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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뉴욕영화제(9/30-10/16)


'천국보다 낯설은' 도시의 시인

짐 자무쉬 감독의 '패터슨(Paters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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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인 이 한편의 영화'를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짐 자무쉬(Jim Jarmusch) 감독의 '천국보다 낯설은(Stranger Than Paradise, 1984)'이라고 할 것이다. 저화질의 VHS 비디오로 보았던 에바, 윌리, 에디 3인의 스토리는 이전까지 보았던 어떤 영화들과도 달랐다. 낯설은 흑백 이미지와 인물에 매혹되어 도쿄에서 샀던 대문짝만한 영화 포스터를 판넬로 만들어 방 안에 걸고, 늘 뉴욕과 클리블랜드, 플로리다의 미국을 상상하곤 했다. 1996년 1월 이래 짐 자무쉬와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는 것도 행운이지만, 2016 뉴욕영화제 언론 시사회에서 자무쉬의 신작 두편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횡재처럼 느껴진다. 


2016 뉴욕영화제는 칸영화제와 마찬가지로 짐 자무쉬의 극영화 '패터슨(Paterson, 2016)'과 '펑크록의 대부' 이기 팝(Iggy Pop) 다큐멘터리 '김미 데인저(Gimme Danger, 2016)'을 두팔로 환영했다. 63세 짐 자무쉬의 새 영화 두편은 디지털 시대 아날로그형 감독의 노스탈지어가 흐르고 있다. 홍상수 영화처럼 반복적인듯하면서도 지극히 선(zen)적인 '패터슨'은 이제까지 짐 자무쉬의 영화에서 느껴졌던 스타일과 체취가 전편에 녹아있다.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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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무쉬는 노스탈지어를 찾아 뉴저지로 갔다. 부동산 개발로 옛것들이 도미노로 사라지고, 중동과 유럽, 러시아 자본이 몰려오는 럭셔리 콘도의 정글 맨해튼에서 벗어나 아직은 슬로우 모드인 패터슨이 배경이다. 뉴저지 퍼사익카운티의 패터슨에서 23번 버스를 운전하는 패터슨(아담 드라이버 분)은 시성이 풍부한 소시민이다. 자그마한 집에서 아내 로라(골쉬프테 파라하니 분), 잉글리쉬 불독 마빈과 함께 살아간다. 


영화는 패터슨의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일주일간을 다룬다. 패터슨은 아침 6시 전후에 일어나 시리얼(치리오)을 먹고,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버스회사로 출근한다. 늘 같은 노선을 운전하지만, 승객들은 오르내리며 사람 풍경이 바뀐다. 여기서 자무쉬는 '다운 바이 로(Down By Law)'에서 썼던 트래킹 숏으로 패터슨의 풍경을 소개한다. 운전수 패터슨은 독일 빔 벤더스 감독(*짐 자무쉬의 멘토)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Wings of Desire)'의 천사들처럼 승객들의 대화를 엿듣기도 한다. 로라가 쌍둥이 꿈 이야기를 하자, 쌍둥이들만 눈에 들어오는 날도 있다. 그는 스마트폰조차 없다. 어느날 사고가 발생했을 때 패터슨은 어린이 승객의 스마트폰을 빌려 쓴다.


패터슨의 일상은 '그라운드 혹 데이(Groundhog Day)'의 TV 일기예보 아나운서 빌 머레이처럼 반복하지만, 무료하지는 않다. 짬짬이 시를 쓰면서 상상력의 무한한 여행을 떠나기 때문이다. 집에 나돌아다니는 성냥갑(오하이오 블루 팁)조차도 그에겐 사랑 시(Love Poem)의 영감이 된다. 



paterson-adam-driver-jim-jarmusch-9.jpg Paterson


퇴근한 후 패터슨은 불독 마빈을 산책시키다가 바에서 맥주 한잔을 걸치며 주인 독(구수한 배리 조셉 헨리 분)과 옛날 가수들, 옛날 배우들 이야기로 하루의 스트레스를 푼다. 흑인 고객들이 대부분인 바에서 어느날엔 에버렛과 마리의 사랑싸움에 끼어들기도 한다. 하지만, 패터슨에겐 이런 사건은 '별일'이다. 


한편, 로라는 집안을 흑백 패턴으로 꾸미고, 기타를 배워 가수의 컨트리 가수의 꿈을 키우는 백일몽과의 여인이다. 어느날 흑백 컵케이크를 만들어 파머스 마켓에 나가 돈을 번 후 로라는 영화관 데이트와 식사로 한턱 내기로 한다. 모처럼의 저녁 데이트는 달콤했지만, 집안에선 패터슨의 시가 담긴 일기장이 너덜해지는 비극이 발생한다.


시를 몽땅 날려버린 후 망연자실해진 패터슨은 거리에서 마리에게 차인 에버릿을 만난다. 패터슨은 시를 날리고, 에버릿은 사랑을 날렸다. 상실한 두 남자. 퍼사익 폭포 앞에서 만난 일본인이 패터슨에게 시의 아름다움에 대해 찬양하며, 빈 노트북을 주고 떠난다. 상실의 시대, 패터슨은 다시 운전대를 잡으며 시를 쓸 것이다. 그 인생의 노트북은 상상력의 날개로 채워질 것이다.


paterson_producers_interview_no_film_school_3.jpeg Paterson


'패터슨'은 한때 시인을 꿈꾸었고, 문학을 전공했던 짐 자무쉬의 미니멀리스트적 연출이 매력적인 작품이다. '천국보다 낯설은'의 소외된 인물들보다는 따사로우며, '나잇 온 어스(Night on Earth)'의 택시 운전사와 세계 대도시(뉴욕, LA, 파리, 로마, 헬싱키) 배경 대신 뉴저지 패터슨의 버스 운전사가 주인공이다. 


패터슨이 모는 버스는 우리 인생에 대한 메타포처럼 보인다. 늘 같은 길을 가는 것 같아도, 오르내리는 승객들끼리 옷깃을 스쳐가며, 또 언제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짐 자무쉬에게 패터슨은 천국보다 낯설은 도시일까? 

패터슨과 로라의 보금자리는 21세기 패터슨의 작은 '에덴동산'이다. 이 영화는 패터슨의 삶에서 정신적인 균형을 잡아주는 시(poetry)에 대한 찬미이기도 하다. 퇴근길 패터슨은 10살짜리 소녀 시인을 만나 그녀가 쓴 '폭포'를 감상한다. 영화 전편에 흐르는 패터슨 시의 나레이션(론 패드젯 Ron Padgett 작품)으로 어느 누구라도 시성을 느낄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패터슨'은 뉴저지 출신 의사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William Carlos Williams, 1883-1963)의 서사시 제목이기도 하다.  



paterson-adam-driver-jim-jarmusch-2.jpg Paterson


아담 드라이버는 세파에 초연한 무표정 속의 미소로 사로잡는다. 로라 역의 이란 배우 골쉬프테 파라하니의 깃털처럼, 흐드러지게 핀 꽃처럼 자연스러운 연기가 드라이버와 콘트라스트를 이룬다. 또한, 견공 마빈(넬리 분)의 '연기'가 탁월하다. 넬리는 올해 칸영화제에서 황금견상(Palm Dog Award)을 받았다. 


에필로그의 일본인(마사토시 나가세)과의 대화나 공책 선물은 미니멀리스트 톤에서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 결말 나레이션처럼 다분히 작위적인 결말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무쉬 식의 미니멀리스트 철학과 카르마적인 인생의 묘미를 맛보게 해준다. 


버스 운전수 패터슨 역의 배우가 아담 드라이버이며, 짐 자무쉬의 부인이 프로듀서인 사라 드라이버라는 점도 흥미롭다. 일본인은 자무쉬의 영화 '미스테리 트레인(Mystery Train)'의 주연이었던 마사토리 나가세의 27년만의 복귀.패터슨이 모는 버스 23번은 픽션인듯. 마이클 조단의 백넘버인 23은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 등 여러 영화에 등장한 황금의 넘버였다. 118분. 10월 2일 오후 9시, 3일 오후 6시, 16일 오후 9시 30분. 상영관 http://www.filmlinc.org/nyff2016/films/pat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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