우발성, 책임감, 그리고 도덕성의 문제를 제기한다. 오종 감독은 2002년 카트린느 드뇌브, 이자벨 위페르, 에마누엘 베아르, 파니 아르당, 버지니 레도엔, 그리고 루디빈 사니에까지 톱 클래스 여배우들을 캐스팅해 뮤지컬 '8명의 여인들(8 Femmes)'을 연출했다. 여성의 심리와 삶에 통찰력이 있는 연출자다. 

 

 

When Fall Is Coming / Quand vient l’automne

François Ozon, 2024, France, 102m

Friday, March 7 at 3:30pm, Sunday, March 16 at 5:45pm

Walter Reade Theater: 165 West 65th St., Lincoln Center 

https://www.filmlinc.org/films/when-fall-is-com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