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센터 프랑스 영화제 (2) '몽파르나스 비엔베뉴' ★★★★
Rendez-Vous with French Cinema 2018
홈리스 파리지엔의 홀로 서기
몽파르나스 비엔베뉴 Montparnasse Bienvenüe ★★★★
March 8-18@링컨센터 월터리드시어터
Montparnasse Bienvenüe
'몽파르나스 비엔베뉴(Montparnasse Bienvenüe)'는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여성의 영화'다. 제작, 각본, 감독, 촬영, 편집, 프로덕션 디자인, 캐스팅 등 거의 모든 스탭을 여성으로 구성해서 찍은 영화로 레오노르 세레이유(Léonor Sérraille) 감독은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신인감독상인 황금카메라상(Caméra d'Or)을 수상했다.
프랑스어 제목은 '젊은 여자(Jeune Femme)'라는 지독히 평범한 타이틀이라 영어권으로는 주인공이 사는 파리의 지하철 역 이름이자 예전에 피카소, 모딜리아니 등 화가들이 몰려살던 동네 몽파르나스-비엔베뉴로 소개됐다.
남자친구에게 차인 후 홀로서기를 시작해야하는 폴라. 파리지엔의 뒷 모습이 절망적이다. Montparnasse Bienvenüe
이 영화는 기존 멜로 드라마의 관습을 전복하면서 시작한다. 많은 영화들이 남녀가 만난다(boy meets girl)로 시작, 그리고 그들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and they lived happily ever after)로 끝나는 해피엔딩의 방정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레오노르 세레이유 감독은 주인공 폴라(라에티티아 도쉬분, Laetitia Dosch)가 남자친구와 헤어진 후부터 영화를 시작한다. 따라서 남녀의 설레임이 아니라 절망으로부터 출발한다.
폴라는 아파트 문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다. 처음엔 주먹으로, 그러나다 머리로 박는다. 상처를 입고 병원에서 정신병자처럼 호소한다. 폴라는 자신의 사진작가인 조아킴(그레고아 몬상지옹 분)의 뮤즈이자 연인으로 10여년간 동거했지만, 대판 싸우고 헤어졌다. 이제 그는 문조차 열어주기를 거부한다. 폴라는 갑자기 갈 곳이 없어졌다. 세계에서 가장 로맨틱한 도시 파리에서 하루 아침에 홈리스가 됐다.(물론, 레오스 카락스의 '퐁네프의 연인들'도 있었지만...) 그녀 나이 서른한살이다. 맞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 세레이유 감독은 그녀의 처량한 뒷모습을 클로즈업 한다. 그렇다, 관광객들은 이제까지 파리의 앞모습만 보아온 것이다.
Montparnasse Bienvenüe
이제 무일푼인 그녀는 잠자리부터 해결해야 한다. 계획도 따로 없다. 모든 것을 즉흥에 맡긴다. 나이트 클럽에도 가보고, 직장 인터뷰도 해보지만, 만만치 않다. 남자들은 달갑지않은 '자유인'이 된 폴라의 몸에만 관심 있다. 게다가 털복숭이 고양이까지 딸렸으니 가는 곳마다 '거절'뿐이다. 이제껏 동거남과 안전지대에서 살았던 폴라는 장애물 달리기 선수처럼 고단하게 도시를 달린다. 낯선 여자의 유혹에도 넘어가 보고, 입주 가정부 겸 내니로도 일해본다.
그러다가 쇼핑몰 란제리 코너 판매원으로 취직한다. 여기서 그래픽디자이너, 학위 논문 쓰는 판매원들도 만나고, 경제학을 공부한 흑인 경비원 우수만(술레이만 세예 응디아예 분 Souleymane Seye Ndiaye)도 친하게 된다. 모두들 치열하게 사는 젊은이들이다. 폴라는 자신이 조아킴에게 적적으로 의존해왔다는 것을 느낀다. 어느날 폴라는 임신 사실을 알게되고, 조아킴이 나타나는데...
Montparnasse Bienvenüe
'몽파르나스 비엔베뉴'는 차인 여자의 홀로 서기 여정을 보여주는 페미니스트 영화다. 폴라는 조아킴의 새장 안에 갖힌 새였다. 하지만, 그녀는 자아를 찾기위해 '인형의 집'을 나간 노라가 아니라, 남자친구로부터 쫒겨난 폴라였다. 그리고, 파리의 지붕 아래서 클럽, 레즈비언, 가정부, 쇼핑몰 부티크 판매원, 흑인 경비원까지 리얼리티를 현장에서 체험한다.
그리스 신화로 치면, 페르세포네와 헤라 형의 신데렐라 컴플렉스와 아내로서 족한 여성 타입에서 아테나와 아르테미스처럼 지성적이면서도 도전적인 여인형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에 폴라는 조아킴을 거부하고, 아이를 지우며 새출발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중간에 폴라는 엄마와 마주친다. 어려서 가출한 후 관계가 멀어졌던 엄마의 집으로도 찾아가지만, 남편과의 관계도 나빴던 엄마는 딸과 몸싸움까지 벌인다. 감독은 모녀 관계에 관해 상세한 설명을 생략한다. 엄마의 폭력적인 DNA가 폴라에게 유전이 된 것인지, 엄마의 남편에 대한 증오가 폴라에게 투사된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고, 끝까지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Montparnasse Bienvenüe
감독은 영화 속에 더글라스 서크 감독의 영화 'Imitation of Life(프랑스어 제목 Mirage de la vie, 한국어 제목 '슬픔은 그대 가슴에'(1959)를 끼워넣었다. 배우를 지망하는 미망인의 열망과 인종 정체성 문제를 그린 멜로드라마로 세레이유 감독에게 영감을 준듯 하다.
거의 모든 스탭이 여성이었기 때문일까? 카메라는 주인공 폴라를 성적으로 대상화하지 않는다. 섹스 씬도 볼 거리로 제공하지 않고, 과감하게 생략한다.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The Handmaiden)'처럼 눈요기 거리의 긴 섹스 장면이 없이 담백하다.
'뮤리엘의 웨딩' 토니 콜레트와 '레이디 버드'의 서샤 로난을 연상시키는 라에티티아 도쉬가 거의 모든 장면에 등장한다. 세자르 신인상 후보에 올랐다. 에릭 로메르의 영화처럼 전편에 멜란콜리할 수도 있는 독신녀 이야기지만, 라에티티아 도쉬의 다이내믹한 표정과 온몸 연기에 줄리 루에(Julie Roué)의 발랄한 노래가 몽빠르나스-비엔베뉴를 흥겨운 페미니스트 영화로 만든다. 파리지엔의 비하인드 스토리로 즐겨볼만한 작품. 97분. 3월 9일 오후 9시 30분 (레오노어 세레이유 감독과 뮤지션 줄리 루에 Q&A), 3월 12일 오후 1시 15분. https://www.filmlinc.org/films/montparnasse-bienvenue
-티켓: $17(일반), $12(회원, 학생, 노인)
-상영관: Walter Reade Theater(165 West 65th 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