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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마크 로스코가 열광했던 화가 밀턴 에버리 

MILTON AVERY, The American Fauvist 

 

March 5 – June 5, 2022

Wadsworth Atheneum Musem of Art, Hartford, 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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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ton Avery, Husband and Wife, 1945/ 밀턴과 샐리 에버리 부부

 

'미국의 야수파(American Fauvist)'로 불리우는 밀턴 에버리(Milton Avery, 1885-1965) 회고전이 3월 5일부터 6월 5일까지 커네티컷주 하트포드의 워즈워스 아테니움(Wadsworth Atheneum)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텍사스주 포트워스의 현대미술관(Modern Art Museum in Forth Worth, 11/7-1/30 )에서 시작한 이 회고전은 워즈워스 아테니움(3/5-6/5)을 거쳐 런던 로열아트아카데미(Royal Academy of Art, 7/15-10/16)로 순회 전시된다. 

 

밀턴 에버리는 하트포드 외곽에서 성장했으며, 아트소사이어티스쿨(School of the Art Society)와 커네티컷 아트스튜던트리그(Connecticut League of Art Students)에서 수학하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 1915년엔 워즈워스 아테니움의 부속 갤러리에서 열린 전시에도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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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ton Avery, Wadsworth Atheneum Museum of Art, Hartford, CT

 

워즈워스 아테니움 회고전에선 1910년 초부터 1960년대까지 70여점의 작품과 함께 에버리의 미술적 진화과정을 추적한다. 워즈워스 아테니움은 1844년 개관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아트 뮤지엄으로, 5만여점의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 

https://www.thewadsworth.org

 

한편, 샐리 미셸의 개인전 'Sally Michel: Reshaping Realism, 1950-1985'이 맨해튼 D. Wigmore Fine Art(152 West 57th St.)에서 6월 10일까지 열린다.

https://dwigmore.com/currentexhibition.html

 

 

밀턴 에버리(1885-1965)에 대해 알아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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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ton Avery, Self-portrait, 1941/ 자화상 옆의 밀턴 에버리

 

#무소속의 화가

밀턴 에버리는 어느 미술사조에도 속하지 않는 무소속 화가였다. 그는 추상표현주의나 색면화 등 이즘(isms)에 열광하지 않았다. 에버리는 Art Digest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따라야할 규칙이 없다"고 밝혔다. 당대를 풍미했던 추상표현주의 사조에도 반대했다. 밀턴 에버리의 생애는 미 리얼리즘과 추상표현주의의 부상으로 가려지게 된다. 그의 작품은 학계에는 너무 추상적이었으며, 추상표현주의 학파에선 너무 사실주의적이었다. 

 

유행사조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그의 작품은 사망 후 수십년 동안 화가들로부터 인기를 얻었다. 후대 미술계에서는 그를 '미국의 야수파(American Fauvist)'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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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ton Avery, Wadsworth Atheneum Museum of Art, Hartford, CT

 

#마크 로스코, 친구이자 멘토

 

이버리는 1920년대 후반 젊은 화가 아돌프 고틀립(Adolph Gottlieb, 1903-1974)과 마크 로스코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의 친구이자 멘토가 됐다. 마크 로스코는 MoMA의 알프레드 H. 바(Alfred H. Barr Jr.) 관장이 "현재 가장 중요한 작가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Avery"라고 대답했다고 전해진다. 로스코는 1965년 에버리의 장례식 추도사에서 읊었다.

 

"그는 완전한 사랑스러움의 시(poetry)입니다.  우리 세대에 찬양된 이들은 몇몇 존재하지만, 붓의 마지막까지 캔버스의 모든 구멍을 관통하는 시의 필연성을 가진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한편, 고틀립은 에버리에 대해 "하천을 거스르는 고독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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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ton Avery, Wadsworth Atheneum Museum of Art, Hartford, CT

 

#16세의 소년가장

 

밀턴 에버리는 1885년 업스테이트 뉴욕 알트마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가죽 가공 기술자였던 아버지가 나무 절단 사고로 사망하고, 형 조지와 파비앙도 목숨을 잃게된다. 누이의 남편까지 사망하며 밀턴은 가족 중 유일한 남자로 남았다. 그는 여자 9명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16살 때부터 공장 노동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이즈음 코네티컷아트스튜던트연맹(Connecticul League of ARt Students) 야간 수업을 들었다.

 

이후엔 하트포드의 보험회사 트래블러(Travelers)엣 야간 서류 담당원으로 일하며 낮에는 하트포드미술학교(Art Society of Hartford)에서 수학했다. 에버리는 1982년 휘트니뮤지엄 회고전에서 자신을 '기분이나 영감과 무관하게 밤낮으로 일하는 구두 수선공'에 비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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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ly, Milton, and March Avery in Vermont, 1938, Photo: Consuelo Kanaga/ Sally Michel Avery, Portrait of Milton Avery, 1961. National Gallery of Art

 

#삽화가 샐리 미셸과의 만남

 

1924년 매사추세츠주 글로스터의 예술가촌에서 거주작가를 마친 에버리는 공짜 스튜디오와 숙박시설을 이용하면서 복도에서 늘 마주치던 17세 연하의 샐리 미셸(Sally Michel, 1902-2003)와 사랑에 빠졌다. 에버리는 40대의 무명화가, 브루클린 유대인가정 출신 미셸은 갓 고등학교 졸업한 화가 지망 소녀였다. 이들은 뉴욕으로 이주해 1926년 가족 없이 브루클린 법원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미셸은 뉴욕아트스튜던트리그에서 수학한 삽화가로 뉴욕타임스, 메이시백화점에서 일하면서 생계를 책임졌고, 에버리는 비로소 전업 화가가 됐다. 작업실도 따로 없어서 거실에서 그렸다. 그러나, 대공황으로 부부는 친구들이 버린 캔버스를 가져다가 그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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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ton Avery, Wadsworth Atheneum Museum of Art, Hartford, CT

 

#뉴욕에서 피카소, 마티스 흡수

 

에버리는 뉴욕에서 유럽의 모던아트에 눈을 떴으며, MoMA 등지에서 본 피키소와 마티스의 영향을 받게 된다. 피카소의 장미시대 작품을 본 후 더 미묘한 컬러를 만들어냈고, 마티스의 색조 처리과정에서 영감을 받아 비현실적인 컬러를 대담하게 사용했다. 이후 에버리의 캔버스엔 먼지같은 청색의 언덕, 창백한 녹색과 노란색의 인물들이 나타났고, 그림은 추상 쪽으로 기울게 된다. 또한 독일 표현주의의 영향도 받았다. 이즈음 에버리는 뉴욕아트스튜던트 리그에서 수학했다.

 

추상표현주의 화가 한스 호프만(Hans Hoffmann)은 "에버리의 색상은 실제로 자신만의 고유한 사랑스럽고, 부드러으며, 때로는 놀랍게도 시큼하고, 그러면서도 항상 미묘하고, 풍부하다"고 밝혔다. 휘튼니뮤지엄 큐레이터 바바라 하스켈은 "에버리의 풍경을 바라보면,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경험은 혼자서 땅과 바다와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라면서 "에버리의 귤빛 바다, 루비색 숲, 황금빛 인테리어는 보는이들에게 휴식을 제공한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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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ton Avery, Blue Trees, 1945

 

#작가로서 인정

 

밀턴 에버리의 작품을 처음 구매한 뮤지엄은 1929년 워싱턴 D.C.의 필립스 컬렉션(The Phillips Collection)이었다. 필립스컬렉션은 1944년 그의 첫 뮤지엄 회고전을 열었다. 1935년 나이 쉰이 되어서야 밀턴 에버리는 비로소 재정적인 안정기에 들어서게 된다. 마티스, 후안 미로, 앙드레 드렝 등을 거래해온 아트딜러 발렌타인 더덴싱(Valentine Dudensing)과 계약했으며, 1943년엔 더 큰 갤러리 폴 로젠버그(Paul Rosenberg)에서 매년 50점씩 구입하기로 했다. 이때부터 에버리의 그림은 장식적인 선과 붓 자국을 버리고, 다크 컬러와 평면적이며 밝고, 시적인 표현이 캔버스를 메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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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턴, 샐리 에버리 부부와 딸 마치/ March in Babushka, 1944

 

#가족과 자연은 그의 영감

 

그의 영감은 가족과 자연이었다. 에버리는 말년에 부인(Sally)과 딸(March) 등 가족과 해안선, 숲 등 자연 풍경을 담은 추상화를 그렸다. 에버리는 1949년에 이어 1962년 두번째 심장마비를 겪었으며, 1964년 2월부터 10개월간 브롱스 몬테피오레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1965년 1월 3일 수면 중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79세였다. 장례식엔 아티스트와 친구 600여명이 모였으며, 우드스탁의 예술가 공동묘지에 묻혔다. 부인 샐리는 2003년 사망했으며, 딸 마치 에버리(March Avery)도 화가가 됐다. 

 

에버리의 열렬한 추종자였던 마크 로스코는 1965년 에버리 추도사에서 "그의 레퍼토리는 무엇이었을까요? 그의 거실, 센트럴파크, 부인 샐리, 딸...그의 친구들, 작업실, 집안에 흐트러진 것들로부터 마음을 사로잡는 서정성, 종종 이집트같은 영원하고도 기념비적인 위대한 캔버스가 만들어졌습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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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ton Avery, Wadsworth Atheneum Museum of Art, Hartford, CT

 

#유머는 그림의 필수요소

 

그의 그림에서도 엿볼 수 있지만, 밀턴 에버리는 유머감각이 뛰어났다고 한다. 그는 정기적으로 농담을 했다. 예를 들어 자신의 예술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그림을 그릴 수 있는데, 왜 말을 합니까?"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유머는 그의 그림에서 필수요소였다. 형태의 기이함, 윤곽의 유쾌하고, 어색함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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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ton Avery, Wadsworth Atheneum Museum of Art, Hartford, CT

 

#1960, 1982 휘트니뮤지엄 회고전

 

1960년 휘트니뮤지엄에서 열린 회고전은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지 못했다. 뉴욕파 추상표현주의가 풍미했던 당시 주요 회화는 무조건 추상화여야만 했다. 

 

1982년 휘트니뮤지엄은 두번째 에버리 회고전을 열었다. 회화 86점, 종이작품 40점, 자화상 16점을 소개한 회고전은 피츠버그, 포트워스, 버팔로, 덴버, 미니애폴리스로 순회됐다. 비평가 힐턴 크레이머(Hilton Kramer)는 "그는 의심할 여지 없이 우리 시대 최고의 컬러리스트였다... 그의 동시대 유럽맞가 중 마티스만이(물론 그의 아트에 많은 빚을 지고는 있지만), 이점에서 더 큰 업적을 남겼다"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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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lton Avery, Wadsworth Atheneum Museum of Art, Hartford, CT

 

#영향을 준 작가들 

 

에버리의 혁신적인 컬러와 시적인 팔레트, 균형은 마크 로스코, 아돌프 고틀립, 그리고 바네트 뉴만(Barnett Newman), 미묘하고도 강력한 표현방식은 후대 인물화가 알렉스 카츠(Alec Katz)와 앨리스 닐(Alice Neel) 등에게 영향을 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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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ic Banana 

 

Wadsworth Atheneum

600 Main Street, Hartford, CT 06103  

https://thewadsworth.org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미술관 워즈워스 아테니움, 하트포드, CT

http://www.nyculturebeat.com/?document_srl=3511026&mid=Travel2

 

*워즈워스 아테니움 컬렉션1

http://www.nyculturebeat.com/?mid=Art2&document_srl=3519794

 

*워즈워스 아테니움 컬렉션 2

http://www.nyculturebeat.com/?document_srl=3519820&mid=Art2

 

*워즈워스 아테니움 컬렉션 3

http://www.nyculturebeat.com/?document_srl=3519851&mid=Art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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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2.06.03 14:16

    밀턴 에버리라는 화가를 알게해 주셨습니다. 새로운 분야의 화가들을 소개해 주시고 안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밀턴 에버리의 작품은 기하학적 느낌을 주네요. 어느 미술사에도 속하지않은 무소속의 화가라는 점이 끌립니다. 그런데 왜 야수파라고 불리울까요? 에버리의 그림이 야수파의 그림의 흐름과 같아서 일까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뮤지움이 뉴욕의 메트로폴리탄으로 알았는데 코네티컷주에 있는 하트포드의 워즈워스 아테니움이란 사실도 알게됐습니다. 5만여점의 작품을 갖고 있는 이 뮤지움을 더 늙기전에 보고 느낌을 가져 볼껍니다. 컬빗이 올려준 예술품을 소장한 유서깊은 박물관을 리스트에 작성했습니다. 행복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컬빗을 읽고 기다리는 것도 행복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워즈워스 뮤지움이 1842년에 창립됐고 1844년에 개관했다고 돼있는데 어느 년도를 주로 얘기하는지요?
    -Elaine-

  • sukie 2022.06.03 14:19
    Elaine 선생님 피드백 감사합니다!
    밀턴 에버리가 어떤 화풍에 속하기 거부했더라도, 비평가들과 언론은 "XXX"라고 부르기를 좋아하지요:) 에버리는 피카소, 마티스, 독일 표현주의 영향을 두루 받았는데, 특히 야수파 마티스의 성향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야수파는 강한 붓질, 대담한 컬러 사용, 대상에 대한 간략화와 추상화가 특징입니다. 표현주의에 가깝지요.
    뮤지엄은 아마도 창립연도를 공식으로 하는 것 같습니다. 메트뮤지엄도 1870년 창설됐지만, 건축 후 개관은 2년 후였다고 합니다.
    -Suk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