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728)
- 강익중/詩 아닌 詩(83)
- 김미경/서촌 오후 4시(13)
- 김원숙/이야기하는 붓(5)
- 김호봉/Memory(10)
- 김희자/바람의 메시지(30)
- 남광우/일할 수 있는 행복(3)
- 마종일/대나무 숲(6)
- 박준/사람과 사막(9)
- 스테파니 S. 리/흔들리며 피는 꽃(49)
- 연사숙/동촌의 꿈(6)
- 이수임/창가의 선인장(149)
- 이영주/뉴욕 촌뜨기의 일기(65)
- June Korea/잊혀져 갈 것들을 기억하는 방법(12)
- 한혜진/에피소드&오브제(23)
- 필 황/택시 블루스(12)
- 허병렬/은총의 교실(101)
- 홍영혜/빨간 등대(70)
- 박숙희/수다만리(66)
- 사랑방(16)
(622) 이수임: 미니멀리스트의 효자들
창가의 선인장 (124) 기다리면 생긴다
미니멀리스트의 효자들
인스턴트팟, 에어프라이어 그리고 로봇 청소기만 있으면 도우미 없이도 살 수 있단다.
나는 부엌에 주방용품과 양념통이 밖으로 나와 눈에 띄는 것을 싫어한다. 즐겨 마시던 커피를 끊어서 커피포트를 없앴다. 토스터와 밥통도 없다. 에어프라이어는 지인들이 하도 좋다고 해서 큰맘 먹고 세일할 때 샀다. 큰 것이 싫어서 작은 것을 샀더니 별로 쓸모가 없다.
“엄마, 인스턴트팟 알아요. 이사 가는 친구가 줬어요. 새것이에요. 엄마가 쓰세요”
살림살이가 나보다 더 많은 큰아이와 남편은 필요한 것이 있으면 일단 살 생각부터 한다. 반대로 작은 아이는 나를 닮아서 물건을 사지 않는다. 공짜로 생기면 쓰고 없으면 없는 대로 산다. 옷은 패션모델 사진 찍는 친구가 샘플을 받아와서 주면 입는다. 대학 기숙사에서 살다가 나올 때도 룸메이트가 팽개치고 간 쓸만한 물건들을 챙겨올 정도다.
“나이키(프렌치 불독 이름)와 산책 중 버려진 멀쩡한 이케아 가구를 주워 왔어요. 나이키가 어찌나 영리한지 괜찮은 물건을 보면 멈춰서 주어갈래? 라는 표정으로 쳐다봐요.”
작은아이가 말했다.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돈 냄새 맡는 훈련한 후 산책하면 돈 있는 곳으로 데려가지 않을까? 경찰의 마약 탐지견처럼”
“그렇지 않아도 나이키가 돈 앞에 딱 멈춰 서서 두 번 주웠어요.”
커다란 인스턴트 팟이 부엌에 떡하니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것이 영 마음에 걸리지만, 공짜로 생긴 것이니 용서했다. 사용 기능을 유튜브를 보고 익힌 후 이것저것 막 때려 넣고 볶고, 지지고 끓인다. 조용히 별로 냄새도 풍기지 않고 착하게 음식을 잘 만든다. 그전처럼 지저분해진 오븐을 닦지 않아도 된다.
일요일마다 가구들을 이리저리 밀며 구석구석 쓰레질하는 남편이 반색하며 말했다.
“이여사, 이번 기회에 로봇 청소기도 하나 장만하지.”
“왜 마당쇠 은퇴하려고? ‘좋은 습관 버리기는 쉽지만, 다시 길들이기는 어렵다.’는 빅토르 위고 명언 알아요? 청소기도 기다리면 생길 거야. 그때까지 하던 일 그냥 하시지요.”
이상하게도 원하는 것을 사지 않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생긴다. 아이 둘은 암벽 등반하다가 만난 컴퓨터 하나만 들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일하는 친구들이 많다. 그들이 떠날 때 홀가분하게 정리하면서 버리는 쓸만한 것을 챙겨온다. 큰아이는 아마존에서 사서 주고, 작은 아이는 얻어서 주고 두 효자가 애쓴다.
이수임/화가
이수임씨의 글은 쉽게 쓰시면서도 동떨어진 주제가 아니고 동감하는 글이어서 좋아요. 오늘도 '기다리면 저절로 생긴다'를 잘 읽었습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부억에 뭐가 나와있는 걸 싫어해서 치워놓는다고 하셨는데, 살림꾼 냄새가 풍깁니다.저는 부억과 식탁이 늘 지저분해요. 페이퍼 타월도 한번 쓰고 버리질않고 왠만하면 두번 쓰죠. 이런게 몸에 베어서인지 버리는 게 쉽지않아요. 그러다가 애들이라도 오면 지저분하다는 잔소리가 역겨워서 다 쓸어버리지요. '애끼다 찌루간다'는 말이 나한테는 아주 어울리는 말이지요. 내 주위 사람들은 어찌나 짠돌이들인지 garage sale을 하거나 하지 free가 없어요.
기다리면 저절로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늘 재밌고 솔직한 글을 써주셔서 읽고 행복한 조각을 얻습니다. 또 만날 날을 기다리면서.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