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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6) 허병렬: 대나무엔 마디가 있다
은총의 교실 (71) 새해, 새날, 새학기
대나무엔 마디가 있다
이정(李霆, 1541- ?), 노죽도(老竹圖), 종이에 수묵
교사: 대나무에는 왜 마디가 있을까?
학생 A: 예쁘라고 무늬를 놓았지요.
학생 B: 줄기가 곧게 높이 자라니까 튼튼하라고 그럴 거예요.
학생 C: 빗물이 흘러내리다가 잠시 쉬라고요.
학생 D: 마디에서 잔가지가 나고, 잔가지 끝에 대여섯개의 잎이 달리라고 그런 것 같아요.
교사: 혹시 다른 것에도 마디가 있을까?
학생 A: 사람에게도 마디가 있어요.
학생 B: 아, 관절말이지?
학생 A: 뼈와 뼈가 맞닿은 자리를 마디라고 말해.
교사: 정말 그렇구나.
학생 C: 학교에도 마디가 있어요.
학생 D: 어디 있어?
학생 C: 첫째 시간, 둘째 시간, 점심 시간...이런 것이 마디라고 생각하는데...
교사: 퍽 재미있는 생각이네.
학생 B: 시간이 모이면 하루, 이틀, 사흘...이런 마디가 생기지요.
모두: 정말 그렇구나!
교사: 그러다가 날들이 모여서 일년, 이년, 삼년이 되고...
인류의 발명품 중에서 아득한 옛날부터 영겁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에 짧고, 긴 마디를 마련한 지혜는 대단하다. 아무런 구별도 없이 그대로 길게 이어지기만 한다면 얼마나 지루할까. 얼마나 따분할까. 권태로울까. 그런데 거기에 생긴 짧고 긴 마디들은 우리들의 생활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다.
우리는 시간 맞춰 먹고 잔다. 출근시간, 퇴근시간에 따라 활동한다. 일의 시작과 끝마디가 시간으로 정해져 있다. 일상 생활은 시간의 연속이다. 날짜의 흐름, 매달의 계획, 연중 행사, 묵은 해와 새해도 시간의 연속이다. 생일, 성년식, 청년, 장년, 노년 같은 성장의 구분도 시간의 흐름이 빚어낸다. 한 세대, 한 세기도 긴 시간의 연속에 따라 생긴 굵은 마디이다.
이응노(李應魯, 1904-1989), 대나무, 1978, 한지에 수묵담채, 이응노미술관 콜렉션
그러면 이런 구분은 우리 생활에 도움을 주는가. 물론이다. 그것들은 삶의 재발견을 위한 점검 역할을 한다. '새해'는 무엇이고, '설날'은 무엇인가. 어제와 오늘의 태양이 다른 빚깔의 햇살로 내리쬐는가. 아니다. 다만 달력이 말하는 새 날일 뿐이다. 그러나 거기에 우리들은 뜻을 부여한다. 새 해의 첫날이라고, 고래서 중요하기 때문에 특별히 뜻깊게 지내야 한다고.
뜻깊게 지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나. 생각하면서 지낸다는 것을 뜻한다. 나 자신의 지난 해를 돌이켜 본다는 뜻이다. 가족에게 도움을 주었나. 하고 싶은 일을 하였나. 나 자신에게 충실하였나.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었나. 내 생각이 넓고 깊어지고 있는가. 내 삶에 무엇인가 새로움이 있었나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생각해 본다는 것은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는 바탕을 이룬다.
파스칼이 '사람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했던가. 대나무의 마디, 사람의 뼈마디, 학교의 시간 마디, 세월의 마디... 등은 어떤 일을 하고 있나. 첫째, 잘 살기 위해서다. 둘째, 새로운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다. 셋째, 편하게 살기 위해서다. 넷째, 변화하고 싶어서이다. 이렇게 갱각할 때 섣달 그믐날과 새해 새달 새날인 설날의 의미가 좀 무거워진다. 그렇다고 무겁게 생각하면 때로는 깊은 산골짜기로 가라앉게 된다. 그래서는 안되겠지.
우선 즐기자. 개인이, 가정이, 사회가 모두 새로움을 얻기 위한 축제를 벌이자. 개인 개인의 마음에, 가정에, 사회에서 흘러간 세월을 보내고, 새해 맞이의 폭죽을 터뜨리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다짐을 하자. 그것이 비록 사흘만에 흔적이 없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새로움을 찾겠다는 의지만은 간직하자. 새로움이 고갈되면,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새로움이란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마음에 일어나는 새로움이 그렇다. 새로움은 크기가 다양하며 아주 작은 것도 있다. 새로움을 크기에 관계없이 귀하다. 새로움은 나이게 관계 없다. 때로는 어린 아이가 주는 새로움도 값지다. 새로움의 자본은 생각이다. 생각하는 사람만이 새로움을 생산한다. 생각한다는 것은 삶의 겉핥기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보물이다. 삶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겉만 대강 보아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 새로움이다.
새해, 새학기엔 작은 한 가지라도 새로움에 도전할 때 뜻이 생긴다. 새해, 새달, 새날, 새학기를 뜻깊게 하는 것은 새로움을 찾는 내 자신의 노력에 달렸다. 그 참뜻을 알고 싶어서 대나무의 마디를 생각한다.
허병렬 (Grace B. Huh, 許昞烈)/뉴욕한국학교 이사장
1926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여자사범학교 본과 졸업 후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60년 조지 피바디 티처스칼리지(테네시주)에서 학사, 1969년 뱅크스트릿 에듀케이션칼리지에서 석사학위를 받음.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 이화여대 부속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1967년부터 뉴욕한인교회 한글학교 교사, 컬럼비아대 한국어과 강사, 퀸즈칼리지(CUNY) 한국어과 강사, 1973년부터 2009년까지 뉴욕한국학교 교장직을 맡았다. '한인교육연구' (재미한인학교협의회 발행) 편집인, 어린이 뮤지컬 '흥부와 놀부'(1981) '심청 뉴욕에 오다'(1998) '나무꾼과 선녀'(2005) 제작, 극본, 연출로 공연했다.
허병렬 선생님은 대나무엔 마디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마디마디가 새로운 인생의 장을 열어주어서 희망을 가지고 나아간다고 쓰셨습니다. 쭉뻗은 대나무를 한그루의 나무로 보시지않고 마디마디가 이어져서 하나의 대나무가 됐고 그냥 기다랗게 자란 것보다 마디가 있어서 무미건조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구나 하면서 동감을 했습니다.
이응노 화백의 수묵화 대나무그림을 확대해서 봤습니다. 마디가 길이와 굵기가 저마다 달랐습니다. 우리의 삶이 똑같지 않듯이 대나무 마디도 똑같지 않음을 보았습니다. 허선생님의 폭넓은 인생관과 안목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