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시즈위 벤지는 죽었다' 남아공 극작가 아돌 후가드(Athol Fugard, 92) 별세
Athol Fugard (1932–2025)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인종분리정책)를 폭로했던 희곡작가 아돌 후가드(Athol Fugard, 92)가 3월 8일 케이프타운 인근 스텔렌보스 자택에서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아돌 후가드는 한국에서도 실험극장, 대학로와 대학가의 연극 '아일랜드(The Island, 1973)'와 '시즈위 벤지는 죽었다(Sizwe Banzi Is Dead, 1972)'로 널리 알려진 작가였다. 오래 전 필자는 남자동창이 동국대에서 출연한 '아일랜드'를 보았다. 이 작품은 넬슨 만젤라를 수용했던 형무소인 로빈섬에서 판극 안티고네'를 공연하기 위해 수감자들이 리허설하는 이야기다.
1967년 흑인 형제의 기구한 삶을 그린 '피의 매듭(The Blood Knot, 1961)'가 영국 TV에 방영된 후 후가드의 여권을 취소되었으며, 수년 동안 남아공을 떠날 수 없었다. 그는 수십년간 반정부적인 인물로 여겨져 제작 금지에 동료들은 투옥되기까지 했다.
한국에서 종종 공연된 아돌 후가드 작 '아일랜드' 포스터
1932년 남아프리카공화국 미델버그에서 태어난 해롤드 아돌 래니건 후가드(Harold Athol Lanigan Fugard)는 3살 때 포트엘리자베스로 이사해 자랐다. 어릴 적 사고로 다리를 잃은 아버지는 재즈 피아니스트로 알콜중독에 빠졌지만, 아돌에게 음악과 스토리텔링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하숙집과 커피숍을 운영하며 생계를 책임진 자유주의적 사고방식의 엄마는 아돌에게 정신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1948년 아돌이 16살 때 아파테이트가 국법으로 선언됐다. 아돌은 고등학교에서 자동차 정비를 배웠고, 케이프타운대에서 철학과 사회인류학을 전공했다. 대학시절엔 연극보다 권투에 빠졌다. 4학년 때 대학을 중퇴하고, 아프리카를 히치하이킹으로 여행하던 중 홍해의 포트 수단에서 돈이 떨어지자 그는 유일한 백인선원으로 일자리를 얻어 타인종 남성들과 어울리게 됐다. 뱃사람 시절 소설을 끄적거리다가 포트 엘리자베스로 돌아간 후가드는 신문사와 라디오에서 일하게 된다.
1956년 케이프타운으로 이사한 후 파티에서 만난 배우 셰일러 미어링(Sheila Meiring)과 결혼해 희곡작가 되기로 결심했다. 반체제 흑백 인사들의 이야기 '알로에의 교훈(A Lesson From Aloes, 1978)', 백인 소년과 찻집에서 일하는 두 흑인 남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마스터 해럴드...그리고 소년들(Master Harold...and the Boys, 1982)' 등 30여편의 희곡이 전 세계에서 공연됐다. 브로드웨이에선 1964년 루실 로텔이 제작한 '피의 매듭'을 비롯 6편이 무대에 올려졌다.
1984년 뉴헤이븐의 예일레퍼토리 극장에서 15년간 예술프로젝트에 몰두한 노인 은둔자의 이야기를 담은 후가드 작 '메카로 가는 길(The Road to Mecca)'을 공연했다. 1987년엔 같은 극장에서 40년간 돼지 우리에 숨어지낸 편집증 환자를 다룬 '돼지가 있는 곳(A Place with the Pig)'에는 후가드가 직접 출연했다. 알콜중독에 빠졌던 자전적 이야기다. 아돌 후가드는 2011년 토니상 평생공로상을 받았다.
그는 예일대와 캘리포니아대 샌디에고 캠퍼스에서 가르치기도 했다.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가 공식 폐지되었지만, 그가 성장한 남동부의 포트 엘리자베스 인근에서 살았다.
후가드는 2005년 남아공 정부로부터 공훈훈장을 받았으며, 2010년엔 케이프타운에 그의 이름을 딴 후가드 시어터(Fugard Theater)가 오픈했다. 첫부인 미어링은 소설가이자 시인이며, 사이의 딸 리사 후가드(Lisa Fugard)는 소설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