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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오프 브로드웨이의 보석

톨스토이가 쓰고, 베토벤이 작곡하고, 셰익스피어 전문 배우가 출연하는 모노 드라마...


크로이처 소나타 The Kreutzer Sonata


지난 8일부터 26일까지 이스트빌리지의 라마마(La Mama) 시어터에서 공연된 ‘크로이처 소나타(The Kreutzer Sonata)’는 관객으로서 환상적인 체험이었다. 라마마는 99석의 오프-오프브로드웨이 시어터다. 이 자그마한 극장의 기차 속에서 우리는 75분간 한 남자의 고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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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투심에 아내를 죽인 남편 힐튼 맥래가 기차 안에서 독백을 하면, 창가 건너편에 그가 상상하는 피아니스트 아내와 바이올리니스트 친구의 연주와 키스 장면이 보여진다. 영화적인 메카니즘으로 무대를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Photo: Simon Kane

  

중년의 사업가 포스디니셰프(힐튼 맥래 분)는 달리는 기차 안에서 낯선 관객들을 승객 삼아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의 아내를 죽이게 된 동기를 변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바람둥이로 청년기를 보낸 그는 아름다운 피아니스트를 만나 결혼에 이른다. 신혼 첫날 밤, 그녀는 처녀였다. 그러나, 아이들을 여럿 낳으면서 사랑과 열정은 권태와 논쟁으로 바뀌어간다. 


 어느 날 포스디니셰프는 옛 친구인 바이올리니스트 트러카체프스키를 초대한다. 뮤지션들이 만나자 음악에 문외한인 남편은 아웃사이더가 된다. 하지만, 남편은 대담하게 아내와 친구를 위해 콘서트를 열자고 제안한다. 이들이 열정적으로 베토벤의 '크로이처 소나타'를 연습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남편은 질투심에 휩싸인다. 그리고, 이들이 외도를 하고 있다는 상상에 사로 잡히게 된다. 


얼마 후 사업 차 열차를 타고 가던 남편은 아내의 편지를 받는다. 남편은 편지의 행간에서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의처증에 휩싸이고 만다. 그리고, 예정에 없이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서 연습하고 있는 아내와 친구가 열정적으로 포옹하고 있다고 생각한 남편은 칼로 아내를 살해한다. 그러나, 남편은 아내의 외도로 인한 치정살인(crime of passion)으로 석방된다. 무혐의가 된 남편은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는 길, 이방인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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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톨스토이의 단편소설에 영감을 받아 르네 프랑소아 자비에 프리네가 그린 '크로이처 소나타'(1901).

 

 '크로이처 소나타'의 원작은 레오 톨스토이가 1889년 썼던 동명의 단편소설이다. 베토벤이 1803년에 작곡한 동명의 곡은 원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제 9번’으로 당대의 바이올리니스트 루돌프 크로이처에게 헌사한 작품이다. 40여분에 달하는 이 곡은 서두가 격정적이고, 중간이 명상적이며, 후반부는 환희를 담고 있다. 


*크로이처 소나타 감상.

 

 80여년 후 톨스토이가 인간의 어두운 심성을 폭로하는 단편소설 ‘크로이처 소나타’를 발표했을 때 러시아 당국이 나서서 금지했고, 미국의 법무장관은 이 소설이 담긴 신문의 배송을 불법화했다. 또한, 데오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톨스토이를 “성적, 윤리적 변태”라고 비난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세계 각국에서 여러차례 영화로 만들어졌다. 


연극 ‘크로이처 소나타’의 무대는 깊다. 무대 앞은 낡은 기차의 안이다. 이곳에서 주인공 포스디니셰프가 독백을 한다. 기차의 창문엔 아내와 친구의 정사를 담은 비디오가 간간이 상영된다. 그 뒤에선 아내 역의 소피 스캇은 피아노 앞에서 친구 역의 토비아스 비어는 바이올린을 들고 실제로 ‘크로이처 소나타’를 연주하며 연기를 한다. 주인공 남편 맥래가 내내 독백을 하는 반면, 스캇과 비어는 무성영화의 배우들처럼 대사 없는 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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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톨스토이의 1인칭 소설을 낸시 해리스가 각색하고, 연출은 나탈리 아브라하미가 맡았다. 아브라하미는 무대를 절묘하게 연극, 영화, 음악의 공간으로 3등분해서 주인공의 잠재의식과 환상의 복잡한 심성을 겹겹이 시각화했다. 실재와 상상, 현재와 과거가 맞물려 돌아간다. 참신한 세트 디자인은 클로에 람포드가 담당했다. ‘크로이처 소나타’의 격정적인 음악은 이 연극의 한 캐릭터다. 클래식이 이토록 스릴감 넘치고, 무시무시하며, 격정적이었던가! 기관차 소리 또한 심장의 박동처럼 효과음으로 작용한다. 


‘크로이처 소나타’의 관객들은 한 남자가 자신의 질투심으로 인해 저지른 ‘치정 범죄’에 대한 변명을 듣는다. 우리는 낯선 승객일수도, 법정의 배심원일 수도 있다. 톨스토이 시대에 물론 여성은 참정권도 없었다. 포스디니셰프의 아내 이름조차 거명되지 않는다. 아내의 외도를 본 남편의 살해는 무죄였던 시대의 이야기다. 

 

힐튼 맥래의 젠틀한 목소리와 흡입력 있는 연기가 잊혀지지 않는다. 런던의 게이츠시어터에서 초연되어 뉴욕의 '오프-오프 브로드웨이'로 왔다. 18달러로 이런 연극을 볼 수 있게 해준 라마마 시어터가 고마울 따름이다. 라마마의 아트디렉터는 한국계 미아 유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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