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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1) 이수임: 희미한 기억의 저편에
창가의 선인장 (140) Writing from Memories
희미한 기억의 저편에
Soo Im Lee, white boat, 2000, acrylic on woodblock, 10.75 x 11.25 in
처음 글쓰기 시작할 때는 그나마 신문에 오랫동안 글을 써서 구애받지 않고 썼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회원들의 글은 점점 좋아지고 발전한다. 나는 내 매너리즘에 빠져 밖으로 나가는 통로를 찾지 못하고 우물가에서 헤매는 개구리처럼 쳇바퀴 돌듯 같은 글쓰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만 쓸까? 생각하다가도 산에서 내려와 쉬다 보면 다시 올라가고 싶듯이 또 쓰고 싶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태원 잠수교 가는 대로변에 있는 크라운 호텔에서 해밀턴 호텔 쪽으로 가는 길가에 내 화실 있었다. 아버지가 오래 전에 사둔 공터에 단층 하얀 건물을 지어줬다. 친구들은 하얀 집이라고 부르며 들락거렸다. 겨울이 끝나가는 맑고 청명한 날이었다. 화실 안에 석유 냄새가 밸까 봐 밖에 나가 붓을 빨고 있었다. 가녀린 여자가 가던 걸음을 멈추고 주춤거리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 집에 사세요? 집이 너무 예뻐요.”
검은 코트 안에서 흰 셔츠가 살짝 빛났다. 그녀의 핏기 없는 작은 얼굴, 외로운 그늘이 가득한 큰 눈을 보자 나도 모르게 그녀를 화실 안으로 끌어들였다.
“차 한잔하고 가세요. 저도 지금 막 마시려던 참이었어요.”
“고마워요. 저도 한때는 미대에 가고 싶었는데…”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했다. 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 크로키를 하러 왔다. 그리고 조용히 나에게 다가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일년 후, 나는 외국에서 보내온 그녀의 편지를 받았다. 미국 신문사의 에디터로 서울에 파견된 외국인을 만나 결혼했단다. 오하이오주의 작은 도시에 살며 그녀가 꿈꾸던 그림에 빠져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녀의 모습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잠재의식에서 고개를 불쑥불쑥 내미는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이, 까마득히 잊힌 지난 일들이 낡은 영사기를 통해 되살아난 듯 계속 글을 쓰게 하는 것 같다.
이수임/화가
희미한 기억을 더듬으면서 생각에 잠겼었습니다. 어떤 인연으로 만났던간에, 이제는 나이가 천상에 가까워오니까 기억이 희미해 집니다. 크게 떠오르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이수임 화가님은 화실을 가지고 계시면서 그림을 그리셨으니까 화실에 드나든 사람과의 인연도 많았을 겁니다. 여기 기억에 떠오른 미술애호가 여인과의 만남도 차한잔의 인연으로 맺어졌드시 평범한 일상이 추억을 만들어 주었네요. 그리고 세월이 흐름과 동시에 추억도 희미해짐을 꾸밈없이 써주셔서 읽으면서 동감을 했습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