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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N.(Prescription Addiction Intervention Now) Sackler

새클러 가문과 뮤지엄 <3> 억만장자들과 전쟁 중인 사진작가 낸 골딘

옥시콘틴 중독에서 사회운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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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2월 9일 구겐하임뮤지엄에서 열린 P.A.I.N 시위와 낸 골딘 from The Artist Project, The Met Museum.

 

'새클러(Sackler)'는 세계 뮤지엄 도처에 존재하는 친숙한 이름이다. 메트로폴리탄뮤지엄, 구겐하임뮤지엄, 브루클린뮤지엄, 보스턴 하버드대뮤지엄, 워싱턴 DC 스미소니안뮤지엄, 파리 루브르뮤지엄, 런던 브리티시뮤지엄 등의 갤러리, 기부자, 센터이름에 올라가 있다. 또, 옥스포드, 케임브릿지, 컬럼비아, 터프츠, 텔아비브 대학에도 새클러 이름을 딴 연구소, 도서관, 센터가 있다.

 

그런데, 최근 런던의 국립초상화갤러리에서 새클러 가문의 기부금 130만 달러를 거부했다. 이어 런던 테이트미술관과 뉴욕 구겐하임뮤지엄도 향후 새클러 가문의 기부금을 사절하겠다고 연달아 공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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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 Goldin, Continuing Goft of Else Sackler, Freer/Sackler Gallery, Washington D.C., 2017

 

왜 뮤지엄들이 수백만 달러의 기부금을 거부하게 됐을까? 도대체 새클러 가문은 무엇으로 돈을 벌었기에? 새클러는 마약성 진통제 옥시콘틴(OxyContin)으로 억만장자가 됐다. 하지만, 옥시콘틴은 이제까지 20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 1600여개의 소송에 걸린 옥시콘틴 제약회사 퍼듀파마(Purdue Pharma)는 이제 아시아 시장을 노리고 있다. 한국으로 들어가는 것도 시간 문제다.  

 

헤로인과 다름없는 진통제 옥시콘틴과 제약회사 퍼듀파마의 소유주 새클러 가문의 이미지 세탁, 그리고 새클러의 추악한 사업을 폭로해온 사진작가 낸 골딘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1> 아편인가, 진통제인가? 옥시콘틴의 정체

<2> '고통의 제국' 건설 억만장자 새클러 가문

 

<3> 새클러 전쟁 치르는 사진작가 낸 골딘

 

 
사진작가 낸 골딘,  "새클러 가문은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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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메트로폴리탄뮤지엄에서 새클러 가문에 중독 치료 지원을 촉구한 낸 골딘. YouTube by Sandi Bachom 
 
새클러 가문의 뮤지엄 기부에 쐐기를 박은 주인공은 사진작가이자 사회운동가 낸 골딘(Nan Goldin)이다. 낸 골딘 자신이 오피오이드 중독에서 치유 중이다.  골딘은 새클러 가문을 '저주'라고 비판하면서 지난해부터 하버드대뮤지엄, 메트뮤지엄의 새클러 윙, 구겐하임 뮤지엄에서 시위를 주도해왔다.  
 
낸 골딘은 올 2월 '새클러예술교육센터(Sackler Center for Arts Education)'가 있는 구겐하임 뮤지엄 내에서 기습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가짜 처방전을 뿌리며, 마약성 진통제 남발을 비판하며, 새클러 가문의 기부금을 거부할 것을 구겐하임에 촉구했다. "새클러 가문이 당신에게 처방한 것. 옥시콘틴, 엄청나게 중독적이며, 당신을 죽일 것"이라는 레이블이 붙여진 약품병이 로비에 흩어졌다. 노란 쪽지들에는 "옥시콘틴 부작용: 사망" "40만명 사망" "하루에 200명 사망꼴" "새클러, 수치심을 가지시오" "이름을 내려라"가 적혀 있었다. 그리고, 시위대는 로비 바닥에서 죽은 시늉을 했다. 구겐하임은 새클러 센터 설립을 위해 249만 달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위대는 메트로폴리탄뮤지엄 앞으로 이동해 시위를 지속했다. 이들은 2018년 3월에도 메트로폴리탄뮤지엄의 고대 이집트 덴더 사원(Temple of Dendur)이 자리한 새클러 윙(Sackler Wing)에서 시위했었다.  새클러 가문은 1974년 새클러 윙 건립을 위해 350만 달러를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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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ke pill bottles labelled as OxyContin and "Rx# 200,000 dead" used by the protesters  Photo: Nan Goldin
 
옥시콘틴 중독자였던 낸 골딘의 첫 미션은 자신의 중독 이야기를 사진에 담는 것이었다.
골딘은 2014년 베를린에서 손목 수술 후 옥시콘틴을 처방받은 후 하루 아침에 옥시콘틴에 중독됐다. 하루에 3정에서 18정까지 복용하게 됐다. 옥시콘틴에 아티스트 그랜트까지 모두 써버렸다. 옥시콘틴을 살 돈이 없을 때는 마약을 흡입했다. 이후 재활원에 들어가 2개월 반 치료를 받았다. 이후 1년간 정상인으로 돌아왔다.
 
2017년 옥시콘틴의 배후에 새클러 가문이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 그리고, 약물사상 최대의 중독 약품을 판촉해서 부를 축적한 새클러 가문을 상대로 한 전쟁을 시작했다. 퍼듀파마는 수십만명의 목숨을 담보로 제국을 건설해온 것. 시체는 쌓여가고 있다. 2015년 한해 미국 내에서만 3만5천여명이 오이포이드 남용으로 사망했다. 이들 중 80%는 헤로인이나 암시장에서 펜타닐(마약성 진통제)을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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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하버드대미술관 시위에서 낸 골딘. Photo: sacklerpain
 
골딘은 2017년 처방전중재조직 P.A.I.N.(Prescription Addiction Intervention Now)을 결성하고,  세계의 뮤지엄과 대학에 자선 기부금으로 피 묻은 돈을 세탁해온 새클러 가문을 비판했다. 그리고, 새클러 가문과 퍼듀파마에 자산을 중독 치료센터와 교육기관에 기부할 것을 촉구했다. 
 
2018년 3월 메트뮤지엄, 7월 하버드대미술관, 2019년 2월구겐하임과 메트뮤지엄에서 PAIN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런던의 국립초상화갤러리 측에는 새클러의 기부금을 거부하지 않으면, 기획된 자신의 회고전을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3월 19일 국립초상화갤러리는 새클러 기부금 130만 달러를 거부한다고 발표했다. 
 
이틀 후엔 새클러 가문으로부터 총 520만 달러의 기부금을 받아온 런던의  테이트 그룹(테이트 모던, 테이트 브리튼, 테이트 세인트 이브스, 테이트 리버풀)도 새클러의 기부금을 거부할 것이라고 공표했다. 이어 22일 뉴욕의 구겐하임뮤지엄도 새클러 기부금을 고사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에 새클러 트러스트는 25일 논쟁으로 인해 새로운 기부금을 중단할 것이라고 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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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me on Sackler, Photo: sacklerpain (left)/ 레이몬드 새클러 일가(오른쪽)
 
청원 change.org
새클러 가문과 퍼듀파마는 오피오이드 위기에 책임을 져라 
Hold the Sackler Family and Purdue Pharma accountable for the Opioid Crisis
 
우리는 새클러 가문과 퍼듀파마가 이 전염병에 대한 즉각적인 방을을 요구한다. 특히 새클러 가문과 퍼듀파마는 자금을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치료와 교육에 쓸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재활치료센터, 약물치료 프로그램, 유해 감소, 재발 방지와 총체적인 접근법 등 치료 모델들에 자금을 지원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그들이 학교, 의사, 가족, 중독자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설립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의사들이 극도의 고통을 겪는 환자들을 제외하고는 이러한 약물을 과도하게 처방하는 것을 중단하도록 재교육시킬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그들이 대중에게 약품을 팔 때처럼 적극적으로 그 위험에 대해서도 광고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그들이 미국 전역에 약물 남용 치료제인 나칸(Narcan) 지급기를 설치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통제 불능이 된 이 전염병에 대한 즉각적인 대응을 촉구한다.
더 이상 낭비할 시간이 없다. 
https://www.change.org/p/hold-the-sackler-family-and-purdue-pharma-accountable-for-the-opioid-cri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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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 Goldin, Self-portrait with milagro, The Lodge, Belmont, MA
 
낸 골딘
1953년 워싱턴 D.C.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낸시 골딘. 아버지는 연방통신위원회의 경제학자였고, 언니 바바라를 두고 부부갈등이 심했다. 낸시가 11살 때 바바라가 자살한 충격이 남게 된다. 15세 때 보스턴의 교사를 통해 폴라로이드 카메라에 빠져들어 사진 작업을 하면서 대상들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게 된다. 1970년대 뉴욕으로 이주해 주로 가족, 친구, 애인들을 대상으로 개인적이며, 즉흥적이고, 성적인 이미지를 담았다.  카메라는 미국에서 중요하지만 침묵에 가려졌던 LGBT(동성애, 양성애, 성전환), HIV와 중독성 진통제 오이오이드 전염 등 이슈를 탐구하는 수단이 된다.  주요 작품으로 맨해튼 웨스트빌리지 스톤월 사건 이후 동성애 집단의 삶을 포착한 'The Ballad of Sexual Dependency' (1986)이 있다. 1996년 휘트니뮤지엄에서, 2001년 파리 퐁퓌두센터에서 회고전이 열렸다. 뉴욕, 베를린, 파리에서 살며 작업한다. https://www.sacklerpai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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