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The Glory)'에 열광할까?
주목할만한 시선 Un Certain Regard: The Glory
'더 글로리(The Glory)' 파트2의 카타르시스를 기다리며...
The Glory/ Netflix 예고편
https://youtu.be/vWXtnWr1ZmM
억세게 운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살면서 억울한 일을 한번쯤은 당해봤을 것이다. 어떤 이는 평생 지울 수 없는 학교폭력이나 왕따(bullying)를, 수많은 여성들은 성희롱과 성차별을 수시로 경험했으며, 필자같은 미국 이민자들은 인종차별과 종종 부딪혀왔을 것이다. 누구는 학창시절 폭력의 피해자였고, 누구는 가해자였고, 누구는 방관자였으며, 또 누구는 모른 채 지나갔을 수 있다. 그 폭력이 동급 학생이던, 선배던, 동네 깡패던, 혹은 교사던지간에 우리 7080(*1970-80년대 20대를 보낸 세대)의 청소년 시절은 가히 '폭력의 시대'라 부를만 했다.
그런데, 독재 시대에 만연했던 그 폭력은 정권이 바뀌고, 민주화 바람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학교 폭력은 시대 변화와 무관하게 지속됐고, 왕따와 차별은 학교 밖 사회에서도 팽배했다. 폭력은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이기 때문일 것이다. 스마트폰, 소셜미디어, #MeToo가 없었던 시절의 폭력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지난 12월 30일 넷플릭스(Netflix)를 통해 공개된 드라마 '더 글로리(The Glory, 김은숙 극본/ 안길호 연출)'은 그 만연했던 폭력의 기억을 소환한다.
'더 글로리'는 제1부의 8개 에피소드가 공개된 지 3일만에 넷플릭스 글로벌 5위에 올랐다. 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대만, 태국, 베트남에선 1위, 홍콩, 일본, 몰디브, 오만, 아랍에미리트 2위, 바레인, 방글라데시, 쿠웨이트, 스리랑카에선 4위, 미국에선 6위를 차지했다. 3일간 넷플릭스 2천541만 시청시간을 기록하며했고, 2주째 총 1억 시청시간을 돌파했다.
미국 시청자들에게 시즌별 방영과 드라마 삽입 광고는 익숙하지만, 한국은 다르다. 드라마 중간에 광고를 허용하지 않고, 1, 2부로 나누어 시청하는 것에 익숙치 않은 우리 한인 시청자들은 3월 10일 공개될 2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문동은(송혜교 분)의 대사처럼 "우리 같이 천천히 말라 죽어보자, 연진아"라 할 정도로 인내심을 요하는 시간이다.
*<Update> <더 글로리> 파트2 시사회 후기
취향@loverdramas
1. 동은여정 대박 로맨스씬 있음
2. 동은이를 웃게 하는 유일한 사람 주여정 강현남
3. 윤소희가 생각보다 이 이야기의 뿌리임
4. 모든 얼굴 근육을 써서 표정 짓는 임지연과 동요 없이 한마디 한마디 죄의 무게를 실어 말하는 송혜교의 상반된 연기가 압권
5. 나락 가는 하도영을 지켜보는 일 미슐랭
6. 동은이는 복수하기도 바쁜데 엄마란 게 등장해서 개지랄하니까 진짜 사이다든 맥주든 옆에 두고 보길 바람
7. 주여정 칼춤 시작됨 썬키스트 품은 망나니의 맛TV
8. 손명오의 진가는 파트2다 연기력 터짐
5:39 AM · Mar 4, 2023
https://twitter.com/loverdramas
'사회적 약자'의 문동은의 복수 마라톤 카운트다운
The Glory/ Netflix
'더 글로리'는 '한국산' 글로벌 히트작 '기생충(Parasite)'과 '오징어 게임(Squid Game)'에서 보여준 빈부격차와 배금주의의 문제에서 더 나아가 학교는 물론, 병원과 방송국, 교회와 무당집까지 한국사회의 부조리한 이모저모를 파노라마처럼 펼친다. 흙수저에 학폭의 피해자, 문동은이 와신상담(臥薪嘗膽)의 18년을 기다려 치밀하게 복수하는 '더 글로리'는 인간의 폭력성, 선과 악, 빈부격차, 부패, 종교의 위선성까지 인간의 결함과 사회의 모순을 드러낸다.
학폭의 피해자, 가해자, 동조자, 무경험자를 막론하고, 억울한 일을 당하고 분노를 삭혔던 이들은 '더 글로리'의 동은이 선물할 카타르시스(Catharsis)를 기대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의 대변인 문동은은 어떻게 자신의 손에 피 한방울 흘리지않고, 복수하게 될까? '더 글로리'는 해피엔딩으로 끝날까? 동은의 복수 마라톤은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더 글로리' 파트1을 보면서 떠올랐던 생각들을 정리해보았다.
#복수와 용서의 딜레마 Revenge or Forgiveness
The Glory/ Netflix
"복수는 흐르는 꿀보다 훨씬 달콤하다(It[REVENGE] is sweeter far than flowing honey.)"
-호메로스(Homer, c. 8th BC- ?), 일리아드(Iliad)-
"당신이 강가에서 오래 기다리면, 적의 시체가 떠내려올 것이다.(If you wait by the river long enough, the bodies of your enemies will float by.)”
-손자(孫子, Sun Tzu, BC545-BC470)-
고대 그리스의 전설적인 시인 호메로스는 '일리아드(Iliad)'와 '오디세이(Odyssey)'를 남기며 고대 그리스 문학의 토대를 잡았다.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는 영웅의 복수를 묘사한 서사시다. 호메로스에게 복수는 정의의 심판이었다. 그리스 신화에도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Nemesis)와 에르니에스(Erinyes)가 나온다. 날개 달린 네미시스는 교만, 탐욕을 심판하는 인과응보의 여신으로 양손에 칼과 저울을 들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에르니에스는 알렉토(분노), 티시포네(살인), 메가이라(질투)의 세자매다.
한편, '손자병법(孫子兵法, Sun-Tzu's Art of War)'으로 유명한 중국 춘추시대의 전략가 손자는 누가 너에게 해를 끼치거든 앙갚음을 하려 애쓰지 말고, 그저 강가에 앉아 기다려라. 머지않아 그 사람의 시체가 떠내려가는 것을 보게 될지니라며 굳이 복수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 듯하다. 세월이 약일까? 최고의 복수는 용서일까? (*주: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의 '뇌(L'ultime Secret)'와 '웃음(Le rire du Cyclope)'에 등장하는 인물 이지도르 카첸버그(Isidore Katzenberg)가 노자의 말이라면서 인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손자를 노자로 착각한듯 싶다.)
아이러니하게도 '더 글로리'에서 윤진 일당인 마약중독 화가 이사라의 목사(성한믿음교회) 아버지는 마태복음서를 인용해 설교한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앙갚음하지 마라.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 대고 (…) '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여라.' 하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마태오의 복음서 5:38-44-
문동은은 두번의 자살을 시도했다가 꿈을 위해 새로 태어났다. 그녀의 꿈은 '연진', 즉 복수였다. 우리는 복수의 판타지를 꿈꿀지라도, 현실에서는 복수자(avenger)가 되는 것을 억압하고 있다. 아마도 그래서 파트 2에서 동은이 통쾌한 복수극을 펼쳐 보여 대리만족할 기대감으로 설레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8개의 에피소드는 점입가경(漸入佳境)의 복수 드라마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동은/송혜교는 우리 시대 복수의 히로인, 아이콘, 터미네이터, 심판자인 셈이다.
#10계명과 최후의 심판 Ten Commandments & The Last Judgement
The Glory/ Netflix
김은숙 작가의 종교를 알 수는 없지만, '더 글로리'에서는 종교에 대한 비판의식이 드러나 있다. 화가 이사라의 목사 아버지와 박연진 엄마와 형사가 드나드는 무당집 장면에서 작가의 개신교/ 무속신앙에 대한 시각이 엿보인다. 무종교의 동은은 말한다. "종교가 없으면 가장 좋은 점이 뭔 줄 알아, 성희야? 갈 곳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거야. 지옥." 2022년 한국리서치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개신교 신자가 1천31만명으로 20%, 불교가 17%, 천주교는 11%, 그리고 무종교가 51%로 나타났다.
세가지 연작 '블루' '화이트' '레드'의 폴란드 감독 크쥐시토프 키예슬로프스키(Krzysztof Kieślowski, 1941-1996)가 1989년 TV용으로 연출한 드라마 시리즈 '데칼로그(Dekalog)'는 성경의 십계명을 현대판으로 각색한 10부작이다. 한분이신 하느님을 흠숭(공경)하여라(1편),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아라(2편),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라(3편), 부모에게 효도하여라(4편), 사람을 죽이지 마라(5편), 간음하지 마라(6편), 도둑질을 하지 마라(7편),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8편), 남의 아내를 탐하지 마라(9편), 남의 재물을 탐하지 마라(10편)로 5편 극장용 영화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A Short Film ABout Killing)'으로 나와 칸영화제 국제비평가상을 수상했다.
The Glory/ Netflix
'더 글로리'의 등장인물들은 어쩌면, 성경이나 신화에 뿌리를 둔 원형(archetype, 정신심리학자 칼 융이 사용한 인간 집단 무의식 속의 이미지 패턴)들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먼저 문동은을 둘러싼 인물들을 살펴보자.
학교폭력 가해자 5인방의 여왕벌격인 박연진(임지연 분)은 고데기로 문동은의 팔다리를 지지라고 명령할 정도로 악한 인물이다. 금주저 외동딸(아버지는 등장하지 않는다) 연진은 순탄하게 TV 기상캐스터 취직했고, 건축회사 사장 하도영(정성일 분)과 결혼해 외동딸을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하지만, 난폭한 성격에 돈으로 사람을 이용하는 갑질형 인간으로 전재준(박성훈 분)과 간음하며, 고등학교 때 윤소희를 살해했으며, 남편에게 학폭 과거와 딸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 연진은 십계명 중 최소 3개 어긴 3관왕이다.
화가 이사라(김히어라 분)는 목사의 딸이지만, 마약과 알콜 중독자에 문란한 성생활을 즐기며, 무명작가들에게 대리작업을 시키는 가장 타락한 인물이다. 사라는 동은에게 "난 너한테 한 짓 다 회개하고 구원받았어"라며 두번째 계명(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아라)을 위반한다. 세탁소집 딸로 스튜어디스가 된 최혜정(차주영 분)은 가해자 집단에서도 서열상 하위로 하녀처럼 멸시당한다. 혜정은 고등학교 때 체육교사와 원조교제를 하며 체육관 열쇠를 받아 연진 일당의 아지트로 만든다. 세탁소의 손님 명품옷을 입고 다니며, 신분상승을 꿈꾸며 부자를 유혹해 약혼하는 혜정은 간음과 탐욕, 도덕성이 제로인 인물이다.
아버지로부터 골프 리조트를 물려받은 전재준(방성훈 분)은 명품 편집숍(시에스타)도 운영하고 있다. 재준은 흙수저 출신으로 서열이 낮은 명오(김건우 분)를 하인처럼 부리며, 여왕벌 연진과 불륜하는 사이다. 그의 약점은 적록색약으로 연진의 딸에게 유전되어 부성애를 자극시킨다. 한편, 할아버지 밑에서 자란 손명오(김건오 분)는 학폭 패거리 중 서열이 가장 낮다. 동은을 성추행한 명오는 재준의 운전기사이자 편집숍 관리, 사라의 마약 전달책을 맡았다 명오는 동은의 일확천금 제안에 눈이 멀어 연진을 협박하다가 최후를 맞게 된다. 탐욕과 배신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가해자 5인방의 최후는 뿌린대로 거두는 자업자득(自業自得)이다. '더 글로리'는 인과응보(因果應報)와 권선징악(勸善懲惡)의 테마를 깔고 있다. '최후의 심판' 그 열쇠는 '복수의 여신' 문동은이 쥐고 있다.
#복수의 여신 '네미시스(Nemisis)', 반영웅(anti-hero) 문동은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 중 '친절한 금자씨'(2005), The Glory/ Netflix
"난 거기까지 가볼 작정이야, 연진아. 용서는 없어, 그래서 그 어떤 영광도 없겠지만."
-문동은 (더 글로리)-
달방(*여인숙같은 곳의 월세방)에서 엄마와 살던 문동은의 꿈은 건축가였다. 가난하지만, 예쁜 여학생 동은은 연진의 타겟이 되어 육체적 정신적 폭력에 시달리다가 자퇴한다. 경찰에 신고하고, 담임 교사에게 제보했지만, 더 극심한 폭력으로 돌아왔다. 정신이 박약한 이발소 종업원인 엄마는 합의금을 받아 남자와 도망가버린다. 사고무친'(四顧無親) 동은의 육체와 영혼은 산산히 부서진다.
자살까지 시도했다가 복수를 결심한 동은은 절망의 끝에서 어둡고 긴 터널의 여정을 시작한다. 분식집, 방직공장에서 일하면서 검정고시를 거쳐 교육대학교에 들어갔고, 연진 딸 예솔의 담임까지 되는 치밀한 계획을 세워 연진과 그 일당을 향한 복수를 시작한다.
학창시절 연진 패거리의 피해자였던 윤소희-문동은-김경란은 각각 다른 선택을 했다. 윤소희는 자살(살해) 당했으며, 문동은은 복수의 칼을 갈았고, 김경란은 재준의 숍에서 직원으로 일하며 가해자 그룹에 통합됐다. 피해자들의 꿈은 좌절됐거나, 왜곡됐거나, 체념됐다. 반면, 가해자들은 순조롭게 꿈을 성취했다.
그러면, 동은의 복수극은 '최후의 심판'일까? 동은이 계획한 복수는 때로는 합법적이지 않으며, 자신의 손에는 피 한방울 묻히지 않을 것이다.
복수형 인간 문동은은 영웅일까, 반영웅(anti-hero, 反英雄)일까? 반영웅이란 전통적으로 영웅(hero)에게 필요한 정의로움, 용맹심, 고귀함과 미덕 등의 자질이 부족한 주인공으로, 사악하거나 부도덕하지는 않으며, 공격적이며, 냉소적인 인물이다. F. 스캇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1925)'의 제이 개츠비, J. D. 샐린저 작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 1951)'의 홀덴 콜필드, 아서 펜 감독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and Clyde, 1967)'의 갱 커플 보니(페이 더너웨이 분)와 클라이드(워렌 비티 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 1976)'의 트래비스(로버트 드 니로 분)이 전형적인 반영웅이다. 극이나 소설에서 반영웅은 타락하고 부조리한 사회에서 윤리나 고결성 때문에 고통과 갈등을 겪는 인물이다. 이전의 전통적인 주인공들과 달리 비영웅적이며, 나약하고 소외된 주인공이다. '기생충'의 김씨 가족도 반영웅인 셈이다.
흙수저 문동은에게도 건축가가 되고싶다는 꿈은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꿈은 연진과 그 일당의 학교폭력으로 인해 산산조각이 났다. 자살의 문턱까지 갔던 동은은 '연진을 꿈'으로 바꾸고, 18년 동안 와신상담(臥薪嘗膽)해오며 복수의 마라톤에 뛰게 된다. 사회는 여전히 있는자(the haves)에게 호의적이었다. 연진은 뉴스캐스터, 사라는 화가, 혜정은 스튜어디스, 재준은 골프장 사업가로, 명오를 제외하고는 각자의 꿈들을 쉽게 성취했다.
한편, 온몸에 고데기(아이언) 고문의 상흔을 갖고 있는 동은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붕괴된 상태다. 동은은 오로지 하나 복수에 삶을 건다. 그런 의미에서 반영웅 문동은의 꿈은 고귀하다. 윤소희는 학폭에 못견뎌서 삶을 마감했고, 김경란은 학폭에 체념해 재준의 숍에 취직했다. 하지만, 문동은은 혈혈단신(孑孑單身) 복수의 꿈을 품고, 연진 일당 앞에 컴백했다. 동은은 우리 시대의 터미네이터다.
송혜교의 문동은은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Sympathy for Lady Vengeance 2005)'에서 금자 역의 이영애를 떠올린다. 박 감독의 복수 3부작 '복수는 나의 것(Sympathy for Mr. Vengeance, 2002)', '올드보이(Oldboy, 2003)'에 이은 '친절한 금자씨'는 어린이 유괴살인 사건 범인으로 지목돼 13년 복역 후 출소한 금자(이영애 분)가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영어 교사 백선생(최민식 분)에게 복수하는 이야기다. 금자와 동은은 우리 시대 복수의 여신, 네미시스이다.
#오마쥬인가. 영감인가? Homage or Inspiration?
The Glory/ Netflix
'더 글로리'는 주제의식, 생생하게 그려진 캐릭터들, 주조연의 빼어난 연기, 맛깔스러운 대사, 스피디한 전개, 탁월한 영상미, 플래시백 편집의 묘미, 그리고 메타포와 디테일(바둑, 나팔꽃, 롤렉스 시계, 초록구두, 구찌 유아복, 주먹밥 등)로 팽팽한 긴장감을 유발하는 흥미진진한 드라마다.
폭력에 대한 응징은 '더 글로리'의 메인 테마다. 학폭 피해자 문동은과 환자에게 의사 아버지를 살해당한 성형외과의사 주여정(이도현 분)의 만남에는 공통 분모가 있다. 둘다 폭력의 피해자이자 분노와 증오로 복수의 칼을 갈고 있다는 점이다. 수술하며 생명을 구하는 병원장이 환자로부터 죽음을 당하는 것은 칼의 양날처럼 아이러니하다. 칼은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기도, 누군가의 생명을 끝내기도 하는 것이다. 바둑을 배우며 나누는 동은과 여정의 우정, 동은이 몸의 상처를 보여주며 과거를 고백하며 생기는 연대감, 결국 주여정은 동은의 말대로 "칼춤 추는 망나니"를 다짐하게 된다. ('칼춤 추는 무당'과 대조적이다) 동은과 여정의 장면들은 로맨스 장르다.
루이스 만도키 감독의 '화이트 팰리스(White Palace, 1990)'는 세인트루이스의 광고회사 간부 제임스 스페이더(27)와 햄버거 체인 화이트 팰리스에서 일하는 연상의 웨이트레스 수잔 새런든(43)의 러브 스토리를 그린 영화다. 스페이더는 2년 전 부인을 자동차 사고로 잃은 후 우울증에 빠져있다. 그는 어느날 친구 총각파티용으로 주문한 햄버거의 수가 부족해 화이트 팰리스로 돌아가 새런든과 말다툼 끝에 환불받는다. 두 사람은 그날 밤 술집에서 우연히 만나고, 새런든이 아들을 백혈병으로 잃은 것을 알게 된다. 트라우마가 있는 남녀는 나이와 계급 차이를 극복하게 된다. 결벽증이 있는 스페이더가 지저분한 새런든에게 진공청소기를 선물해 싸우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The Glory/ Netflix, 'Thelma and Louise' (1991)
문동은과 강현남(염혜란 분)은 학교폭력의 피해자와 가정폭력의 피해자로서 손을 잡는 콜라보 관계다. 남편의 폭력에 시달려 살의까지 느낀 현남은 세명재단 이사장집의 가사 도우미로 일하다가 동은을 만나며 운전을 배우고, 촬영하고, 미행하고, 정보를 캐는 사립탐정처럼 변신하게 된다. 자칭 "매 맞아도 명랑한 년" 현남은 동은을 통해 독립형 여성으로 탈바꿈한다. 동은과 현남이 자동차 안에서 대화하는 장면은 물론 계약관계이긴 하지만, 리들리 스콧 감독의 '델마와 루이즈(Thelma and Louise, 1991)'처럼 페미니스트 버디무비를 연상시킨다. 영화에서 가부장적 남편과 사는 전업주부 델마(지나 데이비스 분)와 웨이트리스 루이스(수잔 새런든 분)가 여행을 갔다가 클럽에서 강간미수범을 살해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 절벽에서 떨어지는 마지막 장면은 다소 염세적이기도 하다.
The Glory/ Netflix (왼쪽)/ 왕가위 감독 양조위-장만옥 주연의 '화양연화'(2000)
한편, 문동은은 연진의 남편인 재평건설 대표 하도영(정성일 분) 앞에 나타나 그 완벽한 삶의 호수에 파문을 일으킨다. 건축가가 꿈이었던 동은과 건설회사 사장 도영은 바둑으로 친밀해진다. 흑돌과 백돌이 서로 집을 짓고 허물어가는 이 맞서는 바둑은 동은의 북수계획처럼 극적이다.
"바둑은 왜 좋아해요?"(도영) "침묵 속에서 죽을 힘을 다해 싸우는 게 좋아서요. 상대가 공들여 지은 집을 무너뜨려야 이기는 것도 맘에 들고."(동은)
"바둑은 침묵 속에서 욕망을 드러내고 매혹하고 매혹당하고 서로를 발가벗겨 상대가 응하지 않으면 그땐 그저 바둑인거지."
(문동은 나레이션)
동은과 도영의 만남은 아슬아슬하며 로맨틱하다.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In the Mood for Love, 2000)'에서 장만옥과 양가휘의 '금지된 사랑'을 떠올린다. 안길호 감독은 동은과 도영의 스쳐 지나가는 한 장면을 '화양연화'에 오마쥬를 표하듯 연출했다.
'The Glory'에서 추선생 역의 허동원 / Netflix (왼쪽)/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2007)에서 킬러 안톤 시거 역의 하비에 바뎀.
한편, 세명초등학교 이사장이 운전기사와 동성애 관계임을 이용해 예솔의 담임이 된 동은을 섬찟하게 위협하는 인물은 추선생(허동원 분)이다. 조엘과 에단 코엔 형제 감독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an, 2007)'의 하비에 바뎀이 분한 킬러 안톤 시거 를 연상시키는 단발머리와 능청스러운 표정이 소름끼치게 만든다.
#인간의 폭력성과 부조리한 사회
The Glory/ Netflix
'더 글로리'는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처럼 복합적인 장르다. '기생충'은 스릴러, 범죄극, 드라마, 블랙코미디가 혼합됐으며, '오징어 게임'은 스릴러, 액션, 드라마, 서바이벌 게임을 블렌딩한 작품이다. 한편, '더 글로리'는 범죄, 복수, 스릴러가 믹스된 드라마다. 한국 감독들은 할리우드 장르의 법칙에서 벗어나 탈장르, 퓨전 장르를 즐긴다. 고 백남준이 찬미했던 '비빔밥' 철학은 한국인들의 DNA다. K-팝도 음악과 춤과 뮤직 비디오에 세계 음악 장르가 블렌딩된 장르이며, K-영화와 K-드라마도 이 복합장르를 서핑하고 있다.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은 자본주의 사회의 빈부격차와 인간성의 상실을 그렸다. 그러나, 사회구조에 대한 해결책을 제안하지 않았다. '더 글로리'에선 가진 자들(유산계급, the haves)와 못가진 자들(무산계급, the have nots)의 세계가 고등학교 학교에서 대결한다. 심심풀이로 폭력을 휘두르는 금수저 박연진은 부패한 교사와 경찰로부터 보호받는다. 달방에 사는 흙수저 동은은 합의금에 현혹된 친엄마로부터도 버림받는다. 그녀 나이 18세였다. 그후로 18년간 동은은 어둡고, 길고, 험한 길을 걸어왔다. 그녀는 치밀한 복수 계획을 세워 연진과 그 일당의 삶을 추락시키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문동은은 권선징악(勸善懲惡, poetic justice), 인과응보(因果應報),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수호신, 아이콘, 우리 시대의 터미네이터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더 글로리'의 결말은 해피엔딩일까?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영화 ‘플레이어(The Player, 1992)’에서 허구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지향하는 한 시나리오(톰 오클리) 작가는 할리우드 프로듀서 팀 로빈스(그리핀 밀)에게 피치를 올리며 말한다. “그 여인은 죽는다. 이 시나리오는 스타도 없고, 가벼운 해피엔딩도 없고, 슈와제네거도 안나오고, 강도도 없으며, 자동차 추격씬도 없다. 테러리스트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건 혹심한 이야기다. 결백한 여자가 죽는 비극이다. 왜냐고? 이것이 현실,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팀 로빈스는 흥행성이 없다고 판단한 후 동료 프로듀서 피터 갤러거에게 소개해준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정직하고, 착한 사람들의 편이 아니다. 그래서 문동은은 우리의 감추고 싶은 복수라는 은밀한 욕망을 실현하는 해결사같다.
문동은의 본격적인 복수 마라톤이 펼쳐질 '더 글로리' 파트 2는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것이다. 현실에서 정직한 사람은 죽고, 악당들이 성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더 글로리'는 비현실적인 해피엔딩의 동화(fairy tales)가 될까, 사회비판과 교훈을 전달하는 우화(fables)로 남을까? 김은숙 작가는 연진 딸 예솔이 원하는 동화가 아니라 동은이 체험한 인간의 잔혹성과 부조리한 사회를 폭로하는 우화로 끝낼 것이다. 문동은의 주사위는 던져졌다.
*넷플릭스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뮤지엄 명화 도난사건 다큐멘터리 공개
https://www.nyculturebeat.com/?mid=Film2&document_srl=4037686
*넷플릭스 2021 한국 콘텐츠에 5억 달러 지출
https://www.nyculturebeat.com/?mid=Film2&document_srl=4035604
Glory를 자세하게 써주신 노고에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