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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혜/빨간 등대
2019.10.28 18:57

(442) 홍영혜: 나의 곰 인형

조회 수 1006 댓글 2

빨간 등대 <21> Best Friend

나의 곰 인형


20191026_122544.jpg 뉴욕에서 구입한 'Made in Korea' 곰 인형


수술 이틀 전날, 잠을 청하지 못하고 뒤치락 엎치락하였다. 친구가 보내준 한 손에 꼭 감기는 십자가를 손에 품기도 하고, 수면제를 먹을까 망설이다가, 나의 곰 인형을 꺼냈다.

 

1983년 7월에 뉴욕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 당시만 해도 168가 컬럼비아 대학 병원 근처 동네가 험악해서 지하철을 혼자 타는 것을 엄두도 못냈다. 계단에 내려와 으시시한 엘리베이터를 통해서만  더 지하로 내려가 1번 트레인을 타게 된다. (요즘에서야  이 지하철역을 대대적으로 수리하고 있다.)  때문에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녔다. 결국  맨해튼에서 몇달 서블릿하고 있다가 조지 워싱턴 다리를 지나 뉴저지주 포트리에 정착했다. 운전면허를 갓 따서 내가 가는 곳은 학교와 남편 직장, 그리고 몇 군데가 안 되었었다. 오자마자 여름 학기부터 학교를 시작해서 바쁜 일정이었지만, 사흘에 한번씩  당직을 하던 남편이 주말 당직일 때는, 혼자 덩그러니 아파트에 남겨져 훌쩍훌쩍 운 기억이 난다.

 

시동생이 뉴욕에 놀러 왔다가 시카고에  돌아가면서 여자 친구(지금의 동서)에게 준다고 커다란 사자 인형을 하나 사가지고 갔다. 그때  나는 속으로 "다 큰 어른이 무슨 사자 인형이야" 하면서도  내심 부러워했나 보다.  어느 날 백화점에 갔다가 곰 인형이 눈에 띄어 하나를 집고 보니 1980년산  'Made in Korea'여서  너무 반가웠다. 그때는 곰 인형이었는 줄  알았는데  지금보니  코알라 곰이니 엄밀하게 곰 인형은 아니었다. 미국 첫해 크리스마스에는 그 곰 인형에 내 빨간 체크무늬 조끼를 입혀 함께 찍은 사진이 있다. 지금으로 말하면 애완용 강아지 정도로 여겼나 보다. 그간  미국에 와서 9번을 이사를 하면서, 이 곰 인형을 버리지 않은 것은 정말 잘한 것 같다. 세탁하면 닳을까 봐 조심조심 아껴서 빨았고, 가슴 부분이 튿어져서 꿰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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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dessa Hendeles, Partners (The Teddy Bear Project), 2002, from 'The Keeper' at The New Museum, NYC.  


2016년 소호 근처에  있는 뉴뮤지엄(New Museum)에서  왜 사람들은  물건들은 수집을 하고, 간직할까 하는 '더 키퍼(The Keeper)'  전시회를 했었다.  그 전시의 일환으로 캐나다 아티스트 이데싸 헨델레스(Ydessa Hendeles)가 'Partners (Teddy Bear Project)'라는 타이틀로 3000명이 넘는 가족 앨범 속에 찾아낸  테디베어와 함께 찍은 사진을 두 층에 걸쳐  전시한적이 있다. 이 사진들을 보면서,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곰인형과 함께 사진을 찍는구나 하며  크리스마스때 함께 찍은 나의 곰인형 사진을 떠올렸었다. 어린 시절의 소중한 심볼이자, 노스탤지아를 불러 일으키는 곰 인형은  어른 아이할 것 없이 각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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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dessa Hendeles, Partners (The Teddy Bear Project), 2002, from 'The Keeper' at The New Museum, NYC.  

 

곰 인형이나, 촉감이 부드러운 담요, 인형 등은 정신 분석학자  도날드 위니캇(Donald Winnicott)이  '중간 대상'(Transitional  object)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듯이, 아이들이 엄마와 떨어져 있을 때  불안감을 해소해주고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성장함에 따라  곰 인형이 없어도 엄마가  다시 올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해보면, 엄마가 일을 하셨기 때문에  계단에 앉아서  엄마를 많이 기다린 것 같다. 대문을 못잠그게하고  엄마 올 때까지  대문 밖 계단에 기다리곤 했다.


머리털이 까만 고무로 되어, 눕혔다 일으키면 눈이 깜빡 뜨는 인형이 있었는데  언니와 싸우다  언니가 가위로 코를 잘라서 울었던 인형이 떠오른다.  그리고, 또 하나는 큼지막한 미제인형, 갈색 머리털에 얼굴에 주근깨가 있고 입술에는 두 개의 어금니가 붙어있고, 가슴에 구멍이 있어  줄을 잡아당기면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은데  고장이 나서 말은 못 하던 인형, 하얀 신발과 빨간 옷 색깔까지, 인형들은 지금 존재하지 않지만 내 기억 속에는 선명하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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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18마일의 책들'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있는 맨해튼의 제일 큰 독립책방  스트랜드 서점 (Strand Bookstore)에  들렀다.  2층에 올라가자 눈에 잘 띠는 곳에 진열된  사진작가 마크 닉슨(Mark Nixon)의  책 'Much Loved'에 시선이 갔다. 어린 시절의 인형들, 많이 만져서  구멍이 나고 헤어지고  귀 한 짝은 없어지고 한 인형들과  그 인형들에 얽힌  스토리들이 적혀 있다. 원래는 Mark Nixon이 여기 책의 사진들을  가지고  전시회를 열었는데, 그 사진들이 웹에 올라가게 되고,  곰 인형에  얽힌 스토리와 댓글 등 반응이 너무 뜨거워  책으로 출판하게 되었다고 한다. 털이 여기저기 빠지고 닳은 인형 사진들이 나이를 막론하고 우리 자신이나 가족들의 어린시절에 대한 많은 스토리와  마음에 울림을 준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내 곰 인형은 '엄마 나라'인 한국에 정을 떼고 미국을 내 집( Home)으로 받아들일 때까지 'Transitional object'로 내 자신에게 준 선물이다. 한국 간다고 가방을 쌀 때면  며칠 밤을  설래서 잠을 못 이루고,  공항에서 미국에 들어올 때면  숨이 막힐 것 같은 느낌에서 헤어나와  미국이 내 집처럼  여겨질때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요즈음 나의 곰 인형은 대부분 침대를 장식하는 필로우처럼  베개 사이에  앉아 있지만, 몸이 힘들 때, 많이 아플 때나  마음이 불안하고 두려울 때, 침대에서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수면제를 먹기 전에  이 곰 인형을 시도해 본다. 안고 한쪽 손을 잡고  잠을 청해 본다. 안았을 떄의 오동통한 크기의 포근한 느낌과 손의 감촉이 좋다. 어떤 때는 스르르 잠이 들기까지 한다. 

 

"진실은 허구보다 더 낯설다(Truth is stranger than fiction)."는 말처럼, 곰 인형의 손을 잡고 잠을 청한  다음날 아침,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수술 차트에  기록의 오류가 있어서 내가 수술을 안 받아도 된다는 것이다.  2주간의 회복기간으로 묶여있을 줄 알었던 날들이 선물처럼 나에게 오롯이 다가왔다. 




홍영혜100.jpg 홍영혜/가족 상담가 
서울 출생. 이화여대 영문과 대학, 대학원 졸업 후 결혼과 함께 뉴욕에서 와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이후 회계사로 일하다 시카고로 이주, 한동안 가정에 전념했다. 아이들 성장 후 학교로 돌아가 사회사업학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Licensed Clinical Social Worker, 가정 상담가로서 부모 교육, 부부 상담, 정신건강 상담을 했다. 2013년 뉴욕으로 이주, 미술 애호가로서 뉴욕의 문화예술을 만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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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kie 2019.10.28 22:29
    다행이시네요! 선생님 글을 읽으면서 권태수씨의 노래 '아기곰'이 떠오르던데요. 남자 가수가 부른 것도 신선했구요.
    그 무엇을 준다해도 바꿀수가 없어요/ 세상에서 제일좋은 나의 친구 아기곰을/ 손대지 마세요 손대면 나는 싫어/ 탐내지 마세요 나의 친구 아기곰을/ 슬픈것도 몰라 몰라/ 화낼줄도 몰라 몰라/ 이름도 지었어요 곰이니까 곰돌이라고/ 세상에서 제일좋은 나의 친구 곰돌이...
    -권태수의 '아기곰'- https://youtu.be/9F6nezYK7NE
    저는 미피(Miffy)를 많이 갖고 있습니다:) https://www.miffy.com
  • arcon 2019.10.29 16:58
    '나의 곰 인형' 글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미니멀을 추구한다고 작은 아이 곰이 하도 낡아서 버렸습니다.
    아이가 울고 불고 찾고 아직도 찾고 있는듯 자신의 겨드랑이를 뜯는 버릇이 생겼어요.
    사지도 않고 그나마 있는 것도 죄다 버리는 내가 오늘은 아주 냉정한 인간이라며 탓합니다
    영혜씨는 따뜻한 분인 것 같아요.
    그리고 글에 맞는 노래 주소를 달아주는 수키씨의 배려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