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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 이영주: 인생은 숨은 그림찾기
뉴욕 촌뜨기의 일기 (57) 14번째 수술
인생은 숨은 그림찾기
이렇게 삶과 죽음 사이에서 곡예를 하다 보면 과연 우리의 삶 속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안중요하고는 따질 엄두도 나지 않습니다. 그저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기적같고, 그래서 감사하고, 기쁘고, 소중합니다. 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따위는 관심 밖이고, 저 역시 다른 이들에게 관심갈 새가 없습니다. 제가 누릴 수 있는 한에서 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있는대로 다 느끼고 싶습니다. 기운이 있는 한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맛있는 밥을 해주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론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3월 9일 수술 대기실에서 막내와. 세 딸들이 교대로 저를 돌보아줍니다./ 2월 14일 13번째 수술 후 둘째 가족이 닭죽, 렌틀 수프, 컬리플라워 수프와 함께 가져온 튤립 화분.
저는 암환자입니다. 사람들이 건강의 표본이라고 부르던 제가 암을 발견한 것은 10년 전 일입니다. 기침이 컨트롤 할 수 없이 심해서 의사에게 얘기했더니 X-ray를 찍어보자고 했습니다. X-ray를 찍었을 때 처음엔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의사는 제가 복용하고 있는 혈압약의 부작용이 기침이라면서 혈압약을 계속 바꿔 주었습니다. 그래도 기침이 심해질 뿐 호전되지 않자 X-ray를 다시 찍었고 그 때, 기도 양쪽 허파 입구에 커다란 혹이 있는 게 발견되었습니다. 전문의를 찾아갔으나 첨엔 전문의도 “이렇게 건강한 사람이니 아마도 물혹일 것이지만, 그래도 확실하게 하기 위해 조직검사를 하자”고 했고, 조직검사 결과 암이란 판정이 났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암이 매우 희귀한 암이라 미국 전국에서도 1,824명 밖에 환자가 없었고, 내가 간 뉴욕의 콜럼비아대학병원에선 첫 환자였습니다. 이 암은 다행히 천천히 자라는 암이라 위험하진 않은데, 위치가 너무 예민한 부분이라 수술을 하기가 어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폐 입구 양쪽에 걸쳐 암이 카펫처럼 번져 있다고 의사는 설명했습니다. 콜럼비아대학의 관계되는 의사들은 컨퍼런스를 열어 치료법을 논의했습니다. 논의 결과 일단 키모와 방사선 치료를 하고, 그리고 나서 암이 사라지면 다행이고, 아니면 치료로 암이 줄어들테니 그때 수술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저는 33번의 방사선과 7번의 키모를 7주 동안 받았습니다. 치료를 다 받고 나자 운 좋게 암이 사라졌습니다.
6년째 되는 2018년, 처음 폐에 조그맣게 있던 점이 해마다 조금씩 자라서 별 거 아니게 보이지만, 5년 전과 비교하면 많이 자라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폐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폐암 수술을 하면서 먼저 치료해서 사라졌던 암을 살펴보니 5년 동안 꽤 자라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폐암 수술을 하고 곧 바로 시술할 수가 없으니 시술은 6개월 후에 시작되었습니다. 전신마취를 한 후, 입 안으로 기계를 넣어 거기서 암 부위를 들여다 보고 자라난 부위를 레이저를 쏘아 태우는 치료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시술’이라고 불렀습니다.
처음엔 의사도 처음하는 시술이라 제 입 안은 폭격 맞은 것처럼 헐고 마비되었으며, 당연히 맛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입안 벽이 모두 헐어서 조금만 딱딱한 음식이 들어가도 살갗이 찢어지고, 매운 음식은 물론 입에도 대지 못합니다. 기침을 할 때마다 피가래가 올라와 하루에도 수없이 피가래를 뱉아야 합니다. 사람들에겐 한번도 얘기 안 했지만, 사실 이렇게 하루에도 수없이 피가래를 뱉으며 사는 삶이 저의 삶입니다. 그렇게 고통스런 시술을 거의 석달에 한번씩 받았습니다.
2월 14일 13번째 수술 후 블루가 만들어온 'World' 카드의 메시지. "You are the World to me."라는 말이 쓰여있다. 눈물이 날만큼 감동적인 문구다.
지난 3월 9일, 14번째 수술(시술)을 받았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한번의 수술과 13번의 시술입니다. 이번 13번째 시술은 지난 2월14일 13번째 시술 후 3주만에 하는 재시술이었습니다. 호흡장애가 심해서 거의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내가 이렇게 죽는가부다! 얼마나 두려웠는지 모릅니다. 2월 14일, 주치의가 수술 후 회복실에 와서 침통한 얼굴로 부위 전체가 너무 많이 자라서 한번에 다 치료할 수 없어 3주 후에 재수술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한번도 회복실에 오지 않던 집도의가 회복실에 온 것도 가슴이 철렁한데, Bad, Unhappy란 단어를 입 밖으로 내니 가슴이 무너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정신력 강한 제가, 사람들이 '긍정의 여왕'이라고 부르는 저도 패닉 상태가 되었습니다. 자라지 않던 암이 두 달 동안에 터무니없이 크게 자랐다고 하니 공포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호흡장애는 작년 2월에도 일어났었습니다. 그래서 서둘러 수술을 받았는데, 그 때는 한 쪽이 이상하게 많이 자라 기도를 누른 까닭이라고 했습니다. 2월초에 백신을 맞은 저는 왠지 코로나 백신 맞은 부작용일 거라는 생각이 희미하게 들었지만, 의사는 물론 주변에서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후 두번 더 시술을 받고부터 저의 몸 상태는 매우 좋았습니다. 암이 다 나았다고 할만큼 컨디션이 좋고, 모든 게 정상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부스터 샷을 맞아야 한다고 해서 12월, 크리스마스 며칠 전에 부스터샷을 맞았습니다. 이번에도 금방 몸에 이상이 느껴졌습니다. 식욕이 전혀 없고, 입맛도 전혀 없어 식사를 하지 못했습니다. 몸이 쇠진해서 조금만 무엇을 해도 힘이 들어 누워야 했고, 호흡이 점점 안되면서 한 발짝도 못 움직일 정도로 심했습니다. 한 발짝 옮기면 숨이 막혀 주저앉는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2월 14일, 예정을 앞당겨 수술을 받고, 청천벽력 같은 결과를 듣게 된 것입니다.
2월 14일 13번째 수술 후 둘째 사위 크리스찬이 그려온 카드와 메시지. 크리스찬이 그린 내 얼굴은 정말 못생겼다. 실제의 나는 자기 그림보다 훨씬 예쁘다고 말했지만, 그렇다고 괘씸죄를 면할 순 없다. 하하.
의사는 제가 백신과 부스터샷 탓이라고 말하니 긍정을 하지 않았지만, 부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지난번 수술 후엔 다시 방사선 치료를 해야 하나 어쩌나, 의사들이 컨퍼런스를 열고 난리들을 쳤습니다. 그런데 방사선 치료를 받으면 부작용으로 그 부위에 구멍이 뚫릴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그 구멍이 오염되지 않게 구멍에 무엇을 넣어야 하고, 어쩌고,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쳤습니다.
방사선 치료는 더 이상 받지 않겠다는 제 말에 의사는 암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암묵적인 긍정이라 느껴졌습니다. 힘들어도 몇 달에 한번씩 시술 받는 쪽이 저는 맘편합니다. 코로나 백신이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아직 발표된 사례는 없지만, 아마도 저같이 생명이 위험해지거나 혹은 희생된 환자들이 많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아직 그에 대한 확실한 연구가 없어서 모두들 쉬쉬 하는 것일 겁니다.
수술실에 들어갈 때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내가 살아서 이 방을 나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 수술실은 최고의 수술실이었습니다. 지난 달까지의 수술실은 늘 공기가 차고, 수술대 위에 누우면 여간 춥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방은 너무 추워요”, 한 마디 하는데, 오늘은 침대가 온돌처럼 따끈따끈했습니다. 위에도 따뜻한 담요를 덮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활짝 웃으며 분위기가 즐거웠습니다. “우리는 베스트 팀이에요”, 하면서 제가 조금이라도 불편할까봐 얼마나 살뜰하게 준비해주는지 덩달아 저도 하하! 웃으며 농담을 주고 받았습니다. 이렇게 좋은 분위기면 죽을 염려는 없을 것같은 데도 이상하게 순간적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감이 엄습해왔습니다. 저도 모르게 “아, 사실 나 무서워요”, 했더니, 더욱 더 웃기는 얘기를 해주며 신경을 다른 데로 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회복실에서 깨어난 것입니다. 결과는 먼저보다 훨씬 좋아져서 그래도 모르니 2개월 후에 보자는 기쁜 소식.
3월 13일 저녁 이탈리아에서 온 큰딸이 다음 날 사위 안드레아가 사주랬다며 식당에 가서 갈비를 사주어서 실컷 먹고, 저녁에 먹을 은대구조림까지 가져왔다.
이렇게 삶과 죽음 사이에서 곡예를 하다 보면 과연 우리의 삶 속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안중요하고는 따질 엄두도 나지 않습니다. 그저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기적같고, 그래서 감사하고, 기쁘고, 소중합니다. 누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따위는 관심 밖이고, 저 역시 다른 이들에게 관심갈 새가 없습니다. 제가 누릴 수 있는 한에서 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있는대로 다 느끼고 싶습니다. 기운이 있는 한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맛있는 밥을 해주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론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제 친구는 인생을 ‘숨은 그림찾기’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녀에게 절대공감합니다. 70년 훨씬 넘게 살았어도 인생엔 제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고, 하늘, 바람, 구름, 숲, 바다, 산, 들녘은 아무리 보고 또 봐도 한번도 같은 얼굴을 보여주는 적이 없습니다. 우리의 숨은 그림 찾기는 그래서 무한합니다.
이영주/수필가 강원도 철원 생. 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후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도서출판 학창사 대표를 지냈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1990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후 수필집 '엄마의 요술주머니'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 '내 인생의 삼중주'를 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재 '에세이스트 미국동부지회' 회장이며 뉴욕 중앙일보에 '뉴욕의 맛과 멋' 칼럼을 연재 중이다. '허드슨 문화클럽' 대표로, 뉴저지에서 '수필교실'과 '북클럽'도 운영하고 있다.
14번째의 수술을 받다니 믿겨지지 않네요. 엄마를 향한 안트리오의 극진한 간호와 외손자 블루의 외할머니를 향한 사랑이 14번의 수술을 이겨내게 했다고 믿습니다. 수술과정을 담담하게 써내려간 글을 읽고서 잔잔한 김동의 물결이 일어나네요. 어서 건강을 되찾기를 기원합니다. 14번의 수술 이야기가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줌을 확신합니다.
이영주씨 브라바!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