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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Modern/Contemporary Artists
2012.04.09 01:03

현존 최고화가 리히터가 그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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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하르트 리히터는 컬러의 레이어 위에 물감을 잔뜩 바른 스퀴즈로 캔버스 표면을 밀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GERHARD RICHTER PAINTING.  Courtesy of Kino Lorber. 

 

 

화가들을 위한 다큐멘터리 ‘게르하르트 리히터: 페인팅’

 

 

뉴욕이 세계미술의 메카로 부상한 것은 제 2차세계대전 이후 잭슨 폴락, 윌렘 드 쿠닝, 프란츠 클라인 등의 추상표현주의가 대두하면서부터다. 거대한 캔버스에 즉흥적으로 물감을 뿌리듯이 그리는 액션 페인팅이 한 세대를 풍미했다. 이후 마크 로츠코의 색면(color-field) 회화와 앤디 워홀의 팝아트로 미술의 주의(ism)은 파고를 일으키며 미술도 전진해갔다.

 

 제 2차세계대전 이전 미술의 중심은 유럽이었다. 파리의 인상파와 입체파, 독일의 표현주의가 미술계를 지배하고 있을 때 미국은 그럼 잠자고 있었단 말인가? 2008 북경올림픽을 앞두고 장시아오강, 왕지이, 유에민준 등 현대 화가들이 경매에서 광풍을 불러일으키면서 미술계를 흔들었다. 미술 사조도 국력과 비례하는 것인가?

 

*리히터 추상화 생존화가 최고 경매가 신기록(2012.10.14)

 

  

 비엔날레에서 설치미술, 비디오아트와 퍼포먼스가 강세를 보이면서 회화가 마이너 리그의 고독한 장르가 된 듯하다. 그러나, 회화는 죽지 않았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아티스트가 설치작가 다미엔 허스트(Damien Hirst, 46), 조각가 제프 쿤스(Jeff Koons, 57), 사진작가 신디 셔만(Cindy Sherman, 58), 사진작가 안드레아 거츠키(Andreas Gursky, 57), 그리고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 80)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중 가장 노장인 리히터는 오늘날 생존해있는 가장 위대한 화가로 꼽힌다. 그는 회화, 사진, 조각 등 여러 장르를 거쳐 오늘 추상표현주의로 회귀했다.

 

 맨해튼 필름포럼(Film Forum)에서 상영 중인 코리나 벨즈(Corinna Belz) 감독의 다큐멘터리 ‘게르하르트 리히터 페인팅(Gerhard Richter Painting)’은 미술가라면 반드시 봐야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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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감 바른 스퀴즈로 힘차게 밀고 있는 리히터. GERHARD RICHTER PAINTING. Courtesy of Kino Lorber.
 

 

 1965년 리히터는 한 인터뷰에서 “회화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라고 단언한 적이 있다. 그가 2009년 봄에서 가을까지 스튜디오를 개방하고, 말문을 열었다. “회화는 비밀스러운 것이다. 각각의 그림은 자기 주장으로 어떤 동반자도 참지 않는다.” 그런 그가 영화 제작진에게 스튜디오 문을 연 것이다.

 

 리히터의 추상표현주의 그림은 거대한 스튜디오 흰 벽에 걸린 캔버스에 원색의 물감을 페인트용 붓으로 ‘마치 서예를 하듯’ 일필휘지식으로 그린다. 멀리서 한참 바라보며 명상을 한다. 며칠 후 투명판(squeegee)에 물감을 두껍게 묻힌 후 캔버스 위에서 민다. 에너지(기, 氣)에 따라 그림에 레이어가 형성되고, 바닥이 드러나면서 컬러풀하고 미스테리한 이미지가 완성된다. 게하르트가 개발한 테크닉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거장 화가가 추상회화, 리얼리즘 초상 사진, 그리고 회화까지 어떻게 자신의 스타일을 구축 왔는지를 드러낸다. 추상표현주의 작업의 마지막 단계에서 물감을 밀어낸 후 게하르트는 말한다. “여보게, 이건 정말 재미난 일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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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이 비밀스러운 작업이라고 말햇던 그가 작업실을 공개했다. GERHARD RICHTER PAINTING.
  Courtesy of Kino Lorber.

 

 

 1932년 동독의 드레스덴에서 태어난 리히터는 10살 때 중학교 중퇴한 후 드레스덴미술아카데미 입학했다. 서독으로 이주한 후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에서 시그마 폴케(Sigma Polke), 콘라드 루에그(Conrad Lueg)와 함께 공부했으며, 1971년부터 15년간 뒤셀도르프미술아카데미 교수로 지냈다.

 

 1960년대 리히터는 사진의 그림화 작업에 몰두했다. 사진을 캔버스에 투사해서 희미하게 복사하는 일이다. 신문과 책에서 수집한 사진과 자신이 찍은 알프스와 해변 사진 등으로 작업한 그림 사진(painting pictures/사진 아래)을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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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추상화를 시작한 것은 1969년 회색 단색화(monochrome)였다. 이 다큐멘터리에서 미국인 관람객이 그의 회색 추상화에 대해 비난하는 말이 나온다. 리히터는 독일인들이 과묵한 반면, 미국인들은 직설적이라고 한 마디 한다. 

 

 리히터는 이후 색도면(color chart) 그림(사진 아래), 유리와 거울을 이용한 조각을 발표했으며, 2007년엔 쾰른 성당의 스테인글래스 윈도우도 작업했다. 70년대는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장 시벨리우스, 작가 H. G. 웰스와 프란츠 카프카의 얼굴로 작업한 48개의 초상화로 1972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독일관에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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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 판화를 거쳐 1980년대 초엔 정물 ‘양초와 해골(Candles and Skulls/사진 아래)’ 시리즈로 전환하면서 회화로 돌아섰다. 아울러 추상 대작도 시작된다. 1989년 일상의 스냅 사진 위에 젖은 물감을 덮으면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그가 미국에서 유명해진 것은 뉴욕의 아트딜러 마리안 굿만을 만난 1984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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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히터는 1997년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으며, 2002년 MoMA를 필두로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 샌프란시스코미술관으로 순회 회고전이 열렸다.

 

 2010년 경매에서 팔린 리히터의 그림값은 7690만 달러. 그의 양초 그림은 2008년 런던 소더비에서 1500만 달러에 팔렸으며, 2010년 그의 66년 그림 ‘세일러들’은 소더비에서 1300만 달러에 낙찰됐다. 2011년 핑크와 블루 추상화 ‘Abstrakte Bild 849-3’은 2080만 달러에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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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상표현주의 그림의 복귀로 현존 최고의 화가로 자리매김한 리히터.
  GERHARD RICHTER PAINTING. Courtesy of Kino Lorber.

 

 

 리히터는 2011년 런던 테이트 모던(Tate Modern)에서 열린 질의응답 시간에 “미술가의 역할이 어떻게 변했다고 생각하세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의 대답은 지금은 거의 오락과 같아요. 우린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지요.” www.filmfor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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