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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허병렬: 한글 수출하기
은총의 교실 (5) 디지털 시대의 훈민정음
한글 수출하기
언어가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한다니 무슨 뜻인가. 언어가 없어진다 즉 소멸되기도 하고, 언어가 현재 많은 사람들에게 사용되기도 한다는 뜻이다. 세계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수는 7,000여가지가 있다고 한다. 소수민족, 혹은 작은 마을, 작은 그룹에서 사용하는 특수한 말까지 합친 수효를 뜻한다. 그런데 이런 언어들이 차차 없어진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그 특수한 말들을 후세에 전하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하는 방법이란 글자일 텐데 그 글자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것은 말과 글자의 관계이며, 말의 수효가 글자의 수효보다 훨씬 많음을 알린다.
특수한 말을 나타내는 글자는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고안하거나, 다른 말을 쓰는 사람들의 글자를 빌려쓰는 방법이 있다. 우리의 역사를 보더라도 한글이 없던 시기에는 중국의 한자를 빌려쓰지 않았는가. 그 당시 말과 글자가 일치하지 않아서 얼마나 불편하였을까. 우리가 한국말을 보전할 수 있는 글자가 있음은 다행한 일이다. 이만큼 사용하는 언어에 꼭 맞는 글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어려운 일인 것이다.
올해 570주년을 맞이하는 한글이 반포된 이후에도 생활의 타성이나, 사대주의 때문에 한글이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 시기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어떤가. IT시대가 열리면서 한글은 더욱 빛을 내더니 드디어 세계의 우수한 글자로 자리 매김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더욱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께 한층 더 감사드리게 된다.
이 한글이 한자가 뜻을 나타내는 것과 달리 표음문자이므로 거의 어떤 소리나 다 표기할 수 있음은 장점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생명을 잃어가는 언어들을 한글로 표기하여 삶을 이어가게 할 수는 없을까. 말하자면 ‘한글’이 수출품은 될 수 없을까라는 글을 전에 쓴 일이 있다. 그런데 그게 한낱 꿈이 아니었다. 현재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주의 부튼섬에서 종족 고유어를 한글로 표기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그들 자신만의 언어는 찌아찌아어다.
Ik-Joong Kang, Things I Know (Detail)
그 동안 언어는 있었지만, 글자가 없었으나 한글로 민족 고유의 언어를 읽고 기록하게 된 것이다. 신문 기사와 텔레비전 영상으로 본 그들은 한글로 된 교과서로 자신들의 언어를 배우고 있었다. 이것은 한글이 처음으로 다른 민족의 공식 문자로 채택된 예이다. 앞으로 한글은 찌아찌아족의 문화를 살려낼 것이며 나아가서 한국과의 우정을 키울 줄 안다.
한글 영향의 파장이 하루하루 길어짐은 한글의 우수성이고, 이는 우리의 자랑이다. 세계 언어 중 절반은 2100년까지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다는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에 주목한다. 이는 한글의 역할이 요구됨을 말한다. 그래서 ‘한글의 세계화’라는 말이 등장하였다. 우리가 염두에 둘 것은 글자가 없는 사람들에게 표기 방법을 알린다는 목표를 잃지 말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인류 문화의 다양성을 유지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패권주의’란 군사력, 경제력만이 아니고, 때로는 문화력도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생각의 비약을 염려한다.한 나라의 경제 부양책으로 수출량의 증가와 내수의 촉진을 들 수 있다. 한글의 경우 이미 수출이 시작되었다. 이와 달리 요즈음 한국 내에서 한국어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어린이들의 영어 학습이 활발하다.
중고등, 대학 학생들은 영어권이나 중국어권으로 유학을 떠나는 경향이 있다. 이메일, 채팅, 텍스트를 주고받는 글들은 짧게 축소된 말이나 기호여서 이해하기 힘들다. 외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언어와 철자법이 혼돈을 가져오는 예가 종종 있다. 수출품을 챙기기 전에 내수품의 점검을 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한다. 한글의 건강을 위하여. 이 지역에서 성장하는 우리 자녀들의 한국어 교육은 정체성 확립, 한국 문화유산의 전수, 실용성을 위한 것이다. 언어가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이 시기의 표준어, 옳은 철자법, 문법을 사용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겠다. 이에 따라 수출품의 품질도 향상되니까.
허병렬 (Grace B. Huh, 許昞烈)/뉴욕한국학교 이사장
1926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여자사범학교 본과 졸업 후 동국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60년 조지 피바디 티처스칼리지(테네시주)에서 학사, 1969년 뱅크스트릿 에듀케이션칼리지에서 석사학위를 받음.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 이화여대 부속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1967년부터 뉴욕한인교회 한글학교 교사, 컬럼비아대 한국어과 강사, 퀸즈칼리지(CUNY) 한국어과 강사, 1973년부터 2009년까지 뉴욕한국학교 교장직을 맡았다. '한인교육연구' (재미한인학교협의회 발행) 편집인, 어린이 뮤지컬 '흥부와 놀부'(1981) '심청 뉴욕에 오다'(1998) '나무꾼과 선녀'(2005) 제작, 극본, 연출로 공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