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YFF62: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 '그랜드 투어(Grand Tour)'의 미학 ★★★★★
NYFF62 (9/27-10/14): Grand Tour ★★★★★
달아난 예비신랑, 그를 추적하는 약혼녀
'그랜드 투어' 영화언어와 삶의 변주곡
*NYFF62: Grand Tour ★★★★★ <review in English>
Miguel Gomes’ Cinematic Odyssey of Love, Loss, and Empire
https://www.nyculturebeat.com/index.php?mid=Film2&document_srl=4133528
Grand Tour by Miguel Gomes 예고편
https://youtu.be/oN0wM9QLu3c?si=WFEusNXcwVs3JqmH
올 칸영화제에서 '그랜드 투어(Grand Tour)'로 감독상을 수상한 포르투갈 출신 미구엘 고메스(Miguel Gomes, 52)는 누구나 영상을 만들 수 있는 이 디지털 시대에 영화라는 예술을 복귀시킨 거장처럼 보인다. 2024 뉴욕영화제(NYFF62, 9/27-10/14)에서 '그랜드 투어'를 초청했고, 올 부산국제영화제(BIFF, 10/2-11)에서는 그의 장편영화 8편을 상영하는 회고전 'Miguel Gomes, a filmmaker of Joyful Melancholy'를 연다.
미구엘 고메스는 리스본연극영화학교에서 영화를 전공한 후 영화비평가로 활동하며 단편을 만들었다. 2004년 장편극영화 '자신에 적합한 얼굴(The Face You Derserve/ A Cara que Mereces)'로 데뷔한 후 '타부(Tabu, NYFF50)'로 베를린영화제 알프레드바우어상(은곰상)을 수상했다. 이어 포르투갈의 현실을 '아라비안 나이트'에 비유해 만든 3부작 '천일야화(Arabian Nights/ As Mil e Uma Noites, NYFF53)'로 찬사를 받았다.
Grand Tour by Miguel Gomes
영화이론으로 무장한 미구엘 고메스 감독의 '그랜드 투어'는 1918년 영국인 커플 에드워드(곤살로 워딩톤 분)와 약혼녀 몰리(크리스타 알파아아테 분)가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에드워드와 몰리는 함께가 아니라, 따로 여행한다. 그것도 약혼 7년 후 결혼을 앞두고 도망친 에드워드를 몰리가 추적하는 이야기다. 빌리 와일더 감독, 마릴린 먼로 주연의 '7년만의 외출(The Seven Year Itch, 1955)'에 대한 오마쥬 혹은 패러디인듯 하다. 7년이면 권태로워질 법도 하다.
영화의 절반은 '런어웨이 신랑' 에드워드의 이야기다. 버마(현 미얀마) 랑군 주재 대영제국의 공무원인 에드워드는 만달레이에서 싱가포르, 방콕, 사이공, 마닐라, 오사카, 상하이, 중경, 티벳까지 도피 여행을 떠난다. 영화의 2부는 약혼남을 찾아 찾아 나서는 몰리의 관점으로 스토리가 진행된다. '그랜드 투어'는 His Story와 Her Story로 공평하게 이야기를 끌어간다. 에드워드는 무책임한 도망자이며, 몰리는 집요한 신여성이다. 에드워드는 로맨틱 히어로가 아니라 비겁한 인물이며, 몰리의 교양미 없는 웃음은 매력 만점의 여주인공이 아니라 결점있 있는 인물로 부각시킨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 아니던가?
Grand Tour by Miguel Gomes
영화의 오프닝은 버마 만달레이의 놀이공원에서 한 남자가 수동 관람차를 조종하는 컬러 장면이다. 관람차 승객들은 수직으로 다른 높이에서 세상을 보게 된다. 반면, 에드워드와 몰리의 여행은 기차로 이동하는 수평 여행이다. 고메스 감독은 원더휠이 상징하는 상/하, 계급적인 시각에서 땅으로 내려와 평등한 수평의 여정으로 세상을 보겠다고 선언하는 것 같다.
에드워드의 시선에서 카메라는 기차가 떠나온 철로(과거)를 보여주는 반면, 몰리의 시점으로 가면 기차는 앞으로 가는 철로(미래)를 보여준다. 에드워드의 염세주의와 몰리의 낙관주의는 기차의 철로처럼 평행선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 마음 속엔 이 두가지 기질이 늘 앞을 다투며 고뇌를 한다. 그러므로 에드워드와 몰리는 우리 마음 속의 두 심성으로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영화는 흑백 화면과 코로나19 팬데믹의 컬러를 오간다. 초기 영화의 기법인 아이리스((iris, 피사체를 둥근 원에 가두면서 화면이 암전되는 기법), 수퍼 임포즈(Super Impose, 두 개 이상의 영상을 겹쳐서 하나의 장면으로 보여주는 기법) 등으로 재기 발랄하게 1918년 당시의 무성영화의 감성을 전달하며 영화예술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담았다.
Grand Tour by Miguel Gomes
그런가하면, 장소가 바뀔 때마다 남녀 나레이터는 태국어, 베트남어, 버마어, 필리핀어로 해설을 하고, 등장인물들은 중국어, 프랑스어, 일본어를 구사해 관객을 헷갈리게 한다. 그러나, 영어를 구사하는 에비타(마돈나)나 나폴레옹(호아퀸 피닉스)이 얼마나 리얼리티가 떨어진 것 아닌가? 고메스는 그점에서 리얼리티에 충실했다.
미구엘 고메스 감독은 의도적으로 영국인 역에 포르투갈 배우를 캐스팅, 영어 대신 포르투갈어를 쓰게 했다. 이는 대영제국과 자국 포르투갈의 식민지주의에 대한 냉소를 반영하는듯 하다. 영국은 전성기에 최대 120개의 식민지를 거느렸으며, 포르투갈도 한때는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에 50개국 이상의 식민지를 건설했던 나라다. 과거의 식민대국 두 나라를 에드워드에 수퍼임포즈시킨 셈이다.
포르투갈어를 구사하는 영국인 커플과 여행지마다 아시안 나레이터들은 관객에게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의 효과를 준다. 대신 그들을 지배했던 나라들과 지배를 받았던 피식민지국들의 목소리를 확성기로 증폭시키는듯 하다. 영화는 문화적인 코드가 풍성하다. 각 나라의 인형극, 그림자극에서 가라오케까지 전통과 현대의 문화를 파노라마로 보여준다. 몰리는 숲에서 스마트폰을 떨어트리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마스크를 쓴 군중이 나타난다. 고메즈는 역사적 고증 대신 다큐와 픽션을 짜집기 함으로써 에드워드와 몰리의 따로 여행을 더욱 몽환적으로 만든다.
Grand Tour by Miguel Gomes
음악과 음향의 사용도 주목할만 하다. '그랜드 투어'는 시각적인 여행일 뿐만 아니라 풍요로운 음악과 음향의 여정이기도 하다. 베르디 작곡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Il Trovatore)'에서 만리코의 아리아 "타오르는 저 불꽃을 보라(Di quella pira)"와 요한 스트라우스의 왈츠 '푸른 다뉴브 강', 코러스에서 동남아 각 나라의 전통 음악들이 릴레이로 깔린다. 이로써 우리는 서양음악에 의존적인 영화음악으로부터 낯설은 음악을 접하게 된다.
에드워드와 몰리가 각자 머무는 여행지에서 동물들이 종종 등장한다. 항구에는 털복숭이에 뿔 달린 숫양이, 온천탕 안에선 원숭이가 노닐고, 정글 숲에는 당나귀가 사람을 태우며, 대나무 숲에선 팬다가 보인다. 고메즈 감독은 동물들을 고뇌에 빠진 인간의 목격자로 만든다. 그는 원시 자연과 인간이 일구어온 문명을 모자이크하며, 나약한 인간을 고찰한다. 그런 의미에서 고메즈의 시점은 머나먼 행성에서 지구를 지켜보는 신의 관점처럼 느껴진다.
에드워드는 때때로 밀림을 즐겨그린 프랑스 화가 앙리 루소(Henri Rousseau, 1844-1910)의 회화 속으로 들어간듯 하다. 원시적이고, 이국적이며, 신비스러운 루소의 그림 속에서 인간은 우주의 한 부분임을 상기시켜준다. 고메즈는 일상에서 뮤트(mute)로 제거해왔던 사소한 소리들을 채집해 내보낸다. 에드워드와 몰리의 여정에 동반하는 새소리, 불소리, 숨소리는 그의 우주관을 반영한다.
Grand Tour by Miguel Gomes
'그랜드 투어'는 할리우드의 관습을 박살 내는 영화다. "소년이 소녀를 만나다, 그래서 결혼으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는 할리우드식 해피엔딩 대신 도망친 신랑과 그를 추적하는 신부의 이야기를 두가지로 들려준다. 그런 의미에서 상대주의적이며, 입체파적이고, 또한 포스트모던하다. 그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흑백과 컬러, 2개의 남녀 스토리, 다중 화자, 다양한 장르(로맨스, 코미디, 누아르, 스릴러, 로드무비, 어드벤처) 등 의 믹스, 그리고 할리우드와 모더니즘의 단선적 내러티브에서 해방되어 다자적 관점으로 영화를 '칵테일'처럼 '비빔밥'처럼 모자이크한다.
에드워드의 목적지가 티베트였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기독교 중심의 서양 역사와 제국주의 시각에 대한 반성일까? 그곳에서 아편에 중독된 영국 영사는 에드워드에게 "제국은 끝이 났고, 서양인들은 동양인들의 마음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해준다. 백인우원주의 시각의 동양에 대한 신비주의(Orientalism)를 경고하는 말이다.
Grand Tour by Miguel Gomes
어쩌면 에드워드와 몰리의 '그랜드 투어'는 우리 삶에 대한 은유다. 머리에 바구니를 쓰고 다니는 일본 스님은 에드워드에게 "세상에 몸을 맡겨라"고 말한다. 나약한 에드워드나 단호한 몰리나 우리 마음 속에 늘 잠복해있는 심성이다. 우리가 타고 있는 인생이라는 열차가 비록 탈선을 하고, 밀항하고, 스파이 혐의를 받으며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데려간다할지라도 그 여행은 위대한 것이다.
'그랜드 투어'는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심리학적, 페미니스트적인 시점을 망라한 포스트모던하고, 몽롱한 환타지의 영양식이다. 무엇보다가 '그랜드 투어'는 우리의 삶에 대한 고찰이자, 영화에 대한 찬가다. 야심만만한 영화작가 미구엘 고메스가 선사하는 예술적 성찬이다. 풍요한 영화언어와 문화적 감성, 휴머니즘과 상상력의 결정체다. 그 여행에 동참하시라! 러닝타임 128분.
GRAND TOUR
Tuesday, October 8, 9PM/ Wednesday, October 9, 6 PM/ Friday, October 11, 12:45 PM
Q&A with Miguel Gomes on Oct. 8 & 9
https://www.filmlinc.org/nyff2024/films/grand-tou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