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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김원숙: 아이 찾기
이야기하는 붓 (5)
아이 찾기
살다가 불현듯 어미가 되는 신기한 일도 있다.
입양아 둘을 결혼과 함께 얻게된 일. 일곱 살, 아홉 살의 두 한국 혼혈아 고아들이 나의 삶에 우선순위 일번이 되는, 내가 꿈꾸지 못했던 아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운명이 찾아왔었다.
Wonsook Kim, “My Children” ink and charcoal on paper 28x40 inches 1982
여덟형제 대가족에서 복닥거리며 살아온 나의 경험이었을까. 그저 이렇게 이쁜 얘들, 같이 밥 먹고 살면되는 거지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내디딘 걸음이었다.
한국에서 수속 마치고 뉴욕으로 데려와서 학교 등록하러 가기 전 버스, 고양이, 나무 등의 읽기 정도는 한다는 걸 선생님께 보여 주려고 열심히 공부를 시켰다. 그러나 막상 교장 선생님이 내미는 그림책을 한 단어도 못 읽고 얼어붙은 아이는 다시 일학년으로 배정이 되었다. 왜 그랬냐니까 학교가 너무 크고 교장 선생님이 무서웠다고. 그래, 새 나라에 적응도 힘든데, 쉽게 따라가는 게 낫지 하며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며칠 후 아이는 아침에 허둥대다가 점심 가방을 잊고 갔다. 내가 런치박스를 들고 학교 운동장 한쪽에서 같은 스토리의 엄마들 몇이랑 아이들이 나오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
저쪽 후문이 열리면서 아이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오는 순간, 눈앞이 캄캄하고 떨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 아이 얼굴이 전혀 생각 나지 않는 것이었다. 저렇게 많은 아이들 중에 어떻게 그 아이를 찾을 수 있을까? 내가 몰라보면 아이는 얼마나 슬프게될까. 그래도 찾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얼어붙어 한참 서있는데, 운동장 가득 뛰어다니는 얼굴들 사이에 그 아이가 환히 조명을 받은 듯 갑자기 눈에 확 띄는 것이었다. 너무도 이상한 일이었다. 아이도 나를 보고 막 뛰어 왔다. “엄마, 미안. 헤헤… 미안, 고마워요” 하며 런치 박스를 뺏다시피 쥐어 들고 다시 아이들이랑 뛰어다니는 것이었다.
우리가 살던 동네는 맨하탄 제일 북쪽 포트 워싱톤 동네, 학교 옆엔 허드슨강이 내다 보이는 큰 타이론 공원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날따라 더욱 찬란하게 느껴지는 공원을 걸으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 내가 엄마구나, 그 아이는 내 아들이구나 하는 별 이상한 다짐을 하였다.
지금은 세 아이의 아빠가 된, 나의 좋은 친구인 아들과의 첫 만남이었다.
김원숙/화가
부산에서 태어나 홍익대 재학 중이던 1972년 도미해 일리노이주립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6년 뉴욕으로 이주한 후 여인과 자연을 모티프로 여성으로서의 삶과 그리움, 신화적인 세계를 담아 세계에서 전시회를 열어온 인기 화가. 뉴욕과 인디애나주 블루밍턴을 오가며 살고 있으며, 2011년 '그림 선물-화가 김원숙의 이야기하는 붓'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