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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eat Food Obsession <23> Michelangelo's Shopping List

 

장수 화가 미켈란젤로의 식탁에는?

키안티 와인, 토스카나 빵, 시금치, 청어, 배, 토르텔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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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로 보티켈리(1445-1510, 64세),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 67세),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 88세), 라파엘로 산지오(1483-1520, 37세)...

 

르네상스 시대 인간의 평균 수명은 35세였다고 한다. 영아 사망률이 높았으며, 아마도 치아건강이 나쁠 경우 영양실조에 걸리기 때문일 것이다. 

르네상스 3대 거장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67세, 라파엘로 산지오는 37세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는 자신의 89세 생일 2주 정도 앞두고 눈을 감기 직전까지 그림을 그렸다. 

 

미켈란젤로는 1508년 33세부터 4년 반 동안 바티칸 시스틴예배당 천장에 매달려 '천지창조'를 그렸으며, 1541년 66세에 벽화 '최후의 심판'을 완성했다. 조각가, 화가, 건축가, 디자이너, 그리고 시인으로 끊임 없이 활동했던 미켈란젤로의 스태미나와 장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신앙심이 깊었던 미켈란젤로는 동성애자였고, 평생 독신이었다. 그 시대, 그는 무엇을 먹고 작업했을까? 그것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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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탄뮤지엄은 'Michelangelo: Divine Draftsman and Designer' 전시에서 시스틴 예배당의 천장화 '천지창조'를 1/4로 축소 디지털로 재현했다. 

 

일중독자였던 미켈란젤로는 과로가 일상이었다. 하지만, 피로해도 작업을 중단하지 않았다. 미켈란젤로는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에 "나는 음식 먹을 시간 조차 없다"고 썼다. 60대에 '최후의 심판'을 그리고 있을 때는 하루종일 작업하다가 저녁 때가 되어서야 식사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켈란젤로는 특별히 식탐이 있거나 미식가는 아니었다. 쾌락보다는 필요에 의해서 식사를 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작업 중에는 빵과 와인으로 만족했다고 제자였던 아스카니오 콘디비(Ascanio Condivi)가 미켈란젤로 전기에서 밝혔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났고, 자신도 돈을 많이 벌었다. 1530년 피렌체 총독이 식량난을 구제하기 위해 각 가정의 소유식량을 조사한 기록이 발견됐다. 여기에 미켈란젤로는 집에 "와인 8배럴, 콩 2배럴, 식초 1.5배럴을 갖고 있다"고 보고했다. 

 

 

# 미켈란젤로의 쇼핑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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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8년 하인에게 준 쇼핑 리스트(?), 카사 부오나로티 소장(왼쪽). 천장화 그리는 자화상 드로잉과 소네트(시), 시화.

 

2017년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드로잉전 'Michelangelo: Divine Draftsman and Designer'(11/13-2/12)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미켈란젤로가 1518년 그린 식료품 쇼핑 리스트 드로잉(미켈란젤로 하우스/Casa Buonarroti 소장, 왼쪽)이 남아 있다. 글을 모르는 하인에게 시장에서 사야할 음식 목록과 그림을 담은 드로잉이다. 43세 독신남 미켈란젤로가 하인에게 준 쇼핑 리스트. 

 

-Pani Dua (?) 빵 두 조각(?)/ 

-Un Bocal di Vino 와인 쿼트(1/4 갤런)

-Un Ariga 청어 한마리

-Tortegli 토르텔리니(만두)

-Una salama 살라미(이탈리아 햄)

-Quattro pani 빵 4조각

-Unh Bochal di Zodo (?)

-Un quartuccio di Bruschino 레드 와인

-Un ??? di spinaci 시금치

-Quattro Alici 안초비 4개

-Tortelli 토르텔리니

-Sei Pani 빵 6조각

-Due Minestre di Finocchio 페널 수프

-Un aringa 청어 한 마리

 

 

# 와인 메이커 미켈란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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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ttardi Estate

 

부자 작가였던 미켈란젤로가 와인 메이커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가 태어난 카프레세(현재 마을 이름은 카프레세 미켈란젤로)가 있는 토스카나(Tuscany)는 유명한 와인 지역이다. 피렌체와 시에나 사이 키안티 클라씨코(Chianti Classico)와 마렘마(Maremma)의 와이너리 니타르디 에스테이트(Nittardi Estate)는 1183년부터 와인을 제조했고, 한때 미켈란젤로가 소유했었다. 니타르디 에스테이트(Nittardi Estate)는 '신의 과일즙(Nectar Dei)'라는 뜻.

 

1539년 미켈란젤로는 로마로 가서 시스틴 예배당에 벽화 '최후의 심판'을 그리던 중이었다. 미켈란젤로는 조카 리오나르도에게 보내는 편지에 "셔츠 8벌보다는 와인 2통이 더 좋다"고 썼다. 이때 미켈란젤로는 니타르디 와인을 교황 율리우스 2세에게 선물로 보냈다고 한다. 니타르디는 1503년 빈티지가 특히 우수했다고. 에스테이트에선 올리브 오일도 생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2년 니타르디는 프랑크푸르트의 출판 경영인이자 아트딜러 피터 펨퍼트와 베니스 출신 사학자 스테파니 카날리 부부가 인수했다. 니타르디는 이탈리아 와인 최우수 등급인 3글래스(트레 비키에리)를 받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그해 마렘마에서 생산된 첫 와인을 교황에게 선사하고 있다.

http://www.nittardi.com

 

 

# 토스카나 빵, 치즈,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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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가 좋아했던 이탈리아 배, 카스치오타 두르비노 치즈, 소금이 안들어간 토스카나 빵.

 

르네상스 중심도시 피렌체가 있는 토스카나(Tuscany) 지방에서는 전통적으로 빵(Pane Toscana)에 소금을 넣지 않는다. 그래서 맛이 밋밋하다. 이유는 중세에 소금에 세금을 과도하게 부과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하지만, 면세가 된 후에도 소금 없는 빵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 

 

빵을 짭잘한 치즈, 햄, 소시지와 함께 먹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어로 파네 토스카노를 '파네 쇼코(Pane sciocco)라 부르기도 하는데, 쇼코는 '소금 없이'라는 뜻 외에도 '어리석은'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미켈란젤로는 빵과 함께 치즈도 무척 좋아해서 집 안에 치즈 창고도 마련해놓았다. 창고에는 3월에 양유(sheep milk)로 만든 치즈 마르졸리노(Marzolino)와 양유와 우유를 혼합해 제조한 우르바니아산 카스치오타(Casciotta d'Urbino) 치즈를 구비해두었다. 그가 로마에서 작업할 땐 친구들이 치즈를 배송해주었다고 전해진다.

 

미켈란젤로는 과일 중에서도 특히 배(pera, pear)를 좋아했다. 신앙심이 깊었기 때문에 예수의 생애를 상징하는 33개의 배를 친지들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시금치 & 토르텔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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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영어명 플로렌스) 지방은 와인과 올리브 오일, 빵, 그리고 스테이크, 콩, 시금치 요리가 유명하다. 피렌체 사람을 뜻하는 '플로렌타인(Florentine)'은 또한 시금치가 들어간 요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를 테면 'Eggs Florentine'은 시금치를 넣은 달걀요리다.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노 다 빈치는 뽀빠이처럼 시금치를 사랑했다. 이탈리아 레시피로 미켈란젤로의 시금치(Michelangelo’s Spinach)는 시금치를 데친 후 건포도, 안초비, 잣을 넣고, 식초와 올리브유로 버무린 요리다. 

 

미켈란젤로는 파스타 중에서도 특히 한국식의 미니 만두 토르텔리니(Tortellini)를 좋아했던 것 같다. 이탈리아에선 'Tortellini Michelangelo'라는 요리가 있다. 닭고기나 판체타(이탈리아 베이컨), 프로슈토(이탈리아 햄)소를 넣은 만두 토르텔리니에 버섯과 크림소스를 넣고 조리한 파스타. 칼로리가 많아 든든할 것 같다.

 

 

# 미켈란젤로의 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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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후의 심판' 중에서 자신의 일그러진 초상

 

미켈란젤로는 동성애자였고, 짝사랑과 상사병으로 우울증을 앓았다. 시스틴 예배당 작업 때는 교황 율리우스 2세과 종종 말싸움을 했으며, '천지창조' 작업 때 허리는 물론, 시력도 나빠졌다. '최후의 심판' 을 그릴 땐 발판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친 적도 있다. 

 

1531년 6월 미켈란젤로는 율리우스 2세 교황의 무덤을 건축하고 있었다. 이때 건강이 급속히 쇠약해지자 교황 클레멘트는 작업을 줄이고, 건강을 보살피라고 조언했다.  

 

1549년 미켈란젤로는 신장결석 진단을 받았고, 6년 후엔 관절염까지 생겼다. 어릴 적부터 해부학에 관심이 많았던 미켈란젤로는 성당의 시체실에서 인체를 연구했다. 이후 조각에 해부학을 응용했으며, '천지창조'의 육지와 바다가 분리되는 장면에서 신장을 연상시키는 이미지가 나타난다.

 

르네상스 천재 미켈란젤로는 1564년 2월 18일, 그의 생일(3월 6일)을 몇주 앞두고 신장결석 악화로 세상을 떠났다. 

 

 

*미켈란젤로 드로잉전@메트뮤지엄 (11/13-2/12. 2018)

*메트뮤지엄 미켈란젤로 드로잉전 특강 <1> 천지창조와 스케치

*메트뮤지엄 미켈란젤로 드로잉전 특강 <2> 그의 뮤즈 토마소

*미켈란젤로의 명언 

*미켈란젤로의 장수 비결은 식단? 

*미켈란젤로, 그의 코가 부러지지 않았더라면

*People: 미켈란젤로 드로잉전의 사람들 

*미켈란젤로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 뉴욕 오다@오큘러스 사진전 Up Close: Michelangelo's Sistine Chap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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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2.08.10 12:33

    1500년대 그 시절,인간의 평균수명이 35세에 머르는 것에 비하면 미켈란젤로는 88세까지 살았으니까 장수는 물론이고 신의 축복을 받았음에 틀림없습니다. 올려주신 그의 생애를 읽었는데 두가지가 마음에 박혔습니다.
    그가 신앙인이 었다는 것과 소식가라는 것이 었습니다. 와인을 직접 만들어서 교황에게 드릴 정도로 성직자에 대한 경외심이 그의 깊은 신앙심을 엿볼 수 있네요. 식단도 간소하고 양이 적음을 알았습니다. 특히 시금치가 식단에 있는 게 특이 하네요. 한국의 소박한 시골밥상이 연상됩니다. 돈도 많이 벌었고 명성도 높은 미켈란젤로지만 그의 밥상을 보면 소박한 농촌의 농부를 떠올리게 합니다. 소식과 신앙심이 장수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그는 증명했습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