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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1) 홍영혜: We Are NY Tough
빨간 등대 <30> Coming Home
We Are NY Tough
https://www.governor.ny.gov
"And we're going to get through it because we are New York, and because we've dealt with a lot of things, and because we are smart. You have to be smart to make it in New York... We are tough. You have to be tough. This place makes you tough. But it makes you tough in a good way. We're going to make it because I love New York, and I love New York because New York loves you."
-Governor Andrew M. Cuomo-
3개월의 피난 살림을 꾸려 집으로 오는 길에 "WE ARE NY TOUGH"라고 번쩍이는 도로 전광판을 보니 콧등이 시큰해진다. 뉴욕시에 정이 떨어져 교외로 이사하려고도 생각했는데, 이 반응은 뭐지? 고작 전광판 메시지에 넘어가다니…. 내 생각과는 달리 뉴욕에 일단 발을 들인 한, 뉴욕 사랑은 어쩔 수 없나 보다.
뉴욕 주지사 앤드루 쿠오모가 최근 시민 정신을 고취하는 아트 시리즈의 일환으로 'New York Tough' 포스터를 선보였다. 아티스트(Rusty Zimmerman)가 실제 포스터를 그렸지만, 그 내용과 아이디어는 쿠오모 주지사가 대부분 생각해낸 것이라고 한다. 111일 동안 과학적인 데이터와 통계에 근거한 일일 브리핑은, 코로나 바이러스와의 전쟁터에서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힌 뉴요커들이 잠자리들기 전 벙커에서 듣는 전시 사령관의 지시같았다.
글머리의 인용은 그의 일일 브리핑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포스터의 이미지를 보면 '코비드-19(COVID-19)이라는 산을 넘으면서 그간 뉴욕에서 벌어진 일들을 떠올리게 된다. 커브를 내리는 밧줄을 당기고 있는 사람들 중에 주지사의 세 딸과 애완견이 눈길을 끈다. 초승달에서 "이건 단지 독감일 뿐이야"하고 앉아 있는 트럼프도 보인다. 고공행진하던 커브를 내려왔지만, 아직 뉴욕 확진자는 수백 명에 머물고 있어 경계를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40개주에 달하는 곳에서 코로나 확진자들의 폭증은 제2차 감염을 우려케 한다.
제멋대로 생긴 자유로운 영혼들이 빽빽하게 모여 사는 뉴욕이 하나로 단합한다는 것,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뉴욕이 이만큼 커브를 내려온 것은 한편으론 놀랍다. 길에 보면 아직도 마스크 안 쓴 사람이 많고, 그나마 턱에다 걸거나 코는 열어놓아 쓰나마나 한 사람이 눈에 많이 띄는데, 여기까지 온 것은 대부분의 뉴욕 시민은 각자 위치에서 애써주었으니 가능하지 않았을까?
Photo: C. I . Lee
센트럴파크 근처에 사는 친구가 처음엔 사진을 찍으러 갔다가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LivesMatter)' 시위 현장에서 군중의 힘에 이끌려 세시간을 "Black Lives Matter!", "Don’t Shoot!", "I can’t breathe!"를 외치며 행진을 하고 왔다고 한다. 보내준 사진들 속에 각양각색의 시민들, 함께 따라나선 멍멍이들을 보다 내 시선이 멈춘 이가 있다. 제일 끝에 뒤따라가는 나이 지긋한 분.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위험할 수 있는 이분이 거리를 나섰을 땐, 더 중요한 삶의 문제가 있구나 하고 어떤 메시지보다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You are NY tough."
우리 동네 NYU 주변엔 학생들이 많이 떠나서 상점들이 문을 아직 못 열고 거리가 한산하다. 지난번 줌(ZOOM) 반상회에서 캠퍼스의 중심인 워싱톤 스퀘어 파크는, 북서쪽 Hangman’s Elm 근처에 홈리스들이 더욱 붐비고 마약거래가 빈번해졌다고 들었다. 매일 아침 이곳을 산책하는 친구가 며칠 전에 멀리서 나무 사이에 마치 그림들을 걸어 놓은 듯 보였는데 가까이 가서보니 홈리스들이 줄을 매고 옷들을 걸어 말리고 있다고 한다. 현재 뉴욕시의 139개 호텔(뉴욕 호텔의 20프로 정도)이 임시 홈리스 쉘터로 전환하여 운영된다고 한다. 뉴욕시는 홈리스의 코로나 확산을 방지하고 호텔은 적자를 면하려 스마트하게 머리를 굴리는데 근처 주민들의 시선은 곱지만 않은 것 같다.
이스트 빌리지에는 시위를 틈탄 약탈자들이 파손한 유리창을 보드로 막고,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가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근처 내가 좋아하는 그리스 음식점 Pylos(파일로스)에 주문한 음식을 찾으러 들렸다. 생선 요리가 좀처럼 맛있기 힘든데 피스타치오를 입힌 배스는 내가 좋아하는 메뉴다. 90끼를 줄곧 집밥을 먹다가 얼마 만에 하는 외식인가! 갑자기 소낙비가 한바탕 쏟아졌다. 실내 테이블은 허용이 안 돼 밖으로 나온 테이블은 고작 2개. 나의 비밀병기 Pylos여, 부디 잘 버티어 주기를!
식당들이 야외 공간을 넓히려고 텐트를 치고 화분도 갖다 놓고 꾸미느라 돈들이고 애썼을텐데, 소낙비다. 90도가 넘는 불볕 더위에 손님이 별로 없는 음식점들을 보면 마음이 짠하다. 문을 닫고 시야가 확보될 때를 기다리어야 하는 걸까? 아니면 어떻게서든지 영업을 꾸려나가려는 것이 맞을까?
도어맨이 돌아온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그간 80%정도 아파트 주민들이 이곳을 떠나갔다고 한다. 집에 들어서면서 내가 제일 두려워했던 것은 그간 방치하고 왔던 화초들과의 대면이었다. 그 화초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통나무집 화초들에게 정성을 다했는지도 모르겠다. 새엄마가 자식을 놔두고 와서 의붓 자식에게 잘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심정으로. 그런데 고맙게도 이 화초들이 두 달간 물을 못 주었는데 다 살아있었다. 삐죽이 마른 화초를 보니 어찌나 미안하고 고마운지... 꽃기린 선인장은 가지가 휘어있고 가느다란 가지에는 가시도 자라지 않고 생명을 부지한 것 보면 너희들이야말로 'NY Tough'구나.
우리 아파트에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꼭대기 부분만 보인다. 보통 때는 하얀 불빛이지만 특별한 날에는 그날의 특징을 살려 불빛을 조명한다. 그간 새빨간 불빛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뉴스에서 보았는데 오늘 창문밖에는 무지개빛 조명이 비친다. 6월 28일 프라이드 행진을 기념하는 무지개빛일텐데 뉴욕시로 돌아 온 나를 뉴욕이 기쁘게 맞이하는 것이 아닐까? 다음날도 대낮에 소나기가 한바탕 쏟아지더니 창밖에 쌍무지개가 동쪽 하늘에 걸려있었다.
"I love you. You are NY tough!!"
P. S. 필자는 뉴욕시를 석달 떠나 있었다. 이 곳에 남은 두 친구들이 들려준 이야기들이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되었다. 진정한 NY Tough 두 친구, CI LEE, Ezy Kim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