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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임/창가의 선인장
2022.03.31 11:14

(613) 이수임: 멸치똥 블루스

조회 수 166 댓글 1

창가의 선인장 (122) 맨해튼의 잠못 이루는 새벽 

 

멸치똥 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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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게도 자다가 눈을 뜨면 새벽 4시다. 다시 잠들기를 기다린다. 오지 않는 잠을 억지로 자려고 누워 있는 것도 힘에 부친다. 창밖의 새들이 조잘거린다. 부지런한 새들은 나에게 일어나라고 재촉한다. 잠을 다시 자려고 누워서 버티는 것이 한심하다. 벌떡 일어났다. 

 

커피잔을 들고 창밖을 내다봤다. 간밤에 비가 내렸는지 길바닥이 거무칙칙하다. 아무도 없는 거리에 하얀 차 한대가 물결치는 소리를 내며 길 건너 건물 앞에 멈췄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했다. 호기심으로 그 누군가를 나도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 차는 한동안 깜빡이등을 켜고 있다가 그냥 떠났다. 

 

멸치 똥이라도 따자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냉동칸을 뒤적거렸지만, 멸치가 없다. 한국장을 간 지가 오래되었거니와 간다고 해도 비싼 멸치를 선뜻 집어 올 수가 없었다. 박스로 사다가 쟁여 먹던 예전과는 달리 작은 포장 멸치를 사 왔었다. 다듬을 틈도 없이 이미 바닥이 났다. 밥상 위에 수북히 놓고 멸치 배를 가르던 시절만 해도 여유로웠구나! 물가가 올라도 너무 올랐다. 미국장에 비해서 한국장은 손님에게 겁주듯이 올린다. 지금 이시간에도 라벨기로 올릴 가격을 찍고 있겠지? 멸치가 뭐라고. 이젠 고만 먹자. 한국장도 가지 말아야지. 

 

아침에 오트밀 죽을 손수해 먹는 남편을 위해 빵이나 구워야지. 남편이 구수한 빵 냄새가 나면 환한 얼굴로 좋아하겠지. 오트밀 한컵과 밀가루 한컵에 베이킹파우더와 소금 그리고 설탕 대신 건포도와 호두를 넣어 훌훌 섞어준 다음 버터 대신 올리브 오일과 달걀과 우유를 넣고 슬슬 섞어서 오븐에 넣었다. 이스트를 넣고 숙성시켜 밀가루 반죽을 치대는, 과정이 복잡한 빵은 이따금 아주 가끔 기분이 당길 때만 한다. 대부분은 베이킹파우더를 넣고 간단히 만들어 먹는다. 

 

남편은 옥수수빵을 좋아한다. 어릴 때 학교에서 얻어먹던 기억 때문인듯하다. 60년대, 그 많은 학교에 아이들의 고픈 배를 채우라고 미국에서 잉여 농산물 옥수수 가루(corn meal)를 보내줬다는 것이 신기하다는 말을 되뇌이곤 한다. 미국에 와서 보니 이곳 사람들이 간편하게 먹는 콘 머핀이다. 옥수수 가루를 사야지 하면서도 깜박 잊고 밀가루만 사 온것이 못내 아쉽다. 

 

남편은 건강에 나쁘다는 음식은 거의 먹지 않는다. 식당도 될 수 있으면 가지 않으려고 애쓴다. 집에는 설탕도 미원도 없다. 남들이 우리 집 음식을 먹으면 맛이 없다고 하겠지만, 건강식이라고 설거지하기 좋게 그릇을 싹싹 비운다. 마치 스님들이 밥알 하나 남기지 않고 공양 그릇 비우듯. 

 

빵 반죽을 오븐에 넣고 창가로 다가갔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허드슨강 저 멀리 뉴저지가 어둠을 뚫고 스멀스멀 밝아진다.

 

 

이수임/화가

서울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서양화 전공으로 학사,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뉴욕대에서 판화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4년 대학 동기동창인 화가 이일(IL LEE)씨와 결혼, 두 아들을 낳고 브루클린 그린포인트에서 작업하다 맨해튼으로 이주했다. 2008년부터 뉴욕중앙일보에 칼럼을 기고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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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22.04.04 01:39
    잠 못 이루는 새벽을 잘읽었습니다. 잠이 많아서 잠못 이루는 사람들을 이해 못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내가 그 대열 속에 들어 갈 줄이야 정말 몰랐습니다. 새벽 3시쯤에는 어김없이 깨어서 화장실 갔다와서는 다시 잠을 청하면 말을 듣지않습니다. 책을 집어들지만 돋보기를 찾다가 포기하기 일수고, 돋보기를 끼고 책을 읽어보지만 책장이 여간해서 넘어가지를 않고 잡다한 생각만 가득 들어옵니다. 뒤치락 거리다가 이수임 작가의 이 칼럼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부엌에 가서 멸치똥이라도 따자는 글이 생각나서 부엌으로 내려갔습니다. 냉동실에 멸치 8온스짜리가 한봉지 있어서 꺼냈습니다. 멸치똥을 따면서 양파와 볶아서 먹어야지 생각을 하는데 잠이 들었습니다. 멸치똥 따는게 잠을 갖다준 셈이지요. 이렇게 어제는 멸치똥을 만지면서 아침 늦게까지 잘잤습니다.이수임 작가의 글은 쉽게 접근하고, 평범속에서도 편안함을 주어서 저는 좋이요 좋아요를 연발합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