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옥-최은희 납북 미스테리 '연인들과 폭군(The Lovers and The Despot)' 23일 뉴욕 개봉 ★★★★
신상옥&최은희 첫만남에서 납북, 그리고 이별까지
'연인들과 폭군(THE LOVERS AND THE DESPOT)'★★★★
로맨스, 스릴러, 첩보 영화 믹스&매치 다큐멘터리
납북 후 김일성 지도자와 함께 자리한 신상옥, 최은희 부부. 영화광 아들 김정일이 이들의 납치를 기획했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삶의 주인공, 신상옥(Shin Sang-ok) 감독과 배우 최은희(Choi Eun-hee)씨의 납북에서 탈출까지의 미스테리를 담은 다큐멘터리 연인들과 폭군(The Lovers and The Despot)'이 9월 23일 뉴욕 IFC센터, 랜드마크 선샤인 시네마)에서 개봉된다.
영국의 로브 캐난(Robe Cannan)과 로스 아담(Ross Adam)이 연출한 '연인들과 폭군은 1978년 홍콩에서 납북되어 1986년 미국으로 망명하기까지 당대 파워 스크린 커플의 삶을 러브 스토리, 첩보영화, 스릴러의 장르를 믹스&매치한 다큐멘터리다.
"우리 첫 데이트 때 짜장면을 먹었지요."
이 영화의 주 나레이터는 90세의 최은희씨다. 망명 30년 후, 신상옥 감독의 사망한 10년 후 최은희씨의 생생한 회고담이 인생 황혼기 여배우의 영상 회고록인 셈이다. 여기에, 최씨가 목숨을 걸고 몰래 녹음해온 북한 지도자 김정일의 육성이 공개된다. 영화광이었던 김정일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제작비 제약없이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이들에게는 이데올로기를 떠나 북한이 지상 최고의 낙원이었을지도 모른다. 한반도의 분단으로 인한 이념 문제와 초청 아닌 납치, 인권이라는 정치적인 요소를 제거한다면, 이 영화는 멜로 드라마의 해피 엔딩처럼 보인다. 특히 애정결핍에 내성적이며, 카리스마가 부족했던 김정일의 영화에 대한 열정은 독재자의 아킬레스건이라할 만큼 순수하게, 연민으로 느껴진다.
납북이냐 월북이냐를 떠나, 제작비 근심 없이 맘대로 찍을 수 있는 곳은 이 세상 모든 감독들이 꿈꾸는 영화 세상이 아닐까? '연인들과 독재자'는 한국, 북한, 미국의 정치적인 개입이나 검열 없이 이들의 납북에 관한 미스테리를 거의 투명에 가까운 진실성으로 펼쳐나가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물론 30년이 지난 후 100%에 가까운 진실이란 거의 불가능하겠지만.
'연인들과 폭군'은 영화보다 더 영화적인 스토리다. 감독은 신상옥 감독의 영화를 비롯, 일본 영화, 홍콩 영화의 장면을 끼워 넣으면서 픽션과 리얼리티를 직조한다. 김정일의 육성과 최은희씨가 제공한 사진자료는 다큐멘터리의 진실성을 증폭시키며, 납북의 주인공인 최은희씨, 후배 이장호 감독 등의 진술도 박진감이 넘친다.
세기의 영화커플, 러브 스토리
아들과 딸을 입양해 기르던 생애 가장 행복했던 시기의 신상옥, 최은희 부부.
함경북도 청진 출생으로 도쿄미술대를 중퇴하고 영화계에 미술감독으로 입문해 '악야'로 메거폰을 잡은 신상옥,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나 열여섯살에 '청춘극장'으로 데뷔한 후 촬영기사 김학성과 결혼했다가 이혼한 배우 최은희는 1953년 결혼한다. 최은희씨는 짜장면 데이트하던 시절을 회고한다. 이들은 딸 하나, 아들 하나 입양했고, 영화계 황금 커플로 '지옥화' '성춘향'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벙어리 삼룡이' '빨간 마후라' 등 흥행작을 만들었다. 이즈음이 신-최 커플이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고.
그러다, 신상옥 감독이 젊은 배우 오수미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최은희씨와 이혼한다. 최씨는 안양예고를 설립해 교장으로 후학을 양성하던 중 재정난에 빠졌다. 한편, 신상옥 감독은 신 오수미와 사이에 두 아이를 얻었지만, 신필름 운영에 태풍을 만난다. 박정희 정권에 의해 분신자살 노동자 전태일 영화 계획이 방해되고, 영화 '장미와 들개'가 검열 위반으로 신필름이 취소되며 공중에 떠버린 것.
북한영화계 살려주시오
"최은희 여사님, 저를 보세요, 난쟁이 똥자루처럼 작지요?"
이때 홍콩에서 최은희씨에게 합자 제안이 들어왔다. 1978년 최은희씨는 홍콩에서 북한 공작원들에 의해 납치되고, 8일간의 항해 끝에 부두에 도착했을 때 김정일의 환호를 받는다. 김정일은 자신을 '난쟁이 똥자루같다'고 소개할 정도의 열등감의 화신이다. 그는 찬미해온 배우 최은희씨를 국빈으로 대했다. 얼마 후 실종된 최은희씨를 찾아 홍콩에 간 신상옥 감독도 사라졌다. 그는 납북되어 몇차례 스티브 맥퀸의 영화 '대탈주'처럼 탈출을 시도하다가 수용소에 갖혔다.
세뇌교육을 받은 후 세상 밖으로 나와 전 부인 최은희씨와 뜨거운 상봉을 한다. 영화광 독재자 김정일은 최은희씨를 '조선의 어머니' 신상옥 감독을 '내 영화 고문'이라 추켜세우면서 아버지 김일성 주체사상과 북한 선전영화 일색인 조악한 영화계를 업그레이드시켜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자유가 속박되고, 가족을 만날 수 없는 동토에서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No는 숙청을 의미할 터.
1985년 신상옥 감독의 '소금'으로 모스크바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최은희씨.
이후 신상옥 -최은희 커플은 2년 3개월간 '춘향전' 뮤지컬 '사랑, 사랑, 내 사랑' '돌아오지 않는 밀사' '소금' 괴수영화 '불가사리' 등 17편이나 만드는 기염을 토했다. '탈출기'는 김정일의 지원으로 진짜 기차 1량을 폭파시키기도 했다. '돌아오지않는 밀사'는 체코의 카를로비바리영화제에서 특별감독상(1984), '소금'은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기립박수를 받으며 여우주연상(1985)을 안겨주었다. 이쯤이면, 제 2의 전성기를 누린 셈이다. 이들은 겉으로 당과 김정일에 충성을 맹세했지만, 속으로는 늘 탈출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다. 자신들을 자진 월북한 것처런 선전하는 북한에 대한 반발과 자유에 대한 갈망이었다.
제3국으로 정치적, 영화적 망명
신상옥 감독은 항상 탈출 시나리오를 구상했다. 비엔나에서 미국 대사관으로 들어가 망명을 신청하는 신상옥, 최은희 부부.
유럽 영화제에서도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빈틈을 주지 않았지만, 마침내 1986년 3월 영화 촬영 참석했다가 기회를 잡았다. 비엔나에서 자동차로 도망, 미행자를 따돌리며 미국 대사관으로 들어가 '망명'을 신청한 것이다. 남과 북도 아닌, 제 3국에서 자유로운 몸으로 살았지만, 늘 마음은 부담스러웠다. 할리우드에서 '닌자 키드' 등을 연출했지만, 마음은 조국으로 향했다. 마침내 정권이 바뀌고, 1990년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씨는 한국으로 돌아가 KAL 납치 사건 '마유미'를 제작했다. 1994년에는 영화 '증발'이 초대됐으며, 칸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위촉됐다.
신 감독은 2006년 눈을 감았다. 이제 황혼에 있는 90세의 노배우 최은희씨는 자신의 영화같은 삶을 회고하며 말한다.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고, 힘들었어..." '연인들과 독재자'는 올 1월 선댄스 영화제에서 세계 첫 상영됐다. 뉴욕 개봉 후엔 LA, 보스턴, 워싱턴 DC와 필라델피아 등 대도시에서 순차적으로 개봉될 예정이다. 1시간 35분.
# Lincoln Plaza: 1886 Broadway(bet. 62 & 63rd St.)
# Landmark Sunshine Cinema: 143 East Houston St.(bet.1st and 2nd A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