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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뮤지션, 아티스트, 인권운동가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 

퀸즈 코로나 하우스뮤지엄, 갤러리, 콘서트...다큐멘터리, 뮤지컬 제작 

 

1963년 서울 워커힐 호텔 오프닝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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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뮤지션 최초로 1949년 2월 21일자 '타임'지 표지를 장식한 루이 암스트롱  https://www.instagram.com/louisarmstronghouse / 암스트롱 센터 특별전 'Here to Stay' 입구.

 

"I see trees of green/ Red roses too/ I see them bloom/ For me and you/ And I think to myself/ What a wonderful world..."

(저는 푸른 나무를 봐요/ 빨간 장미도요/ 저와 당신을 위해/ 그들이 피어나는 걸 보아요/ 그리고 저는 생각해요/ 참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Louis Armstrong, 'What a Wonderful World', 1967-

 

 

트럼펫을 연주하며 걸죽하고, 따뜻한 허스키 보이스로 '아름다운 세상'을 노래했던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 1901-1971). 평생 3천여개의 레코드를 남긴 20세기 위대한 재즈 뮤지션 루이 암스트롱은 뉴올리언스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다.

 

퀸즈 코로나엔 루이 암스트롱과 코튼클럽의 가수 출신 네번째 부인(1942-71) 루실 윌슨(Lucille Wilson)의 보금자리가 뮤지엄(Louis Armstrong House Museum)으로 열려있다.   

 

왜 루이 암스트롱은 퀸즈 코로나에 정착했을까? 

1920년대부터 1933년 금주법이 폐지되기 전까지는 밀주점들이 운영되던 맨해튼 할렘의 133스트릿이 재즈 클럽의 메카였다. 할렘 르네상스 시대 이 거리는 흑백 인종간 교류가 활발한 '스윙 스트릿(Swing Street)'라 불리웠다. 금주법 폐지 후 맨해튼 미드타운 CBS 스튜디오가 있던 52스트릿 5애브뉴와 7애브뉴 사이에 나이트 클럽이 속속 오픈하며 '스윙 스트릿'이 되었다.

 

빌리 할러데이(Billie Holiday),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 델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 찰리 파커(Charlie Parker),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 등 당대의 명 재즈 뮤지션들이 드나들었다. 델로니어스 몽크의 "52nd Street Theme"은 이 거리를 노래한 재즈 찬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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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flushingtownhall.org/queens-jazz-trail-map.php

 

한편, 퀸즈는 재즈 뮤지션들에게 삶의 터전이었다. 재즈 트럼펫 주자 디지 길레스피는 플러싱에 살다가 암스트롱 집에서 2 블럭 떨어진 코로나 106스트릿으로 이주했고, 클라리넷 주자 베니 굿맨(Benny Goodman)과 재즈 오케스트라 지휘자 글렌 밀러(Glenn Miller)는 잭슨 하이츠에서 살았다. 재즈싱어 빌리 할러데이는 자메이카 지역, 엘라 피츠제럴드는 엘름허스트에서 키세나 파크 인근 세인트 알반스, 재즈 색소폰주자 존 콜트레인도 세인트 알반스에 살았다. 플러싱타운홀(Flushing Town Hall)에선 '퀸즈 재즈 트레일(Queens Jazz Trail)' 지도를 제작했으며, 루이암스트롱 하우스뮤지엄에서도 이를 테마로 콘서트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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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암스트롱 하우스뮤지엄(붉은 벽돌 집) 가이드의 그룹 투어에 참가한 방문객들. 

 

브롱스가 고향인 루실 윌슨은 평생 유랑하며 연주하는 남편 루이 암스트롱을 위해 코로나에 깜짝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장식했다.  암스트롱의 삶과 음악이 녹아있는 그의 하우스가 2003년 뮤지엄으로 열려있다. 루이암스트롱 하우스뮤지엄(Louis Armstrong House Museum)은 가이드 투어를 신청해야만 둘러볼 수 있으며,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때문에 내부 사진을 담을 수 없었다. 

 

루이 암스트롱이 1943년부터 1971년 사망할 때까지 부인 루실과 살았던 2층짜리 벽돌집 거실, 침실, 목욕탕, 키친, 그리고 덴(루이의 동굴)까지 아르데코 스타일의 우아한 가구, 호화스러운 욕실, 주문 제작된 청록색 주방 기구, 반사 벽지, 중국풍의 가구, 일본 이마리 접시 등의 다양한 스타일의 인테리어에  트럼펫, 피아노, 초상화, 조각, 각 나라 공예품까지 루이와 루실의 취향을 고스란히 나타내는 집을 구경하며, 루이 암스트롱의 내면을 여행하는 느낌을 준다. 가이드의 안내로 집 안을 구석구석 살펴볼 수 있다. 루실 윌슨은 1983년까지 사망 당시까지 12년간 홀로 살다가 집을 뉴욕시에 기부했다. 오늘날 하우스는 퀸즈칼리지에서 관리하고 있다.  

 

루이암스트롱 하우스 투어(1시간)는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정시에 시작되며 인원은 10명으로 제한한다. 특별전 관람을 겸한 티켓은 $20(일반), $14(65세 이상/학생)이다. 7트레인을 타고 코로나 플라자(103 St-Corona Plaza)역에서 내려 104스트릿, 37애브뉴(37 드라이브와 37 로드를 지나서)에서 우회전 107스트릿에서 좌회전해 들어가면 중간 블럭에 뮤지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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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트롱 센터 전경

 

건너편 암스트롱 센터(Armstrong Center, 34-49 107th St. Corona, NY)에선 특별전 'Here to Stay'가 열리고 있다. 워싱턴 DC의 재즈 엣 케네디센터( John F. Kennedy Center for the Performing Art)의 예술감독으로 2019년 휘트니뮤지엄에서 전시한 재즈 피아니스트 제이슨 모란(Jason Moran)이 큐레이터로 기획한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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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e to Stay" at the Armstrong Center

 

이 전시는 루이 암스트롱을 혁신적인 뮤지션, 철저한 기록 보관자, 완벽한 협력자, 그리고 커뮤니티 구축자로서 그의 50년 음악경력을 조명한다. 중앙의 테이블은 디지털로 암스트롱의 음악 경력에서 패션, 여행지, 그리고 음식 이야기까지 다양한 면모를 선택해 볼 수 있다.

 

1968년 'What a Wonderful World' 출반 후 1980년대 후반 골드 레코드, 코로나에서 28년간 살았던 루이 암스트롱이 동네 말년 몇주간 동네 주민들에게 헌사한 6페이지의 에세이 '우리 이웃(Out Neighborhood)' 필체, 그레이스 켈리와 공연한 '상류사회(High Society, 1956),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공연한 '헬로 달리!(Hello, Dolly!, 1969)' 등 암스트롱이 출연한 영화 모음, 콜라쥬 아티스트 등 '르네상스 맨' 루이 암스트롱의 면모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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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7일 루이암스트롱 하우스뮤지엄 가든에서 열린 재즈 콘서트

 

카플스 제퍼슨 아키텍츠(Caples Jefferson Architects)가 설계한 암스트롱 센터는 루이와 루실 암스트롱의 자료 6만여점을 보관하고 있으며, 갤러리와 뮤지엄 숍, 그리고 75석 규모의 공연장도 갖추고 있다. 여름철엔 루이암스트롱 하우스 옆의 정원에서 무료 재즈 콘서트가 열린다. 

https://www.louisarmstronghouse.org  

 

*Louis Armstrong - Hello Dolly

https://youtu.be/l7N2wssse14?si=9on_FWFTgWIJoS-R

 

 

루이 암스트롱에 대한 흥미로운 사실 몇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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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e to Stay" at the Armstrong Center

 

#이름 발음은 루이? 루이스? 

루이 암스트롱? 루이스 암스트롱? 생전에 그는 자신의 이름을 '루이스'라 발음했으며, 1964년 히트 레코드 "헬로 달리(Hello, Dolly)'에선 자신을 "This is Lewis, Dolly"라 노래한다. 하지만, 1933년 녹음한 레코드는 '웃는 루이(Laughin' Louie)'였다. 부인 루실을 비롯, 많은 방송인들, 팬, 지인들은 그를 '루이'라고 불렀다. 

 

#입이 큰 아이의 별명 

어릴 적 루이 암스트롱은 별명이 많은 소년이었다. 그의 거대한 입으로 인해 “게이트마우스(Gatemouth, 대문같은 입),”  “디퍼마우스(Dippermouth, 하마 입),” 그리고 새첼마우스(Satchelmouth, 가방처럼 큰 입)," 줄여서 "새치모(Satchmo!)”라 불리웠다. 뮤지션들은 그를 "팝스(Pops)"라는 애칭으로 부르기도 했다.

 

#유대인 가족의 도움 

뉴올리언스에서도 '전쟁터(Battlefield)'로 불리운 빈민가에서 태어난 루이 암스트롱은 아버지가 가족을 버리고, 엄마가 매춘으로 생계 유지를 할 때 할머니에게 길러졌다. 어릴 적 리투아니아 이민자 출신 유대인 카노프스키 가족을 위해 일했다. 루이는 폐품을 줍고, 석탄을 나르며 끼니를 때웠으며, 카노프스키씨는 전당포에서 첫 악기인 5달러 짜리 코넷을 살 돈을 빌려주었다.(암스트롱은 1926년 스물다섯살 때 트럼펫으로 악기를 바꾸게 된다.) 암스트롱은 카노프스키 가족을 평생 고마워하며 '다윗의 별' 목걸이를 차고 다녔다고 한다.   

 

#첫 음악 교육은 소년원에서 

루이는 어린 시절 또래들과 4중창단을 만들어 거리에서 노래하며 돈을 벌었다. 그런데, 13살 즈음 뉴이어스이브에 친척의 총을 허공에 발사했다가 소년원에 수감된다. 이곳에서 18개월간 음악교사 피터 데이비스(Peter Davis)로부터 코넷 연주법을 배워 관악밴드의 연주자가 된다. 소년원은 암스트롱의 음악학교가 됐다.  

 

#뉴올리언스-시카고-뉴욕 

암스트롱은 1922년 뉴올리언스를 떠나 시카고에서 활동했다. 킹 올리버(King Oliver)의 크레올 재즈 밴드(Creole Jazz Band)에서 활동하며 재즈 피아니스트였던 두번째 부인(1924-38) 릴 하딘(Lil Hardin)를 만났다. 그녀의 조언으로 1924년 뉴욕으로 활동 무대를 옮겨 밴드 리더 플레처 헨더슨(Fletcher Henderson)의 솔로이스트로 활동을 시작하며 성공을 거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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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e to Stay" at the Armstrong Center

 

#즉흥 노래 '스캣' 개발 

루이 암스트롱은 가사 없이 즉흥적으로 음을 내는 보컬 양식인 스캣(scat)을 대중화한 뮤지션이었다. 즉흥 스타일인 '핫 재즈(hot jazz)'의 선구자였던 그는 전통 재즈에서 스윙과 모던 재즈(cool jazz)로 전환하는 분수령이 된다.   Charlie Parker, Miles Davis, and Sonny Rollins 

 

#흑인 인권 외면한 아이젠하워 비판

루이 암스트롱은 인종차별에 격한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종종 흑인 뮤지션들로부터 '엉클 톰'이라고 조롱 당했다. 그러나, 1957년엔 아칸소주에서 백인 고교에 등교하는 것을  방해당한 흑인 학생들 '리틀록 9(Little Rock Nine)'에 대해 당시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비판했다. 그는 "남부에서 우리를 대우하는 방식을 보면 정부는 지옥에 갈 수 있다"며 이에 개입하지 않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이중성, 용기가 없음에 대해 비판했다. 그리고 더 이상 미 정부가 후원하는 순회 공연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비틀즈 열기를 식히다 

1964년, 비틀즈가 한창 빌보드 차트를 달구고 있을 때 62세의 루이 암스트롱은 뮤지컬 '헬로, 달리!'의 타이틀 곡으로 빌보드 핫 100 1위를 차지하며 비틀즈의 'Can't Buy Me Love'를 제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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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서울 워커힐 호텔 오프닝 콘서트를 위해 방문해 한복에 갓을 쓰고 촬영한 루이 암스트롱.

 

#한국(1963년) 등 65개국서 연주 

재즈 앰버서더였던 루이 암스트롱은 유럽,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까지 세계 65개국을 방문해 연주했다. 1963년엔 서울의 워커힐 호텔 오프닝에 초청되어 연주했고, 한복과 갓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 

 

*대한뉴스 제 412호-워커힐 개관 <YouTube>

https://youtu.be/OMHdiMkM2G0?si=HM87vJuy3kAhb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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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e to Stay" at the Armstrong Center

 

#What a Wonderful World, 사후의 성공

루이 암스트롱은 생전에 그의 대표곡 'What a Wonderful World'가 히트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1967년 발매 당시 홍보 부족으로 미국 내에서 1천장도 팔리지 않았다. 하지만, 영국에선 싱글차트 1위에 올라가는 성공을 거두었다. 1988년 배리 레빈슨 감독, 로빈 윌리엄스가 라디오 DJ로 등장하는 영화 '굿모닝 베트남(Good Morning, Vietnam)'에 깔리면서 싱글로 재발매 되어 빌보트 차트 32위에 오르고, 호주에선 1위를 차지했다. 반전영화에 아이러니한 노래가 사용된 케이스다. 

 

*Louis Armstrong - What a Wonderful World (Good Morning, Vietnam's Soundtrack

https://youtu.be/FzFIDTs3WtI?si=aPdX83icrnV1l0G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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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e to Stay" at the Armstrong Center

 

#콜라쥬 아티스트

루이 암스트롱은 뮤지션일 뿐만 아니라 아티스트였다. 그는 사진, 편지, 홍보 자료, 신문 기사 등을 사용해 집 벽, 스크랩북 및 암스트롱 아카이브의 일보인 500여개의 릴투릴 테이프 박스를 장식했다. 

 

#네번 결혼, 무자식

루이 암스트롱은 네번 결혼했지만, 자식은 없었다. 그러나, 아이들을 무척 좋아했다. 루이가 연주 여행에서 돌아오면 아이들은 밴드를 실은 버스 주변에 모여들었고, 루이의 트럼펫과 가방을 집까지 옮겼다. 부인 루셀은 루이가 아이들이 모여 TV 서부극을 보는 동안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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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e to Stay" at the Armstrong Center

 

#팥밥 애호가 “Red Beans & Ricely Yours!” 

루이는 뉴올리언스 출신 답게 검보, 잠발라야도 좋아했지만, 특히 팥밥(red beans & rice)을 더 좋아했다. 때때로 편지 끝에 “Red Beans & Ricely Yours!” 라고 사인했다. 

 

#손수건 

루이 암스트롱은 항상 손수건을 지니고 연주했다. 연주 중 이마의 땀을 닦기 위해서였다. 

 

#입술에 생긴 병

끊임없는 연주 여행과 트럼펫으로 높은 C를 부는 암스트롱의 연주 스타일은 심각한 입술 손상을 가져다주었다. 그의 입술엔 굳은 살이 배여 점점 나무 조각처럼 딱딱해졌다. 연고를 바르고, 면도날로 굳은 살을 잘라낼 정도였다. 이 입술병은 그의 별명을 따서 '사치모 증후군(Satchmo Syndrome)'이라 불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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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instagram.com/louisarmstronghouse

 

#플러싱에 잠들다 

루이 암스트롱은 1971년 7월 4일, 71세 생일을 맞고 다음날 매니저에게 전화로 리허설을 하기위해 밴드를 모아달라고 말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 루이는 잠 속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는 플러싱 공동묘지(Flushing Cemetery) 섹션 9에 묻혔다. 그의 장례식엔 시카고에서 자서전을 쓰고 있던 두번째 부인 릴 하딘 암스트롱이 참석했다. 한달 후 그녀는 암스트롱을 위한 TV 추모 콘서트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다가 쓰려졌고, 병원으로 호송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위대한 유산

루이 암스트롱의 스타일은 수많은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재즈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그의 음악은 인종간 장벽을 허무는데 기여했으며, 인간성과 음악에 대한 열정을 상징하는 인물로 남았다. 고향 뉴올리언스의 공항과 뉴욕 코로나 인근 빌리진킹 국립테니스센터에 그의 이름을 딴 스태디움이 있다.   

 

#다큐멘터리 'Louis Armstrong’s Black & Blues'

2022년 사챠 젠킨스(Sacha Jenkins) 감독이 루이 암스트롱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Louis Armstrong’s Black & Blues'를 연출했다. 이 다큐는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으며, 애플 TV 오리지널로 스트림됐다. 

https://www.apple.com/tv-pr/originals/louis-armstrongs-black-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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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Monroe Iglehart as Louis Armstrong in “A Wonderful World” in Chicago. Photo: Jeremy Daniel

 

#브로드웨이 뮤지컬 'A Wonderful World'

오는 10월 루이 암스트롱의 삶을 그린 뮤지컬 '원더풀 월드(A Wonderful World)'가 스튜디오54(254 West 54th St.)에서 공연된다. 뉴올리언스와 시카고를 거쳐 브로드웨이에 상륙하는 것. 암스트롱 역은 뮤지컬 '스패멀롯(Spamalot)'에서 아서왕 역으로 열연한 제임스 먼로 이글하트(James Monroe Iglehart)가 맡는다. 10월 16일부터 프리뷰에 들어가 11월 11일 개막된다.

https://www.roundabouttheatre.org/theatres-and-venues/studio-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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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uis ArmStrong House Museum

34-56 107th St. Corona, NY 11368

718-478-8274

https://www.louisarmstronghous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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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4.08.25 09:33
    째즈 뮤지션 루이 암스트롱 뮤지엄 투어 잘 읽었습니다.
    63년도 워커힐호텔 개관식에 초대되어, 한복을 입고 갓을 쓰고 긴 담뱃대를 입에물고 찍은 사진이 인상깊네요. 미국인보다는 마음씨 좋고 구수한 전형적인 한국 할아버지 같습니다.
    암스트롱하면 떠오른 몇가지가 생각납니다. 큰 입, 흰 손수건, 쉰 목소리, 트럼펫이 떠오릅니다. 'What a wonderful world'를 트럼펫으로 연주하는 모습이 화면에 close up되면 "I see tree of green Red roses too---",의 가사를 큰입으로 거품을 가득 머금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귓전을 때리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Hello Dolly'란 영화를 봤는데
    바바라 스트라이슨트보다도 트럼펫을 들고 활짝 웃는 루이 암스트롱이 더 인상적이었고, 화면을 압도하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퀸스 후러싱에 살았기때문에 그곳 지리를 잘 압니다. 42가 타임스퀘어에서 후러싱가는 7번 전철을 타고 111가 코로나역에서 내려서 가면되니까요.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