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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rricane SANDY Arirang~~

 


 

 

허리케인 샌디 이후 나흘째…감기 기운이 있을 때 간절하게 생각나는 설렁탕 때문에 시내에 나가기로 했습니다.

브루클린하이츠에서 맨해튼 코리아타운까지 이어주는 지하철이 없어서 브루클린브리지를 걷고, 버스를 두번 갈아타고,

또 다시 걸어서 2시간 반 걸린 끝에 설렁탕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가는 길보다 오는 길이 더 어렵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뜻밖에 흑인 그룹의 봉고차에 실려 무사히 집에 돌아왔네요.

어제 하루의 맨해튼 왕복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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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4일 예정됐던 뉴욕시마라톤은 스태튼아일랜드의 베라자노브리지에서 출발한다.
Photo: Todd Maisel/New York Daily News


 

#브루클린하이츠=아침 블룸버그 시장은 마라톤이 뉴욕의 강인함이 상징이라며 강행하려 하고, TV 화면 속 스태튼아일랜드 

피해자들은 분노에 가득찬 목청을 높이며 반대하고 있었습니다. 집이 잿더미가 되어 호텔이 피신해 있는데, 호텔측에서 "마라톤 

참가자들이 예약했다"며 퇴출을 요구했답니다. 그들은 화장실도 빌려 쓸 수 없어서 숲을 찾아야했다고 합니다.

 

 

세계에서 약 5만여명이 참가한다는 마라톤은 물론 뉴욕 시에 주는 경제 효과도 크고, 상징적인 의미도 있겠지요. 하지만,

마라톤의 출발점인 스태튼아일랜드(그러지 않아도 5개 보로 중 가장 고립된 보로가 아니던가요?)의 신음 소리가 메아리쳐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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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태튼아일랜드에 불어닥친 허리케인 샌디의 마력. Photo: NYMAG


 

3가지 네트워크 TV CBS(2)만 종일 샌디의 피해지역을 보도하고 있었습니다. NBCABC는 고정 방송으로 돌아갔습니다

NBC는 재빠르게 자선 콘서트를 호스트하긴 했지만요. CBS의 샌디 후유증 방송은 "당신의 이웃이 이토록 신음하고 있습니다"를 

상기시켜주는 듯 했습니다.



문득 어르신 분, 두 분의 안부가 궁금해졌습니다. 욘커스의 선생님과 롱아일랜드 바닷가에 사시는 선생님께 전화를 드려봤습니다

한 분은 전화 연결이 되지 않고, 한 분은 메일박스가 다 차버렸다네요. 걱정이 많이 됩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선 전화를 

드려야하는지 말아야하는지 조차도 헷갈립니다. 공연히 누를 끼칠까봐서요.


 

브루클린 언덕 위에 살고 있어서 집 앞 가로수가 잘린 것 빼고는 큰 피해는 없었지만, 가만 앉아 있기가 부끄러워졌습니다

맨해튼으로 나가봐야할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한인타운은 정전되지 않아 피해가 없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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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기몸살이나 긴 여행 끝에 생각나는 감미옥 설렁탕. SP



 

며칠 전부터 감기 기운이 있어서 설렁탕 한 그릇이 눈에 오락가락했는데, 지하철이 다니지 않으니 엄두도 못냈지요. 브루클린에서 

맨해튼으로 가는 셔틀버스도 북새통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구요. 아직 로어맨해튼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다고 하구요. 허리케인, 지하철 

불통에 정전까지 겹쳐서 모든 뉴요커들이 고행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라면 끓일 시간조차 없어서 점심을 건너 뛰었습니다. 감미옥에서 설렁탕을 먹어야할 것 같아서요.  


오후 4시경 스니커를 신고, 목도리를 두르고 브루클린브리지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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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같은 브루클린브리지 위에 바이커들이 많아졌다. SP


 

#브루클린브리지=맑은 날, 자발적으로 걷는 브루클린브리지는 사랑스럽지만, 허리케인이 지나간 며칠 후 흐린 날, 어쩔 수 없이 

걸으니 20분이 40분처럼 길게 느껴졌습니다. 다리 위엔 롤러블레이드를 탄 불독(유튜브에서 본 그 유명한 견공은 아니겠지요?), 

여인을 앞에 로맨틱한 태운 바이커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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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뉴욕에서 주거용으로 최고층인 게리의 8스프루스 스트릿 빌딩과 울워스 빌딩, 오른쪽에 시티 뮤니시펄빌딩. SP



프랭크 게리의 76층짜리 고급 콘도 빌딩도 정전에서 예외는 아니었지요. 로어맨해튼이 마비됐으니까요.



#시티홀파크=다리를 건너다 보니 와플 푸드트럭이 보입니다. 오늘 정오부터 오후 4시까지 뉴욕 푸드트럭들이 정전지대 

주민들에게 무료로 급식을 한다고 했지요. 시청 앞 와플&딩스 트럭의 달달한 와플 냄새가 콧날을 찌르는데, 갑자기 공짜 

와플이 먹고 싶어지네요. 이 시간에 공짜 와플은 끝났겠지만하고 기다리다 보니 설렁탕을 맛있게 먹지 못할 것 같아 포기하는 

것이 좋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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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기에에서 온 와플 전문 푸드 트럭 와플 & 딩스. 컬럼버스서클 등 맨해튼 곳곳에 있다. SP



웃긴다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전 뉴욕에서 까만 다람쥐들을 딱 두 군데서 봤습니다. 바로 시청이 있는 시티홀파크와 브롱스의 

뉴욕식물원인데요. 제가 '오바마 다람쥐'라고 붙였지요. 로어맨해튼이 정전되고, 시청도 폐쇄하면서 다람쥐들도 기아에 허덕이는 것 

같았습니다. 시티홀파크를 지나가는데, 은행 냄새가 진동을 해서 잠시 멈추어보니, 다람쥐가 깡총깡총 뛰어 다닙니다.


강아지 부르듯이 '쯧쯧'하고 불렀더니, 가까이 와서 애교를 떠는 것이 먹을 것좀 달라는 표정 같았습니다. 카메라를 드는데, 

포즈까지 취해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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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지금 정전에 배고프고 춥단 말이야!" "미안해, 줄께 아무 것도 없어. 나도 배고픈 걸!" SP



저도 점심을 굶은 주제에 줄 께 없었는데, 지나가던 독일 관광객 커플이 포즈 취해주는 다람쥐사진을 찍은 후 와플을 던져줍니다.

다른 다람쥐가 나타나니, 요 다람쥐는 와플을 물고 나무 위로 올라가서 독식합니다.


 

#파크로=공원 건너편에서 15번 버스를 타고 3애브뉴로 32스트릿까지 올라갈 생각이었는데, 옆으로 줄이 상당히 길었습니다

브루클린으로 가는 셔틀버스 라인이라고 합니다. 버스가 한대 와서 그냥 올라타고 보니 15번이 아니라 22번 로어이스트사이드로 

가는 버스네요. 승객 4명이구요



전 로어이스트사이드하면 오차드, 엘드릿지, 크리스티, 알렌, 클린턴, 리빙턴, 딜란시스트릿 등으로 에워싼 힙한 동네로만

생각했습니다. 카츠 델리와 러스&도터스, 랜드마크 시네마, 그리고 미션 차이니즈푸드 식당이 있는 이스트빌리지 이남 동네 말이지요. 

그런데, 이 버스는 차이나타운에서도 외진 곳을 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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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어이스트사이드 매디슨스트릿. 차이나타운 거리는 한산하다. SP



아침에 TV 화면에 나왔던 여인의 얼굴이 생각납니다. 로어이스트사이드에 사는 히스패닉 여인은 아이들이 10명인데아침 7시부터 

5시간 차이나타운 급식소에서 기다렸다가 수프감자칩캔 등을 한 박스 갖고 갔습니다그녀는 정전을 대비해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화장실 물 내리는데쓰고 있다고 했지요.



#차이나타운=버스가 신호등 불이 없는 차이나타운을 지나는데, 북적북적했던 길은 한산하고 아파트엔 불빛이 없고, 놀이터에도 

아이들 하나 없네요. 할아버지 한 분이 타시는데, 홈리스 냄새가 버스를 진동합니다. 이어 차담스퀘어 인근에서 중국인 아주머니들이

물건을 한아름 안고 타시니, 냄새가 중화되는군요



매디슨 스트릿(애브뉴가 아니라)의 중국 거리엔 모두 셔터가 내려가 있습니다. 어느 중국 남성 한 분이 물 한 박스에다가 

카트에 물건을 담아 올리느라 애쓰시니, 중국 아주머니들이 도와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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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지하철이 끊긴 브루클린으로 가기위해 윌리엄스버그 브리지를 걷는 이들도 많았다. SP



중국인 아주머니들이 갑자기 창 밖을 보며 웅성거리시네요. 창 밖으로 아파트 전등이 몇 개씩 들어와 있습니다. 콘 에디슨이 약속대로 

전력을 복구한 모양입니다. 그녀들이 환호를 합니다. 얼굴에 희색이 만연해지네요. 


 

제 뒷 자리의 아주머니의 셀폰 통화를 엿듣게 됐습니다. “싸우스스트릿씨포트는 완전 폐허가 됐다구! 내가 사진도 찍었지

배터리파크시티는 가봤는데, 멀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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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어이스트사이드의 학교 건물에도 불빛이 들어왔다. SP


 

제가 뒤돌아서 물었습니다. 싸우스스트릿씨포트가 정말 폐허예요? 히스패닉 아주머니가 빨간색 디지털 카메라를 보여줍니다

씩씩한 이 아주머니는 여자 친구와 로어맨해튼을 돌며 사진을 찍어 왔다고 합니다. "정전지대 사시냐"고 물었더니,

워터스트릿에 사는데, 정전됐지만, 난 아무런 문제도 없었어!”하고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그러면서 “우린 촛불을 켰지. 음식 저장해둔 게 있어서 프라이 치킨도 해먹고, 옐로라이스 도 해먹었어”라며 메뉴를 총총히 

나열했습니다.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그 아주머니는 다행히 12층에 살아서 정전 말고는 피해를 보지 않았답니다. 그래서인지

허리케인이 왔을 때의 경험을 마치 영화 '아바타'라도 본 것 처럼 이야기 하네요. 아이는 없냐고 물었더니, 딸이 마흔 여섯살이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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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디슨스트릿에 출동한 소방차. 전깃불은 들어왔건만, 불이 난 모양이다. SP



#로어이스트사이드=버스 운전수 아저씨가 "Last Stop!"이라고 외칩니다. 로어이스트사이드에서도 낯선 동네에 내렸습니다

매디슨과 잭슨스트릿이었던 것 같네요. 소방차 5대가 웅성거리며 타는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인근 아파트에 화재가 난 모양입니다



그랜드스트릿 인근에 델리의 전기불이 환하게 보입니다. 생각해 보니 이 동네에 온 적이 있네요.


15년 전쯤 비디오아티스트 조승호씨를 인터뷰했던 것 같습니다. 한국의 비디오잡지 통신원으로 일할 때였지요. 조승호씨는 얼마 전

타임스퀘어에 비디오 작품을 상영하신 분이지요. 부산 사투리를 강하게 쓰시던 그분의 깔끔한 아파트에서 작품을 보면서 인터뷰를

했는데요. 명상적이고, 철학적인 이미지가 참 좋았습니다. 몇년 전 한인타운에서 부딪혔는데, 퀸즈로 이사가셨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동네가 참 낯설게 느껴집니다. 그랜드 스트릿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아파트 단지에서 몇몇 집엔 불이 들어와 있었지만,

대부분 주민들은 어디로 대피하신 모양입니다. 형광불빛으로 환하게 서있는 이고, 14번 버스 두대가 보였습니다. 참 버스가 반갑네요.


크로스타운 버스니 잘 하면 첼시까지아니면 5-6애브뉴에서 내려서 한인타운으로 걸어갈 요량으로 올라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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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웨스트빌리지 존스 스트릿의 고깃간이 생각납니다. 허리케인 샌디가 오기 전 날 28일 저녁에 닭고기, 필레미뇽, 양소시지를 

사러 플로렌스 미트 마켓에 갔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지갑을 둔 가방을 놓고 다른 가방을 들고 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아저씨가 필레미뇽을 썰고 있는데요. 그 집이 문 닫기 15분 전이었는데, 전 월요일에 지불하겠다고 했습니다. 완전히 사깃꾼이 된 

것처럼 느껴졌지요. 그런데, 월요일에도 쉰다네요. 



여자 매니저분이 나와서 간단하게 "그럼 카드 넘버 알아요?"하고 물어서 "물론이지요, 제 아이폰에 있어요!" 아주 간단한 일이었네요.

카드 넘버를 알고 있으니요. 그래서 고기도 사고, 15스트릿&7애브뉴의 중국집 레전드에서 마파두부와 궁보치킨, 핫앤사워 수프도 카드

넘버로 테이크아웃해서 집에 왔습니다.



생각해보니 고깃간과 중국집 모두 정전 지역이라 고기와 음식재료가 어떻게 됐을까 걱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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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안에서 쓰러진 거목들은 못 담았고, 작은 나무 쓰러진 모습만 흔들리게 찍었다. SP




밥 말리처럼 머리를 딴  젊은 흑인 운전사는 큰 소리로 셀폰에 대고 이야기를 합니다. “가솔린이 없다구!”하며 중얼거리더니 다른 

버스로 갈아 타라고 합니다이 버스가 도대체 어디로 갈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이스트리버 인근에 있는 것이 분명하고, 허드슨강가로 

가겠지요? 유니온스퀘어를 거쳐서 첼시로 갈 것이 분명합니다로어이스트사이드 중에서도 동쪽 끝에 있는 이 동네를 버스가 샅샅이 

보여줍니다



워터스트릿 인근에 조그만 공원에 고목 3-4 그루가 무참하게 쓰러져 있었습니다. 순간 하는 신음 소리가 자동으로 나왔습니다

우리 집 앞 가로수보다 50년은 더 나이를 먹었을 것 같은 고목들인데요. 센트럴파크에 쓰러진 나무들 사진보다 직접 보니 더 

충격적입니다. 뒤 늦게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그러니, 스태튼아일랜드, 브리지포인트나 롱비치에서 살던 집을 송두리째 잃어버리신 분들의 마음을 상상도 못하겠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의연한 분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난 미국을 사랑해. 미국도 날 사랑하기를 바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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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룸버그 시장이 마침내 뉴욕시 마라톤을 취소했다. 항간에선 너무 늦게 취소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Photo: CBS



아이폰을 여니 블룸버그 시장이 마라톤을 취소했다는 속보가 뜨네요. 늦었어도 참 잘한 결정입니다. 아침에 줄리아니 시장과

통화했는데, 9.11 이후에도 마라톤을 했다며, 합리화하더니 반격에 항복한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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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트빌리지의 작은 델리에도 전기가 들어왔다. 불빛이 아름답게 보였다. SP



 

전 버스를 좋아합니다. 천천히 거리 구경을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평상시 버스엔 주로 노인과 여인들이 많이 탑니다. 그런데, 오늘 같은 날엔 험상궂은 얼굴에, 문신을 하고 흥얼거리는 어깨도 승객이

됐습니다.



#이스트빌리지=버스가 꼬불꼬불 이름 모르는 거리를 돌아돌아 마침내 톰킨스퀘어파크 앞에 섰습니다. 이스트빌리지도 불빛이 

들어오기 시작헸습니다. 어느 술집은 촛불로 분위기 내며 손님을 받고 있는 듯 했습니다.


 

공원 앞에 제가 가끔씩 가는 무척 싼 중국인 네일 살롱 A Top 네일도 셔터가 내려져 있습니다. 얼굴이 보름달 같은 중국인 아저씨와 생글생글 웃는 아주머니가 주인인데, 테크니션들이 바뀌지 않는 걸 보니 좋은 사장님, 사모님들이신 것 같습니다. 싸고, 편해서 여름엔

가끔 가지요. 안마 의자도 참 좋구요. 연예잡지도 읽구요. 샌디로 인해 뜻하지 않게 휴가를 받은 테크니션들이 지금 무엇을 할까

궁금해집니다.



14번 버스는 크로스타운이라지만, 종단을 한참하다가 14스트릿에서 서쪽으로 꺾어지기 시작합니다. 이 동네가 스타이브샌트 

타운이라는 아파트 단지인데, 불빛이 없습니다. 동양화가 최일단 선생님께서 이 근처에 사시는 것 같은데, 안녕하신지 모르겠네요.


일부는 아직도 어두운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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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온스퀘어 인근 14스트릿의 불빛. SP



#14스트릿=유니온스퀘어 남쪽 '트레이더 조'는 형광 불빛이 환했습니다. 이어 유니온스퀘어 이북으로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멀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불빛만이 보이는듯 했습니다. 홀푸드는 발전기를 썼는지, 어두운 조명에 손님들을 받고 있네요.



5애브뉴를 지나가며, 길은 어두운데 신호등이 없으니 신경이 날카로와 집니다. 버스는 환해서 좋지만, 바깥 세상이 저의 안전을 

보호해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첼시까지 갈까 하다가 혼자 무서울 것 같아서(아이폰 강도들이 많다니깐요) 6애브뉴에서 내렸습니다



#6애브뉴=14스트릿의 6애브뉴 남쪽은 암흑세계, 북쪽은 별천지입니다. 아직 정전인 이남엔 신호등이 없는 거리를 차들이 오가고,

교통순경이 정리를 하고 있어요. 코리아타운이 있는 북쪽으로는 네온이 빛나는 뉴욕 거리입니다.



14스트릿에서 북쪽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베드&배스 비욘드 앞에선 행상이 배터리를 팔고 있습니다. 23스트릿을 건너니

화가 김원숙 선생님의 아파트 빌딩이 보입니다. 전망좋은 아파트 건물엔 불빛이 환합니다. 지금은 인디애나주 블루밍턴에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32스트릿=걸어서 한인타운에 진입하니, 참 고향이 온 듯 합니다. 32스트릿은 여전이 활기에 차 있었습니다. 정전되지 않았다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요.


 

마침내 감미옥에 나 홀로 앉았습니다. 설렁탕과 김치빈대떡 한 장을 주문했습니다. 전에 직장 다닐 때 선배의 어머니께서 

감미옥에서 아르바이트로 김치를 만드실 때 미원을 한 바가지씩 넣었다라고 이야기해줬는데, 그래도 이 집 김치가 맛있습니다


단, 설렁텅이 좀 더 뜨거웠음 좋겠는데요. 파를 네 플라스틱 스푼 넣었습니다. 언제나 소금의 양이 문제입니다. 오늘은  한 스푼만  넣고 

먹기 시작했습니다. 김치 빈대떡이 나왔습니다. 김치뿐 아니라 각종 야채에 고사리까지 씹히는데, 감기가 딱 끊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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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미옥의 김치빈대떡 한장과 설렁탕 한 그릇. SP




, 저녁 7시 반. 이제 어떻게 브루클린 집으로 돌아가야 할지요? HOME이 너무나 멀게 느껴집니다.



#킵스 베이=렉싱턴애브뉴 32스트릿에 브루클린 J스트릿로 가는 셔틀이 있다는데, 줄이 무척 길다고 들었습니다.

동으로 동으로 걷다보니, 그 환한 한인타운의 명랑함이 딱 사라져버리고, 어둠이 시작됩니다. 매디슨애브뉴 동쪽으로는 암흑가

였습니다. 이런 어둠 속에서는 무슨 일이든지 벌어질 것 같았습니다. 으시시해지기 시작합니다.



젊은 여성들은 플래시를 켜고 걸었습니다. 아이폰도 좋은 플래시가 되지요. 하지만, 아이폰을 채가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

조심해야 겠지요?



펜스테이션이 상주하고 있는 홈리스들도 모두 지상으로 나왔을 것입니다. 그 분들도 집을 잃은 셈이니깐요.



 험상남이 상소리를 하면서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셀폰으로 통화하는데, 좀 듣기 거북하네요. 컴컴한 교차로에 

서있다가 여러 사람들 사이에 몰려서 셔틀버스 쪽으로 갔습니다



#34스트릿=파크애브뉴 34스트릿의 스캐폴드 아래로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습니다. 경찰에게 물어보니, 브루클린 셔틀 두가지인데

하나는 아틀란틱 애브뉴 행, 하나는 제이 스트릿 행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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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요커 잡지의 11/12 표지.                                                                      뉴욕매거진 11/12 표지


 

줄에 서서 기다리는데, 두 여인이 따끈한 핫 초콜릿(코코아)을 권합니다. 뉴욕이 멋있는 이유는 이런 때에 자원봉사하는 맘씨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설렁탕에 빈대떡까지 먹고 핫초콜릿까지 하면 뱃살이 더 비대해질 것 같아 포기합니다. 그런데, 어두우니 새치기하려는 이도 나옵니다. 경찰 아저씨가 그 청년을 쏘옥 잡아냈습니다(고소해라!).



저는 중고교시절 15일마다 민방위 훈련을 받은 세대라서 이런 위기상황에 의연할 줄 아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뉴요커들은 더 침착하고, 쿨 하네요. 옆 아가씨는 컴퓨터 게임을 하고, 뒤 커플은 하와이와 조지 클루니 영화 디센던트이야기를 하고, 앞 아저씨는 블랙베리를 자꾸 체크하고


30분이 흐르니, 렉싱턴애브뉴 가까이로 줄이 줄었습니다. 바람이 더 차가와집니다. 여기 반시간 서있는 것도 힘든데, 오늘 밤 전기 없이

새우는 분들은 얼마나 힘드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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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캐폴드 밖에서 보는 버스 대기 줄은 마치 감옥 안의 죄수들 같다. SP


 

감기 딱 끊으러 나왔다가 더 심해지는 것은 아닐까? 정신이 몽롱해졌습니다. 누군가 제이 스트릿!! 제이 스트릿!! 원 모어!!”하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립니다. “버스는 렉싱턴 32스트릿에 있어!”


그러고 보니 앞으로 족히 30분은 더 기다려야 한다는 소리네요. 옆 경찰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10불짜리'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나라시 봉고'인셈이지요. 이것도 뉴욕시가 허락하고 있는 위기상황인 셈이지요.


 

15인승쯤 되어 보이는 밴 앞으로 가니, 얼굴이 까만 사람들로 꽉 차있었습니다. 제가 앉을 자리도 없는 듯 했어요. “난 앉아서 가야해!”

라고 당당하게 말했더니, 운전 조수석을 줍니다. 그래서 올라탔지요. 서서 가면 억울하니깐요.


운전사 흑인 아저씨는 고상해 보이고딸처럼 보이는 소녀도 우리 사이 뒤로 앉았는데, 랩뮤직비디오가 나오는 미니 모니터에 

스테레오도 제법 잘되어 있네요. 부랑아처럼 보이는 임시 차장은 저 같은 아시안 여자가 혼자 타니깐 '차비 내라'는 말을 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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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전된 교차로 마다 교통순경이 정리하고 있다. 렉싱턴애브뉴&34스트릿. SP


 

#바워리스트릿=나라시 봉고 아저씨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고, 막히지 않는 이스트빌리지와 차이나타운을 쌩쌩 달렸습니다

저는 봉고 납치’ ‘김밥 만드는 공장등을 떠올리면서 납치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봤습니다. 그런데, 운전사 아저씨가 인자

했습니다. 지갑에서 10불을 찾아내서 손에 꼭 쥐고 있었습니다.




#맨해튼브리지=봉고가 브루클린브리지 대신 맨해튼브리지를 탑니다. 마침내 다리 건너 틸러리스트릿 인근에 정차했습니다. 

전 10불을 운전사 아저씨에게 '땡큐'하며 드렸습니다. 그러니, 씨익 웃네요



IMG_1486.jpg 쓰러졌던 나무 밑둥. 



#브루클린하이츠=드디어 HOME SWEET HOME 앞에 왔습니다!  

쓰레기를 치우는 수퍼 카를로스 카벨로스의 부인을 만났습니다. 매일 매일 청소를 참으로 열심히 하는 남미계 아주머니입니다. 

카벨로스 여사는 가로수가 쓰러진 것을 애처러워했습니다. 나무가 뚝 잘려나가 마치 통나무 의자처럼 됐습니다.  "나무 한 그루가 

자라려면... 그 나무를 그리워할꺼예요~" 


쓰러진 나무는 매일 보았습니다. 카벨로스 아주머니가 매일 청소하고, 쓰레기를 버리는 모습을...



내일이면, 전기도, 지하철도 복구되겠지요? 감기도 빨리 나았으면 좋겠습니다. 



i LOVE 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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