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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5) 이수임: 실버타운을 찾아서
창가의 선인장 (88) 애수의 포르투갈
실버타운을 찾아서
크루즈에 중독된 러시안 친구가 있다. 그녀의 친정 아버지가 "너 언제 돈 모아 집 살 거냐?"며 충고를 할 정도다. 그녀는 그동안 다녀 본 곳 중에 포르투갈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며 은퇴 후 포르투갈로 떠났다.
나도 가서 살까? 생각만 하다가 일단 가 보기로 했다.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은 뉴욕에서 7시간 거리로 가깝다. 시간은 뉴욕보다 5시간 빠르다. 공항 수속도 빠르다. 곳곳에 팜 트리가 있는 지중해성 기후다.
가방을 끌고 언덕 위에 있는 호텔로 이동하기를 포기하고 공항에서 가격이 미안할 정도로 싼 우버를 탔다. 왜냐하면 길바닥이 온통 2.5인치 미색을 띤 자연석을 박아 놓았기 때문이다. 자기 전에 창밖을 내다봤다. 어둠 속에서 돌바닥이 물에 젖은 듯 반짝거렸다. 비가 왔다고 착각했다. 그렇게 반들거리는 돌바닥이 미끄럽지가 않다는 것이 신기했다. 곳곳의 건물 벽은 그 옛날 무슬림 지배하에서 온 모스크 사원의 흔적인 듯 타일이 박혀있다.
좁은 골목 언덕을 노랑 전차가 거의 사람들에게 닿을 듯 말 듯 정감있게 꼬불거리며 다녔다. 더럽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깨끗하지도 않다. 소박하고 부담 없는 작은 도시다. 마리화나와 알코올 등에 대한 법적인 재제가 없다는 데도 사람들이 친절하고 얌전하고 길에서 귀찮게하지 않았다. 마켓 물가가 엄청나게 싸서 놀랐다. 특히나 와인이. 식당에 택스와 팁이 없다. 어느 식당이나 생선요리, 특히 내 남편이 환장하는 대구 요리(바칼라우)가 다양하고 맛있다.
리스본에서 3시간가량 북쪽으로 기차를 타고 가면 포르투라는 도시가 있다. 갈 때는 싼 기차를 타고 3시간 20분 정도 아주 스무스하게 갔다. 그러나 올 때는 두 배의 가격으로 1시간이나 빠른 기차를 탔다가 하도 흔들려서 토하고 누워 왔다. 기차에서 사경을 헤매느라 포르투에 대한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남들은 리스본보다 포르투가 더 좋다던데.
"왠지 포르투갈이 나와 맞는 것 같아. 물가도 싸고 기후도 좋고 사람들도 점잖고 문화 역사도 깊고 다른 유럽 도시처럼 화려하거나 거창하지 않아서 마음에 드는데. 어떻게 생각해? 이왕 고국을 떠나 떠도는 신세인데 이제는 유럽에서도 살아볼까?"
남편은 대답이 없다. 그러고 보니 여행 내내 남편은 대구 요리 잘하는 식당만 찾는데 열 올렸다는 것이 생각났다.
"화가는 은퇴가 없잖아. 화가가 살기에 뉴욕만 한 곳이 어디 있어. 물가가 비싸서 그렇지. 포크레인이 곳곳에서 올라가는 것 좀 봐. 곧 이곳도 비싸질 거야. 은퇴한 미국 사람들은 남쪽 바닷가에 많이 산다는데 그곳을 한번 둘러보고 나서." "남쪽으로 가봐야 밋밋한 미국식이 범벅이 된 곳이겠지. 마누라 혼자서 반년 살아보는 것이 어때?"
갑자기 피곤이 확 몰려왔다. 가고 싶은 여행지에 대한 미련을 떨어내기 위해 이렇게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과연 있을까? 내 편한 보금자리를 비워 놓고 떠났다가 오고를 반복하는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에 허탈해졌다.