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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6) 이영주: 마리아씨의 초대, 아미쉬 마을 투어
뉴욕 촌뜨기의 일기 (60) 랑카스터에서 하룻밤
마리아씨의 초대, 아미쉬 마을 투어
얼마 전, 1박2일로 아미시(Amish) 마을 랑카스터를 다녀왔습니다. 오랜 지기 마리아씨의 선물이었습니다. 미국온 지 40년이 되도록 아미쉬 마을에 가보지 않은 게 특별한 이유는 없고, 그냥 어영부영 하다가 세월이 흘렀다고 할까요. 이번에 가게 된 것도 친구 에스더와 마리아씨, 셋이서 점심을 먹던 중에 마리아씨가 커네티컷과 아미쉬 마을에 꽃 사러 간다는 바람에 제가 아미쉬 마을에 간 적 없다니까 마리아씨가 “그럼 저랑 같이 가세요”, 했습니다. 그리고 혼자서 커네티컷 다녀오더니 득달같이 아미쉬 마을에 숙소를 예약하고 1박2일의 여행을 준비한 것입니다.
마리아씨와 에스더 두 사람 모두 화초를 좋아합니다. 마리아씨는 다육이 엄마로 불릴 정도로 다양한 다육이들을 오래 전부터 키워왔습니다. 제게도 여러 차례 나눠줘서 키웠는데, 작은 아파트로 이사한 후엔 이상하게 잘 크지 않아 작년에도 중병에 걸린 애들을 에스더네 입원시켰더니 거기서 다시 잘 크고 있습니다. 마리아씨처럼 에스더도 화초를 잘 키웁니다.
저는 아미쉬가 기계문명을 거부하고 옛 농사 방식으로 자급자족하며 사는 집단이라고만 생각했지 그들이 재세례파 계통의 개신교 종파라는 건 이번에 알았습니다. 창시자는 스위스의 종교개혁자 야곱 아망으로, 17세기 이후 탄압을 피해 유럽에서 이주한 스위스-독일계 이민자들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간 펜실바니아주 아미쉬 카운티의 랑카스터는 아미시들의 중심지로, 인구 6만 여 명의 펜주에서 8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한때 주 수도였던 타운답게 다운타운은 펜광장(Penn Square)를 중심으로 아미시 상품 판매소인 센트럴 마켓(Central Market)을 비롯해 매리옷호텔, 음식점, 상가들이 포진해 있고, 음악학교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대중적인 메리옷호텔이 랑카스터에선 대단히 클래식하고 육중한 건물이라 의외였습니다. 그외에도 고색창연한 묵직한 빌딩들이 적지 않고, 상점들도 눈에 띄게 단정한 모습이었습니다. 특이한 점은 대개의 상점들 입구 양쪽에 자리한 큰 도자기 항아리에 색색의 꽃을 장식해 놓은 것입니다. 보는 사람의 눈과 마음이 저절로 즐거워져서 살 것도 없으나 꽃이 유난히 멋스러운 상점엔 쓰-윽 들어가서 괜히 한 바퀴 둘러보고 나왔습니다.
낯선 도시들을 가보면 생동감이 넘치는 곳이 있는가 하면 고스트 타운처럼 죽어가는 도시도 있습니다. 몇 년 전, 가본 피닉스가 그렇게 젊음이 넘치는 도시였습니다. 또는 프라하처럼, 클래식하고 파스텔 톤의 색조가 멋스럽던 도시가 마치 미국의 어느 소도시에 온 것처럼 온갖 명품 대형가게들로 탈바꿈해 낯설어지기도 합니다. 랑카스터는 청결함과 관리 잘된 도시의 모습이 참으로 상큼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다운타운 뿐만 아니라 타운 곳곳을 다녀도 모든 빌딩과 가옥들이 매우 정돈되고 청결했으며, 잘 가꾸어져 있었습니다.
마리아씨가 랑카스터 인근을 이 골목 저 골목 휘집고 다닌 덕분에 목축업이 주요 생업인 아미시들의 생활을 그나마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소목장도 있지만 말목장이 많은 건 의외였습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소똥, 말똥 냄새가 풍기는 게 마치 한국 우리네 시골을 지날 때마다 나던 거름 냄새와 흡사해 익숙하기까지 했습니다. 정원의 화초에도 거름을 주어 냄새가 진동하는 아미시 집에는 높은 빨래줄이 있고, 거기에 어둔 색의 옷들이 집게에 찝혀 널려 있습니다. 아직도 거리엔 마차가 다니고 마차 판매점도 있지만, 거개의 집에 자동차가 있는 걸 보면, 그네들에게도 21세기 폭탄적인 물질 문명과 기계문명은 더 이상 거부만 할 수 없었나봅니다. 숙소로 가는 길에 지붕이 있는 다리가 있다고 가보자면서 찾아갔는데, 조그만 목조다리였습니다. 그 옆에서 마리아씨는 야생화같지 않게 우아하고 흰 야생화를 발견했습니다. 정말 야생화답지 않은 품격이 있었습니다.
숙소는 Amish View Inn 이었습니다. 겉에서 보면 평범한데, 고급진 인테리어와 가구들로 유럽 귀족 풍의 무게와 멋이 있었습니다. 특히 좋았던 것은 침대입니다. 침대가 물컹거리지 않고 너무 편안해서 2년만에 처음 8시간을 숙면했습니다. 평소 수면제를 먹어도 4, 5시간 밖에 못 자는 내가 8시간을 숙면한 건 대단한 일입니다. 그런데 제가 자면서 그렇게 기침을 많이 하고 코를 골더랍니다. 그런 소음 속에서 마리아씨는 아마 깊은 잠을 못 잤을듯 싶은데, 워낙 속 깊고 착한 사람이라 “잠을 못 잘 줄 알았는데, 그래도 잠이 들어서 잤어요.”, 하며 마음을 편하게 해줍니다.
호텔 조식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여러가지가 많았지만, 전 오트밀, 에그 스크램블, 소시지, 요거트, 블루베리를 먹었습니다. 우선 오트밀이 푹 잘 익힌 죽처럼 쿡된 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거기에서 요리사의 성의가 느껴졌습니다. 로컬소시지는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어찌나 맛있던지 3개나 먹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먹어본 소시지 중에 최고였습니다.
아침 식사 후, 마리아씨가 제게 보여주고 싶어 한 다운타운의 Amish 생산품을 판매하는 Central Market에 갔습니다. 야채가 너무 싱싱했고, 꽃집에 다육이들도 있었고, 고기며 생선, 잼과 초, 퀼트 등등, 다양한 상품들이 있었습니다. 마리아씨가 이곳 Cinnamon Pretzel 이 입에서 녹는다는 리뷰가 있다고 해서 프리쩰을 샀습니다. 맘 좋게 생긴 주인 아주머니는 오늘이 마침 National Pretzel’s Day라며 미니 프리쩰 두 개를 덤으로 주었습니다. 프리쩰 데이가 있다는 말은 첨 들었지만, 매일에 이렇게 이름을 붙여 축제처럼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같습니다. 대개의 기념일들이 상업용이긴 하나 그 본래의 개념이 나쁘지 않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모든 인간사엔 양면성이 있습니다.
모처럼의 봄맞이 외출로 제가 몰랐던 아미시들의 절제와 근면의 삶을 엿볼 수 있었던 일은 좋은 학습이었습니다. 아미쉬들은 모두 부자라고 합니다. 그들의 레트로적 삶을 보면서 지구의 환경 문제를 떠올린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었습니다. 첨단기술이나 기계 사용을 줄이고, 이들처럼 자연비료로 농작물을 재배한다면 지구가 훨씬 건강해지지 않을까? 지금처럼 병에 찌든 지구만 건강해질 수 있다면 까짓 거름 냄새쯤도 얼마든 견딜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틀 동안 함께 하면서 마리아씨를 더 많이 알게 된 일도 기뻤습니다. 바닷가에 사는 마리아씨는 매일 새벽 해가 뜨기만 하면 즉시, 시간에 구애하지 않고 그 광경을 찍어 카톡을 보냅니다. 왜 그렇게 보내느냐고 물었더니 ‘떠오르는 태양의 정기를 보내주고 싶어서'랍니다. 반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마리아씨는 뉴욕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가정’이라고 제가 우러르는 모범적 가정을 이룬 어머니입니다. 다섯 남매를 모두 건강하고 훌륭하게 키웠으며 부군 요한씨와의 금슬 또한 모든 이의 표양입니다. 그러면서도 마리아씨는 화가 못지 않게 그림을 그리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모험을 즐기는 이 시대 여인이기도 합니다. 제가 딸들에게 늘 하는 말도 인생은 도전이고 모험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도전하는 삶, 정지하지 않고 매일 진화해가는 삶을 지향합니다. 그렇게 살고 있는 벗이 주변에 있다는 건 특별한 축복이라 여겨집니다.
여정이 조금 힘들었지만, 그래도 마리아씨든, 그 누구든, 저를 부르면 저는 곧 떠날 준비가 늘 되어 있다. 왜? 살아있는 동안 이 세상을 마음껏 누려야 하니까말입니다.
이영주/수필가 강원도 철원 생. 중앙대 신문학과 졸업 후 충청일보 정치부 기자와 도서출판 학창사 대표를 지냈다. 1981년 미국으로 이주 1990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후 수필집 '엄마의 요술주머니' '이제는 우리가 엄마를 키울게' '내 인생의 삼중주'를 냈다. 줄리아드 음대 출신 클래식 앙상블 '안 트리오(Ahn Trio)'를 키워낸 장한 어머니이기도 하다. 현재 '에세이스트 미국동부지회' 회장이며 뉴욕 중앙일보에 '뉴욕의 맛과 멋' 칼럼을 연재 중이다. '허드슨 문화클럽' 대표로, 뉴저지에서 '수필교실'과 '북클럽'도 운영하고 있다.
아름다운 추억을 담아내서 행복에 잠기게해 주신 수필가 이영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Ela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