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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스코 자살 미스테리와 미술계의 음모 

Mark Rothko's Suicide Mystery & The Conspiracy <2>

말보로갤러리와 집행자 3인의 공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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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 Namuth (1915-1990), Mark Rothko, 1964, Cibachrome, National Portrait Gallery

 

 

색면화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는 1970년 추운 겨울날 아침 맨해튼 작업실에서 시체로 발견됐다. 로스코는 자살로 발표했다. 당시 딸 케이트는 19세, 아들 크리스토퍼는 6세. 유언 집행자 3인과 말보로 갤러리가 남편의 재산을 두고 음모를 꾸미는 것같다고 의심한 아내 메리 엘렌 로스코는 그로부터 6개월 후에 사망한다. 

 

마크 로스코가 남긴 798점의 작품을 두고, 유언 집행자 3인과 말보로 갤러리의 신사 협정으로 로스코의 두 자녀는  작품 1점도 받지 못하게 된다. 아버지의 전 작품이 모두 말보로 갤러리에  싼 값과 부당계약으로 넘어갔다. 이에 딸 케이트 로스코의 소송이 시작됐고, 지난한 법정 투쟁 끝에 법은 선한 자의 편이 된다. 

 

유서 한장 남기지 않고, 면도날로 양팔 동맥을 끊어 피바다 위에 누운 로스코의 최후는 그답지 않은 종지부였다고 친구들은 말한다. 딸 케이트 로스코와 그녀의 변호사 에드워드 로스, 화가 아그네스 마틴과 헤다 스턴 등 친구들도 로스코는 자살한 것이 아니라, 살해됐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누가, 왜 로스코를 살해했을까? 케이트 로스코의 변호사는 여러가지의 가상 시나리오를 갖고 있었으나, 공개되지는 않았다.

 

로스코의 자살 미스테리와 말보로 갤러리의 음모를 2회에 거쳐 연재한다.

 

<1>마크 로스코, 자살인가 타살인가?

<2> 말보로갤러리와 집행자 3인의 공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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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 Rothko, 1964  Photo: Alexander Liberman 

 

 

''나는 돈을 수집하지, 미술품을 수집하지 않는다."

"갤러리를 운영하면서 성공하는 법은 단 하나 뿐. 돈 버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아트 딜러들은 위선자들이며, 곧 문을 닫게될 것이다."

 -프랭크 로이드(말보로 갤러리 대표)-

 

 

로스코 소송 사건 개요

 

1970년 2월 25일 마크 로스코가 세상을 떠났고, 6개월 후 그의 아내 멜 로스코도 사망했다. 아버지 사망 시 딸 케이트는 19세, 크리스토퍼는 6세였다.

 

이들은 1971년 유언 집행자 3인(버나드 라이스, 테오도로스 스타모스, 모튼 리바인)과 말보로파인아트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유언 집행자 3인이 말보로와 로스코 자산을 낭비하고, 자신의 적합한 지분을 사취하는데 공모했다는 혐의다. 

 

마크 로스코가 사망할 당시 남긴 그림은 총 798점으로 그 가치가 최소 3200만 달러였다. 케이트 로스코 측은 소장에서 유언집행자들이 작품의 시장가에서 현저하게 낮은 가격에 팔았으며, 말보로는 100점의 회화를 단 180만 달러에 구입하면서 다운페이 20만 달러에 이를 12년간 무이자로 지불하는 부당 계약을 맺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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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보로 갤러리 대표 프랭크 로이드(왼쪽부터), 회계사 버나드 라이스, 화가 테오도로스 스타모스, 모턴 리바인 교수

 

# 로스코 유언장 집필

1968년 9월 16일 마크 로스코는 유언장 초고를 2페이지에 걸쳐 작성했다. 무인가 법대 출신 회계사 친구 버나드 라이스가 작성에 도움을 주었다. 라이스는 곧 말보로 갤러리의 디렉터가 된다. 

 

# 말보로와 계약 갱신

1969년 2월 21일 로스코는 말보로 파인아트와 8년간 독점으로 작품 판매를 위임하는 계약에 서명한다.

 

# 로스코 죽음

1970년 2월 25일 로스코가 사망하면서 주요작품 798점을 유산으로 남겼다. 6개월 후 로스코의 미망인 메리 앨리스(멜)가 심장병으로 사망한다. 로스코의 유언장에 따라 로스코의 회계사였던 말보로 갤러리 디렉터 버나드 라이스, 친구이자 화가 테오도로스 스타모스(*1971년부터 말보로 화랑 소속이 된다), 그리고 인류학교수이자 로스코 아들 크리스토퍼의 가디언(*단기)인 모턴 리바인을 언 집행자로 지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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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

 

# 작품 소유권 말보로에

로스코는 사망 후 주요 후견자들이 자신의 작품에 고가를 지불할 것으로 예상하고, 자식들의 재정적 안전을 위해 주요 회화를 증여했다. 하지만, 로스코 사망 후 케이트와 크리스토퍼는 말보로 갤러리 창립자 프란시스 케네스 로이드로부터 1969년 계약에 따라 로스코의 회화 전작을 소유한다고 통지했다. 

 

# 부당계약

유언 집행자 3인은 말보로에 798점 중 100점은 180만 달러에 팔고, 20만 달러 선금에 12년간 무이자로 갚는 조건과 나머지 698점은 일괄 커미션 50%를 가져가는 계약을 맺는다. 로스코가 사망한 해 초기 작품 가격은 두배로 뛰었으며, 경매에서 8만 달러 이상에 팔렸다. 당시 798점에 대한 가치는 최소 3200만 달러로 평가됐다. 말보로는 100점을 시장가 이하로 사가면서, 커미션은 30% 관례를 무시하고, 50%로 부풀려 가져가기로 했다. (*유언 집행자는 총 거래액의 2%를 나누어갖게 된다.)

 

# 케이트 로스코 소송 제기

1971년 케이트 로스코는 유언집행자 측에 판매 계약서를 공개하고, 회화를 가족에게 반환하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 절차 중 유언 집행자 3인과 말보로가 다양한 방법으로 재산을 사취해왔다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 말보로는 로스코 작품의 가치를 절하하기 위해 스위스와 리히텐슈타인의 은행구좌를 통해 돈세탁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말보로 측은 평가절하된 로스코 작품을 비축해놓고, 로스코 사망 후 가치를 높여왔다. 로스코 사망 후 구입해간 것으로 알려진 100점도 사실은 말보로에서 보유하다가 돈 세탁 후 실제 구매자들에게 5-6배로 올려 팔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이 소송 중  판매금지 명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말보로와 유언 집행자들은 지속적으로 작품을 팔아왔던 것이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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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탄뮤지엄의 마크 로스코 벽.

 

# 프랭크 로이드, "나는 모른다"

로이드는 법정에서 대부분 "나는 기억을 못합니다. 나는 자세한 것은 다루지 않는다. 난 변호사가 아니므로, 내 변호사에게 물어보라"고 진술했다. 이 재판으로 로이드는 유럽의 리히텐슈타인에 정교한 유령회사 네트워크를 오픈하고, 스위스 은행에 구좌를 개설해서 작품 판매 수익금을 빼돌린 것으로 드러났다. 

 

 

# 법원, 작품 반환 명령

궁극적으로 1975년 법원은 말보로 측이 로스코 자녀를 사취했다고 기소했다. 이와 함께 말보로 측에는 900만 달러의 피해보상금과 비용을 지불하고, 나머지 658점을 반환할 것을 판결했다. 하지만, 말보로 측은 이미 팔린 작품들로 컬렉터 손에 들어갔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끝내 반환되지 않은 '마티스에게 경의를(Homage to Matisse, 1953)'는 훗날 경매에 나와 2240만 달러에 팔렸다.  

 

결국 3인의 유산 집행자는 제거됐고, 말보로와의 계약은 폐지됐다. 로스코의 작품 2천여점의 절반은 로스코 재단, 절반은 자녀의 몫으로 나누어졌다. .

 

# 말보로의 몰락

프랭크 로이드는 920만 달러의 배상금 중 1/3만 로스코 자녀에게 지불했다. 1972년 로이드는 말보로에서 손을 떼고, 바하마에 머물던 중 이 사건의 증거를 조작한 혐의로 맨해튼 지방검사에 의해 기소됐다. 로이드는  몇년간 도망자로 살다가 1983년 3가지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최고 4년형을 받을 수 있었지만, 뉴욕시 학생들을 위한 특강 등 장학기금을 설립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로이드는 말년에 실어증에 걸려 고생하다 1998년 4월 사망했다.

 

당시 뉴욕의 파워 넘버 1 갤러리였던 말보로는 평판 추락으로 로버트 마더웰, 아돌프 고틀리에브, 데이빗 스미스 등 블루칩 작가들은 다른 갤러리를 찾아 갔다. 로스코 작품은 페이스 갤러리에 넘어갔다.

 

# 로스코의 자녀들과 재단

케이트 로스코는 시카고대를 거쳐 브루클린칼리지에서 병리학을 전공한 후 혈액은행을 운영했다. 일리야 프리젤 존스홉킨스대 국제정치학 교수와 결혼, 세자녀를 두었다. 크리스토퍼는 예일대 졸업 후 미시간주 앤아버에서 임상 심리학자로 일하다가 2015년 아버지에 관한 책 'Mark Rothko: From the Inside Out'을 출간했으며, 전시, 재단 관리와 강연을 하고 있다.

 

마크로스코재단(Mark Rothko Foundation)은 1984년 로스코의 작품 1천여점을 내셔널갤러리, 메트뮤지엄, MoMA, 구겐하임, 휘트니뮤지엄 등 19개 뮤지엄에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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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영화 '리걸 이글스(Legal Eagles, 1986)'과 BBC 영화 '로스코 음모론: 자살&미술계의 사기, 1983).

 

# 영화 (할리우드 & BBC)

 

1986년 할리우드에서로스코 소송 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이반 라이트만 감독의 '리걸 이글스(Legal Eagles)'이 나왔다. 로버트 레드포드, 데보라 윙거, 다릴 한나가 출연했다. 

영국 BBC에서는 1983년 로스코의 죽음과 소송에 관한 영화가 방영됐다. 리 셀데스의 저서 '마크 로스코의 유산'을 원작으로, 마이클 베이커가 시나리오를 쓰고, 폴 와트슨이 연출한 '로스코 음모론: 자살& 미술계의 사기(The Rothko Conspiracy - Suicide & Scams In The Art World, 1983)'는 유튜브에 올라 있다. 

 

*The Rothko Conspiracy - Suicide & Scams In The Art World (1983)

 

 

000.jpg *마크 로스코 자살 미스테리와 미술계의 음모 <1> Mark Rothko's Suicide Mystery & The Conspiracy

*마크 로스코(1903-1970)의 생애

*마크 로스코 필립스컬렉션(DC) 

*내셔널 갤러리(DC) 마크 로스코 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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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3.11.19 10:12
    색면화가 마크 로이드의 자살 미스테리를 읽고 소름이 끼쳤습니다. 타살이냐 자살이냐를 떠나 때로는 아름다운 미술세계마져도 돈을 쟁취할려고 흡혈귀가 됐구나하는 공포감을 느꼈습니다. 로스코의 죽음을 읽으면서 미술계의 음모가 마피아를 능가하는 무서움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타살이냐 자살이냐를 알고 싶어서 이끔직한 사건을 몇번을 읽었습니다. 로스코의 개인회계사며 로스코 재단의 공동 디렉터 겸 말보로 파인 아트 디렉터인 버나드 라이스가 주범으로 부각됐지만 석연치는 않았습니다. 작품을 쟁취해서 판매하여 거금을 쥐려고 청부살해도 서슴치 않고 하는 미술계의 음모가 있었다는 것이 무섭네요. 대가의 작품을 표절한 예는 있었지만 살해했다는 기사는 못 읽었습니다.
    다행히 로스코의 딸인 케이트 로스코가 의심이가는 3인방을 고소해서 승소를 거둠으로써 단원이 막을 내려서 마음이 안정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