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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펄스타인(Philip Pearlstein, 1924-2022)

작품의 스토리, 해석, 성적인 관심에 저항했던 사실주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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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Pearlstein, Self-Portrait: Two Sketches, 2001. Image:Philip Pearlstein Studio

 

사실주의 누드화로 실존을 묘사한 인물화가 필립 펄스타인(Philip Pearlstein, 98)이 12월 17일 세상을 맨해튼의 한 병원에서 떠났다. 그는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본명 앤드류 워홀라)의 대학 동창이자 뉴욕시의 첫 룸메이트였다. 

 

필립 펄스타인은 1924년 피츠버그에서 러시아와 리투아니아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대공황으로 닭과 계란을 팔며 가족을 부양했다. 필립은 어려서 피츠버그의 카네기미술관 토요일 아침 클래스에서 그림을 그리며 화가의 꿈을 키우게 된다. 

 

1942년 카네기인스티튜트오브테크놀로지(현 카네기멜론대)에 입학했다가 제 2차세계대전에 징집되어 이탈리아에 주둔하며 로마, 피렌체, 베니스, 밀라노 등지에서 고대와 르네상스 미술을 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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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펄스타인(오른쪽), 앤디 워홀(앞), 부인이 될 도로시 캔터가 카네기인스티튜트오브테크롤로지(현카네기멜론대) 캠퍼스에서. Photo: Leonard Kessler

 

1946년 제대 후 복학해 워홀의 친구이자 자신의 부인이 될 도로시 캔터를 만났다. 졸업 후엔 워홀과 함께 뉴욕으로 이사해 이스트빌리지 애브뉴A와 첼시(21스트릿) 아파트에서 룸메이트로 살았다. 펄스타인은 1950년 캔터와 결혼했고, 워홀은 베스트맨이었다. 

 

당시 뉴욕은 잭슨 폴락, 윌렘 드쿠닝, 프란츠 클라인 등의 추상표현주의가 지배했다. 펄스타인도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의 모임 'The Club'에 가담했지만, 자신의 이즘은 어디까지나 리얼리즘이었다. 그는 2021년 라이프지와의 인터뷰에서 펄스타인은 "추상화가가 되려면 불행해야 한다. 나는 속이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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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Pearlstein, Two Models with Bent Wire Chair and Kilim Rug, 1984.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뉴욕타임스의 윌리엄 그라임스는 펄스타인의 캔버스에서 모델들은 전통적인 포즈 대신 웅크리고, 피로한 모습이며, 몸의 일부는 절단되는 것에 주목했다. 그의 누드는 해석이나 에로틱한 관심과 내러티브에 저항했다고 평가했다.  

 

펄스타인은 1955년 뉴욕대에서 미술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석사 논문은 초현실주의/입체파 화가 프란시스 피카비아(Francis Picabia)에 관한 연구였다. 

 

그는 브루클린칼리지와 프랫인스티튜트의 교수를 지냈으며, 미문학아카데미(American Academy of Arts and Letters)의 회장(2003-200)을 역임했다. 1970년 아테나의 조지아미술관, 1983년 밀워키미술관과 브루클린뮤지엄에서 순회 회고전이 열렸다. 부인 도로시 캔터는 2018년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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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Pearlstein, Two Female Models on Cast Iron Bed, 1975, Image: Betty Cunningham Gallery

 

Philip Pearlstein, Whose Paintings “Rescued the Human Figure,” Dies at 98

https://hyperallergic.com/788689/philip-pearlstein-dies-at-98/

 

Philip Pearlstein, Whose Realist Nudes Revived Portraiture, Dies at 98

https://www.nytimes.com/2022/12/17/arts/philip-pearlstein-dead.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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