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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0) 이수임: 운수 좋은 날
창가의 선인장 (138) 만약에...
운수 좋은 날
Soo Im Lee, a beach dog, 2000, acrylic on woodblock, 11 x 11 in.
걸어갈 수 있는 길만을 고집하는 나로서는 강 건너 뉴저지에 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 고집을 꾹 누르고 ‘보고 싶은 친구를 만나러 가는 뉴저지’라며 전날 밤부터 나를 다독였다.
바지를 엉덩이 밑으로 입은 남자가 써브웨이 안으로 비척비척 들어왔다.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나를 노려본다. 나는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딴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차이니즈 어쩌고저쩌고. 코비드 불라 불라. 차이나로 돌아가.”
외친다. 재수가 나쁘면 이 남자에게 얻어터져 난 오늘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갈 수도 있다. 두려웠다. 그렇다고 벌떡 일어나 자리를 옮기면 그의 시선을 더 끌어 악화 현상을 만들 수 있다. 그림자처럼 그냥 그대로 숨죽여 앉아 있었다. 주위에 사람들도 꽤 있다. 조금은 안심이지만, 내가 얻어터질 때 저 사람들이 나를 도와준다는 보장은 없다. 다들 전화기나 들이댈 것이다.
한동안 나를 향해 욕하던 그가 나에게 가까이 오려는지 엉거주춤 일어났다.
“엄마, 위험한 느낌이 들면 도망가요. 엄마는 작고 약해 보여 타깃이 되기 쉬워요. 무조건 뛰어서 안전한 곳으로 가야 해요.”
평소에 아이들의 잔소리가 나를 벌떡 일으켰다. 그에게서 떨어진 곳으로 급히 갔다. 그는 자리에 도로 앉더니 "차이니즈 어쩌고저쩌고" 멈추지 않고 쉰 목소리 떠들었다. 주위 사람들은 모른 척 조용하다. 마치 무대 위에 올려진 그와 나를 보는 듯 즐기는 분위기다. 지하철이 멈췄다. 후다닥 빠져나왔다.
만약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서 늙은 내가 사라진다면 남편은 젊은 여자 만나 흥미진진한 삶을 살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낡은 차 폐차시키고 새 차로 갈아탄 느낌이겠지? 아이들도 잠시 힘들다가 시간이 흐르면 나를 잊을 것이다.
인간의 앞날은 알 수 없다.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른다. 오늘 갈 수도 있다. 운이 좋으면 집으로 돌아가 내 자리를 지킬 것이고 재수가 없으면 내 자리를 누군가 차지할 수 있다. 내 사후의 일을 누가 어떻게 결정해도 죽은 나는 어찌할 수 없다. 그리고 언제 그런 여자가 존재했었냐며 세상은 잘 굴러갈 것이다. 나 없이도.
누군가는 이 여자 우울증 걸렸나 하겠지만, 나는 현실을 말하고 있다.
이수임/화가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