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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숙희/수다만리
2014.12.07 13:16

(67) 박숙희: 뉴욕, 짝사랑과 참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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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만리 (6)뉴욕이 잃어가고 있는 것들...



뉴욕, 사랑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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럼비아 어학반에 다니던우리들은 패트릭 선생님을 따라 브루클린 브리지를 걷고 있었다.

1996년 4월, 영화나 실컷 보겠다고 뉴욕에 온 지 3개월째 되던 봄날, 자막없는 영화를 보아야 하는 뉴욕은 '시네마 파라디소'라기 보다는 '황량하고 까칠한 도시'였다. 친절하고, 지성적이었던 패트릭은 클래스 트립을 브루클린으로 정한 것이다. 굵은 밧줄이 거미줄처럼 엮인 브루클린 브리지를 걷는 것은 외계 속으로 들어간 듯 신비로웠다. 외국인 학생들을 인솔한 패트릭은 다리를 건넌 후 브루클린 하이츠로 안내하더니 "내가 뉴욕에서 가장 좋아하는 동네"라며, 싱그럽게 웃었다. "맨해튼에 살면서 브루클린을 더 좋아하다니..." 그는 맨해튼 어퍼웨스트사이드에 살고 있었다.


패트릭은 미다 스트릿의 가장 오래된 집을 보여주더니, 프로미나드로 데려갔다. 맨해튼 섬에 빼곡하게 들어선 고층빌딩들,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그리고 (패트릭이 엠파이어보다 더 좋아했던) 크라이슬러 빌딩이 브루클린 브리지와 함께 파노라마로 들어왔다. 하이츠에서 맨해튼을 내려다보는 광경이란! 우리들은 그저 "스펙터클!" "원더풀!"만을 남발했다. 그 경이로운 전망을 표현하기에 우리의 어휘력은 너무나 부족했다. 



01 (2).jpg 프로미나드


그날 나는 프로미나드의 벤치에 멍하니 앉아있었다. 일본인 클래스메이트 세츠코 여사가 "무슨 걱정이 있니?"하면서 "이제 가자"고 했다. 그날 나 홀로 남아 '스펙터클한 뷰'를 가슴 속에 담아 기숙사로 돌아왔다. 그후로 브루클린과 친해질 수 있었다. 브루클린에서 이 버스, 저 버스를 타고 스파이크 리 영화 속의 동네들을 찾아보려고 애썼다. 나는 지금 그 브루클린 하이츠에 12년 4개월째 살고 있다. 


내게 끊임없이 자극을 주면서 오감을 넓혀주고, 인생을 가르쳐주고 있는 뉴욕. 그러나, 이 도시에 대한 짝사랑이 참사랑이 되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12년 3월 뉴욕컬처비트를 시작하면서 이 도시가 뉴요커들은 물론이요 우리같은 이민자나 여행자들에게 주는 영감의 조각조각들을 모아보고 싶었다. 그 조각들을 붙여가면, 조금씩 조금씩 새로운 사고의 창문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뉴욕은 이미 내게 영화뿐 아니라 미술, 오페라, 재즈, 연극, 건축 등 문화와 사람들과 삶으로 향한 창문을 열어주어왔다. 뉴욕의 속살을 음미하면서, 더욱 더 이 도시를 사랑하게 됐다. 특히 역사도 짧은 '올드 뉴욕(Old New York)'이 주는 매력은 감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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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만장자의 거리'로 불리우는 57스트릿에 엠파이어트스테이트빌딩보다 높은 럭셔리 콘도들이 올라가고 있다.



그런데, 9.11의 충격에서 벗어나 비상하고 있는 요즈음 뉴욕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맨해튼 미드타운, 다운타운, 그리고 브루클린까지 곳곳에 '개발'의 이름으로 고공행진 중인 고층 빌딩들, 탐욕의 바벨탑들을 배경으로 "뉴욕은 세계 부동산의 수도(The Real Estate Capital of the World)"라는 깃발 아래 올드 뉴욕이 허물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MoMA는 여론의 강력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민속박물관(American Folk Art Museum, 2001-2014)을 철거했고, 로버트 드 니로와 메릴 스트립이 크리스마스 즈음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는 영화 '폴링 인 러브(Falling in Love)'로 영원히 기억될 57스트릿의 리쫄리 서점(Rizzoli)은 지금 폐허가 됐다. 슬리퍼 신고 가기도 좋은 우리 동네 영화관 하이츠 시네마(Heights Cinema)도 무자비한 개발업자들의 자본에 굴복했다. 다음은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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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이토록 멋진 펜 스테이션에서 롱아일랜드로 가는 기차를 탈 수 있었을 것이다.

Pennsylvania Station(1910-1963), Designed by McKim, Mead, and White, Photo: Library of Congress Prints and Photographs Division



올 여름과 가을엔 고개를 들고 뉴욕의 하늘을 유심히 올려다 보게 됐다. 온 도시가 공사장을 방불케하며, 럭셔리 콘도들이 우추죽순으로 올라가고 있다. 문득 예전에 보았던 펜 스테이션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다.


1963년 펜 스페이션(1910-63)이 사라졌을 때 뉴요커들이 충격에 빠졌다. 브루클린뮤지엄과 컬럼비아 캠퍼스의 건축회사 맥킴, 미드 & 화이트의 설계한 펜스테이션은 보자르 건축의 걸작으로 꼽혔지만, 개발업자들에 의해 철거되기에 이른다. 그 자리엔 현대식 건물 매디슨스퀘어가든과 펜 플라자로 대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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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nsylvania Station(1910-1963), Designed by McKim, Mead, and White, Photo: Library of Congress Prints and Photographs Division(왼쪽), 

철도역을 개조한 파리의 오르세 뮤지엄.  Photo: Sukie Park/NYCultureBeat



펜 스테이션 철거에 상심해서 뉴욕을 떠난 건축가도 있었다. 네이탄 실버는 런던에 살면서 'Lost in New York'을 집필했고,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고 있다. 파리의 오르세 뮤지엄처럼 철도역을 미술관으로 만들었다면? 1900년 세느강변에 건축된 보자르 양식의 철도역 오르세 역(Gare d'Orsay)은 1986년 오르세 뮤지엄(Musée d'Orsay)으로 개조됐다. 세잔, 르노아르, 마네, 모네,고흐, 로댕의 작품이 있는 아름다운 뮤지엄이다.


펜 스테이션 철거 이후 건축가들은 물론, 뉴욕의 지성들이 발벗고 나서 랜드마크를 지정해서 유서깊은 건물을 보존하는 랜드마크 보존 위원회의 설립하게 된다. 1965년, 뉴욕에서 첫번째 랜드마크로 지정된 곳이 브루클린 하이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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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영화와 독립영화를 보여주던 우리 동네 영화관 하이츠 시네마도 올 여름 문을 닫았다.



빗 프리미엄 투어를 시작하게 된 것도 우연이었다. 얼마 전 컬빗을 후원해주시는 두 선생님들께 하이츠 구경시켜 드리고, 그리말디 피자리아에서 대화하던 중 해주신 제안이었다. 겨울을 재촉하는듯 보슬보슬 비가 내리던 그날 선생님들과 브루클린브리지를 신나게 걸었다. 그리고 돌아와서 곰곰히 생각했다. 투어 가이드? 연도를 외는데 지능도 재능도 부족하지만, 열정은 보탤 수 있을 것 같았다. Just do it!


투어 프로그램으로 1. 브루클린 트로이카(하이츠+덤보+브리지), 2. 그랜드 센트럴의 10가지 비밀 3. 브루클린의 숨은 보석(브루클린 다운타운+ 그랜드 아미 플라자 + 브루클린 뮤지엄)을 정한 것도 먼지 속으로 사라질 뻔했던 건축물에 대한 애정과 경외가 담겨있다. 


브루클린 하이츠가 랜드마크로 지정되기 전 수많은 걸작 건축물들이 철거됐다. 보자르 걸작 그랜드 센트럴도 1970년대 철거될 위기였다가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구명운동으로 면제되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맨해튼 펜 스테이션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지만, 맥킴, 미드 & 화이트가 설계한 브루클린뮤지엄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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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필드 스트릿에서 바라본 플랫부쉬 애브뉴. 럭셔리 콘도 빌딩들이 올라가고 있다.


그러나, 지금 브루클린 다운타운의 더필드 스트릿은 불도저 앞에서 풍전등화다. '노예해방의 거리(Abolition Place)'로 명명된 더필드 스트릿은 노예해방운동의 구심점이었던 탈출 지원 네트워크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가 있던 곳이다. 낡아빠진 집 한 채가 뮤지엄으로 될 예정이었으나, 개발업자들에 의해 사면초가에 놓였다. 벌써 셰라톤 호텔, W호텔, 인디고 호텔에 둘러싸여있다. 만일, 홀로코스트와 유대인이 관련된 장소였다면? 랜드마크로 보존됐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뉴욕은 경찰의 흑인 살해 무기소에 광분하고 있는데...



어 프로그램을 리서치하면서 발견한 것은 흥미진진한 뉴욕의 비하인드 스토리다.

대통령 후보였던 에이브라함 링컨에 두번씩이나 예배를 드렸던 교회, 과일상과 목수를 거쳐 시티홀을 설계한 건축가, 센트럴파크에서 자전거 타다가 마차에 치어 요절한 조각가... 약관 24세 건축가가 지은 멋진 르네상스 리바이벌 건물에 들어선 피자집. 퓰리처상 2회 수상 작가 노만 메일러와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아서 밀러가 같은 건물에서 살았다는 것도 극적인 우연이다. 트루만 카포테는 윌로우 스트릿의 지하방에서 '티파니에서 아침을'을 썼다.


또한, 역사 속에 가려졌던 여성들의 역할을 재발견할 수 있었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의 멤버로 70여명의 노예를 탈출시킨 해리엇 터부만은 노예의 딸이었다. 뉴욕에서 유일하게 여성작가를 위한 갤러리를 마련한 브루클린뮤지엄에는 70년대 페미니스트 아트의 전사 주디 시카고의 걸작 '디너 파티'가 있다. 브루클린 브리지를 설계한 이는 존 로블링이었지만, 그것을 완성하고 개통식에 선두에 선 사람은 며느리 에밀리 로블링이었다. 시아버지가 사망한 후 남편이 건축을 지휘하다가 병 들어 눕자, 남편에게 건축을 배워서 현장을 지휘한 여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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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해리엇 터브만, 에밀리 로블링,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 그리고 주디 시카고의 설치작 '디너 테이블'.



하이츠에 오렌지, 크랜베리, 파인애플, 윌로우, 포플러 스트릿이 생긴 것? 미다(Middagh)라는 이름의 여인이 갑부 남성들의 이름을 딴 거리(헨리, 힉스, 피에르폰트...)에 반발해서 표지판을 떼고 과일, 나무 이름을 붙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랜드 센트럴이 사라지지 않고, 지난 해 100세를 넘긴데 수훈을 세운 이는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였다. 이처럼 컬빗투어는 역사(HIS tory-남성의 이야기)에서 그림자에 가려졌던 여성역사(HER story)도 곁들이려고 한다. 


컬빗 프리미엄 투어 프로그램을 리서치하면서 뉴욕의 건물 하나하나들을 보다 유심히 보게 됐다. 더 많이 알게 되니, 우리 동네 하이츠도 더욱 정겨워지고, 뉴욕도 더욱 더 사랑스러워진다. 내게 아낌없이 영감을 주어온 도시, 뉴욕에 대한 짝사랑이 마침내 참사랑이 되려나. 


이 투어에는 뉴욕을 사랑하는 분들, 뉴욕을 탐험하고 싶어하시는 열정적인 분들을 모시고 싶다. 아름다운 건축물들, 지혜로운 여성들의 이야기, 그리고 맛깔스러운 음식과 함께 뉴욕의 멋과 맛을 나누고 싶다. Let's have fun!



sukiepark100.jpg 박숙희/블로거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한양대 대학원 연극영화과 수료. 사진, 비디오, 영화 잡지 기자, 대우비디오 카피라이터, KBS-2FM '영화음악실', MBC-TV '출발! 비디오 여행' 작가로 일한 후 1996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Korean Press Agency와 뉴욕중앙일보 문화 & 레저 담당 기자를 거쳐 2012년 3월부터 뉴욕컬처비트(NYCultureBeat)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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