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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is Ford Coppola

Wine Enthusiast's 2019 Lifetime Achievement Award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 와인 메이커로 평생공로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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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is Ford Coppola at Inglenook winery, Napa Valley, California. Photo: Sam Jones


"와인은 음료수 이상의 것이다. 와인은 로맨스이며, 스토리이며, 기본적으로 쇼에 등장하는 모든 드라마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영화 '대부(The Godfather)'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의 거장 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 80)가 평생공로상(Lifetime Achievement Award)를 받는다. 할리우드가 아니라 와인 잡지로부터다. 1975년부터 캘리포니아 소노마밸리에서 와이너리를 운영해오며 와인 제국의 대부가 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는 '와인 인수지애스트(Wine Enthusiast)'의 2019 평생공로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할리우드에서는 1998년 감독협회(Directors Guild of America)의 평생공로상을 받은 바 있지만,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의 평생공로상은 아직 수상하지 못했다. 대신 코폴라의 와인이 오스카상 시상식과 선댄스영화제의 공식 와인이 됐다.



tasting_rooms_wineries_Francis_Ford_Coppola_Winery_Sonoma_County_.jpg Coppola Winery


2019년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는 블록버스터 영화감독이라기보다 블록버스터 와인메이커로 더 인정받고 있다. 이제까지 코폴라는 캘리포니아와 오레곤에 퍼져있는 340에이커의 포도원에서 300만 케이스 이상의 와인을 생산해왔다. 그가 영화라는 고향을 잊지는 않았다. 와인 레이블엔 'Francis Ford Coppola Diamond Collection'를 비롯 영화감독 딸 소피아의 이름을 딴 'Sofia', 그리고 디렉터즈 컷(Director’s Cut)이라는 브랜드로도 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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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캘리포니아의 와인산지 나파(Napa)/소노마밸리(Sonoma Valley)를 여행하면서 니바움-코폴라 와이너리에도 들렀다. 와이너리 소유주는 보통 농장주와는 달리 ‘샤토(성)’의 영주처럼 대우받는다. 오퍼스(Opus)나 BV(Beaulieu Vineyard), 케익브레드(Cakebread), 플럼프잭(Plumpjack), 한젤(Hansel), 레드슨(Ledson) 등 유명 와이너리와 코폴라의 와이너리가 구별되는 것은 영화감독으로서의 명성을 ‘프리미엄’으로 마케팅에 활용한다는 점이었다. 그의 화려한 할리우드 경력을 과시하면서 또한 ‘대부’같은 가족애를 보여준다. ‘대부 3’(90)에 출연시킨 후 혹평을 받았던 딸 소피아의 이름을 딴 스파클링 와인과 로제도 출시했다.


코폴라 와이너리에선 카버네 소비뇽 진판델, 카버네 프랑, 멀로, 쉬라, 스파클링 와인 등을 생산한다. 몇가지 시음을 해보았는데, 캘리포니아의 컬트 와인급의 명품와인은 아니지만, 테이블 와인으로는 준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디트로이트에서 뉴욕 거쳐 할리우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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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와 뮤지션인 아버지 카마인 코폴라.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는 자동차의 도시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나 자동차왕 헨리 포드를 따서 미들네임을 포드로 지었다. 이탈리아계 아버지 카마인 코폴라(Carmine Coppola)는 디트로이트심포니오케스트라에서 플루트 연주자로 지냈다. 


아버지가 NBC 심포니오케스트라의 수석 플루티스트로 발탁되면서 뉴욕으로 이주하게 된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는 퀸즈의 우드사이드에서 소년기를 보냈다. 인형극이 취미였던 코폴라는 15살 때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읽은 후 연극과 영화에 관심을 갖고 8mm 홈 무비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레이트넥노스 고등학교 졸업 후 롱아일랜드의 호프스트라 대학교에서 연극을 전공했다. 세르게이 에이젠쉬타인의 ‘10월: 세상을 흔든 10일’을 본 후엔 영화감독이 되기로 결심하고, 할리우드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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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LA 영화과에 입학한 후 인디 감독 로저 코만(Roger Corman)의 저예산 영화에 조수로 일했다. 1966년 UCLA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후  'Finian’s Rainbow'와 'The Rain People'을 연출했다. 1970년 ‘패튼 대전차군단’의 시나리오를 공동으로 써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후 ‘대부’(70)로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 각색상, 남우주연상(마론 브란도)을 수상한다. 2년 후 나온 ‘대부 2’도 작품상, 각색상, 감독상을 석권했다. 같은 해 ‘도청(The Conversation)’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으며, 5년 후 ‘지옥의 묵시록’으로 다시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이후 코폴라는 조에트로프(Zoetrophe) 영화사를 설립해  ‘원 프롬더 하트’(82) ‘아웃사이더’(83) ’코튼 클럽’(84) ‘터커’(88) ‘대부 3’(90) ‘브람 스토커의 드라큐라’(92) ‘프랑켄쉬타인’(94) ‘레인메이커’(97) 등을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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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너무 길다. 흑인 이야기가 너무 많다. 탭 댄스가 너무 많다. 노래가 너무 많다."

할리우드 제작자들의 비난으로 삭제 개봉되어 흥행에 실패했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코튼 클럽(Cotton Club, 1984, 128분)'이 올 뉴욕영화제(9/27-10/13)에서 새편집판(139분)으로 앙코르 상영된 후 극장 개봉된다. #BlackLivesMatter 캠페인 이후 미술계, 연극계, 영화계까지 흑인문화 다시 보기가 시대적 흐름이 됐다. 1930년대 재즈 시대 맨해튼 할렘의 유명 클럽 코튼 클럽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리처드 기어, 다이앤 레인, 그레고리 하인스가 출연했다. 상영일은 10월 5일 오후 2시 30분. 코폴라 감독과의 질의응답시간도 마련된다.



family.jpg 코폴라 가족


아버지 카마인은 '대부''대부2''지옥의 묵시록'의 영화음악을 담당했다. 여동생 탈리아 셔는 ‘록키’의 애인으로 출연한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는 그의 조카다. 1963년 결혼한 아내 엘리노어는 아트디렉터 출신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장남 지안 카를로는 스피드보트 사고로 22세에 사망했다. 차남 로만 코폴라와 외동딸 소피아 코폴라는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소피아는 '대부 3'에 배우로 출연해 혹평을 받았지만, 영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와 '마리 앙투아네트' 등으로 찬사를 받은 감독이다. 


'캘리포니아의 보르도'를 꿈꾸는 '대부' 코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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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cis Ford Coppola at Inglenook winery, Napa Valley, California. Photo: Sam Jones


이탈리아는 푸드와 와인, 오페라의 나라다. 이탈리아계 작곡가 카마인 코폴라의 아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이민 3세대다. 그의 집 식탁에선 와인이 빠지지 않았고, 캘리포니아 포도를 뒷마당에 심어 하우스 와인을 만들기도 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와인 사업에 뛰어든 것은 1972년 ‘대부’가 흥행에 대성공을 거두면서다. 당시 샌프란시스코의 빅토리안 양식의 맨션에서 살고 있던 코폴라 패밀리는

나파밸리에 아이들이 자유롭게 수영할 수 있는 별장으로 오두막집을 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부동산업자는 니바움 맨션(Niebaum mansion)을 보여준 것. 정원이 세 개나 딸린 아름다운 맨션에 반해버린 코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에 굴복하고 만다. 


1979년 지안-카를로, 로만, 소피아 등 세 아이들을 필리핀까지 데리고 ‘지옥의 묵시록’을 찍었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지만, 미국 내에서는 혹평이 쏟아졌다. 당시 코폴라 가족은 재정적으로 위기에 빠졌다. 코폴라는 묵시록 다큐멘터리를 찍었던 아내 엘리노아에게 “우리에겐 포도가 있으니, 포도주를 만들어볼까?”라고 제안했던 것.1977년 부인, 아이들과 함께 맨발로 포도를 밟으면서 니바움-코폴라 와이너리(Niebaum-Coppola Winery)의 첫 와인이 출시됐다. 


wines3.jpg Coppola Wines



코폴라는 프랑스 보르도와 부르고뉴(버건디) 급 와인을 꿈꾸고 있었다. 그는 캘리포니아 와인의 전설 로버트 몬다비(Robert Mondav)에게 "나파 밸리가 보르도 블렌드를 만들어 숙성시킨 후 출시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나요?"라고 말했고, 몬다비는 "당신이 맞다. 나파 밸리가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세계의 위대한 와인으로 능가할 수도 있다"고 응수했다. 코폴라는 니바움-코폴라 루비콘(Niebaum-Coppola Rubicon) 블렌드 1978 빈티지를 7년 후 출시해 컬트 와인으로 등극시켰다. 


코폴라는 나파밸리와 할리우드를 오가며 와인과 영화를 만들었다. 근 20여년간의 가뭄 끝에 1992년 ‘브람 스토커의 드라큐라’가 대박이 나자 코폴라는 번 돈을 와이너리에 쏟아부었다. 



The Inglenook winery.jpg Inglenook Winery


1995년 잉글누크(Inglenook, 1879) 와이너리를 구입했지만, 이름을 쓸 수는 없었다. 잉글누크(Inglenook)는 1879년 핀란드 출신 선장 구스타브 니바움이 시작한 와이너리. 1889년 와인 역사가 리온 D. 아담스는 “프랑스의 샤토 마고에 비견할만한 캘리포니아 와인”이라고 평했다. 잉글누크의 샤블리(Chablis)는 미 레스토랑에서 5대 베스트셀러 중 하나다. 코폴라는 일단, 루비콘 에스테이트 와이너리로 이름짓고, 와인 전문가들을 고용했다. 그리고, 한 해에 900만불의 수입을 거두어 들였고, 4년 후엔 60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코폴라는 고백한다. “난 영화보다 와인으로 더 잘 벌고 있었다.”



8.jpg Coppola Winery


2000년대는 소노마 카운티의 샤토 부베랑(Chateau Souverain)에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와이너리를 오픈했으며, 2013년부터는 캘리포니아 게이서빌에 버지니아 데어 와이너리(Virginia Dare Winery)를 운영해왔다. 캘리포니아 게이서빌에 소재한 이 와이너리엔 수영장, 레스토랑이 있는 코펜하겐의 티볼리가든을 본따 조성됐다. 이 와이너리엔 코폴라가 수상한 오스카 트로피, 골든글로브 트로피와 영화 ‘대부’ 촬영에 사용된 책상, 자동차 등 수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코폴라가 잉글누크의 트레이드마크를 사들이는데는 꼬박 16년이 걸렸다. 2012년 4월 마침내 거액을 들여 ‘잉글누크’의 이름을 갖게 된다. 그리고, 프랑스 보르도의 전설적인 샤토 마고에서 21년간 와인을 만들어온 필립 바스콜레스를 와인메이커 겸 매니저로 스카웃했다. 이전까지 코폴라의 와인 브랜드는 잉글누크 산하로 들어간다. 루비콘은 보르도 스타일의 블렌드 와인이다. 



12.jpg 니바움-코폴라 카페가 자리했던 녹색 빌딩.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프리젠츠 라이프스타일: 대가족의 코폴라는 자신의 이름으로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과테말라, 벨리즈공화국 등지에 호텔과 리조트를 운영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 자신의 영화사 이름을 딴 카페 니바움-코폴라를 운영하면서 자신의 와인을 제공했다. 배우 로버트 드 니로, 로빈 윌리엄스와 공동으로 운영해오던 루비콘 레스토랑은 2008년 문을 닫았다. 

http://www.franciscoppolawinery.com



delfina.jpg *치네치타 NYC <35> 뉴욕 스토리: 우디 알렌, 스콜세지, 코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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