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83)
- 강익중/詩 아닌 詩(83)
- 김미경/서촌 오후 4시(13)
- 김원숙/이야기하는 붓(5)
- 김호봉/Memory(10)
- 김희자/바람의 메시지(30)
- 남광우/일할 수 있는 행복(3)
- 마종일/대나무 숲(6)
- 박준/사람과 사막(9)
- 스테파니 S. 리/흔들리며 피는 꽃(49)
- 연사숙/동촌의 꿈(6)
- 이수임/창가의 선인장(149)
- 이영주/뉴욕 촌뜨기의 일기(65)
- June Korea/잊혀져 갈 것들을 기억하는 방법(12)
- 한혜진/에피소드&오브제(23)
- 필 황/택시 블루스(12)
- 허병렬/은총의 교실(102)
- 홍영혜/빨간 등대(70)
- 박숙희/수다만리(66)
- 사랑방(16)
(549) 강익중: 여행이 좋다
여행이 좋다
로키산맥의 가을 물결
그러니까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2년 전 가을이었다. 미국과 캐나다 서부 지역을 위아래로 긋는 로키산맥을 어머니와 함께 다녀오는 일정을 짰다. 일단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비행기로 이동한 다음 1주일 동안 하루 10시간 이상을 자동차로 달리는 강행군이었다. 아들은 운전을 좋아하고 어머니는 차창 밖 풍경을 좋아하니 두 사람의 여행 궁합은 완벽했다.
꽃노을이 사라지고 별들이 내릴 때쯤 계곡 물소리가 요란한 산속 아랫마을에 여정을 풀기로 했다. 입구에 ‘날아간 새’라는 마을 이름이 어슴푸레 보였다. 당장이라도 어디선가 말을 탄 인디언이 나타날 것 같은 꽤 어둑어둑한 저녁이었다.
“그것 참 이름 한 번 요상하다. 그렇죠?”
“그러게, 누군가 ‘날아간 새’를 그리워했나 보다.”
다음 날 아침 어머니는 발가 파란 로키산맥의 단풍에 연거푸 ‘와!’를 외치신다. 작은 들꽃 하나에도 감동을 받으시는 분인데 적도의 꽃처럼 번진 가을의 물결에 얼마나 놀라셨을까.
“이맘 때 우리나라 설악산 단풍도 대단하죠?”
“아마 그럴 거야. 히- 근데 나 설악산 아직 못 가봤어.”
형편이 어려웠던 우리 식구는 늘 서울의 끄트머리 동네를 옮겨 다니며 살았다. 그렇지만 삶의 목줄이 걸린 서울의 경계 밖으로 나갈 기회는 거의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단풍은 어릴 적 이태원 언덕배기에서 바라본 남산과 고향 청주의 나지막한 우암산이 전부다.
내 역마살의 시작
1984년 1월, 난생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브루클린에 있는 있는 프랫인스티튜트에 등록하려고 두렵고 설레는 마음으로 꽁꽁 얼어붙은 낯선 도시에 착륙했다. 나의 역마살에 발동이 걸리기 시작한 해다. 3월 중순 짧은 봄 방학을 이용해 당시는 친구였던 지금의 아내를 만나러 뉴욕의 반대편 시애틀까지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서울의 변두리 촌놈이 연달아 바깥 구경을 제대로 하게 된 셈이다. 버스터미널 매표소에서 시애틀 가는 왕복표 한 장을 주문하니 창구의 직원이 놀란 표정으로 내게 다시 물어본다.
“방금 시애틀 간다고 했어요?”
“네! 시애틀”
“아- 엄청 힘들 텐데... 하지만 굿 럭!”
맨해튼 42번가 버스터미널에서 떠난 버스는 목적지 시애틀 다운타운까지 모두 35곳의 크고 작은 도시와 마을에 들렀다. 승객들이 계속해서 타고 내리고 운전사도 수시로 바뀐다. 나처럼 무식하게 버스로 미국의 동서를 횡단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생각했었는데, 웬걸 한 사람이 버스에 더 있었다. 뉴욕에서부터 줄곧 맨 앞자리에 앉아 계셨던 미소가 따뜻한 고운 백발의 할머니였다. 오랫동안 동네 편물 일감을 받아 일하느라 어깨가 굽으신 서울의 어머니와 닮았다. 멀리 떠나는 아들 몰래 눈물을 훔치셨던 어머니의 옆모습이다. 뉴욕을 출발하고 이틀이 되는 날 버스가 텅텅 비자, 할머니가 뒷자리에 앉았던 나를 앞쪽으로 오라고 손짓을 하신다.
“어디서 왔어요? 학생인가?”
“네, 한국에서 얼마 전에 왔습니다.”
“뉴욕에서 미술 공부를 하려고요.”
들고 있던 스케치북을 보여드리니 ‘원더풀’이라고 거듭 외치신다.
“할머니는 어디 가세요?”
“캘리포니아에 사는 아들 식구를 보러 가는데 비행기 대신 버스를 타게 됐어.”
“이제까지 살면서 미국을 제대로 본 적이 없어서.”
“근데 할머니 연세가?”
“올해 구십.”
어머니와의 마지막 여행
머니가 하늘로 가시기 1년 전, 시에라 네바다 산맥 동쪽에 위치한 죽음의 계곡이라 불리는 데스밸리를 모시고 갔다. 어머니와의 마지막 여행이었다. 겨울밤의 데스밸리는 쏟아질 듯한 별들로 가득했다. 어머니와 아들이 탄 차는 아무도 없는 길가에 잠시 멈추어 섰다.
“와! 저 하얀 게 다 별이에요!”
“저기 은하수 보여요? 북두칠성도?”
그런데 어째 어머니는 말씀이 없으시다. 당뇨로 앞을 못 보다 먼저 가신 아버지 생각 때문이다. 하얀 밤하늘 속에서 어머니는 아버지 별을 찾고 계셨고, 철없는 아들은 고개 꺾고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별똥별만 기다리고 있었다.
“저기, 별똥별 떨어져요!”
“어디?”
“아이고! 지나갔다!”
지금까지 미국을 자동차로 일곱 번 횡단했다. 대부분 작품 전시 때문이었다.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정확히 3천 마일이라는 것을 알았고, 로키산맥을 넘기 전에 연료를 충분히 채워야 하는 것도 알았다. 이상하게 그 많던 주유소가 산에만 올라가면 아예 없거나 일찍 문을 닫아버린다.
어쩌면 여행은 인생과 같다. 갈 길이 멀 수록 더 꼼꼼하게 준비하고 챙겨야 한다. 자동차 앞 유리창 세정액은 충분히 채워져 있는지, 그리고 타이어 압력은 괜찮은지... 사람들은 타고 내리고 우리들의 인연은 이어지고 끊어진다. 그리고 창밖의 풍경과 인생의 여정은 날씨처럼 수시로 바뀐다. 그러다 사람들이 하나 둘 내리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한다. 인생의 종점에선 모든 것을 두고 내려야 한다. 아들 손을 놓고 내리셔야 했던 어머니처럼.
오늘 아침 뉴욕 집 앞마당에 처음 보는 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진돗개 두 마리가 재빠르게 따라다녀도 숨바꼭질하듯 숨었다 다시 나타난다. ‘그 날아간 새가 여기까지 날아왔나? 은하수 건너왔나? 혹시 오는 길에 울 어머니 만나 봤나?’
난 이유 없이 다니는 여행이 좋다
난 갈 곳 없이 다니는 여행이 좋다
난 기웃거리며 다니는 여행이 좋다
난 숙맥처럼 다니는 여행이 좋다
난 여행처럼 사는 인생이 좋다
-2020년 겨울, 작업 일지 중에서-
*강익중씨 런던 템즈강에 '꿈의 섬(Floating Dreams)' 설치
*An Interview with Ik-Joong Kang, Inside Korea(The New York Times)
엄마와 단둘이서 여행은 한번도 못했고 생각도 미처 떠오르지를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거듭되는 사업 실패로 빗더미 속에서 5남매를 대학교를 보내고 뒷바라지를 하시느라 눈코 뜰새없이 고단한 하루하루를 보내셨으니까요. 그때를 생각하면 아찔해집니다. 모진 고생을 하신 끝에 아들이 의사가 되고, 의사 며느리를 맞이하고 아들 내외가 어머니를 모시면서 엄마의 신세가 편안해졌습니다. 딸 둘은 미국으로 시집왔고, 둘은 한국서 전문직을 가진 남편들을 만나 잘사니 엄마의 고생과 노력이 헛되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여행도 같이 할 수 있고 용돈도 크게 드릴 수 있는데 엄마가 보이질 않네요. 또 눈물이 납니다.
강익중 작가님은 어머니를 모시고 행복한 여행을 하셨으니 참 부럽습니다. 둘이 앉아서 찍은 사진을 보니까 어머님이 젊고 멋지시고 예쁘시네요. 보고보고 보아도 보고싶고, 듣고듣고 듣어도 듣고 싶은 건 엄마 얼굴과 엄마 목소리입니다. 컬빗이 엄마를 되돌아 보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