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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7) 홍영혜: 이것이 뉴욕이다/ This is New York
빨간 등대 <22> This is New York
귀국하는 친구에게, 나의 손녀에게...
"이것이 뉴욕이다"
This is New York by Miroslave Sasek
오레곤주 포틀랜드에 갔을때 그 곳의 명소인 파웰 책방(Powell’s Books)에 들른 적이 있다. “Larry gets lost in Portland” 그림책을 보게 되었는데, 강아지 래리(Larry)가 길을 잃어버려 포틀랜드의 온갖 곳을 돌아다니면서 주인 아이, 피트(Pete)를 찾는 이야기이다.
여러 번 포틀랜드에 갔었기 때문에 그림책에 나오는 곳들은 대부분 가본 곳이었다. 그런데 엄마 코끼리 등에 아기 코끼리가 업힌 이 조각은 어디지? 궁금해서 찾아가 보았다. 아마도 여행 가이드 책에는 결코 나오지 않을 그런 곳인데, 때로는 이런 엉뚱한 디투어(일탈?)가 미소를 머금게 한다.
그후론 다른 도시에 여행을 가서 시간 여유가 나면 책방이나 근처 도서관에 들러 그 도시에 관한 아이들 그림책을 찾아본다. 제일 빨리, 쉽게 그 도시에 관한 그림이 머리속에 쏙 들어오게 된다. “Larry gets lost…” 는 Michael Mullin이 삽화가 John Skew와 함께, 뉴욕, LA, 보스톤,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시애틀 등 여러 도시를 알리는 그림책 시리즈다.
얼마 전 맨해튼에서 3년 살다 한국으로 귀국하는 친구에게 기념될만한 선물이 없을까 고심하다가 뉴욕에 관한 그림책들을 찾아보았다. “Larry gets lost in New York.” 도 괜찮긴 하지만 Portland 책만큼 맘에 들지 않았다. 뉴욕을 이미 알아서 그런지 나에겐 뻔한 발상인 것 같다. 그리고 일러스트레이션이 여백이 없이 너무 꽉 찬 느낌이 든다. 아이들 책이 팔리려면 우선 어른의 맘에 들어야 한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읽어주니까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도 독자인 셈이다.
뉴욕에 관한 그림책들이 많지만 1960년에 출간된 Miroslav Sasek의 “This is New York”이 나에겐 제일 흥미로웠다. Sasek 은 “This is….” 라는 제목으로 세계 여러 나라의 도시, 파리, 런던, 로마 등에 관한 그림책들을 쓴 작가이다. 일러스트레이션이 세련되면서, 동시에 초등학교 국어책에 철수와 영이의 삽화를 떠올리게 하는 옛날 냄새가 좋다. 짤막한 글 속에서, Sasek이 관찰한 뉴욕을 재치있게, 엉뚱하게 서로 안 어울리는 것들을 연결고리를 맺고 풀어나간 스토리가 재미있다.
60 페이지 되는 그림책은 1626년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언에게 네덜란드인이 맨해튼을 산 이야기로 시작한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자유의 여신상, 타임 스퀘어 등 뉴욕의 명소들도 물론 나오지만, 에어컨디션, 스트라이크, 트리니티 교회, 시청, 빌리지의 맥두갈 골목길 등… 아이들 그림책에는 흔히 등장하지 않는 소재들을 재미있게 연결해 뉴욕의 곳곳을 빠짐없이 소개하고 있다.
1960년에 출간된 책이니까 거의 60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뉴욕에 관한 아이들 책의 고전으로 읽히고 있다. 2003년에 변경된 사실들을 후기로 첨부해서 다시 출간되었다. 이 책을 어렸을 때 읽고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 다시 자녀들과 혹은 손주들과 함께 읽어 주면서, 아직도 옛날모습을 간직한 뉴욕을 떠올리고, 또 지금은 사라져버린 뉴욕을 그리워할 것 같다. 초록색이었다 날씨가 나빠지면 오렌지빛으로 바뀌는 Weather Star(56th St. and Broadway)가 이제는 사라진 것처럼.
이 그림책을 보면서 뉴욕의 매력은 오래된 도시지만, 새것과 낡은것이 놀랍게 잘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로워 맨해튼에 재건된 World Trade Center complex 나, Hudson Yards의 개발은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빠르게 변모시키지만, 60년 전에 Sasek 이 그린 뉴욕의 모습도 아직 많이 남아있다.
Sasek은 뉴욕은 엄청 복잡하고 크지만, 또 대조적으로 뉴욕 안에는 빌리지도 있고 작은 골목길도 있다고 소개한다. 지금 내가 사는 동네, 그리니치 빌리지의 맥두갈 스트리트, 여러 나라 음식점, 맛집들이 즐비한 이 길에는 아직도 그림책에서 보이는 옛날식 이발소가 있다. 빌리지는 그리드 시스템(Grid system)을 따라 바둑판처럼 스트리트와 애비뉴를 따르지 않고, 옛날 길 이름을 쓰고 있고 빗변으로 가는 길이 여기저기 있어, West 4 St. 지하철 역에서 내리면 아직도 길을 헤맨다. Sasek이 이야기 한 대로 그때나 지금이나 뉴욕에서 다닐 때는 up과 down만 잘 알면된다. 지하철 탈 떄 uptown 인지 downtown인지, 엘리베이터 탈 때 up인지 down 인지.
내가 좋아하는 장면은 Sasek이 불자동차 이야기를 하다, 소화전의 다른 용도를 그린 장면이다. 구두통을 앞에 두고 소화전에 앉아 있는 구두닦이 소년, Little Tony. 이 아이가 어른이 되어 의자를 놓고 신발 닦는 가게를 차리고, 또 운이 좋아 성공하면 월 스트리트로 진출하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아직도 뉴욕에는 흙수저가 은수저, 금수저로 바뀔 수 있는 아메리칸 드림이 존재할까?
지금은 소화전에서 앉아서 구두를 닦는 'Little Tony'는 없지만, 망치를 들고 소화전을 부수려는 뱅크시(Banksy)의 'Hammer Boy'(79th & Broadway)는 있다. 센트럴 파크에 사는 조그만 다람쥐는 아직도 뉴욕의 공원이면 어디든지 볼 수 있다.
Sasek은 뉴욕시에 사는 다민족들의 언어로 표기된 상점들을 이야기한다. 독일어, 스페인어, 이탈리어, 러시아어, 중국어, 저자의 촐생지인 체코어도 등장하는데 한국어는 없다. 요즘은 K- food, K-pop, K-beauty가 많이 알려져서 32가 K –town 에 가면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고서적과 지도를 파는 서점으로 유명한 Argosy 책방 윈도우에 전시된 한 아티스트의 그림지도를 보니, K-town이 위치한 곳에 약간 옹색하긴 하지만 태극기가 그려져 있다. Sasek이 오늘 다시 “This is New York” 을 쓴다면 아마 한국상점도 등장했을 것 같다.
친구가 지금쯤 서울에서 짐을 다 풀고 손자를 무릎에 앉혀놓고 “This is New York” 을 읽으면서 뉴욕에서의 추억들을 떠올리고 있을까? 자주 걷던 센트럴 파크도. 나도 이제 2개월 된 손녀가 자라면, 함께 “Larry gets lost in New York”의 발자취를 좇으면서 “This is New York”을 이야기해줄 날을 고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