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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혜/빨간 등대
2020.12.26 14:46

(546) 홍영혜: 작은 기쁨

조회 수 258 댓글 1

빨간 등대 (35) small blessings

 

작은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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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e Cho, Children’s Story Book Series, 2018, Acrylic, 46 x46

 

코로나 백신이 승인되고 이제 터널의 끝이 보이는 것 같은데, 12월이 되니 오랫동안 삭혀왔던  어둡고 침체한 마음을 끌어 올리기가 버겁다. 다시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조심스러워, 답답한 아파트에서 밖에 나가지 못하고 발코니에 나가본다. 옆집은 벽이 막혀서 볼 수는 없지만, 대단한 골초인지 나가면 담배 연기가 자욱할 때가 많다. 짜증이 확 밀려오면서 오피스에 전화 걸어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워도 되는지 알아볼까 하다가 거기서 담배라도 못피우면  그 사람은 혹시 미치지나 않을까, 옷을 주섬주섬 입고 아파트 단지의 정원으로 나온다. 

 

미로를 헤매듯 정원을 왔다 갔다 한다. 어린이도 아니고 청소년도 아닌 30대 쯤으로 보이는 장정 대여섯 명이 스케이트보드를 하나씩 들고 우리 정원에 나타났다. 한숨이 푹 나온다. 이젠 보드까지 피해서 걸어야 하나? 그들은 마당을 구석구석 한참 점검하다가 계단 공사로 입구가 막힌 한 코너에 자리 잡고 한명씩 보드를 타고 있었다. 속으로 “그래도 그 구석을 잘 택했네. 나의 미로 걷기에는 별 지장이 없겠어.” 안심을 한다. 얼마 안 돼 그 청년들이 우르르 보드를 들고 마당을 나서고 있었다. 누가 신고를 했는지 시큐리티 가드가  두명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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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튼 도심의 옹색한 공간에서 이러고 걷고 있는 것은 비단 우리들 뿐 아니라 도시의 새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잎사귀가 다 떨어지고 나니 나무 사이로 새 소리가 유난히 많이 들린다. 사람들 눈을 피해 사철 푸른 나지막한 부쉬(bush)속에 숨어 있는 귀여운 참새들의 재재거리는 소리가 듣기 좋다. 작은 기쁨이 마음 한 구석에서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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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폭설 주의보가 내릴 정도로 바람이 심하게 불면서 밤새 내린 눈이 하얗게 소복이 쌓였다. 창 밖을 내다보니 마당에서 한 아빠가 눈위에 누어 스노우 앤젤을 그린다. 그것을 보고 있던 아이가 발랑 눕더니 조그만 스노우 앤젤을 따라서 그린다. 석달전 쯤 본 손녀 생각이 난다. 아이 출생 증명서가 있어야 주는 놀이터 열쇠는 손녀 태어나자마자 받아 놓았는데 아직 한번도 쓰지 못하고 입구에 얌전히 걸려 있다. 

 

단단히 무장하고 궂은 날에만 가는 워싱톤 스퀘어 파크로 향했다. 날씨 좋은 날은 사람들이 너무 붐벼 맘 편히 걸을 수가 없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아이들이 죄다 나온 것 같다. 군데 군데 눈사람을 만들고 있다. 눈이 건조해서 잘 안 뭉쳐지던데 용케도 만들었네. 다른 한 쪽에서는 그것도 언덕이라고, 얕은 경사가 진 곳을 어떻게 알고선, 가지고 온 눈썰매와 소서(Saucer)로 미끄러져 내려오며 신난다고 아우성친다.  유리공을 흔들고 나면 한바탕 눈가루가 날리는 장식품(Snow Globe Ornamemt)처럼  우리의 무거운 마음이 온통 흩어진다. 아이들도 엄마 아빠도. 보는 나도.

 

 

신영복 선생님의 글 '작은 기쁨'이 생각난다.

 

큰 슬픔을 견디기 위해서

반드시 그만한 크기의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작은 기쁨 하나가

큰 슬픔을 견디게 합니다.

우리는 작은 기쁨에 대하여

인색해서는 안됩니다.

마찬가지로 큰 슬픔에

절망해서도 안됩니다.

우리의 일상은

작은 기쁨과 우연한 만남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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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즈음 어두운 겨울을 밝혀주었던 '작은 기쁨' 하나가 떠오른다. 리버사이드 교회(Riverside Church)에 오랜 전통으로 내려오는 촛불 캐롤 축제(Candlelight Carol Festival)이다. 2016년 크리스마스, 모처럼 우리 가족이 뉴욕에 다 모였다. 엎드리면 코 닿을 거리에 있었던 리버사이드 교회를 추위에 입김을 호호 불면서 함께 팔짱끼고 걸어갔다. 아름다운 본당에서 파이프 오르간과 핸드벨, 하프 연주와 어우러진 성가대의 찬양을 듣고, 캐롤을 함께 불렀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불꽃들이 전 예배당에 밝혀질 때,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부르고, 모두 한 마음으로 기도를 했다. 끝나고 걸어오면서 우리 매년 리튜얼로 하자고 했는데 그 후론 다시 가지 못했다. 올해는 가족들이 만나지 못하는 대신 온라인으로 촛불 캐롤 축제를 함께 할 수 있으니, 코로나가 가져다준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나 할까?

 

*2016년 리버사이드 교회 촛불 캐롤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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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아파트 입구에 내가 만든 꼬마 눈사람.  

“2021년에 희망과 기쁨, 사랑과 평화가 함께 하길 소망합니다.”

 

 

*수 조(Sue Cho) 

미시간주립대학에서 서양화와 판화를 전공하고, 브루클린칼리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뉴욕주 해리슨공립도서관, 코네티컷주 다리엔의 아트리아 갤러리 등지에서 개인전, 뉴욕한국문화원 그룹전(1986, 2009), 리버사이드갤러리(NJ), Kacal 그룹전에 참가했다. 2020년 6월엔 첼시 K&P Gallery에서 열린 온라인 그룹전 'Blooming'에 작품을 전시했다.  

 

홍영혜/가족 상담가  

서울 출생. 이화여대 영문과 대학, 대학원 졸업 후 결혼과 함께 뉴욕에서 와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이후 회계사로 일하다 시카고로 이주, 한동안 가정에 전념했다. 아이들 성장 후 학교로 돌아가 사회사업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Licensed Clinical Social Worker, 가정 상담가로서 부모 교육, 부부 상담, 정신건강 상담을 했다. 2013년 뉴욕으로 이주, 미술 애호가로서 뉴욕의 문화예술을 탐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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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0.12.30 00:53
    저는 홍영혜씨 칼럼의 그림을 보면서 앙리 룻소의 그림을 연상했습니다. 나무나 사람 등등이 꼿꼿히 서있는 것이 룻소의 그림을 생각나게 합니다. 이 그림 속에서 교회 집 사람들 이파리없는 나무들 썰매를 끄는 어른들 자전거를 갖고 서있는 사람 하얀 개와 검둥이-모두 다 자기 나름의 기상을 갖고 꼿꼿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이 당당해 보입니다. 아이들을 썰매에 태우고 있는 부부, 눈을 갖고 놀고있는 아이들도 나만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네요. 이들이 일상의 작은기쁨을 공감하게 합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