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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FF58 (9/17-10/11) <3> MLK/ FBI ★★★★

마틴 루터 킹 죽 암살 뒤 FBI의 음모
48년 FBI 국장 존 에드가 후버의 파워 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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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FF58, MLK/FBI(2020) by Sam Pollard


"I Have a Dream."

1963년 8월 28일 워싱턴 D.C. 워싱턴 기념탑, 전국에서 인파가 몰려왔다. 약 25만명의 군중 속엔 시드니 포에티에, 말론 브란도, 폴 뉴만, 버트 랭카스터,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해리 벨라폰테 등 할리우드 유명인사들도 끼어 있었다.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 1929-1968) 목사는 링컨 메모리얼 앞에 서서 연설했다.


"나에겐 언젠가 이 나라가 일어나서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자명한 진실을 우리가 수호하는 국가의 신조의 진정한 의미를 실천하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나에게는 네명의 작은 아이들이 언젠가는 피부색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격으로 평가되는 나에게서 살게되는 꿈이 있습니다... 어둠은 어둠을 몰아낼 수 없으며, 빛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미움은 미움을 몰아낼 수 없으며, 사랑만이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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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FF58, MLK/FBI(2020) by Sam Pollard


이 연설을 백악관에서 TV로 지켜보던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그는 죽이게 훌륭하네. 젠장 좋아!"라고 말했으며, 미연방수사국(FBI) 국내 정보부국장 윌리엄 설리번은 "이제 저자를 타겟으로 해야 된다. 그는 이 나라의 미래에서 가장 위험한 흑인이기 때문이다"라고 권고했다. FBI 존 에드거 후버(John Edgar Hoover) 국장은 이 연설 후 '흑인 구세주(Black Messiah)'로 등극한 마틴 루터 킹을 파멸시킬 계획을 전략을 꾸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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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FF58, MLK/FBI(2020) by Sam Pollard


2020 뉴욕영화제에 초청된 샘 폴라드(Sam Pollard) 감독의 다큐멘터리 'MLK/FBI'(2020)는 마틴 루터 킹 목사, MLK를 몰락시키려는 FBI의 술수를 담았다. 흑인 감독 샘 폴라드는 뉴욕대 교수로 스파이크 리 감독의 '모 베터 블루스(Mo' Better Blues)' '정글 피버(Jungle Fever), '뱀부즐드(Bamboozled)'등을 편집한 경력이 있다. 다큐멘터리의 묘미는 자료와 편집에 있다. MLK와 FBI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BlackLivesMatter 시대에 안성맞춤인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60년대 TV 속에서 당시 아나운서였던 로날드 레이건의 1963년 워싱턴DC 행진을 보도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킹 목사의 역사적인 연설에 이어 그가 미 인권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로 부상하게 된 1956년 앨라바마주 몽고메리의 버스 보이콧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인들은 버스 앞자리, 흑인들은 뒷자리의 엄격한 인종차별이 시행되던 때 로자 팍스(Rosa Parks)가 백인에게 자리 양보를 거부하자 체포되면서 킹 목사를 중심으로 버스 보이콧 운동이 펼쳐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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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YFF58, MLK/FBI(2020) by Sam Pollard


존 에드거 후버는 1924년 FBI 창립과 함께 초대국장을 맡아 1972년 사망할 때까지 48년간 집권했다. 백악관에 대통령이 8번 바뀌는 동안 FBI 국장 자리를 지키면서 도청과 도찰 등 온갖 방법으로 대통령의 정적은 물론, 유명인사들의 약점을 파헤치며 파워를 과시하던 인물이다. JFK와 동생 로버트 케네디도 마릴린 먼로 스캔달을 쥐고, FBI 국장 자리를 보전했다.  


후버는 카리스마 넘치는 '미국의 간디(American Gandhi)' 마틴 루터 킹을 파멸시키기 위해 뒷조사를 했다. 당시 가장 큰 미국의 위협은 공산주의였다. 후버와 FBI는 킹 목사의 친구이자 자문이었던 유대계 변호사 스탠리 레비슨을 공산주의자로 지목하고, 도청해 킹 목사를 협박했다. 이어 킹 목사의 연설 작가였던 클래런스 존스(Clarence Jones)의 집에 전화회사 직원으로 위장해 도청 장치를 설치하며, 킹 목사가 여러 여성과 바람 피우는 현장을 녹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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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FF58, MLK/FBI(2020) by Sam Pollard


인권 운동에 앞장섰던 JKF가 암살당한 후 대통령직을 승계한 린든 B. 존슨은 1964년 민권법을 제정하며 흑백인 평등을 법적으로 보장하게 된다. 그리고, 마틴 루터 킹 목사는 그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되며, 평화와 정의의 상징이자 도덕적인 지도자로 부상한다. 이에 후버 국장은 킹 목사의 이미지를 파괴시킬 스캔달, 그의 성생활을 폭로할 음모를 꾸민다. 


당시 대중매체에서 흑인 남성들은 백인 여성들에 대한 성적인 위협으로 묘사됐으며, 살인과 차별을 용납하는 분위기였다. FBI는 비열하게 익명의 이름으로 킹 목사와 부인에게 녹음 테이프를 보내 34일 내 자살하라는 협박을 했다. 이에 대해 제임스 코미(James Comey) 전 FBI 국장(2003-2005)은 "FBI 역사에서 가장 암울한 짓"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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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FF58, MLK/FBI(2020) by Sam Pollard


마틴 루터 킹 목사은 자신의 성생활이 폭로될 것에 흔들리는 시기를 보낸다. 하지만, 1965년 앨라바마 셀마에서 주도 몽고메리까지 흑인 참정권을 요구하는 행진이 벌어지고, 킹 목사도 행진에 참가한다. 그해 8월 존슨 대통령이 발의한 '투표권리법(Voting Right Act)'가 통과되며 흑인 참정권이 보장되기에 이른다. 


한편, 린든 존슨 대통령은 베트남에 군사력을 증강하며 전쟁에서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었다. 존슨과 우호적인 관계로 오랫동안 침묵하던 킹 목사는 1967년 4월 4일 맨해튼 리버사이드 교회에서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설교를 한다. '베트남을 너머서: 침묵을 깨야할 때(Beyond Vietnam: A Time to Break Silence)' 연설 후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를 비롯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킹 목사를 반역자로 비난했다. 하지만, 반전 운동은 확산된다. 이를 계기로 킹 목사는 백악관의 위협이 되고, 후버 국장은 그를 파멸시킬 음모를 꾸민다. FBI는 킹 목사 주변에 흑인 사진작가 등 내통자를 심어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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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FF58, MLK/FBI(2020) by Sam Pollard


1968년 4월 3일 킹 목사는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흑인 청소부들의 파업을 지원하기 위해 방문해 연설했다. '집회의 자유,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저항의 자유'를 역설한 후 로레인 호텔에 묵고 있었다. 다음 날 킹 목사는 로레인 모텔 발코니에 서있다가 백인 청년 제임스 얼 레이(James Earl Ray)의 총격에 숨을 거두고 만다. 리버사이드 교회 연설 후 꼭 1년이 되는 날이었다. 


'MLK/FBI'는 킹 목사의 연설, 그의 측근과 작가들의 인터뷰를 나레이션으로 깔면서 긴박하게 진행된다. 유난히도 암살사건이 많았던 1960년대 미국, 그 배경에 FBI와 후버 국장을 지목하는 음모론도 무성하다. 후버가 킹 목사를 파멸시키기 위해 사생활을 도청한 녹음파일을 비롯한 기록은 1급 비밀 문서로 2027년까지 공개가 금지되어 있다. 마틴 루터 킹이라는 위대한 인물의 성생활이 그의 업적을 모두 지워버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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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FF58, MLK/FBI(2020) by Sam Pollard


이 다큐멘터리에서 존 에드가 후버의 사생활을 간과한 점은 아쉽기만 하다. 사실 후버는 국회도서관에서 보조 사서를 거쳐 조지워싱턴 법대 졸업 후 법무부 수사국에 몸담게 된다. 1924년 FBI 창설과 함께 국장이 되어 금주법 시대 '공곡의 적'을 내세우며 마피아와 갱 수사에서 성과를 거두어 '미국 지킴이'의 이미지로 부상했다. 제 2차 세계대전 중 스파이 색출을 위한 도청과 감시 수사를 통해 위상이 올라가게 되자 해리 트루만 대통령은 해외첩보 전담 기관 CIA를 창설했다. 


후버는 8명의 대통령을 거치는 종신 FBI 국장으로 찰리 채플린, 알버트 아인슈타인, 엘리노어 루즈벨트, 헬렌 켈러, 존 스타인벡 등을 사찰했으며, 대통령들까지 약점을 잡아 위협한 거물이었다. 후버는 FBI 요원들이 수사에서 발견한 유명인사 누드 사진 등 포르노 자료를 소장해 협박용과 자신의 성생활에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자신은 남성 전용 파티에서 여장을 하고 나타났으며, 마피아가 이점을 이용해 후버를 협박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공산주의자, 흑인, 동성애자들을 혐오했던 후버 자신이 게이였다는 점이 아이러니다. 그는 FBI의 부하였던 클라이드 앤더슨 톨슨과 함께 출퇴근하고, 식사하고, 클럽, 여행도 함께 다니는 커플이었다. 둘다 독신으로 동성애자 소문이 무성했지만, 후버의 파워에 굴복했다. 후버는 1972년 사망하면서 톨슨 앞으로 55만 달러(현 싯가 340만 달러) 유산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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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K/FBI

Sept. 21 at 8pm 8 PM Queens Drive-In(47-01 111th St · In the New York Hall of Scie)

Sept. 21 at 8pm ET - Sept. 26 at 8pm ET.

https://www.filmlinc.org/nyff2020/films/mlk-f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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