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홍영혜/빨간 등대
2022.06.04 13:39

(623) 홍영혜: 나무는 눕지 않는다

조회 수 172 댓글 1

빨간 등대 (50) 위대한 그 나무를 만나다 1: 퀸즈 키세나 공원의 찰피나무 

 

나무는 눕지 않는다 

 

IMG_0917.jpg

Sue Cho, “Gift of heaven”, 2022, Digital Painting

 

i thank You God for most this amazing

day:for the leaping greenly spirits of trees

and a blue true dream of sky; and for everything

which is natural which is infinite which is yes 

 –e.e. commimgs (1894-1962)

 

나의 나무 탐험은 동네 책방에서 시작되었다. 그리니치 빌리지 산책길에 한 코너에 ‘Three Lives & Company’라는 빨간 문의 조그만 책방이 눈에 들어왔다. 밖에서 윈도우를 보며 기웃거리다가 어느날 문득 들어가 보고 싶었다. 오밀조밀 진열된 틈에 “Great Trees of New York Map”란 지도가 눈에 띄여 열어보았다.

 

뉴욕시 5개 보로에 있는 나무에 관한 지도이다. 오래 되거나, 희귀하거나, 역사적으로 이야깃 거리가 있는 나무들, 50군데를 골라 한 면에는 뉴욕시 지도에 나무의 위치를 표기하고, 다른 면에는 그 나무들에 대해 간단한 설명이 들어 있다. 카운터 점원이 “아 이 지도를 골랐군요!” 하는 강한 긍정이 담긴 표정에, 지도에 10불을 쓰나 하는 머뭇거림을 떨치고 “YES!”하고 문을 나섰다. 

 

 

20220603_011007.jpg

 

일단 나는 집에 틀어박혀 있으면 나가기 싫어하는데, 나무를 찾으려는 호기심 덕분인지 도파민(*Dopamine: 뇌신경세포에 흥분을 전달해 지적인 사랑을 느끼게 해주는 호르몬)이 샘솟는 것 같다. 워싱턴 스퀘어 파크 동네 주변에서 반경을 넓혀 Great Trees를 찾아 평상시 엄두를 못 내던 뉴욕시 공원들을 걸었다. 연두에서 초록으로, 가지에서 잎으로 뛰어오를 듯 번져나가는 5월의 싱그러움에 흠뻑 빠진 시간들이다. 첫 번째 나무 이야기는 플러싱 Kissena Park (키세나 공원)에 있는 Manchurian Linden (참피나무)로 시작할까 한다. 

 

 

20220602_123851.jpg

Kissena Park  5/13/2022 @ Kissena Park

 

뉴욕시 한인타운의 중심인 퀸즈 플러싱(Flushing, Queens)에 자리한 키세나 공원은 235에이커의 규모다.(센트럴파크는 843에이커) 평화로이 호숫가 주변을 걷거나, 바이크 트레일, 테니스장 등 야외 레크리에이션 시설이 있어, 근처 한인들이 애용하는 공원이라고 들었다. 5월 중순 이곳을 찾았을 때는 갓 태어난 새끼 새들이 어미 새들의 돌봄을 받고, 조그만 거북이들이 헤엄치다가 쪼르르 바위에 올라와 낮잠을 자는지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그 앞으로 오랜만에 우드덕 (wood duck)이 보인다. 우리 한인들에겐 특별히 6.25 참전용사 기념비( Korean War Veterans Memorial)가 설치된 의미있는 공원이다. 

 

 

HUMMING BIRD2.jpg

 

호수를 한 바퀴 도는데, 만발한 Red Horse-Chestnut (빨간 말밤나무)의 꽃이 멀리서도 눈길을 끈다. 어마한 사진장비를 한 버드워쳐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Ruby-throated Hummingbird (목이 빨간 허밍버드)가 남쪽으로 날아가는 길에 여기 쉬어가며 꽃의 넥타를 마시고 기운을 차리는 쉼터라고 한다. 허밍버드는 작은 덤불에 먼저 날라 왔다가 이 꽃나무로 비상한다. 그 순간 근접하여 사진을 포착하느라 사진사들은 셔터를 계속 누른다. 얄밉게도 덤불에 사는 새들이 텃새하는지 그곳에 앉지 못하게 허밍버드를 쫓아버린다. 

 

그날 younglee0915께서 인스타그램에 올리신 허밍버드 사진을 공유한다. 맨눈으로는 보지 못했던, 마치 정교한 sequin 장식을 목에 두른 듯한 자연의 섬세한 옷을 볼 수 있다. 수박색을 살짝 곁들인 깃털의 세련미는 사람이 범접하기 어려운 자연의 솜씨다. 

 

 

old tree at kessena 2.jpeg

Manchurian Linden (Tilia mandshurica) at Kissena Park

 

6.25 참전용사 기념비를 지나 Manchurian Linden이 있다는 테니스장 옆으로 걸어가는데, 예사롭지 않은 오래된 나무들이 눈길을 끈다. 이 주변 14에이커는 "Kissena Park Historic Grove"라 불리우는데, Samuel Brown Parsons, Sr. (1819-1906)가 1840년경 세운 Parsons nursery가 있던 자리라고 한다. 그는 외국을 다니며 일본 단풍나무 등 이국적인 나무를 수입해 와서 그 당시 원예사업을 독점하다시피 했다고 한다.

 

미국 조경건축학회 창시자인, 그의 아들 Samuel Brown Parsons, Jr.(1844-1923)도 농원을 이어받아, 당시 센트럴 파크의 조경건축가인 프레드릭 로 옴스테드(Fredrick Law Olmsted)도 이 곳에서 나무를 주문했다고 한다. 플러싱 바로 여기가 과거 원예업의 센터였다는 사실이 새로웠고, Historic Grove을 걸으면서 아직 남은 그 당시의 희귀하고 이국적인 나무들을 볼 수 있었다.

 

 

old tree at kissena park.jpeg

 

Manchurian Linden 나무를 보고는 담박에 알아챘다. 나무 기둥이 파이고 구멍 나고 생채기난 험한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나왔다. 어린 나무로 와서 낯선 땅에 뿌리 내리며 이 나무가 견뎠을 힘든 세월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마치 이국에 정착해서 낯선 언어와 문화와 차별 속에 헤쳐 나가야 하는 우리 이민자들의 거칠고 마디지고 주름진 손을 연상하게 된다. 그런데도 이렇게 단단하게 버티어, 우뚝 솟아서 새롭게, 무성하게 잎을 달고 있는 나무를 보니 과연 대단한 나무임이 틀림었다. 

 

한국 이름은 찰피나무로 한국, 중국, 러시아가 원산지라고 한다. 같은 동북아시아에서 왔다니 더 친근하다. 6, 7월경에 피는 황백색 꽃은 달콤한 향이 나고 단단한 열매는 염주로 사용한다고 한다. 그래서 '염주보리수'로 불리우기도 한다. 여름의 꽃향기, 가을의 열매는 어떨까 보러 오고 싶다. 근처 한국 음식점 "함지박"에서 푸짐한 점심도 먹을 겸. 

 

 

IMG_0919.jpg

Sue Cho, “Mi casa es su casa (my house is your house)”, 2022, Digital Painting

 

PS 1. https://www.youtube.com/watch?v=GLQTRlYyPco

양희은 씨의 “느티나무” 노래가 생각나서 들어보려고 찾다가 악동뮤지션과 함께 부른 “나무”라는 노래를 들어보았다. 어쩜 가사 내용이나 비디오 영상을 잘 만들었는지  키세나 공원에서 참피나무를 보고 느낀 정서가 이 노래를 들으면 고스란히 살아난다.

 

PS 2. 키세나 공원에는 Manchurian Linden과 함께 “ Great tree”로 리스트가 되어 있는 또 다른 나무가 있다. Persian Parrotia는 이란에서 온 희귀한 나무로 가을에 불타는 단풍이 멋있다고 한다.

 

 

홍영혜/가족 상담가  

서울 출생. 이화여대 영문과 대학, 대학원 졸업 후 결혼과 함께 뉴욕에서 와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이후 회계사로 일하다 시카고로 이주, 한동안 가정에 전념했다. 아이들 성장 후 학교로 돌아가 사회사업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Licensed Clinical Social Worker, 가정 상담가로서 부모 교육, 부부 상담, 정신건강 상담을 했다. 2013년 뉴욕으로 이주, 미술 애호가로서 뉴욕의 문화예술을 탐험하고 있다.  
 

수 조(Sue Cho)/화가 

미시간주립대학에서 서양화와 판화를 전공하고, 브루클린칼리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뉴욕주 해리슨공립도서관, 코네티컷주 다리엔의 아트리아 갤러리 등지에서 개인전, 뉴욕한국문화원 그룹전(1986, 2009), 리버사이드갤러리(NJ), Kacal 그룹전에 참가했다. 2020년 6월엔 첼시 K&P Gallery에서 열린 온라인 그룹전 'Blooming'에 작품을 전시했다.  

 

 

 

?
  • sukie 2022.06.07 19:12
    마음에 눈이 없으면 보물단지도 못 보는거지요. 후러싱에서 70년대 초부터 십여년을 살았는데도 great trees of New York이 후러싱 키세나 공원에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컬빗에 올려주셔서 이제야 알았습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기 전에는 애들하고 법석을 떨면서 아파트에서 생활을 했습니다. 주말에야 겨우 남편과 같이 공원도 가고 식당도 가곤했습니다. 키세나 파크는 우리가 살던 메인 스트릿과 가까워서 자주 놀러갔었지요. 아이들과 함께 호수에 돌도 던지고 여름에는 풀밭에서 뒹굴게 내버려두기도 했고 가을이면 낙엽을 밟으면서 낙엽을 한아름 쓸어모아서 훅 날리곤 했었지요. 겨울이 제일 재미있었고 추억에 남네요. 눈사람을 만들어서 모자를 씌우고 그앞에 남매를 세우고 사진을 찍고 손벽을 치곤했습니다. 그곳을 그렇게 많이 다녔는데도 great tree를 몰랐습니다. 분명 그 나무를 봤을텐데도 그냥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홍영혜님의 나무 탐험기는 경이로움을 자아냅니다.
    함지박 식당은 파킹이 너무 힘듭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